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15화 (415/600)

第八十三章 쾌검낙성(快劍落星) (5)

‘사부가…… 사부가…….’

초가평은 뒷생각을 잇지 못했다.

사부는 소축에 은거하면서도 세간의 인심을 얻고자 했다.

- 문주가 되기 전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한다. 성검문 제일 무인은 허도기라는 말이 들려야 한다. 차기 문주를 거론할 때면 항상 제일 먼저 허도기라는 이름이 거론되어야 한다. 문주가 되어도 아주 당연해야 한다.

그때는 왜 그렇게 인망에 연연하나 싶었다.

사실, 이 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상 인망을 얻지 못해서 황제를 베지 않고 있다.

허도강이 병을 얻어 누웠을 때, 소축십검은 지금 당장 일어서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보고했다. 조카들을 제거할 계획은 완벽히 세워놨다고 말했다.

그때도 인망 타령이었다.

- 세상 사람은 허도기라는 이름에 앞서서 장자 허문승을 말하고 있다. 압도적인 인망이 서지 않았다는 뜻인데, 이럴 때 형을 밀어내면 패륜아가 된다. 패륜아가 다스리는 문파는 오래가지 못해. 조금 더 참자.

사부는 인망 때문에 형을 밀어내지 못한 게 아니다. 일홀문주가 염려스러워서도 아니다.

사부는…… 형, 허도강이 두려워서 검을 뽑지 못했던 거다.

지금도 그렇다. 황제를 치지 못하는 이유로 인망 타령을 늘어놓고 있지만, 정작 두려운 것은 전설처럼 존재한다는 호황위다. 호황위가 펼칠 무공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사부는 조명천하에 매진했다.

호황위가 나타나도 단숨에 베어버릴 무공을 가졌을 때, 비로소 황제를 벤다.

인망이 따르지 않아서 일을 벌이지 못한 게 아니다. 사부는 자신 스스로 최강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가지는 순간, 성검문을 탈취했다.

그런 생각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때는 황제를 베고 천하를 거머쥘 것이다.

초가평은 비로소 사부에 대한 의문이 확! 풀렸다.

야천을 통해서 꾸준히 인망을 넓히려는 작업은 거짓이다. 마유 마인을 이용해서 무림에 분란을 일으킨 것도 황제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 행동이다.

- 인망이 따르지 않는 한, 허도기는 계속 고민한다.

이것이 황제와 대장군에게 심어준 인식이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조명천하에 집중했다. 아걸 같은 자는 일거에 쓰러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때가 되면 누구도 두렵지 않다. 천하를 쥔다.

그렇다. 사부는 두려워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천하에 거칠 것이 없어 보이던 사부였는데…… 상당히 소심한 사람이었다. 이 말은 사부가 드디어 작심하고 움직일 때는 충분한 자신이 섰다는 말이 된다.

사부가 호황위를 염려하지 않고 움직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면 그동안 뭐가 변한 것일까? 황제 쪽 움직임은 별다른 것이 없다. 항상 그 모양 그대로다. 그렇다면 사부 쪽에서 변했다. 뭔가를 얻었다!

아걸이 말하는 사부의 조명천하는 초가평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뜻이다.

아걸은 사부의 욕망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사부가 왜 소축에 은거했는지, 이만한 힘을 쥐고도 황제를 베지 않고 웅크린 이유가 무엇인지 고려하지 않는다.

아걸은 철저한 무인이다.

그가 말하는 사부의 조명천하는 오직 무인의 직감에 따른 판단이다. 사부와 싸워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직감이랄까? 사부의 검을 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부분인데…… 사부에게는 지금까지 펼치지 않은 최고 단수의 절학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축십검조차 펼치지 못하는 절학이라면 조명천하뿐이다.

아걸은 그런 뜻에서 조명천하를 말한다.

초가평이 히죽 웃었다.

“널 죽이고 사부의 검을 확인해 보지. 네 말대로 조명천하를 얻었는지. 아니, 조명천하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어. 그것만은 우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거든.”

“그건 네 마음대로.”

다다닥! 다다닥! 다다다닥!

아걸이 또 달리기 시작했다.

아걸은 반철도를 왼손에 쥐고 있다. 왼손은 오른손만큼 익숙하지가 않다. 하지만 지금 아걸은 그런 부자연스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칼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매우 자연스럽다. 마치 왼손으로 칼을 수련한 듯 능숙하다.

이것이 신도다. 몸 전체가 칼일 때, 왼팔과 오른팔의 차이는 거의 없어진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구분이 없어진다. 왼손은 왼손대로, 오른손은 오른손대로 힘차게 뻗어 나온다.

파앗!

반철도가 터져 나왔다.

까앙! 깡! 깡깡깡!

초가평의 검과 반철도가 요란하게 부딪혔다.

* * *

‘틀렸군.’

사구정이 고개를 저었다.

숲을 수색할 필요도 없다. 산정에서 도검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초가평과 아걸이 부딪치고 있다.

첫 번째 교전이 십여 초를 넘겼다. 두 번째는 무려 이삼십 초나 부딪히고 있다. 화마에 긁히고 철질려 비침에 당한 상태에서 초가평의 검을 삼십여 차례나 막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싸움은 이미 틀렸다.

초가평의 검은 일사검광이다. 빛 한 줄기가 흐르면 바로 승부가 갈린다. 빛 한 줄기가 삼십여 줄기로 늘어났다는 것은 일사검광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오늘, 초가평은 죽는다.

‘어떻게 할까?’

사구정은 고민했다.

아걸은 초가평을 누르겠지만, 아걸 역시 탈진할 게 자명하다. 싸움이 끝난 후의 아걸 모습이 눈에 환히 보인다. 너무 힘들어서 반철도를 들지도 못할 것이다.

그때 그를 공격할까, 아니면 깨끗이 포기하고 지금 물러설까?

‘지금이 딱 좋은 기회인데. 저렇게 망가진 자를 놓친다는 것은 말도 안 돼.’

사구정에게는 아직 방법이 하나 더 남아 있다.

폭사(爆死)다. 무인들이 몸에 철질려를 두른 채 아걸을 공격한다. 하지만 공격은 단지 접근하는 수단일 뿐, 진짜 공격은 철질려 폭사에 있다.

무인이 자폭하면 반경 일 장 이내는 초토화가 된다. 독 묻은 비침 천여 개가 폭풍처럼 휘몰아쳐서,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개미 한 마리 남겨 놓지 않는다.

물론 폭사에 참여한 무인도 모두 죽는다.

폭사는 비침이 상대방을 타격하기 전에 주인부터 타격한다.

오직 죽음만 존재하는 자살 공격이다.

이 세상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저들은 군인의 명예로 죽음을 택한다.

‘아니야.’

사구정은 고개를 저었다.

적군을 상대할 때는 폭사를 지시할 수 있다. 적군은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다. 우리가 죽이지 않으면 저들이 우리를 죽인다. 또 정상적인 싸움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저들이 막강하다. 이대로 간다면 전멸이 명확하다.

이럴 경우, 저들은 기꺼이 철질려를 몸에 두른다.

아걸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아걸을 지켜보는 무인들의 눈에는 경외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아걸이 강해서 경외하는 게 아니다. 그의 처절한 투지를 존경한다.

이런 상태에서 폭사를 펼치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겉으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겠지만, 마지못해서 펼칠 것은 분명하다. 죽는 게 두렵다고 느낄 것이다. 갑자기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지는 것이다.

폭사는 목숨을 버릴 마음이 있는 자만이 펼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 가능성이 떨어진다. 약간의 머뭇거림이 상대방에게 기회를 준다.

‘물러서자.’

사구정은 과감히 후퇴를 결정했다.

폭사를 펼치면 아걸을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

“후퇴하자.”

사구정이 말했다.

사구정은 퇴각을 결정하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의 명령에는 약간의 미련이 담겨 있었다.

만약, 수하들이 ‘아닙니다! 아직도 폭사가 남아있습니다!’라고 말해 온다면, ‘좋다! 그럼 해보자!’ 하고 명령을 수정할 생각이었다. 그런 말을 해온다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자신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호장이 복명했다.

“후퇴한다!”

“넷!”

명령을 받은 백호 무인도 가차 없이 후퇴 준비를 했다.

’후후!’

사구정은 웃었다.

역시 전의가 떨어졌다. 무인들에게 아걸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긴 것일까? 그러면 곤란한데. 앞으로도 이들을 계속 아걸 앞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데.

아걸이 적장이라면 이들은 기꺼이 목숨을 버린다. 하지만 아걸은 무인이다. 자신들이 왜 이토록 악착같이 달려들어서 죽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전장과 무림은 이런 면에서 차이가 난다.

전장에 서면 적군을 왜 죽여야 하는지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무림으로 들어서면 어떠한 명령이라도 의문부터 일어난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 거지?

적위군을 이끌 때부터 이 점이 항상 어려웠다.

’오늘은 물러서자. 이미 공부가 명령한 부분은 넘어섰으니까.’

사구정은 정상을 힐끔 쳐다본 후, 뒤돌아섰다.

’괴물!’

사구정은 아걸이 괴물처럼 보였다. 어떻게 혼염구망진에서 살아날 수 있나. 어떻게 저런 몸으로 당대 최고수 중 한 명인 초가평과 싸울 수 있나.

그러니까 공부의 손에서 빠져나갔을 테지만.

* * *

쒜에에엑! 퍼억!

검이 아걸을 찔렀다.

‘됐다!’

초가평의 눈가에 격랑이 물결쳤다.

일사검광이 통했다. 검이 살을 뚫고 들어갔다. 손아귀에 묵직한 것이 탁! 걸렸다.

심장을 뚫다 보면 검이 갈비뼈에 걸리는 수가 있다. 하지만 뼈는 검을 막지 못한다. 순간적으로 뼈는 잘려나가고, 심장을 꿰뚫린다. 곧 심장이…….

타악!

진기가 순식간에 풀려나갔지만, 검은 뼈를 잘라내지 못했다.

그 순간, 초가평은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검에 단단한 물체에 꽂혔는데, 더 밀고 나가지 못한다. 뼈가 너무 단단해서 뚫지 못하고 있다.

아니, 검이 친 것은 뼈가 아니다. 뼈라면 이렇게 버틸 수 없다. 단박에 잘려나갔다.

심장을 꿰뚫은 것이 아니다. 검이 옆으로 빗나갔다.

‘위험! 진파!’

풍도곡에서 소축십검 중 두 명이 이런 수법에 당했다.

당시 그들은 잠기일력타를 사용했다. 전신 진기를 한 올도 남기지 않고 검에 밀집시켰다. 그리고 일시에 모든 힘을 폭발시켰다. 검이 터져나갔다.

잠기일력타는 피하지 못한다.

아걸도 피하지 못했다. 정확하게 심장을 관통당했다. 실제로 검이 뚫고 들어갔다. 그런데도 살았다.

나중에 시신을 수습해 온 후, 그 상황을 재현해 본 결과 한 가지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두 사람은 아걸의 심장을 치지 못했다.

아걸이 몸에 진동을 일으켜서 뚫고 들어오는 검을 밀어냈다. 심장이 아니라 옆을 치게 만들었다. 진파로 동귀어진 수법을 사용하면 오직 상대만 죽는다. 아걸 자신은 늘 요혈을 피한다.

초가평은 자신이 그런 상황에 부딪혔다는 것을 즉각 깨달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이런 수를!’

퍼억!

반철도가 명치를 뚫고 들어왔다.

역시 동귀어진인가? 일부러 일사검광을 맞아 준 것인가? 자신도 찌르기 위해서? 자신은 진파로 요혈을 피하고…… 정확하게 몸 중앙을 관통시킨다?

“크윽!”

초가평은 벼락을 맞은 듯 움찔거렸다.

츄웃!

아걸이 반철도를 뽑아낸 후, 뒤로 물러섰다.

아걸의 왼쪽 심장 옆부분, 겨드랑이 사이로 가느다란 핏물이 보였다. 상반신을 벗고 있어서 찔린 정도가 명확하게 보이는데…… 사실 찔리지도 않았다. 살짝 스쳤을 뿐이다.

초가평은 아걸을 뚫지 못했다.

아걸을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겨드랑이를 파고 들어가서 뒤에 있던 나무를 찔렀다.

아걸이 물러난 지금도 그는 나무를 찌르고 있다.

“심장을 얻은 줄 알았는데…… 겨우 나무를…… 큭큭!”

초가평은 키득대며 웃었다.

이런 검으로 사부 앞에서 큰소리를 친 건가? 몸이 저토록 엉망인 자가 쳐 낸 칼도 받아내지 못하면서…… 그러니 사부가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아걸은 지금도 사부에게 달려가지 못한다. 가면 죽는다고 한다.

자신은 그런 점도 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무인 대 무인으로 싸우면 사부를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다. 천하제일? 그 말은 자신이 들어야 할 말이었다.

도대체 자신은 무엇을 보면서 살아왔던 것인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했다.

사부의 무공의 어느 정도인지도 알지 못했고, 일홀도도 대충 알고는 경시했다.

인생을 헛살았다.

덜컥!

초가평은 쓴웃음을 흘리며…… 선 채로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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