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二章 설담척살(說談刺殺) (2)
“미친놈! 성주님을 감히!”
아걸을 향한 창끝이 더욱 날카롭게 번뜩였다.
아걸이 말 한마디만 삐끗하면 여지없이 꿰뚫어 버리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아걸은 그들과 싸우지 않았다.
“성주께서 날 막으라고 하셨나?”
“안으로 들이라고 하셨다.”
“그러면 이런 식으로 막아서는 건 성주의 명을 어기는 거잖아? 이래도 되나?”
“증거부터 보자. 명부판관은 확실한 증거를 보인다고 했으니, 우리도 봐야겠다!”
아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성주를 위해서 충성을 한다는 것이겠지만…… 이들의 말은 성주의 비리를 자신들이 먼저 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당사자가 직접 증거를 대하면 부인이라도 할 수 있지만, 이들은 아무 말도 못 하게 된다. 그러면 그것이 오히려 성주를 더 압박하는 결과가 된다.
증거만 옳다면.
아걸은 나쁠 게 전혀 없다. 그리고 이미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된 상황에서 굳이 성주를 만날 이유도 없다.
아걸은 뒤에 있는 두 사람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들이 재빨리 앞으로 나서서 등에 짊어지고 온 봇짐을 풀었다.
척척! 척척척! 척척척!
봇짐에 수북이 들어 있던 것은 뼈다. 사람 뼈로 추정되는 뼈가 수북이 쏟아졌다.
다리뼈도 있고 갈비뼈도 있다.
하지만 봇짐에서 꺼낸 뼈들은 상당히 훼손 상태가 심했다. 어떤 뼈는 거의 부서져서 간신히 뼈의 형태만 유지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훼손한 곳에 식인어의 이빨 자국이 찍혀 있다는 점이다.
날카로운 이빨 자국이 워낙 많이 박혀 있어서 한눈에 정상적인 뼈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뼈 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가져온 것 같지만 할 말이 없다.
한항과 나통은 봇짐 속에서 식인어도 꺼냈다.
비록 죽은 생선이지만 아직도 이빨만큼은 톱니처럼 날카롭다. 손가락을 집어 넣으면 뎅겅 잘라먹을 것 같다.
한항과 나통이 바닥에 흩어진 뼈 중 하나를 들고 식인어의 이빨과 맞춰 봤다.
딱 들어맞는다.
두 사람은 뼈와 식인어를 들고 사방에 구경시켰다.
식인어가 뼈를 문 자국이 분명하다. 들고 있는 뼈를 내려놓고 다른 뼈를 집어서 대조해 봤다.
똑같다.
봇짐에서 꺼낸 수많은 뼈는 모두 식인어에 물린 것이다.
한항이 음성에 진기를 담고 크게 소리쳤다.
“올해! 유월 사 일! 일흥(一興) 저수지를 관리하던 자가 잠깐 방심해서 그물망 없이 저수지 물을 방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흘러나온 뼈와 식인어입니다! 저수지 물은 곧 잠갔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나와서 물길을 훑은 일이 있다는 점! 몇몇 분은 알고 있을 겁니다.!”
한항이 음성을 높였다.
그의 음성에는 창룡음(蒼龍音)이 실려서 관도 곳곳에까지 퍼져 나갔다. 최소한 관도에 줄지어 앉아 있는 사람들의 귀에는 똑똑히 틀어박혔다.
“물 관리를 위해서 식인어를 키운다! 여러분! 함양성 스무 개 저수지 중 유독 일흥 저수지에만 식인어가 있다는 것을 압니까! 일흥 저수지의 상징성을 의미하더라도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일흥 저수지는 성주가 만든 첫 번째 저수지다.
부임하자마자 만든 것으로 ‘항상 흥하라’라는 뜻으로 일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나쁜 의도로 저수지에 접근하는 자를 막겠다면서 식인어를 풀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식인어’에 생소했다.
성주가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거냐며 막말을 쏟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 물이 농토로 흘러들어서 비옥해지기 전까지는 항상 나쁜 말이 쫓아다녔다.
“물을 빼 봅시다. 물만 빼 보면 저수지 밑에 사람 뼈가 그득히 있을 겁니다. 누구의 뼈인지는 모르지만 오백여 구에 이를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한항이 뼈와 식인어를 높이 들어 보이며 선동했다.
“맞아! 물만 빼 보면 되잖아!”
“물을 빼 보자! 아니면 명부판관! 너 단단히 각오해!”
“사실이면 성주가 뒈져야지!”
여기서 또 한 가지 풀어야 할 증거가 있다.
저수지에서 수많은 뼈가 나와도 그것이 성주가 한 짓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모든 사람은 성주를 가해자로 생각하고 있다. 뼈만 나온다면 어떤 변명도 소용이 없어진다. 이것이 바로 창을 든 관군이 벌인 일이다.
“저수지 안에 무려 오백일흔세 명의 원혼이 잠겨 있습니다! 물만 빼내면 됩니다!”
한항이 연신 소리쳤다.
“어디서 헛소리를!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요망한 잡설을 늘어놓느냐!”
관군이 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한항이 더 큰 소리로 맞받아쳤다.
“네 놈 눈에는 이 뼈가 보이지 않느냐! 이 식인어의 이빨들이 보이지 않느냐! 설마 이걸 동물 뼈라고 우기지는 않겠지! 물을 빼 보자니까! 사람 머리뼈가 나오는지 물을 빼 보면 되잖아!”
한항이 창룡음으로 쩌렁쩌렁 고함쳤다.
한항은 변장술이 뛰어나다. 언변도 좋다. 딱 사기 치고 도주하기 좋은 재주를 지녔다. 그러면서도 무공 또한 뛰어나다. 은거 무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진정 분노를 담고 소리치자 창을 든 관군들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명부판관이 문제가 아니다. 싸움이 벌어지면 이 사람조차 이길 수 없다는 느낌이 와락 일어났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진짜 문제는 명부판관이나 한항, 나통에게 있지 않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관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함양성에 들어설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증거를 봐야만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증거를 봤다.
이천여 명의 눈에 분노가 이글거린다.
금방이라도 뛰쳐 일어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는 듯 섬뜩하게 빛난다.
그런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사전에 모종의 지시를 철저히 받은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토록 자제력을 가지고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이 사람들이 저수지 물을 뺄 것이다! 저수지 물만 빼면 뼈가 드러날 것이야. 뼈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내 목을 내놓는다. 명부판관도 목숨을 내놓는다. 명부판관의 실수는 애꿎은 사람을 모함한 게 된다. 그러니 명부판관의 목숨으로 갚는다. 성주가 어떤 일이든 협조한다고 했으니 협조하라!”
한항이 말했다.
아걸은 한마디도 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일이, 주변 분위기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창은 든 군사들은 한항과 나통이 늘어놓은 뼈들을 바로 눈앞에서 봤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일부러 칼로 식인어의 이빨 자국을 만들어 냈다고 우길 수는 있지만, 너무도 정교하다.
이건 누가 봐도 식인어의 이빨 자국이다.
아걸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부터 오백일흔세 명을 죽이고, 시신을 식인어에 던져준 자를 처단한다. 만약 죄를 덮고자 앞길을 막는 자는 명부판관의 이름으로 참한다.”
명부판관이라는 이름이 만인의 귀에 못 박혔다.
“막는 자, 벤다. 일흥 저수지의 물을 뺄 것이고, 식인어는 죽일 것이며, 사람 유골을 확인한다. 그 후, 성주를 죽인다. 막는 자는 벤다고 했다.”
스읏!
아걸이 반철도를 뽑았다.
아걸의 음성은 나직했다. 하지만 진기가 가득 실려 있어서 모든 사람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다른 저수지와는 달리 일흥 저수지만큼은 관사 옆에 있다. ‘일흥’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려는 듯 관군이 직접 관리한다.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철저히 통제해 왔다.
저벅! 저벅!
아걸이 앞으로 걸어갔다.
앞에 있던 군사 몇 명이 무의식적으로 장창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반철도가 번갯불처럼 움직였다.
타타타탕! 타앙!
군사들이 들고 있던 장창이 썩은 무처럼 잘려 나갔다.
“비켯!”
이번 일성에는 분노가 담겨 있다.
군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쫙 길을 열었다. 이미 저들 마음속에는 명부판관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뼈가 너무도 강력한 증거다.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이 관도에 앉아 있다.
명부판관이 성주를 모함하기 위해서 이천여 명에 이르는 사람을 매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관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가 이글거린다. 개중에는 흐느껴 우는 사람도 있다. 소리 죽여서 안으로 삼키는 울음 속에는 가족을 잃은 사람의 처절함이 묻어난다.
“저수지 물만 빼면 되니까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나.”
아걸이 관군 수장 앞에 서서 말했다.
“그전에는 성주를 만나지 않겠다. 성주를 만나기 전에 여기서 오백일흔세 명이 죽었다는 사실부터 확인하겠다. 길을 열어라. 열지 않으면 베면서 나간다.”
“저, 저수지에 물에 빠져 죽은 자가 한두 명은 있을 수 있지 않나.”
고작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다.
이미 네 번째 척살은 끝났다. 가장 어려운 고비는 넘긴 것이다. 이들이 완벽하게 저항했다면 정말로 대참살로 이어질 뻔했고, 이는 명부판관이 원한 게 아니다. 성주는 오히려 관군이 그런 쪽으로 대응해 주기를 원했을 테지만.
“한두 구와 오백구는 누가 봐도 다르지. 모두가 인정하지 않으면 내 실수로 간주한다. 거기에 내 목을 건다. 비켜라. 여기 있는 이천 명이 물을 빼면 한두 시진이면 모두 뺄 수 있어.”
아걸의 음성이 너무나 진중하고 무겁다. 눈에서는 번갯불이 번쩍 일어난다.
관군을 지휘하던 자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창수들이 옆으로 쭉 물러섰다.
방류가 시작되었다.
식인어와 뼈가 흘러나가지 않도록 물길 앞에 어망까지 설치했다. 사실 관군은 저수지를 항상 관리했기 때문에 그들이 쓰는 어망이 이미 있었다.
영차! 영차!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물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방류하는 것만 기다리지 않고 직접 물을 퍼냈다.
이천여 명이 일시에 물을 퍼냈다.
식인어가 같이 딸려 나오기도 했는데, 식인어는 만일에 대비해서 옆에 따로 파놓은 물구덩이로 옮겼다.
명부판관이 틀릴 경우, 저수지에 물을 다시 받고 식인어를 풀어 넣을 생각이다. 성주가 맞지 않나. 그렇다면 성주의 뜻대로 해 주는 것이 도리다.
명부판관은 자신이 틀릴 경우, 식인어의 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저걸 어째! 아이고!”
저수지 물이 완전히 빠지기도 전에 울음부터 터져 나왔다.
바닥에 드러난 참사…… 저수지 바닥에 인골이 하얀 자갈밭처럼 깔려 있었다.
아걸은 성주를 죽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저수지 바닥에서 인골이 드러났다고 밝혀진 순간 성주는 관사에서 목을 매 자진했다.
성주는 한 가지 실수를 했다.
성주는 식인어가 뼈까지 모두 씹어먹는 줄로 알았다.
실제로 식인어를 파는 사람들이 시험 삼아 위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때 보면 말을 식인어가 들어있는 물웅덩이에 집어넣는데, 일 다경도 되지 않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식인어는 뼈조차도 남기지 않고 마구 먹어 치운다.
그런 시연을 할 때, 식인어들은 상당히 굶은 상태다. 시연을 더 자극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식인어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식인어들이 뼛속에 들어있는 골수까지 파먹어 버린다.
하지만 성주처럼 수시로 먹이를 주면 그렇게까지 먹을 필요가 없다. 또 한 가지 실수…… 저수지에는 식인어 외에 다른 물고기도 산다. 굳이 사람을 먹지 않아도 식인어들은 다른 물고기를 먹으면서 살아간다.
식인어의 먹이가 되는 물고기도 식인어를 피하는 방법을 안다. 그러니 쫓고 쫓기면서 살아간다. 저수지는 식인어 외에 다른 물고기도 많다.
이것이 자연 생태계다.
서로 균형을 맞춰서 살아간다.
성주는 자신이 던져주는 인간이 식인어의 유일한 먹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아니다.
식인어에게 사람은 맛 좋은 간식일 뿐이다. 살은 깨끗이 발라 먹되 뼈까지 씹어 먹을 필요는 없다.
식인어는 서역에서 들여온 물고기다. 중원에서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이 물고기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그 실수가 오늘의 파멸을 불러왔다.
성주도 곧 뼈가 남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은 저질러진 것…….
함양성은 순식간에 초상집으로 변했다.
성주의 공덕이 크지만, 사람을 그토록 많이 죽인 살인귀를 두둔할 수는 없다.
성주는 함양성을 대단히 번성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사람이 뜯어 먹힌 물로 농사를 지었다. 사람 뼈가 담겨 있는 물을 좋다고 마셨다.
다른 저수지는 몰라도 일흥 저수지 주변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사람들은 스무 개에 이르는 저수지를 볼 때마다 살인마 성주를 떠올릴 것이다.
마을은 정말 잘 다스렸는데.
그런 말을 할까? 할 것이다.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살인귀가 용서받을 수는 없다.
명부판관은 이번에 아주 귀중한 말을 던졌다.
남의 일생을 무너뜨리면서 죄를 징벌하는 자,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한다. 명부판관의 실수는 애꿎은 자의 죽음과 연결된다. 그러니 실수를 했다면 명부판관도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명부판관은 자신이 실수했을 경우,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러니 그가 누군가를 잘못했다고 말할 때는 목숨을 내놓고 말한 것이다.
그만큼 명부판관의 말은 무겁다.
결코,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