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三章 쾌검낙성(快劍落星) (3)
저게 인간인가!
무인들은 위태롭게 움직이는 아걸을 보면서도 쫓지 못했다. 한 번만 더 치면 쓰러질 것 같은데…… 그래도 그저 멍하니 서서 산정으로 올라가는 아걸을 쳐다볼 뿐이다.
아걸이 걸어가는 땅은 무인들이 손을 쓰지 않은 곳이다.
무인들이라고 산 전체에 철질려를 깔아 놓을 수는 없다.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작업할 수 있다.
그들은 이미 최선을 다했다.
사실 그들이 펼친 혼염구망진(魂炎勾芒陣)은 죽음의 절진이다.
다른 사람이 펼친 것은 모르겠고…… 무인들은 지금까지 열일곱 번을 펼쳐서 열일곱 명의 고수를 죽였다.
사망 가능성이 십 할, 전체다.
빠져나갈 가능성이 전혀 없다. 실제로 빠져나간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고수에게만 펼쳤다.
허도기나 소축십검이 직접 나서야만 상대할 수 있는 최강 무인에게만 사용한다. 그들이 직접 나서지 못할 상황일 때, 무인들이 나서서 혼염구망진으로 불태워 죽인다.
아걸이 최초로 이 절진을 벗어난 무인이 되었다.
무적무패라는 절진에 오명이 생겼다.
사실 혼염구망진은 군진(軍陣)이다. 군대에서 적들을 소탕할 때 사용한다.
무인들은 군진을 형성할 만큼 물자도 풍부하지 않고 무인의 숫자도 적다.
산에 뿌려 놓은 철질려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이만 개다. 철질려 하나가 장검 한 자루 값이다. 그러니 산에다가 장검 이만 자루를 뿌린 것과 같다.
큰 저택 서너 채는 사고도 남을 만큼 투자했다.
무엇보다도 군진을 형성하는 데는 최소한 사백 명 이상이 동원되어야 한다.
이 산에는 백호(百戶) 육대(六隊)가 들어와 있다.
백 명으로 구성된 단위 부대 다섯 개가 혼염구망진을 만들었고, 백호 하나는 직접 아걸을 유인했다. 모두 육백 명이라는 많은 인원이 절진 하나를 펼쳤다.
아걸은 무인들이 펼치는 무공을 보고 곤혹스러워했다.
뭔가 중원 무공하고 매우 다르면서도, 또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원 무공이라서 헷갈릴 것이다.
무인들은 군무(軍武)를 사용한다.
전쟁터에서는 일체의 허식(虛式)이 필요 없다. 눈앞에 있는 놈을 치는 즉시 다른 놈을 향해서 달려들어야 한다. 무인들처럼 경계하고 탐색할 틈이 없다. 보자마자 달려들어서 바로 죽여야 한다. 단번에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위험하다.
군무는 무가의 무공과는 조금 다르다.
허도기는 백만 국군의 무공 교두였다. 조명천검이라는 성검문 무공을 전수했다. 하지만 원형 그대로 전수한 것이 아니다. 군대의 특성에 맞게 변형시켰다.
철저하게 실전 위주의 무공!
변초를 전개해도 길어야 삼 초 이내에서, 대부분은 일초변초로 끝나는 무공!
이런 무공을 사용하려면 목숨의 절반은 하늘에 맡겨야 한다.
운 반, 무공 반으로 뛰어든다. 상대가 나보다 약한 놈이기를, 내가 쓴 칼이 통하기를. 운이 따르면 죽이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죽게 된다.
군무는 적을 죽일수록 강해진다.
같은 무공을 사용해도 오래 살아남은 자의 검은 유독 빠르고, 사납다. 검을 쓰는 데 거침이 없어서일까? 마치 전혀 다른 무공을 쓰는 것 같다.
아걸 앞에 선 백호는 크고 작은 격전에서 잔뼈가 굵은 용사들로 구성되었다.
수천 개에 이르는 백호 중에서도 자타공인 단연 최강이다. 이들 백호는 능히 천호를 감당할 수 있다. 기습을 취한다면 능히 삼천호도 감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말 그대로 일당백의 용사들이다.
이러니 아걸이 칼을 쓰면서도 연신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더 있나.
“어떡할까요?”
“글쎄? 어떡할까? 저놈을.”
적위군장 사구정이 눈살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아걸이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걸어가는 모습만 봐도 안다.
“화상이 심하지?”
“원래 뚫고 나올 수 없는 불길이었습니다.”
“칠절려에도 당한 것 같고.”
“최소한 예닐곱 개 정도는 꽂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도 쓰러지지 않고 버틴단 말이지. 아직도 반철도를 꼭 잡은 채 말이야.”
사구정은 좁힌 눈살을 풀지 못했다.
비침에는 칠보사(七步蛇)의 맹독이 발라져 있다.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목숨이 떨어진다는 맹독이다. 비침 예닐곱 개가 아니라 하나만 꽂혀도 죽어야 한다.
아걸이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제 남은 것은 숨을 끊어 놓은 마지막 한 방이다. 여기서 딱 한 대가 더 때리면 아걸은 끝난다.
그런데도 아걸을 쫓아서 숲으로 따라 들어가기가 겁난다.
일단 저 숲은 아걸의 영역이다. 아걸은 이미 상처 입은 황소가 되었다. 누가 되었든 아무라도 무작정 들이받으려고 한다. 마지막 발악이 어느 정도일까?
다른 사람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부닥쳤다면 이유 불문하고 ‘전원 공격’ 명령을 내린다.
지금은 그런 명령을 내려야 할 때다.
마지막 발악이 상상 이상으로 거세겠지만, 그래도 숨을 끊어 놓을 수는 있다.
한데 상대가 아걸이라면 말이 완전히 달라진다.
아걸 역시 마지막 발악인 것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발악이 끝나기도 전에 이쪽이 먼저 전멸할 수 있다.
아걸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놈이다.
“한 시진쯤 기다려 보고…… 화상이나 독에 죽을 놈이라면 그 안에 죽겠지.”
“쫓아가지 않습니까?”
“나중에 시신이 있나 확인해 보고, 없으면 말지 뭐. 저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초가평에게 달려갈 거야. 저 정도 부상을 입은 놈도 상대하지 못한다면 소축십검이라는 이름을 버려야지. 아! 그건 벌써 없어졌나? 후후! 편안하게 앉아서 쉬라고 해. 우리 할 일은 했어.”
사구정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이곳에 백호 육대를 끌고 온 목적은 아걸을 죽이는 데 있지 않다. 죽이면 좋고 죽이지 못하더라도 부상 정도만 입히면 된다고 생각했다.
공부의 명령도 그것이었다.
다만 혼염구망진을 펼치면 초가평에게 가기 전에 죽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됐어. 후후! 괴물 같은 놈.’
사구정은 산정을 향해서 한 걸음씩 힘들게 움직이고 있는 아걸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곧 죽을 자의 마지막 발악!
사구정의 눈에는 산에 올라가는 아걸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
* * *
“몰골이 말이 아니군.”
초가평이 웃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잖아. 몰랐나?”
아걸이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평소 같으면 한달음에 뛰어올랐을 산이다. 주산을 벗어나면 배산 정상까지는 삼십 장 정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단숨에 치달려 올라올 수 있다.
아걸은 겨우 그만한 거리를 걸어왔는데도 숨이 턱까지 닿았다. 숨이 막히고, 몸은 천근처럼 무거웠다. 물 먹인 솜처럼 축 늘어진 다리가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결전을 벌일 사람이 눈앞에 있다.
이럴 경우, 거의 모든 무인이 힘든 표정을 숨긴다. 정말 죽을 지경이어도 꾹 눌러 참는다.
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게 전혀 없다.
아걸도 물론 그렇다. 다른 때 같았으면 태연히 반철도를 들어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리 태연함을 가장하려고 해도 몸이 먼저 늘어진다.
“후후후! 그래서 경고해 줬잖아. 저들은 내 사람들이 아니라고. 보아하니 싸우기 힘들 것 같은데, 싸움을 뒤로 미룰까? 널 죽일 자신이 있다기보다는 최선을 다한 일홀도가 보고 싶었는데…… 지금 네 모습으로는 최선을 다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지.”
“최선을 다한 일홀도…… 풋! 그것도 일홀도가 맞지. 하지만 또 다른 일홀도도 있어. 임전무퇴(臨戰無退). 싸움 앞에서 뒷걸음질 친 일홀문도는 없거든.”
슷!
아걸이 반철도를 들어 보였다.
“쯧! 그게 칼인가?”
초가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반철도는 기름 먹인 불이 달라붙어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가 식은 상태다.
거무튀튀하고 뭉툭해 보인다.
불길에 담가지기 전보다 훨씬 못하다. 그때는 그래도 칼날이 보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쇠뭉치다. 언뜻 보면 칼날과 칼등의 구분조차도 하기 어렵다.
“지금 내 손에 이런 게 쥐어져 있는 걸 다행으로 여기는 게 어때?”
“무슨 말이지?”
“반철도가 이렇게 망가진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칼마저 날카로웠으면 어떻게 날 상대하려고.”
“후후! 그런 말인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네. 지금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닌 것 같은데.”
‘말했잖아. 임전무퇴. 일홀문도에게 몸 상태는 아무런 문제가 안 돼. 오늘 내 몸이 이런 건…… 내 운이 다했나 보지. 이런 상태에서도 이기면…… 후후! 네가 억수로 재수 없는 거고.’
“그런가.”
스릉!
초가평이 검을 꺼냈다.
“죽기가 소원이라면 죽여줘야지.”
스읏! 철컥!
초가평이 왼손으로 검배를 툭 쳤다. 그러자 검날이 손잡이 안으로 파고들며 자리를 잡았다.
쉬릭! 휘리리릭!
그가 검을 가볍게 휘둘러 본 후, 아걸을 겨눴다.
“끄응!”
아걸은 신음을 흘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초가평은 이미 공격할 준비를 맞췄다. 자신이 일어서기만 하면 즉시 공격해 온다.
초가평은 몸을 낮게 가라앉혔다.
두 다리는 기마세(騎馬勢)를 취했다. 다리를 아주 넓게 벌리고 찾 가라앉았다. 검은 머리 옆까지 들어 올렸다. 오른쪽 눈가에 검신이 닿을 듯 말 듯하다.
‘특이한 기수식!’
아걸의 눈가에 기광이 일렁거렸다.
아걸은 어느새 싸움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몸이 아프다는 것, 화상이 심하다는 것은 이미 잊었다.
도검의 차디찬 승부 속에 몸을 담그자, 정신이 오히려 또렷해졌다. 심신의 피로가 말끔히 가셨다. 언제 아팠나 싶게 정신 집중이 이루어졌다.
이런 말을 하기는 뭣하지만…… 아걸에게는 녹선마황보다도 초가평과의 진검 승부가 더 명약이다.
초가평의 기수식은 평이한 편이다. 그런데도 아걸을 특이하다고 봤다. 아걸뿐만이 아니라 초가평을 아는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초가평이 쾌검을 펼친다.
지금 초가평이 취한 자세는 쾌검을 펼치기에는 다소 불합리해 보인다. 기마세를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두 발의 간격을 좁히는 쪽이 치달리기에 좋다.
‘그렇군. 검속 제일 초가평.’
아걸이 초가평이 펼칠 검공을 짐작했다.
초가평은 소축십검은 검속 제일이라고 불렸다. ‘쾌검 제일’이 아니라 검속 제일이다. 순간적인 검의 움직임에서 다른 아홉 명을 능가한다. 검을 붙인 자세에서 변초를 일으키면 가장 먼저 승기를 취할 사람이 초가평이다.
일사검광이 어떤 검인지 대충 예상된다.
일사검광은 무림 명숙 십여 명을 죽인 검이다. 소림사 방장도 저 검에 당했다.
“상당하군. 자신을 가질 만해.”
아걸이 말했다.
“내 검을 알아봤나? 역시 아걸. 부인하지 않는다. 나는 널 벨 자신이 있어.”
스읏!
초가평이 반 발 앞으로 다가왔다.
초가평에게서는 여타 무인들이 보여 준 허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허도기와 맞섰을 때처럼 전신에서 몇 군데 텅 빈 곳이 보인다. 하지만 그곳을 치는 즉시 반격이 가해질 것이다. 허도기와 같은 빠름으로.
예전이라면,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이런 모습을 보면 즉시 달려들었다.
치고 싶나? 쳐라. 나도 친다. 누가 치나 보자!
아걸은 달려들지 못했다. 허점을 찌른 후에 되돌아올 반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 몸 상태가 본신 무공의 절반도 펼쳐내지 못할 만큼 나빠서 일어난 현상이다.
몸 상태가 칼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전부다. 몸이 좋지 않으면 칼도 좋지 않다. 몸이 좋은데도 칼이 나쁜 경우는 있다. 하지만 몸이 나쁜 데도 칼이 좋은 경우는 없다.
‘허점이 보이지 않아. 느리게 보이지도 않고. 움직임도 읽히지 않는다. 초가평이 하수로 보이지 않아. 내 칼이 무뎌진 거야. 역시 이 싸움은 무리였나.’
냉정하게 판단하면 이 싸움은 이미 승부가 갈렸다.
아걸은 초가평에게서 어떤 허점도 찾아내지 못했다. 반면에 초가평은 이미 허점을 찾은 듯하다. 어디를 공격할까 하는 초식상의 허점이 아니라 아걸을 어떻게 상대해야 이길 수 있는지 싸움 흐름에 관한 눈을 떴다.
“후유!”
아걸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그동안 해 왔던 일, 잠을 자기 전에 늘 했던 일…… 최대한 느슨한 상태, 마음의 이완 상태로 침잠해 들어갔다.
마음을 이완시키면 정신이 명료해진다. 또렷해진다. 그 상태에서 어떤 일에 집중할 수도 있다. 또는 잠을 청할 수도 있다. 결전에[ 임하는 무인의 정신 상태는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아걸은 과감하게 시도했다.
극단의 도법을 펼친다. 평범하게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를 전개해서는 일사검광을 당해내지 못한다. 지금 몸으로는 일 초도 막기 힘들 것이다. 그러면…… 역시 신도다.
“후우우!”
아걸은 큰 숨을 들이쉬며 깊은 이완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