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三章 쾌검낙성(快劍落星) (2)
스읏!
아걸은 반철도를 쳐다보았다.
몸뚱이 하나, 칼 한 자루.
‘잃어봤자 몸뚱이 하나, 칼 한 자루. 아낄 것도 없고, 망설일 것도 없다.’
쉬잇! 타악!
아걸은 반철도를 들어서 옆에 있는 나무를 후려쳤다.
일격에 몸통이 잘린 나무가 요란한 소리를 울리면서 후드득 무너졌다.
아걸은 즉시 쓰러진 나무 위로 올라섰다.
나무가 불길을 막아주는 시간은 그야말로 촌각이다. 숨 몇 번 고를 시간이면 쓰러진 나무에도 불이 붙는다.
쒜에엑!
나무를 타고 외나무다리 건너듯 빠르게 움직였다.
쉬잇! 타악!
나무 끝부분에 이르자, 또 나무를 베어냈다.
이미 불이 붙은 나무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줄기가 타오르지 않았다.
후두두두두둑!
나무가 쓰러졌다.
아걸은 즉시 나무를 바꿔서 걸었다.
나무가 쓰러지면서 땅에 깔린 철질려를 덮어 버렸다.
퍼억! 퍽!
대부분의 철질려는 땅에 묻혀 버렸고, 개중에 몇 개가 터져서 비산했다. 하지만 나무에 눌려 버린 철질려는 큰 힘을 쓰지 못했다. 비침이 나무에 막혀서 위로 솟구치지 못했다.
쒜에엑! 퍼억!
아걸은 끊임없이 나무를 잘라내면서 걸어갔다.
‘문제는 이 불길…… 이건 막지 못해.’
앞으로 걸어갈수록 사방에서 좁혀져 오는 불길이 용암 곁에 서 있는 것처럼 뜨거웠다.
화마가 들끓고 있는 폭은 족히 삼 장을 넘어선다. 그리고 그 폭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넓어지고 있다. 불을 잘 아는 사람도 안으로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걸은 침착하게 나무를 자르면서 부지를 향해 다가갔다.
“음!”
아걸은 신음을 흘렸다.
불길 안으로 뛰어들기는커녕, 가까이 다가서지도 못하겠다. 불길의 열기가 살을 태운다.
더는 무리!
드디어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지점까지 도착했다.
아직도 불길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벌써 불길의 열기가 온몸을 태운다.
탁! 탁탁!
아걸은 반철도를 사용해서 쓰러진 나무를 잘게 잘라냈다.
뜨거운 그릇을 올려 놓을 때 쓰일 법한 나무 받침 십여 개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나무 받침의 두께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다.
“후후! 이럴 때는 잘 드는 칼이 아쉽네. 아무래도 반철도는 너무 투박해. 이제는 베는 것은 포기한 칼이야. 찌르는 것도 포기했나? 그럼 쇠막대기인가.”
마음을 침착하게 가다듬으려고 몇 마디 중얼거렸다.
불길이 점점 더 거세게 다가온다.
아직 불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저 불길은 곧 주산 혈터를 태울 것이다. 주산에 있다는 어디 있어도 불에 타 죽는다.
“몸뚱이 하나, 칼 한 자루.”
아걸은 아까 생각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입 밖으로 소리 내서 중얼거렸다.
너무도 당연하고 평범해 보이는 말이지만…… 아걸에게는 더없이 좋은 말이다.
이 말은 일단 물체가 두 개다.
몸이 있고, 칼이 있다.
도신일체라는 말에는 물체가 하나다. 칼과 몸이 섞여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아걸이 생각해 낸 말은 몸과 칼을 극명하게 분리시킨다.
지금까지 아걸이 의지해 왔던 몰안, 도신일체의 무리를 단숨에 무너트리는 말이다.
아걸은 자신이 깨닫고 있는 무리에서 칼을 떼어 냈다.
칼은 내 몸이 아니다. 아무리 도신일체를 우겨봐도 칼이 몸이 될 수는 없다. 칼을 손과 발의 연장선에서 사용할 수는 있지만, 몸이 되지는 않는다.
화마를 사방에 두고 타죽을 위기에서 일홀도를 떠올린다.
도신일체와 신도는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칼과 몸이 하나가 되는 것이 도신일체라면 신도는 칼을 잊어버린다. 손에 칼을 쥐고 있지 않아도, 몸 전체가 칼이니 능히 싸울 수 있다.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도신일체가 칼과 몸을 하나로 묶는 것이라면, 신도는 몸을 병기로 만드는 것이다.
몸이 곧 병기다.
‘몸이 곧 병기. 몸뚱이 하나, 칼 한 자루.’
눈앞에 강적이 서 있다. 적은 너무 거대하다. 허도기보다 훨씬 더 강하다.
산불을 이길 사람이 누가 있을까? 없다.
자신 역시 산불에 휘말릴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역시 허도기!
자신이 직접 오지 않고도 어떻게 하면 아걸을 죽일 수 있는지 안다. 아걸이 지금보다 두 배 더 강해도 빠져나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아걸은 자신이 방심해서 이런 함정에 빠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이 이끄는 대로 유인당했지만, 적은 이런 유인을 하기 위해서 사람 목숨 넷을 내놨다.
누구라도 끌려 들어올 수밖에 없다.
아걸이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어도, 또 최대한 긴장하고 있었어도…… 이 함정은 눈앞에 나타났다. 어떤 경우든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벤다!
일홀도로 적을 벤다!
아걸은 잘라낸 나무 받침을 허공으로 던졌다. 그리고 곧바로 신형을 튕겨냈다.
쒜에엑! 쒜에엑!
신형이 나무 받침을 쫓아간다.
탁탁!
불붙은 나무를 발로 차서 탄력을 얻었다. 떨어지는 나무 받침을 쫓아가서 디딤돌 삼아 꾹 밟았다.
타악!
신형을 다시 허공에 띄웠다.
불길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휘리리리릭! 쒜엑!
아걸은 반철도를 거칠게 휘둘렀다. 사나운 경풍을 일으켜서 불길을 밀어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에 몸을 던졌다.
불에 타 죽거나, 아니면 빠져나갈 것이다.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는 움직여봐야 안다. 행동하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가 일어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탁!
본능적으로 반철도를 휘둘러서 불길이 활활 붙은 나무를 쳤다.
나무가 옆으로 넘어가면서 다른 나무를 건드렸다. 때마침 아걸을 향해서 쓰러지던 나무다.
아걸은 순간적으로 부러지는 나무를 보지 못했다. 불길에 휘감긴 나무를 친 것도 무엇을 보고 친 것은 아니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였다.
운 좋게 불타는 나무가 불길에 휘감긴 나무를 막아 주었다. 한데.
화르르륵!
반철도에 불이 붙었다.
그가 후려친 나무에 기름이 부어져 있었나 보다. 나무를 치면서 반철도에 기름이 튀었다.
휘리리리릭!
아걸은 계속 반철도를 휘둘러서 경풍을 일으켰다.
기름 먹은 불은 바람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 바람이 일어나면 더 크게 일어난다. 그러니 반철도를 생각하면 경풍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경풍이 없으면 당장 불길에 휩쓸린다.
작은 불길은 일어나더라도 집채처럼 큼직한 불길, 온 산을 활활 태우는 불길은 막아야 한다.
화라라라라락!
반철도가 화염을 뿜어냈다.
불붙은 칼을 보니 당장 서리형개, 둘째 사형의 화염도가 떠올랐다.
사형의 화염도는 내기로 일으킨다. 하지만 정작 칼에 이러한 불기운을 담아서 펼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칼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면.
아걸은 화염도를 다루지 못했다.
치이이익!
반철도가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화기가 손잡이까지 미쳤다. 손바닥이 이글이글 타들어 갔다. 지금 당장이라도 반철도를 버려야만 할 상황이다.
아걸은 반철도를 더욱 세차게 휘둘렀다.
손바닥 화상이 심각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반철도를 버리면 대책이 아예 없어진다.
파파팟! 바바바박!
반철도가 나뭇가지를 찍어서 넘어트렸다.
아걸은 넘어가는 나무를 밟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불길이 너무 세차서 땅으로는 도저히 나아갈 수 없었다.
순간, 몸에도 기름 먹은 불길이 튀었다.
“으윽!”
아걸은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화급히 장삼을 벗어 던졌다. 하지만 기름 불덩이는 꺼지지 않는 화린(火燐)처럼 몸에 달라붙어서 살을 태워 나갔다.
파앗!
아걸은 화염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즉시 반철도를 던져 버렸다.
반철도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쇳덩이를 화로에 넣었다가 빨갛게 달궈서 꺼낸 것처럼, 담금질하기 전처럼…… 반철도에서 일어나는 화기가 손을 태운다.
“으음!”
아걸은 극심한 화상을 입었다.
손바닥뿐만이 아니다. 불길이 몸 곳곳을 핥고 지나갔다. 어떤 부분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구울 때처럼 살이 익어서 살갗 색깔이 완전히 변해 버렸다.
하지만 잠시도 머뭇거리고 있을 틈이 없다.
지금 서 있는 곳도 불길이 핥고 지나갔다. 땅은 새카맣게 변해 버렸다. 곳곳에 풀과 나무가 타고 있다.
땅이 아직도 불길을 머금고 있다.
쉐에엑!
아걸은 땅에 떨어진 반철도를 집어 들고 급히 신형을 퉁겨냈다.
“하악! 학!”
아걸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손에 물집이 심하게 잡혔다. 도대체 화상을 어떻게 입었는지 파악조차 하기 힘들다.
비침도 여러 대를 맞았다.
철질려는 화마가 쓸고 지나간 곳에도 묻혀 있었다.
나무를 태운 까만 재가 철질려를 덮어 버려서 그야말로 완벽한 함정이 되었다.
벌써 비침의 독기가 몸에 퍼지고 있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움직임을 멈출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서 꼼짝도 하지 못하겠다. 어지럼증도 일어나고, 목에서 비린내도 치밀어 오른다.
“으음!”
아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함을 꺼냈다.
대사형의 무덤을 열고 가져온 녹선마황이 벌써 두 번이나 목숨을 구해주고 있다.
“이것밖에 안 남았나?”
아걸이 무심히 말했다.
지금 몸 상태로 보면 녹선마황을 갈아서 즙액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삼십 마리 이상이 필요하다. 몸 곳곳에 붓으로 펴 바르고, 복용도 해야 한다.
하지만 목함에는 단지 네 마리만 들어있다.
턱없이 부족하다.
아걸은 녹선마황을 꺼내서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제일 먼저 비침의 독기부터 다스려야 한다. 독기가 신경을 마비시키고, 혈로(血路)를 막는다. 맥을 죽인다. 장기의 손상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한다.
녹선마황 한 마리로는 독기를 깔끔하게 해소할 수 없다. 하지만 독기가 번지는 시간은 늦출 수 있다.
또 한 마리를 집어서 손바닥에 대고 으깼다.
비침을 맞은 곳은 모두 다섯 곳, 그곳 피부는 벌써 새카맣게 변색되었다.
녹선마황을 바르자마자 검게 변한 피부에서 독기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거머리의 체액이 강력한 약이 되어서 비침의 독기를 직접 말살시키고 있다.
남은 두 마리는 화상 입은 곳에 사용했다.
시간이 넉넉하면 녹선마황을 상처 부위에 붙여 놓는 게 제일 좋다. 화상이 쉽게 낫겠나. 그러니 살과 녹선마황, 모두에게 활동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게 좋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시간이 없다.
초가평과 약속한 시각이 다가오고 있다.
‘이 손으로는 반철도를 잡기가 곤란하겠는데?’
아걸은 뼈를 아릴 정도로 심하게 쑤셔오는 오른손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하얗게 변한 살결에서 지독한 고통이 일어났다.
오른손으로 반철도를 잡기는 힘들어졌다. 억지로 잡을 수는 있지만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오른손을 버리고 왼손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후후!”
아걸은 웃었다.
지금 몸 상태가 최악이다. 결전 약속을 했지만 미룰 명분도 주어졌다. 몸이 상당히 상했으니 싸움을 뒤로 미룬다고 해도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걸은 산 정상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을 함정으로 끌어들인 자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할 일을 했다. 자신도 할 일을 했다. 서로가 할 일을 했으니 더 볼 일이 없다.
무엇보다도 초가평과 약속한 미시가 가까워졌다.
약속을 어기기는 싫다. 그것이 결전 약속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일홀도가 불굴의 의지로 걸어간다. 그러니 이번에도 제시간에 도착해야 한다.
이것이 결전을 정한 자들에 대한 예의다.
“으윽!”
아걸은 신음을 흘리면서 힘들게 산을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