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二章 설담척살(說談刺殺) (4)
스스스! 스스스슷!
여섯 명이 앞을 향해서 치달리다가 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적어도 오륙백 년은 살아왔음 직한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멈췄다.
다섯 명이 재빨리 사주 경계를 하고, 한 명이 나무에 붙어서 무엇인가를 찾았다.
‘밀마!’
저들이 무엇을 찾는지 익히 짐작된다.
“뭐야, 이거!”
밀마를 찾던 자가 신음을 흘렸다.
밀마를 찾기는 했는데, 그들이 기대했던 밀마는 아닌 것 같다. 상당히 곤욕스러운 표정이다.
“키키킥! 젠장!”
그들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확실히 기대했던 밀마가 아니다. 무엇인가 아주 심각한 밀마를 전한 것 같다.
그들 여섯 명은 머리를 맞대고,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그들은 사주 경계도 포기했다. 주위에 누가 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숙의에만 몰두했다.
아마도 밀마 내용이 상당히 마음에 안 든 듯했다.
무슨 말들을 주고받는 것일까?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듣고 싶은데…… 하지만 다가설 수 없다. 저들은 꽤 강하다. 더 접근했다가는 추격이 발각된다.
그들은 숙의를 마쳤는지 고개를 들었다.
“킥킥!”
한 놈이 웃었다. 어처구니없어서 웃는 웃음이다. 하지만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스스스슷! 차앙! 창!
그들 여섯 명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리고 뽑은 검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뭐 하는 거야? 의식인가?’
저들이 지금 취한 모습만 보고는 차후에 벌어질 행동을 예측할 수 없었다.
“참(斬)!”
그중 한 명이 외쳤다.
동시에 그들은 일제히 우측에 있는 자의 목을 내리쳤다.
퍽퍽퍽! 퍽퍽!
여섯 명의 목이 일시에 떨어졌다.
“엇!”
취운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이번 일은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일이라서 취운이 직접 나섰다. 저들을 은밀히 미행하면서 끊임없이 취화원과 소통했다. 저들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파악할 셈이다.
물론 저들은 취운의 미행을 눈치채지 못했다.
저들은 취운조차도 가까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무공이 놀라웠다. 또한, 저들 뒤에 누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허도기라고 짐작은 하지만.
함양성주의 급습이 성공했다. 그러니 저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탈출을 해야만 했다. 갑작스러운 도주다. 그러니 미행도 성공할 것이라고 봤다.
미행은 실패했다.
저들은 일제히 옆에 있는 사람을 쳤다. 서로 약조하고 옆 사람을 죽였다. 자신의 목을 베면 망설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옆 사람을 벨 때는 망설임이 있을 수 없다.
누군가가 자신을 쳐오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어 있다. 그런 틈을 공격을 빼앗는다. 공격하는 행동이 피하는 행동보다 앞서기 때문에 무조건 검을 맞게 된다.
공격하면서 당하는 것이다.
저들은 이런 수법을 수도 없이 연습했던 것 같다. 서로 죽이면서도 아주 합이 잘 맞는다.
‘음!’
취운은 침음했다.
저들이 자진했다는 것은 미행을 눈치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저들은 아직 누가 미행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만약 알았다면 자진하는 대신에 역공을 취해 왔을 것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쫓아오는 자는 있다.
이 정도만 알았기에 자진을 명령했다.
스읏! 스으으읏!
취운은 은신했던 곳에서 나와 그들에게 기어갔다. 하지만 곧 움직임을 멈췄다.
코끝으로 아릿한 냄새가 맡아졌다.
‘독무(毒霧)!’
저들이 죽은 자리에서 독무가 피어났다.
저들이 머리를 서로 맞대고 숙의한 것은 뒤쫓아오는 자를 어떻게 죽일까 하는 의논이었던 것 같다.
저들은 일단 미행자를 아걸로 추정했다.
명부판관이 나타난 후에 미행자가 생겼으니 당연히 아걸로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상대가 아걸이라면 여섯 명이 합공해도 적수가 되지 못한다.
취운은 비로소 저들이 자진한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다. 미행자가 취운이라는 사실만 알았어도 자진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쯤 쫓기는 사람은 취운일 것이다.
저들은 자진을 택하면서 자신들이 죽은 자리에 독무를 피웠다.
야밤이기에 독무가 흐르는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취운이 살수가 아니었다면 결코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냄새가 너무 강해.’
취운은 즉시 물러섰다.
이런 독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독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다가 또 다른 자에게 역습을 당할 우려도 있다.
이번 일은 실패다.
“대단한 사람들이네.”
몽설이 감탄했다.
“의외로 허도기에 뿌리가 깊은 듯합니다. 이 사람들은 마유 마인들이 아닙니다.”
취운이 보고했다.
“허도기는 이십 년 동안이나 전장을 떠돌았어. 군대에 무공을 전수하고 총교두 역할도 했고. 대장군하고 문제가 있지만, 아직도 군대의 신뢰는 높아.”
“그럼 군대에서?”
“아니. 군대에서 뽑아온 자들은 아닌 것 같고…… 허도기가 세외로 나간 것 같아. 세외에서 들어온 무인들일 거야. 그가 세외팔국을 장악하고 있는 것 같아.”
“세외팔국이라면……?”
“지금 함양성주 같은 자들에게 붙어 있는 무인은 중원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고수들이야. 세외에서 온 자들이 맞을 거야. 무공도 낯설잖아.”
“자진 방법이…….”
“일단 이쯤에서는 보고를 해야겠네. 많이 기다리고 계실 테니.”
“죄송합니다.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야 했는데.”
“언니가 죄송할 일이 아니야. 저들이 치밀한 거지.”
몽설이 웃으면서 일어났다
“쉽지 않지?”
황제가 말했다.
“네. 쉽지 않습니다.”
“간자 색출은?”
“그것도 전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흐음! 금군을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될 거 같은데. ‘불만’이란 놈들은 꼭 피를 보게 만들거든. 그 전에 다독이던가, 잘라내든가 해야지.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근위대장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조급하게 서둘지는 마. 저들은 자그마치 이십 년을 뿌리내려 온 조직이야. 그게 어디 한순간에 뿌리 뽑힐까. 아주 깊은 뿌리지. 이걸 캐내려면 힘깨나 들여야 해. 힘을 전혀 안 들이고…… 피를 안 보고 뿌리 뽑을 수는 없어.”
“네.”
몽설은 대답했다.
“질부, 부탁이 있는데.”
“황공합니다. 말씀 주십시오.”
“이 일…… 나 죽기 전에 해결할 수 있겠나?”
“네?”
“내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아. 이제는 어둠이 느껴져. 가끔 선모(先母)가 보이기도 하고.”
“황공합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서둘러 달라는 얘기야. 너무 급히 달려들지는 말고.”
황제가 힘없이 대답했다.
몽설은 근위대장이 머무는 거처로 갔다.
근이 대장은 퇴청하지 않는 사람이다. 집무실에서 먹고 잔다. 몽설의 허락을 받아야만 황제에게 접근할 수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집무실에서 먹고 잔다.
몽설이 집무실에 다가갔을 때 집무실을 지키던 군인들이 안에 대고 보고하려고 했다.
하지만 몽설이 손을 들어서 그들을 제지했다.
“저, 몽설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몽설이 집무실 밖에서 직접 말했다.
“하하하하하!”
집무실 안에서는 웃음소리부터 터져 나왔다. 이어서 칼칼한 음성이 들려왔다.
“뭔가 거꾸로 된 거 같은데. 호황위 군주면 내 위도 한참 위인데,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것이지 군주가 무슨 허락 싹이나.”
“들어가요.”
몽설이 말했다.
그러자 앞에 서 있던 군사들이 재빨리 집무실 문을 열었다.
근위대장은 야전 침상 위에 두 발 쭉 뻗고 누워 있었다. 그는 몽설이 들어와도 일어서지 않았다.
“어떻게? 소득은 있으시고?”
그가 누운 채로 말했다.
“전혀요.”
“쉽지 않지.”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도와주시겠어요?”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우선 그 대답부터 듣고 싶은데.”
“글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모르겠어요.”
“솔직해서 좋군.”
“그런가요?”
“내가 황상을 암살하면 어떻게 하려고?”
“방법이 없죠. 황제를 가장 지척에서 모시는 금군 수장이 황제를 암살한다는데 무슨 수로 막아요.”
“무슨 군주가 이렇게 무책임하지?”
“한 가지만은 확실하니까요.”
몽설이 웃으면서 말했다.
“황상을 암살할 수는 있어도, 저를 암살하지는 못해요. 저는 검에서 근위대장에게 밀리지 않아요.”
“그런 말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지. 검으로 하는 거지.”
“해 보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사양하지 않아요.”
파팟!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방금 재밌는 말을 했는데. 황제는 암살할 수 있어도 군주는 암살하지 못한다. 그게 무슨 뜻인가?”
“황상을 암살하면 이 나라는 내 것이 된다는 거죠. 허도기 것이 아닌 내 것. 지금 왕자님들 곁에 저희 취화원 살수들이 붙어 있어요. 물론 알고 계실 거고. 황상이 암살당하는 순간, 왕자도 전원 암살당할 거에요.”
“그리고?”
“제가 누구예요. 호황위 군주잖아요. 이 나라는 저한테 넘어오죠. 일단은. 허도기는 대장군과 아걸에게 맡길까 하는데. 두 사람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후후! 한낱 살수 계집은 아니었군.”
“군주. 지금부터는 군주라고 불러. 황상 앞에서만 머리 숙이지 말고 항상 머리 숙이라고. 일어나 앉아.”
파팟!
근위대장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몽설을 쳐다봤다. 물론 일어나 앉지는 않았다.
몽설도 개의치 않고 말했다.
“그러니까 대장이 허도기 편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황상을 죽이면 나 좋은 일만 시켜주는 거야. 그러면 정상적으로 활동해. 황상 곁을 지켜. 물론 우리 뒤에서.”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 어쩌지?”
몽설이 손을 내밀었다.
“줘. 명단.”
“명단?”
“무슨 말인지 알잖아. 대장은 이미 허도기 수하를 추려 놨어. 오래 지켜봤으니까. 만약 추리지 못했다면 능력이 없는 거고. 명단을 주든가, 자리를 놓고 물러나.”
몽설이 차게 말했다.
“둘 다 못하겠는데? 그쪽 간자들부터 추리지. 그쪽 간자들이 황상 곁에 있는데, 우리가 물러날 수는 없잖아? 검으로 말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좋고. 군주를 베는 맛도 괜찮아.”
몽설이 품에서 서신을 꺼냈다.
그러자 근위대장은 벌떡 일어나서 서신을 낚아챘다. 그리고 쫙 펼쳐서 읽었다.
“음! 상당히 많군.”
근위대장이 침음했다.
서신에는 취화원 살수들의 명호와 지금 있는 곳이 명확히 적혀 있었다.
모두 서른일곱 명이나 된다.
“두 명은 남겨 놨어. 나중에 오해할까 봐 말해 주는 거야. 그 두 명은 역간자로 이용할 거니까.”
“이걸 어떻게 알아냈나? 이번 일로?”
“이번 일이 상당히 컸으니까. 명부판관 위명을 세우는 것도 중요했고, 허도기의 수족을 잘라내는 일도 되고. 허도기를 제거하려고 할 때 함양성주같이 인망 높은 자가 반대하고 나서면 곤란하잖아. 적어도 한 지역은 떨어져 나갈 거야.”
“당신 무서운 여자군.”
“금군 간자 명부.”
근위대장이 침상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드륵!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두툼한 책자를 꺼내서 내밀었다.
“우리 쪽은 좀 많아. 아흔네 명.”
“남겨 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역으로 이용할 필요가 없어. 아니, 황상 곁에는 한 사람이라도 위험한 사람이 있으면 안 돼. 그게 내 신조다.”
“그런데 아직도 이 사람들을 남겨 두고 있네?”
“질 지켜보고 있지.”
근위대장은 오직 황상에게 충성한다. 그 점을 알고 있기에 어떤 언사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날 군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네? 일을 주도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면 돼. 나. 당신은 무조건 내 명령을 받는 것으로. 그게 편해.”
“내가 인정하는 사람은 딱 세 종류다. 한 사람은 내가 받들어 모셔야 하는 사람, 황상이다. 한 사람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 대장군이다. 또 한 사람은 날 검으로 꺾은 사람, 아직 없다.”
“아직 없는 게 아니라 검을 뽑지 못한 거겠지.”
“뭐라고!”
“옆에 허도기가 있었잖아. 허도기 같은 강자가 있는데 아직 꺾인 적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지. 대장은 검을 뽑지 못한 거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말을 삼가지.”
“내가 많은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는 알아. 세상에는 검을 뽑는 일을 망설이는 무인이 있고, 전혀 망설임 없이 뿜는 무인이 있어. 허도기와 아걸이 두 번째야. 나조차도 검을 뽑는 데 망설이니까 할 말은 없지. 망설이지 않았다면 벌써 당신을 무릎 꿇렸을 테니까. 근위대장 체면을 세워 준답시고 망설이고 있어. 당신도 그래. 공부의 역심을 알았다면 벌써 검을 뽑았어야지. 한마디로 당신도 진정한 무인은 아니라는 거야. 이게 내가 본 당신의 판단이야. 그러니까 다음에 볼 때는 헛소리 하지 마.”
몽설이 일어섰다.
“풋! 푸하하하하!”
근위대장은 통쾌한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