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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411화 (411/600)

第八十三章 쾌검낙성(快劍落星) (1)

아걸은 산을 타고 올라갔다. 그런데.

‘응?’

뭔가가 조금 이상하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경사가 심한 산길로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사람이 만든 산길이 있는데, 굳이 길 없는 숲을 헤집어 나가고 있다.

왜 좋은 길을 놔두고 나쁜 길을 택했지?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짓인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험한 산길을 밟았다.

공격해 오는 무인들이 신경 쓰였나? 아니! 저들의 기습은 신경 쓰지 않는다. 가까이 붙으면 벨 것이고, 멀리 떨어져서 위협만 가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저들 때문이라면 굳이 편안한 길을 버리고, 숲길을 헤쳐 갈 필요가 없다.

유인당했다!

이게 맞는 말이다. 개울에서 있었던 몇 번의 공격이 방향을 틀게 했다.

‘그때부터 산을 타기 시작했나? 그렇군.’

아걸은 피식 웃었다.

저들이 괜히 싸움을 걸어온 게 아니다. 죽일 자신이 충만했던 것도 아니었다. 저들이 펼치는 검공으로는 제아무리 기회를 잘 포착해서 급습해도 아걸을 잡을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저들도 안다.

공격을 받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것인데…… 저들을 죽음을 짐작하면서도 달려들었다.

왜? 바로 자신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산에 쫙 깔린 무인 중 몇몇이 공격했다. 그러면 다른 사람도 곧 공격해 올 것이다. 반철도에 죽은 자들처럼 기회가 잡히면 즉시 공격해 온다.

무인들의 공격이 있고 난 후, 아걸은 자신도 모르게 눈에 보이는 자들을 쫓았다.

그들 모두가 자신을 공격해 올 것으로 생각했다.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몸은 이미 공격에 반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쒜에엑! 쒜에엑!

무인들이 날다람쥐처럼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갔다.

‘응? 이건 또 뭐지……?’

아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유인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 저들의 움직임을 다시 봤다. 이번에는 조금 더 주의해서 지켜봤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지금까지 저들이 마유 마인이거나 아니면 세외고수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공격방식은 중원 무공과는 무척 차이가 컸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그렇지 않다.

저들이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뛰는 신법은 부운약종(浮雲躍縱)과 흡사하다.

중원 신법 같다.

‘이들이 중원인이라면 허도기는…… 흠! 대단하군. 이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것도 대단하고,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감춰 왔던 것도 대단하고.’

그렇다. 허도기는 아직도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

무림에는 성검문, 군에는 적위군, 마도에는 마유 마인이 있다. 그리도 이들은 거의 붕괴하였다. 마유 마인은 모르겠는데, 성검문과 적위군은 무너졌다고 봐도 괜찮다.

이로써 허도기의 세력은 어느 정도 정리된 줄 알았다.

군대에는 아직도 허도기의 말이 먹히겠지만, 적어도 무림에서는 활용할만한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

잘못 알았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도대체 허도기가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 것일까? 아니, 부릴 수 있는 조직이 몇이나 되나? 아! 남만족도 있었지? 그들도 무공이 상당히 탄탄했는데.

허도기에게는 무인이 많다. 그러니까 아낌없이 소모전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던져 준 먹이가 틀림없다. 다만, 먹이를 공짜로 줄 리는 없다. 이 먹이를 잡아먹는 대신에 다른 대가를 내놔야 한다. 그게 뭔지 모르겠다.

이들을 움직여서 자신에게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분명히 어떤 노림수가 있어. 이 먹이 속에는 독이 들어있어. 무심히 먹다가는 다친다.’

이들은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 그 점은 허도기도 안다. 알면서도 보냈다는 것은 무엇인가 빼앗을 것이 있다는 뜻일 텐데. 그게 뭘까? 자신에게서 가져갈 것이.

‘후후! 내가 언제 이런 것들을 염려하면서 움직였나.’

일홀문은 적을 신경 쓰지 않는다.

흔한 말로 ‘맹수도 방심하면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늑대 같은 맹수가 독수리에게 잡혀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늘을 경계하지 못한 탓이다.

이것이 늑대의 잘못일까? 늑대가 방심했나?

어떤 맹수든 항상 긴장만 하고는 살 수 없다. 아니, 오히려 하루 중 대부분을 긴장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면 즉각 맹수의 본능이 일어난다.

일이 생기면 긴장한다.

이때 일어나는 긴장은 너무 강력하고 빨라서 마치 진작부터 긴장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맹수는 일을 당한 후에야 긴장을 끌어올렸다.

일홀도도 맹수와 같다. 긴장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적이 나타나면 비로소 긴장한다. 미리부터 걱정하고 긴장하면 길게 가지 못한다. 무림에서 살아가기 힘들다.

‘신경 쓰지 말자. 막아서면 베고, 물러서면 지나간다.’

일홀도는 무퇴도(無退刀)다. 눈앞에 지옥이 펼쳐져 있어도 거침없이 뚫고 지나간다.

이들이 자신 앞을 막으면? 벤다.

허도기도 이런 점을 안다. 알면서도 보냈다. 베라고 먹이로 내준 것이나 다름없다.

‘나를 잡을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건데, 그게 뭐야? 어서 발톱을 드러내 봐.’

스읏! 척척!

아걸은 불나방처럼 나무 사이로 움직이는 무인들을 보면서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자신이 심법을 펼쳐서 저들을 공격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공격해 오지 않는 자까지 적으로 간주할 생각은 없다.

아걸은 천천히 걸으면서 저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쒜엑! 쒜에엑!

암기가 날아왔다.

쇠가 허공을 긁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아걸은 슬쩍 고목 옆으로 몸을 숨겼다.

타탁! 타타타탁!

굵은 나무에 암기가 틀어박혔다.

저들이 던진 암기는 위협적이지 않다. 상당히 날카롭게 날아오지만, 눈에 환히 보인다. 나무 뒤로 몸을 숨기는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피해낼 수 있다.

살상 병기를 던지면서도 죽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파파팟! 쒜엑! 쒜에엑! 파파파팟! 쒜에엑!

움직이고, 암기를 던진다. 암기를 던지면서 움직인다. 움직이든가, 암기를 던지든가. 몸을 멈추면 습관처럼 암기가 튀어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고 있다.

저들의 행동은 암기를 던지는 데 집중되어 있다.

아니다. 잘못 봤다. 저들은 움직이는 데 집중되어 있다. 암기를 던지는 것은 눈속임이다. 움직임을 감추려고 일부러 격한 공격을 하고 있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아걸이 흘러오는 암기를 피하면서 저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아직은 저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저토록 바쁘게 움직이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저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유…… 알았다.

저들은 아걸로 하여금 산에 올라갈 수 없게 만든다. 산속 곳곳에 철질려(鐵蒺藜)가 깔려 있다.

‘겨우 이걸 깔려고 그렇게 움직인 거야?’

아걸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철질려는 다른 말로 능철(菱鐵), 여철(藜鐵), 질려철(蒺藜鐵)이라고도 한다. 또 마름쇠라고도 불린다.

형태는 다양하다. 가장 표준은 끝이 뾰족한 자침(刺針)을 네 개를 붙여 놓은 형태다. 아무 곳에나 주의하지 않고 흩어 놓아도 삼각 받침이 철질려를 단단히 고정해 준다.

철질려는 주로 방어용으로 쓰인다.

적이 오는 길목이나 관도 같은 곳에 뿌려놓고 발로 밟을 때까지 기다린다.

무인들이 뿌려 놓은 철질려도 매우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철질려를 비웃던 아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굳어갔다.

철질려를 구성하는 자침의 굵기는 새끼손가락 굵기의 절반 정도인데…… 이것도 그 정도 굵기다. 하지만 자침 하나가 아니다. 비침 수십 개가 묶여 있다.

톡! 건드리면 당장 비침이 수십 개가 폭사한다.

‘뭐야? 발길이 잡힌 거야?’

아걸은 조심스럽게 철질려를 피해 가며 움직였다.

이렇게까지 산정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가 뭔가?

초가평과 결투를 방해하려고?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허도기는 초가평을 보내서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뜯어말리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진짜 뭔가 단단히 노린 것 같은데…….’

아걸은 정체불명의 무인들을 주시하면서 산을 탔다.

주변 산세가 점점 포근해졌다.

바람조차 잘 들지 않는 곳, 그러면서도 햇살은 따사롭게 내리쬔다.

굉장히 아늑한 곳에 들어있다. 아니, 상당히 움푹 꺼진 구덩이 속에 들어왔다.

구덩이에 빠진 것은 분명히 아니다.

산의 형세가 심상치 않다. 산자락이 둥글게 휘어져서 자신을 두 팔로 감싸 안는다.

“금계포란(金雞抱卵)!”

아걸이 부지불식간 중얼거렸다.

아걸이 서 있는 자리는 말로만 듣던 천하 명당, 금계포란형의 명당 혈(穴)이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은 야트막한 언덕이다. 정상으로 올라가기 전에 있는 작은 산이다.

정상을 품은 산이 주산(主山)이다. 하지만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주산으로 여긴다면, 정상을 품은 산은 배산(背山)이 된다. 주산을 받쳐주는 산이다.

배산에서 뻗어 나온 양쪽 산줄기, 좌청룡 우백호가 주산을 감싸면서 휘돈다.

주산은 어미 닭의 품에 안긴 알의 형태가 된다.

아걸이 서 있는 곳은 주산에서도 가장 중요한 혈터다. 배산이 보일 뿐만 아니라 배산에서 흘러나온 양쪽 산줄기가 모두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좌우 측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앞쪽에서 손을 맞잡는다. 손끝이 닿을락 말락…… 양쪽 손끝 사이로 들어오는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이런 곳에 자리 잡으려면 삼대가 복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저들이 자신을 이곳으로 유인했다.

가장 멋진 곳, 세상을 환히 조망할 수 있는 곳, 천하 거부가 탄생한다는 명당으로 초빙했다.

지금까지 공격도 하고, 철질려도 뿌리고, 눈앞을 현란하게 오가며 유인한 것이…… 이런 혈터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나? 정말? 금계포란형의 명터를 선물하려고?

저들이 의도한 바는 모르겠지만, 아걸은 흡족했다.

걸음을 멈추고 서서 뻥 뚫린 경관을 구경하고 있자니, 자신이 정말 좋은 터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타탁! 타타탁! 타타타탁!

사방에서 거의 동시에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새빨간 화광이 보였다.

화아아악!

갑자기 사방에서 불길이 맹렬하게 번져 올랐다.

“응?”

아걸은 미간을 찡그렸다.

불길은 사방으로 번져나가지 않았다. 분명히 사방에서 일어났는데, 오직 주산만 태우고자 달려들었다. 인위적으로 불길 방향을 조정한 것이다.

“기름 냄새.”

아걸이 중얼거렸다.

불길이 기름 먹인 숲을 따라서 순식간에 사방을 에워쌌다.

주산 전체를 태워버릴 요량이다. 불길이 주산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고 안으로만 달려든다.

아걸은 즉시 물길부터 찾아봤다.

물길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옆에 흐르던 개울 물이 바싹 말라버렸다. 자신이 목욕까지 한 물인데…… 무인들이 상류에서 물길을 틀어버렸다.

‘남은 탈출구는 하늘뿐인데.’

아걸은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이 비어 있다.

아걸도 저들처럼 나무 위로 올라가서 뛰어갈 심산이었다.

한데, 나뭇가지도 심상치 않았다. 언뜻 봐도 번들거리는 진액이 발라져 있다. 다소 끈적거리는 진액인데, 투명 빛인데도 확연히 눈에 드러났다.

“빙화초(氷花醋)! 하아!”

나무에 발라진 진액이 무엇인지 안 순간, 미간이 확 찡그려졌다.

빙화초는 초산(醋酸)이다. 초독(醋毒)이라고도 부른다.

빙화초에 살이 닿으면 끓는 물에 떨군 얼음덩이처럼 순식간에 녹아 버린다.

저들은 나무 위로 뛰어오르는 것조차 막아버렸다.

철저하게 계산된 함정이다.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치명적인 함정을 파 놓았다.

불길을 헤쳐나간다는 심정으로 쾌속하게 질주하면 어떻게 되나?

숲에는 철질려가 깔려 있다. 함부로 뛰어나갈 수가 없다. 겨우 이런 것을 깔려고 저리 바쁘게 움직였냐고? 철질려와 화공이 섞이니 천하무쌍이다.

지금은 ‘철질려 따위’라고 비하해서 말할 수 없다.

철질려는 순식간에 터진다.

철질려가 터지고, 비침에 당하고, 그다음에야 비로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

저들이라면 비침에 독도 발라놨을 것이다. 매우 치명적인 독, 해약도 없는 독…… 그러니 일단 철질려를 건드리면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한다.

지난밤, 자신이 잠을 자는 동안 저들은 참으로 많은 일을 해냈다. 지극히 은밀하게.

‘빠져나갈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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