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06화 (406/600)

第八十二章 설담척살(說談刺殺) (1)

- 명부판관이 함양성 성주를 지목했다!

호도문 문주가 죽고 오 일째 되는 날, 함양성은 발칵 뒤집혔다.

함양성은 아침부터 출처 불명의 괴소문으로 들썩였다. 명부판관이 이 세상에서 지워 버려야 할 네 번째 대상자로 지목한 사람이 함양성 성주라니!

“성주님이? 말도 안 돼!”

“성주님이 무슨 짓을 했다고? 에이! 아침부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성주님이 무슨 사람을 죽여? 그것도 이삼일에 한 번씩? 하하하! 어느 정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지.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거야?”

“말도 안 돼! 사람이 이삼일에 한 명씩 사라졌는데 소문이 안 난다고? 내 주변에는 실종됐다고 울고불고하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이런 소문을 흘리고 다녀?”

소문을 들은 모든 사람의 반응이 한결같았다.

믿지 못했다. 부정했다.

하지만 말을 던진 사람이 명부판관이란다. 명부판관은 항상 증거를 앞세우고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다. 죽이기에 앞서서 부인하지 못할 증거부터 들이민다.

이번에 명부판관이 성주를 지목했다면, 살인에 앞서서 완벽한 증거를 제시할 것이다.

이번에는 확실히 명부판관이 뭔가 잘못 착각한 것 같다.

지금까지 명부판관이 착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겨우 세 번뿐이다. 그전에는 명부판관 위명은 자자했지만, 잠시 잠적했다가 다시 나온 만큼 새로운 눈으로 봐야 한다.

아니, 설혹 성주가 그런 일을 벌였다고 치자. 한낱 무인이 황제가 임명한 성주를 살해할 수 있나?

“이게 무슨 일이야, 도대체?”

“가만! 이게 명부판관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성주님은 어제 이실직고하라는 통문을 받은 거잖아? 하루 전에 자백 기회를 주지 않았나?”

“그러잖아도 어제 명부판관 심부름이라면서 누가 들어갔대. 쉿! 이건 비밀이야.”

“누가?”

“명부판관을 따라다니는 졸개들이겠지 뭐.”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명부판관 심부름이라면서 누가 찾아오니까 글쎄 성주님이 버선발로 뛰어나오셨단다.”

“버선발로? 신발도 안 신고?”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명부판관이 찾아온 것 아니겠어? 그러면 당장 고쳐야지. 그런 마음으로 사자를 반갑게 맞이했는데…… 아! 글쎄 불쑥 살첩을 내밀었다는 거야.”

“황당했겠네.”

“황당하지. 명부판관이 느닷없이 당신을 죽이겠소 하고 살첩을 내미니까 기가 막히지.”

“그래서? 그다음은 뭐라고 그랬대?”

“명부판관이 어디서 무슨 그런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협조할 거 다 협조해 주라고 하셨대. 명부판관이 찾아오면 길도 막지 말라고 하셨다던데.”

“진짜 이번엔 명부판관이 뭐 잘못 안 거 아니야?”

“성주님이 그럴 리가 없지?”

“에이! 그럴 리 없지. 성주님이 살인마면 내 목을 걸겠다.”

함양성 사람들은 둘만 모이면 명부판관과 함양성주의 얘기로 떠들썩했다.

함양성에서 고준택이 행한 일은 절로 감탄을 터트리게 만든다.

고준택이 함양성주로 부임한 후, 함양성은 부임 전보다 무려 세 배 이상 발전했다.

함양성 사람은 대부분 하루 끼니조차 걱정해야 하는 빈민(貧民)이었다. 먹고살 자원도 없고, 홍수와 가뭄이 거의 매해 찾아와서 농사도 짓기 힘들었다.

고준택은 부임한 해에, 저수지를 무려 일곱 개나 만들었다.

지금은 스무 개로 늘었지만…… 한 해에 저수지를 일곱 개나 만든 것도 대단한 공사다.

그 후, 농토가 비옥해졌다.

가뭄을 넉넉하게 이겨냈고, 홍수 피해도 잘 조절되었다.

다른 지역은 가뭄과 수해에 사람이 죽어 나가도 함양성만큼은 늘 풍족했다.

성주는 물을 잘 다스렸다.

성주는 농토가 없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소집해서 일을 시켰다.

저수지를 만들고, 강에 제방을 쌓고, 길을 넓게 닦았다. 허름한 집을 허물고 새집도 지어주었다.

보통 관역(官役)이 떨어지면 죽을 맛으로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다. 나라에서 억지로 나오라고 하니 안 나갈 수 있나. 죽지 않으려면 나가서 일해야지.

아무리 바쁜 농사철에도 부역이 떨어지면 농기구를 놓고 가야만 한다.

하지만 성주가 소집하는 관역에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퉈서 나선다. 단순한 관역이 아니다. 일한 대가를 지불한다. 대가도 상당히 넉넉하다.

그러다 보니 관역에 동원되려고 뒷돈까지 찔러주는 사례도 벌어졌었다.

함양성은 더는 빈성(貧城)이 아니다. 살기 풍족한 성이 되었다.

오죽하면 함양성 사람들 입에서 성주 공덕비를 세우자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퇴임한 후에 세우는 공덕비를 현임 중에 세우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관인 것이다.

그런 성주가 살인에 미친 살인귀라고 하면 함양성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함양성이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했다.

사시(巳時 : 오전 10시)!

이 시간쯤은 명부판관이 살해 대상자를 향해 간다. 미시(未時: 오후 1시)에 당사자를 만나고, 한 시진 정도 증거를 들이민 후, 미시말(未時末: 오후 3시)에 떠난다.

물론 명부판관을 만난 사람은 처형된 후이다.

명부판관은 그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라며, 그를 막기 위해서, 살해자를 돕기 위해서 달려온 무인들도 검을 뽑지 못할 정도로 증거를 완벽하게 내놓는다고 했다.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어서 친구이면서도 돕지 못한 것이다.

가족이나 친척, 벗들, 돈으로 사들인 무인들까지 저항을 포기하도록 만든 증거!

명부판관은 항상 그런 증거를 제시한다.

“사시지?”

“명부판관이 슬슬 움직일 시간이네.”

“올까?”

“오겠지. 소문이 이렇게까지 났는데.”

사람들은 명부판관이 성주를 암살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암살은 절대로 안 된다. 함양성 모든 사람이 총동원되어서라도 암살만은 막는다.

그래서 번을 서지 않은 관군까지 모조리 성에 운집해 있다.

명부판관이 무력으로 성주를 암살하려 한다면 우선 관군부터 뚫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명부판관이 증거를 내놓는다면 말이 달라진다.

성주가 명부판관이 말한 것처럼 정말로 그렇게 후안무치한 인간이라면 말라지 않는다. 이삼일에 한 명씩 애꿎은 사람을 납치해서 죽이는 성주를 지켜 줄 생각은 없다.

그러니 명부판관은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만약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 명부판관은 절대로 살아서 함양성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성주를 욕보였지 않나!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성 밖에서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어깨 위에 나무로 만든 목패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 안운현(安雲縣) 대산촌(大山村) 왕해청(王海淸) 경오년(庚午年) 십월(十月) 십삼일(十三日) 실종.

- 육선현(陸善縣) 음평촌(陰平村) 주균(朱均) 임신년(壬申年) 사월(四月) 이십일일(二十一日) 실종.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실종된 사람들의 명판이다.

실종된 사람이 살았던 장소와 날짜가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고, 목판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연서까지 해 놨다. 마을 사람 모두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증명한다.

“뭐야? 저건?”

“안운현이면 여기서 무려 삼백 리나 떨어진 곳이잖아? 삼백 리나 떨어진 곳에서 실종된 사람을 왜 여기서 찾아? 미친 거 아니야?”

“육선현은 지척이야.”

“지척은 무슨. 거기도 반나절을 가야 하는 곳인데.”

사람들은 함양성 인근에서 실종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에 놀랐다. 숫자가 너무 많다. 줄지어 오는 사람들이 거의 이천여 명을 넘어선다.

물론 그들 모두 목판을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종된 명단이 적힌 목판은 앞에 선 사람들 오백 명 정도만 들고 있다. 그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은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이나 아니면 지인들인 것 같다.

그들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다.

농민도 있고 선비도 있다. 어떤 사람은 사냥꾼인 듯 거친 옷을 걸치고 있다.

무기는 들고 있지 않다. 모두 빈손이다.

저벅! 저벅!

단지 앞에 선 사람들이 목패를 꿋꿋하게 들고 걸어왔다.

그들의 눈에는 분노가 이글거렸다. 누군가가 옆에서 뭐라고 한마디만 하면 당장 이천여 명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패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다.

‘이게 전부 다 실종된 사람들…… 가족?’

명부판관이 이들을 찾아냈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이도록 종용했다.

목판은 급조한 것이다. 실종 사실을 증명하는 연서에는 아직 먹물이 마르지 않은 것도 있다.

목판을 급히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의가 충분히 의심스럽다.

이런 일은 하루 이틀 사이에 알아낼 수 없다. 설혹 알아냈다고 해도 이들 모두를 한자리에 모으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며칠 만에 뚝딱 해치울 수 없다.

실종된 것은 맞나? 실종도 거짓으로 적어 놓은 거 아냐?

인근 마을부터 저 멀리 사나흘은 달려가야 도착할 곳에 있는 마을까지…… 주변 지역에서 실종된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확실히 놀랍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성주님을 의심해서 목판을 들고 나타난 것이 불쾌했다.

하지만 무려 이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란히 줄지어서 걸어오고 있으니 길을 막지는 못한다.

실종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없을 것이다. 길을 막았다가는 당장 난리가 난다. 그나마 이들을 막을 사람들은 관군뿐이다.

이천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함안성으로 진입했다.

관군은 그들을 막지 않았다. 전날, 성주가 어떤 일에도 협조하겠다고 말한 까닭이다. 명부판관이 오면 막지 말라는 명령까지 직접 내렸다.

설마 이런 식으로 이 많은 사람이 달려올 줄은 몰랐다.

사람들은 곧장 성주가 거처하는 관사로 갔다.

하지만 관사 앞에 도착한 사람들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차분하게 줄지어서 앉았다. 관사로 통하는 넓은 길이 사람들로 꽉 채워졌다.

줄지어 앉은 사람들은 묵묵히 앞만 쳐다봤다.

시간이 흘렀다.

“명부판관은 오는 거야?”

“오겠지. 일을 이렇게 벌여 놨는데 오지 않겠어?”

“이 사람들 실종된 게 성주님 짓이라 이거지? 이게 말이 돼? 정말 실종된 것인지도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어떤 말은 앉아 있는 사람들이 듣기 거북한 말도 많았다.

함양성 사람들에게 성주는 곧 신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성주처럼 뛰어난 명관은 없었다.

정오 무렵, 드디어 명부판관이 함양성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천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관도에 줄지어 앉은 후에도 무려 한 시진이나 지난 후다.

확실히 다른 때보다는 늦게 나타났다.

명부판관은 큰 방갓으로 얼굴을 가렸다. 허리에는 날이 뭉턱뭉턱 빠진 반철도를 찼다.

원래 명부판관 형색이 이렇다.

그는 앉아 있는 사람들이 열어 준 길을 걸어서 곧바로 성주의 관사로 걸어갔다.

명부판관 뒤에는 한항과 나통이 따랐다.

그들은 뭐가 들었는지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 봇짐을 등에 짊어지고 걸었다.

저벅! 저벅!

그들이 걸어가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서 세 사람을 쳐다봤다.

“우리 아이가 여기서 죽은 게 맞죠?”

노파가 아걸에게 물었다.

그 말이 많은 말을 당겨내는 불씨가 되었다.

“정말 우리 애가 여기서 죽은 거죠?”

“그것도 모르고 세상천지 안 찾아다닌 데가 없었지 뭡니까? 이곳 성주 놈이 죽인 게 맞죠?”

만약 명부판관이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함양성 사람들보다도 여기 모인 이천여 명에게 맞아 죽을 판이다.

아걸은 일절 대답하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쳐다보는 눈길은 상당히 많다. 관도 좌우에 빼곡히 들어선 상점에도 사람이 꽉 차 있다. 이 층, 삼층으로 된 건물에는 사람이 가득 차서 미어터질 지경이다.

그들이 창문을 모두 열어 놓고 바깥을 쳐다본다.

차차착! 차차차착!

관군들이 창을 내밀어 세 사람을 제지했다.

“무슨 일이냐!”

관군을 지휘하는 자가 싸늘하게 말했다.

아걸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명부판관이다. 함양성 성주 고준택을 오백칠십삼 명에 대해 납치, 살인, 시신 훼손, 시체 유기로 처단하고자 한다. 암살을 원한다면 그대로 진행해 줄 생각은 있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은 세상에 밝혀진다. 지금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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