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05화 (405/600)

第八十一章 지흠동풍(只欠東風) (5)

함양은 조그만 마을이 아니다. 대단히 큰 성(城)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 이만 명에 불과한 성이었지만 몇 년 사이에 십만 명 이상으로 확 늘었다.

그만큼 살기 좋고 풍족한 성이다.

고준택, 그는 누구인가.

인구가 십만이 넘는 큰 성에서 어떻게 이름 석 자만 들고 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까?

굳이 찾을 필요도 없다. 딱 한 마디만 물어보면 된다.

- 고준택이라는 사람을 아슈?

함양 사람치고 함양성 성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른 성애서는 성주 성씨가 이씨인지, 왕씨인지도 모르는 곳이 많지만, 함양성만은 다르다.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네 번째 척살 대상자는 이토록 유명한 인사다.

이름 밑에는 고준택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적혀 있다. 바로 아걸이 세상에 알려야 하는 내용이다.

명부판관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서신에 적힌 죄업은 반드시 사실이어야 한다. 아니, 상대가 함양성 성주이니 사실이 아니면 대단히 곤란해진다.

“음!”

침음을 흘리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흘러나왔다.

몽설이 함양성 성주를 죽이라고 서신을 보내왔다. 몽설을 몰랐다면 자칫 일홀도를 정치에 이용하는 게 아닌가 의심해도 충분한 상황이다. 함양 성주는 공부 허도기와도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분이 매우 두터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몽설이 보내온 서신을 보면 이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이를 악물게 된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살인에 중독된 살인마다.

그런데 막상 함양 땅에 와서 알아보니 성주? 그것도 황궁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거물?

성주 주변에는 군사가 있다. 성주의 침소까지 진입하는 데만 해도 거의 사오 천 명에 이르는 군사를 뚫어야 한다. 상시 대기하고 이는 병사가 그 정도 된다.

“어떻게 할 건가?”

지당검이 물어왔다.

“소식은 전했습니까?”

아걸이 되물었다.

“전했지. 명부판관 심부름으로 성주님을 뵈어야 한다고 하니까 한달음에 달려 나오더라고. 청부 대상자가 본인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야.”

“그렇겠죠.”

아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부판관이 유명해진 것도 맞고, 명부판관이 하는 말이 모두 맞다는 것도 알겠는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무리 아닐까? 증거도 찾기 힘들고.”

한항이 말했다.

지당검도 같은 의견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함양에 들어서기 무섭게 고준택이라는 사람을 물어보았고, 살첩을 전할 대상자가 성주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정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살첩을 전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명부판관의 위명이 높아서 ‘명부판관’이라는 이름을 대자마자 대문을 지키는 초병이 즉시 달려갔다. 그리고 미처 백을 헤아리기 전에 성주에게 안내되었다.

‘명부판관’의 이름 덕을 톡톡히 봤다.

“성주가 살첩을 보고 뭐래? 미쳤다고 안 해?”

쌍겸이 히죽 웃으면서 물었다.

“그런 말은 안 하고, 웃기는 했어, 그리고 뭐라더라? 명부판관 소문을 진작 들었는데, 명부판관도 사람을 잘못 볼 때가 있군. 그게 아니면 공부 벗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생매장하려고 한다나, 어쩐다나 그러더라고.”

“명부판관이 아걸이라는 걸 아네.”

“아는 사람은 다 알지 뭐. 그러면서 함양에서 살인이 일어난 게 언제인지 기억에도 없다고 하더라고.”

“그놈 자신이 하늘로 뻗치네.”

“그럴 만하지. 허도기와 연관 있는 사람치고 성검문 혈무대 싸움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런데 뭐가 그렇게 당당한 거야?”

“증거란 게 있어야 말이지.”

지당검이 고개를 내둘렀다.

취화원 정보에 의하면 고준택은 거의 이삼일에 한 번씩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살인광이다. 일 년이면 최소 백 명에서 백오십 명이 죽는다는 이야기다.

살해 대상자는 외부에서 공급된다.

함양 사람은 일절 건드리지 않고 실종이 되어도 함양을 의심할 수 없는 곳에서 잡아온다.

살인을 도와주는 자들이 있다는 거다.

사람을 납치해오면 고준택이 마음 편히 살인을 즐긴다. 그냥 칼로 푹 찔러서 죽이는 게 아니다. 사람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죽여 버린다.

고함을 내질러도 밖에서 들리지 않는 비밀 정소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을 죽인 후에는 시신을 치우는 자들이 나선다. 살해 장소를 깔끔하게 청소해서 누가 와서 봐도 살인은 생각할 수 없게끔 깨끗이 청소한다.

시신은 저수지에 던져 버린다.

저수지에는 서역(西域)에서 들여온 식인어(食人魚)가 우글거린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에 들어가기만 하면 당장 물어뜯어서 먹어 치운다.

사람 한 명을 흔적도 없이 먹어 치우는 데 일다경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들어가자마자 녹아버린다는 말도 있으니 무척 빠르게 먹는 것 같다.

사람이 그야말로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누군가를 납치해 왔다는 증거도 없고, 죽였다는 증거도 없고, 시신도 없다.

취화원 정보가 잘못되었을 리는 없다.

취화원은 고준택이 함양성 성주로 있는 사 년 동안 무려 오백 명 이상이 죽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야말로 대단한 살인귀다.

성주가 왜 이렇게 살인을 많이 하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나? 없다. 단지 살인을 즐기는 살인마다. 사람을 죽이는 데서 지극한 쾌감을 느끼는 변태다.

당연히 죽이는 방법도 다양하다.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처참한 방법이 모두 동원된다. 시신을 갈라서 근육 한 올, 한 올을 다 살펴본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극심한 쾌락을 느끼면서 죽인다.

고준택이 어느 방에 들어간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그는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제외하면 고준택은 더할 나위 없이 민초를 잘 보살피는 명관이 된다. 함양성 사람 모두가 칭송해 마지않는 현명한 성주다.

이래저래 쉽지 않은 살행이다.

“어쨌든 살첩은 전했으니까…… 오늘은 기다려봐야지 뭐. 큰 기대는 하지 마. 그 작자, 결코 이실직고하고 벌을 자청할 놈이 아니야. 자칫하면 네가 다쳐.”

지당검이 아걸을 보며 말했다.

“취화원은 뭐래? 증거는 언제 준대?”

쌍겸이 물었다.

“증거는 저수지에 있다고 하던데…….”

아걸이 말끝을 흐렸다.

아걸도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 서신에 모든 것을 적어놓을 수도 없다. 또 그런 일은 보안상 서신에 적어놓지 않는다. 더욱이 허도기 간자가 볼 수도 있는 서신이지 않나.

“저수지? 식인어? 저수지에 식인어가 산다는 건 사람들 모두가 다 알아. 저수지에 장난질 치는 사람을 없게 만들려고 성주가 일부러 풀어놓은 거래. 그리고…… 저수지라면 어느 저수지를 말하는 거야? 여기 저수지가 스무 개가 넘어.”

“저수지에 증거가 있어도 우리가 뒤지기는 난감해. 성주와 함양성 사람들이 끔찍이 아끼는 게 저수지야. 절대로 손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은거 무인들이 말했다.

“일단 시간은 줬으니까…… 성주가 뭘 하든 지금은 성주의 시간이에요. 말을 들어보니 내일 일이 쉽지 않겠는데…… 일단 쉬죠. 쉬어야 칼도 쓰니까.”

“쉬자고? 지금 쉬자는 말이 나와?”

“하하하! 앞으로는 이것보다 더 심한 일들이 벌어질 겁니다. 몽설이 우리에게 쉬운 일을 주겠어요?”

“내 말이! 자네 두 사람, 연인 맞아? 도대체 무슨 놈의 연인이 사정도 봐주지 않고 냅다 몰아붙이냐? 이건 뭐 서로 그냥 일 시켜 먹지 못해서 안달 난 사람들 같아.”

나통이 고개를 내두르며 말했다.

“하하하!”

아걸은 크게 웃었다.

나통 말이 맞는다. 몽설이 너무 심한 일을 시켰다. 대체 어떻게 수습하라고 이런 일을 시키나.

아걸은 웃으면서 조용히 일어섰다.

은거 무인들은 아걸이 일어서는 것을 보고도 만류하지 않았다.

회합이 끝났으니 이제 명부판관은 내일 함양성에 들어갈 때까지 사라진다.

일홀도를 추구하는 아걸만 남는다.

지금부터 내일 반철도를 잡을 때까지, 아걸과 은거 무인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아걸을 뭐든 비울 것이고, 은거 무인은 술을 마실 것이다.

아걸은 움막에서 나와 산으로 걸어갔다.

오늘 밤도 야숙이다.

요즘은 워낙 밖에서 자 버릇해서 푹신한 침상에 누우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썩은 나무가 있으면 몇 개 갖다가 침상 대신 깔고, 이슬을 막아줄 것으로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좀 잘라 와서 지붕처럼 엮으면 훌륭한 잠자리가 된다.

이제 산에서 잠자리를 만드는 것쯤은 눈감고도 한다.

아걸은 자신이 만든 보금자리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휘익! 유성이 하늘을 가르며 떨어진다.

십이대 문주는 저 유성을 보고 유성비도를 창안해 냈다.

유성이 떨어지는 모습, 지극히 빠른 순간, 손에 닿지도 않는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강력했던 도법을 만들어냈다.

유성비도는 능히 일대를 풍미했다.

중원제일도, 일홀도의 명성을 당당하게 지켰다. 그만큼 빠르고 부드러운 칼이다.

유성을 본 사람은 수억 명이겠지만 그중에서 유성비도를 찾아낸 사람은 십이대 문주, 한 명이다.

유성을 보고 무공을 창안한 사람은 많다. 유성검, 유성비추, 낙화유성검, 유성비폭도…… 하지만 모두 다 모아봐도 겨우 열 개가 되지 않는다.

몇몇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중 일부가 거기서 정말로 뭔가를 해낸다.

휘리리릭!

썩은 나무 위에 누워서 반철도를 휘둘러봤다.

요즘 들어서는 가끔 반철도를 사용해 본다. 예전에는 칼은 손대지도 않았는데, 명부판관을 하다 보니 칼을 만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될 수 있는 한, 만지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까지 살행을 세 번 했다.

그중에 무인은 호도문주 한 명뿐이다. 그냥 칼을 휘둘러서는 안 되고, 합당한 초식을 펼쳐야만 죽일 수 있는 상대다. 아니면 최소한 신법이라도 펼쳐야 한다.

호도문주를 죽일 때 사용한 검초는 자연검이다.

은거 무인과 같이 지내면서 터득한 칼!

오로지 칼의 무게와 몸의 자연스러운 움직임만으로 만들어 내는 궤적, 타격.

초식을 펼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펼치는 초식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오로지 상대방의 칼과 내 칼만 보고 몸통을 가격했다.

호도문주와의 승부는 일 초에 끝났다.

문주의 호도가 턱 밑을 쓸고 지나갔다. 실로 간발의 차이, 호도문주로서는 땅을 치고 통곡할 만큼 아까웠을 것이다. 명부판관을 잡을 수 있었는데.

문주의 칼이 위력적이어서 간발의 차이로 피한 것이 아니다. 칼이 스쳐 간 것이 아니다. 아걸이 딱 그만큼의 간격을 두고 피했다. 그 정도의 간격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반철도가 호도문주의 심장을 쳤다.

뭉툭한 칼이 가슴을 치고 들어가서, 심장을 터트렸다. 갈비뼈를 짓뭉갰고, 등 뒤까지 삐져나왔다.

넓적한 쇠뭉치로 쳤는데, 가슴이 갈라졌다.

파괴력이 굉장한 칼이지만, 아걸은 반철도에 거의 힘을 주지 않았다. 손끝으로만 잡고 휘둘렀다. 칼의 무게만 제대로 펼쳐 내도 바위를 부수는 파괴력이 일어난다.

아무리 그래도 간발의 차이로 피하는 것은 너무 무모하지 않을까? 조금 더 넉넉하게 거리를 두고 피해도 되지 않을까? 호도문주를 무시한 것은 아닌지.

호도문주를 무시한 적은 없다. 하지만 칼이 약한 것은 사실이다. 상대가 호도문주가 아니라 허도기였다면 검초가 펼쳐지는 순간에 피해도 살이 베인다.

그래서 조금 기다렸다.

자신 스스로 ‘윽!’ 하는 느낌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정도 빠름은 경험해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은 항상 허도기의 검을 염두에 두고 싸운다. 최소한 그 정도 빠름이 느껴질 때까지 기다린다. 허도기가 적수라서 일부로 그를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보아 온 검 중에서 가장 빠른 검이 그의 검이었기 때문에 그 검을 떠올리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허도기를 생각한 것이 아니고, 조명십해를 떠올리면서 검을 쳐 냈다.

꾸우욱! 꾸우우우욱!

올빼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밤은 동물들의 세계다. 인간은 잠을 청하지만 동물은 밤에 움직인다.

아걸은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은거 무인들은 내일 있을 일을 숙의할 것이다.

이번에는 자신이 생각해도 어렵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걸은 어떤 증거를 모아올까?

아걸은 내일 있을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내일은 내일, 오늘은 푹 쉰다.

일홀도에 관한 생각도 접는다.

모든 것을 완벽히 버린 순간…… 사람은 그런 순간을 매일 맞이한다. 그런 일을 매일 겪으면서도 의식하지 않았다. 그토록 버리려고 애썼던 일을 매일 하고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모든 것을 완벽히 버린 순간은 잠자는 순간이다.

이완에는 두 종류가 있다.

사람들에게 이완하라고 하면 못 하는 사람이 없다. 당장 몸에 힘을 쭉 뺀다. 축 늘어진다. 그리고 이완했다고 한다. 맞다. 그것도 이완이다. 다만 몸의 이완이다.

또 하나의 이완이 있다. 마음의 이완이다.

마음이 이완되면 참으로 묘한 일이 일어난다. 잠을 자기 직전의 상태가 된다. 몸이 현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잠에 빠진 것도 아닌…… 현실과 잠의 중간 세계에 아주 잠깐 머문다.

그때, 지극한 평화가 느껴진다.

그 상태가 마음의 이완이다.

마음이 이완되면 몸의 이완은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이 가졌던 근심, 걱정, 불안, 행복, 기쁨, 권력, 성욕…… 모든 것이 다 떨어져 나간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잠에 빠질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다. 일홀도를 생각하면 맑고 명료한 정신 속에서 칼이 떠오른다.

아걸은 눈을 감았다.

오늘은 일홀도도 생각하지 않고 잠을 청해야겠다. 아마도 내일은 무척 바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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