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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401화 (401/600)

第八十一章 지흠동풍(只欠東風) (1)

서리흔!

아걸은 서리흔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큰 무게로 가슴을 짓누르는 이름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서리흔이라는 이름은 일홀도를 완성했을 때만 불린다.

이름 자체는 지금 당장이라도 쓸 수 있지만, 사부가 전해 준 일홀문도의 이름이 될 수는 없다. 일홀도를 완성하기 전에는 남이 부르는 이름일 뿐, 자신의 이름이 아니다.

사부의 네 제자가 모두 그랬다.

성을 물려받지 못한 동박은 말할 것도 없고,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도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서리흔이라는 이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일홀도를 완성해야 한다.

부족한 점을 채우고 더 보완해야 한다. 아직은 일홀도가 아니다. 허도기에게 졌지 않나. 허도기에게 이겼다고 해도 일홀도를 완성한 것도 아닌데, 졌으니 더 말할 게 없다.

문제는 일홀도 중에 어디를 채우고, 어느 곳을 보완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가진 것을 버리는 형태로 드러났을 뿐이다.

아걸은 아무 짓도 하지 않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도 치열하게 싸워 왔다.

비워야 채워진다.

지금은 너무 꽉 차 있어서 채울 게 없다. 그래서 자존심도 버리고 모욕감도 버리고 다 버려봤다. 그런데도 여전히 비워지지 않고 꽉 찬 느낌이 든다.

아걸은 정말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이 부분은 은거 무인도 말해 줄 수가 없다. 오직 아걸 본인만의 문제다. 다른 사람은 솔직히 아걸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치열하게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만 짐작한다.

“그동안 따라오시면서 걱정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서…… 술 한 잔 드립니다. 후후! 내일부터는 걱정하지 마세요. 보기에 어때요? 잘 먹고 잘살지 않아요?”

“하하하! 걱정은 안 하지.”

“걱정하던데?”

“누가? 하하하! 자네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어. 자네가 가는 길은 우리 중 누구도 가 보지 못한 길이니까. 우리와 똑같은 행동을 해도 내용은 완전히 다르거든.”

지당검 고사가 말했다.

“자네가 하는 것들, 솔직히 우리도 해 봤지.”

“그래요?”

“그럼. 술 먹고 취해서 늘어져 보기도 하고, 개차반이 되어서 떠돌기도 했고, 거지처럼…… 다 해 봤던 것들인데, 우리와는 달라. 이유도 다르고, 얻는 것도 다르고. 걱정은 안 해.”

“아닌데. 걱정 많이 하던데? 늘 내가 들렸던 곳에 들려서 뭘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물었잖아요. 하하! 이제 그런 일, 그만하라고. 안 해도 돼요.”

“하하하! 걱정 안 한다니까. 우린 술 한 잔 먹고 빠질 테니까 마음껏 해 봐.”

“네.”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취화원이 황궁과 고리를 맺은 건 아나?”

“그래요?”

“모를 줄 알았다니까.”

쌍겸이 말했다.

무림 문파, 특히 살수 문파가 황궁과 인연을 맺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그 끝은 늘 비참하다.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정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아걸은 이 소식을 처음 들었다.

그동안 아걸은 모든 소식에 귀를 닫고 살았다. 버릴 게 산더미처럼 많은데, 계속 주워 담으면 어쩌겠나.

쌍겸도 그런 점을 알고 있기에 말해 준 것이다.

사실 몽설은 이미 아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절 소식을 전해오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아걸의 수행에 방해가 될까 봐 저어하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보살피고 있다.

두 사람이 연락을 끊은 지는 벌써 반년이 넘어간다. 그런데도 서로 연락을 취하지 않고 있다. 마음으로는 매일매일 생각하면서, 서신 한 통 보내지 않는다.

“아! 이거 정말 독하네요. 취합니다.”

“그만 자. 안주는 그거면 됐지? 나머지는 우리가 갖고 간다.”

“어딜 가려고요?”

“가야지. 거지 곁에서 잠이나 자겠나. 하하하!”

지당검 고사가 술이 남아 있는 술독을 들었다. 황열은 아걸이 구운 닭을 집었다.

그들은 아걸을 남겨놓은 채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멀어져갔다.

아걸은 그들을 눈으로 배웅했다. 어차피 저 사람들은 계속 뒤를 쫓아올 것이다.

‘취하네.’

술기운이 팽 돈다.

“후후! 좋네. 술.”

아걸은 웃었다.

몽설이 염려되기는 하지만, 그녀를 믿는다.

명예나 돈, 권력을 보고 황실과 인연을 맺을 여인은 아니다. 취화원 발전을 생각해도 그런 식의 행보는 하지 않는다. 분명히 가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걸은 몸속에 도는 술기운에 온몸을 맡겼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근심, 걱정을 놓는 것이다.

걱정거리가 생겼는데 말로만 ‘걱정하지 말라. 안심하라’ 하고 말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근심거리에 대해서 자신이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때는 깊은 한숨이 저절로 토해져 나온다.

“하아!”

이 걱정거리를 어떻게 해소할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생각나거나 찾아지면 당장 움직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다.

아걸은 몽설이 걱정되었다.

‘황궁으로…… 참 힘든 길인데, 그 길을…….’

몽설이 나중에 어떤 해코지를 당할까 봐서 걱정하는 게 아니다. 지금 당장 큰일이 생겼다. 멀리 볼 곳도 없이 바로 싸움을 벌이게 생겼다.

누구와 싸우나? 허도기와 싸운다.

몽설이 황궁으로 들어갔다는 말은 곧 허도기를 직접 노린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몽설은 언제나 적이 뚜렷했다.

취화원을 몰살시킨 곳은 정동 무인들이었다. 하지만 정동 무인 뒤에는 성검문이 있었다.

부모의 원수와 사문의 원수가 같다.

몽설은 아걸처럼 복수의 대상자를 고민하지 않는다. 성검문을 노릴 것인지, 허도기만 국한해서 공격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허도기와 연관된 모든 것을 다 부순다.

복수의 대상이 너무도 뚜렷하다.

그녀가 황궁에 간 것도 허도기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허도기와 정면으로 부딪친다.

지금까지는 직접 허도기를 겨냥하는 일은 피해 왔다. 아직은 그녀도 취화원도 성검문과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황궁이 개입하면 힘이 월등히 커진다.

충분히 싸워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몽설이 허도기의 검을 받아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은 안 돼.’

아걸은 몽설의 무공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허도기의 무공도 매우 잘 안다. 양쪽 무공을 다 아는 입장에서 두 사람의 싸움은 절대적으로 몽설에게 불리하다.

몽설은 부딪치면 안 된다.

“휴우!”

아걸은 한숨을 토해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잊고 우선 일홀도부터 완성하고자 했건만…… 근심 걱정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지금은 허도기 상대가 안 되는데…….’

아걸은 고민했다.

오음산에서 허도기와 싸워 본 결과, 지금 상태로 다시 싸운다면 십 중 십 진다. 그와 팽팽하게 싸워본 결과로 말하는 것이다. 아직도 차이가 크게 난다.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 지금 모든 것을 버리는 중인데…….

아걸은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을 지켜보면서 뜬눈으로 밤을 밝혔다.

몽설이 황궁으로 들어간 사실을 알고 나니 걱정이 되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촤아아악!

차가운 개울물을 몸에 끼얹었다.

아침마다 몸을 씻지만, 오늘은 더 오랫동안 씻었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인지 취기가 오래 머무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 개운하게 털어냈다.

아침마다 깨끗하게 몸을 씻은 이후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잊고 새롭게 오늘을 맞이한다는 자신만의 의식이었다. 각오를 곁들인 의식이랄까?

오늘은 그런 마음이 더욱 강했다.

아걸은 몽설을 안다. 그 여자는 허도기와 직접 싸우는 순간이 오더라도 결코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부딪칠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몽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야 그녀가 어떤 행보를 했는지 알게 된다.

몽설은 그런 여자다.

몽설은 적이 명확한 만큼 아걸도 깊이 이해한다. 아걸의 최대 숙원은 복수가 아니다. 일홀도를 완성하는 것이 복수보다도 더 큰 평생 숙원일 것이다.

그렇다고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아걸의 원수와 몽설의 원수가 겹친다.

몽설은 복수는 자신이 할 생각이다.

아걸은 오직 일홀도에만 맹진하게 배려한다.

솔직히 이것이 배려인지 고문인지 모르겠다. 죽임을 당하더라도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고문이다. 그래서 인제 그만 세상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녀가 도움을 요청해 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허도기의 이목을 자신에게 잡아끌어야 한다.

그의 시선이 몽설을 향하게 하면 안 된다. 몽설은 차후에, 우선 아걸부터 친다는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마음이 더욱 강해져야 한다.

몽설이 일홀도의 완성을 위해서 아걸을 풀어 놨듯이, 아걸도 몽설을 위해서 일홀도의 완성을 늦춘다. 어떻게든 허도기와 승부를 보지 않고는 이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허도기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지금은 자신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어서 내버려 두고 있지만 만약에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소식을 전해 듣게 되면 당장 달려올 것이다.

호두기는 다른 누구에 앞서서 자신부터 제거하려고 한다.

오음산 싸움이 허도기와 아걸, 두 사람의 생각을 바꿔놨다.

옛날, 숙원을 만든 사람은 허도기인데, 오히려 허도기가 아걸을 쫓아온다. 아걸을 죽이지 않고는 두 발 뻗고 잘 수 없다는 사실을 오음산 싸움에서 절실히 깨달았다.

서로 물러설 수 없다.

아걸은 목욕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어제 입었던 옷은 깨끗이 빨리 빨아서 나뭇가지에 걸어 놨다. 잠시만 걸어놔도 물기가 마른다.

스읏!

반철도를 꺼냈다.

반철도를 손대지 않고, 날도 갈지 않은 채 계속 지니고 다녔던 데는 이유가 있다.

반철도에는 허도기의 검흔이 새겨져 있다.

반철도에 찍힌 검 자국을 보면 허도기의 검을 떠올릴 수가 있다.

쇠뭉치나 다름없는 반철도를 거침없이 찍어 버린 검날!

쇠뭉치와 검이 부딪히면 검이 부러져 나가야 하는데, 오히려 쇠를 찍어 버렸다.

스으읏!

아걸은 반철도를 만졌다.

그러자 즉시 오음산의 싸움이 떠올랐다. 허도기가 전개한 검초, 검속, 검도 수련 기간…… 이를 악물고 악귀 같은 모습으로 달려들던 표정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오음산 싸움에서 허도기는 최후 절초를 펼치지 않았다.

몸이 피투성이가 되면서까지 조명십해의 마지막 초식, 조명천하를 그려내지 않았다.

펼칠 수 없거나, 펼치지 못하는 사정이 있거나.

아걸은 후자라고 생각한다. 허도기의 모습에서 검초 전개를 망설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음에는 조명천하를 터트릴 것이다.

‘아무래도 일홀도를 완성해야 하는데…… 좋아. 그럼 이 상태에서 최선을.’

슷!

아걸은 반철도를 허리에 꽂았다.

아걸을 쫓는 사람이 많다.

일단 허도기 쪽은 아직 달라붙지 않았다. 은거 무인들이 자신을 찾아냈고, 장군부에 연락을 취했다. 그 후부터 관부, 취화원, 적랑대의 눈이 쫓아다닌다.

아걸은 많은 삶의 감시망 속에 들어있다.

아걸은 옷이 마를 동안 지필묵을 꺼내서 글을 적어 내려갔다.

몽설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처음에는 간단히 용건만 적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붓을 들고 글씨를 쓰기 시작하자 온갖 이야기가 흘러나갔다.

몽설이 보고 싶다. 하지만 참는다.

이 서신도 굳이 몽설에게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몽설이 자신의 움직임을 최대한 이용하라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써먹으라고 서신을 적는다.

‘이왕 시작할 바에는 철저히 하자. 이번에 당하면 끝장이야. 명심해. 몽설.’

아걸은 서신을 적으면서 빙긋 웃었다.

몽설을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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