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四章 오차척살(五次刺殺) (1)
“후욱!”
아걸은 칼을 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겠다. 자신이 지금 초가평을 쓰러뜨린 것인가? 명치에 반철도를 꽂아 넣었는데, 어떻게 찌른 거지? 지금 무슨 일이 있었지?
아걸은 자신이 조금 전까지 성난 호랑이처럼 펄펄 날뛰었다는 사실을 안다. 분명히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사력을 다해서 칼을 쳐 낸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몸이 너무 엉망이다.
움직일 때는 몰랐는데, 화상 때문인지 칠보산의 독효 때문인지 온몸이 퉁퉁 부어올랐다.
폐도 좋지 않다.
몸이 죽을 맛인 것은 둘째치고, 숨이 턱에까지 치밀어 올랐다. 일반적으로 숨 막히는 정도가 아니다. 폐에서 종이가 타는 듯한 냄새가 치밀어 올랐다.
“하악! 학!”
아걸은 큰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상처 입은 맹수가 마지막 숨을 토해내듯이…… 한 호흡을 토해낸 후에는 한참 동안 잠잠했다. 숨을 쉬지 않았다. 그러다가 또 매우 급하게 숨을 쏟아냈다.
“하악! 학!”
손에 부서진 돌가루가 만져졌다.
초가평은 산정이 매우 미끄럽다고 했다. 사실이 그렇다. 산정에 놓인 커다란 바위가 오랜 세월에 삭아서 굵은 모래가 되었다. 살짝만 밟아도 주르륵 미끄러진다.
아걸은 정상이 미끄럽다는 사실도 지금에서야 알았다.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기 전까지는 땅이 미끄러운지, 질척거리는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초가평이 선 채로 죽어 있다.
검을 나무에 꽂고…… 두 다리는 아직도 앞으로 달린다.
숨이 떨어졌는데도 몸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았다. 검을 쥔 손에서는 강한 아집이 읽힌다. 반드시 이 싸움에서 이기고 말겠다는 신념이 보인다.
‘이 싸움은 내가 한 게 아냐. 후후!’
아걸은 거친 숨을 쏟아내면서도 여전히 싸움 생각을 했다.
자신은 완벽한 이완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침잠해 들어갔고, 다른 한편은 오히려 팽팽하게 당겨진 화살이 되어서 초가평을 노렸다.
확실히 이 싸움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니다. 거의 본능적으로 싸운 것이다.
만약에 지금 누군가가 반격을 가해 온다면 어떻게 할까? 이제는 방법이 없다. 그저 날아오는 칼을 바라보면서 죽는 수밖에 없다. 정말로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지 못하겠다.
하지만 정작 칼이 날아오면 몸은 또 반응할 것이다.
자신조차도 어디서 힘이 솟는지 알지 못한 채, 벌떡 일어나서 마주쳐 갈 것이다.
“후욱! 훅!”
아걸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툭 고개를 떨었다.
몸이 너무 엉망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독침에 맞은 상처는 어떤지, 화상은 어느 정도나 진행되었는지…… 아! 모든 게 귀찮다.
상처 치료가 급한데, 그것조차도 돌볼 여력이 없다.
‘딱 한숨만…… 딱 한숨만 자고 일어나서.’
아걸은 고개를 떨궜다.
“아! 이거 심각하네. 어떻게 이런 몸으로 저런 악귀와 싸웠대? 어휴! 이 발자국 봐. 발자국. 아주 난리를 쳤구먼. 이 좁은 곳에서. 에휴! 징그러운 사람들.”
산 정상에 한 사람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올라섰다.
흑화방 방주 흑후다.
“하! 사람 힘들게 하네. 사람이 어떻게 쓰러질 것 같으면 탁 쓰러져 버리지, 애매하게 눈을 뜨고 있어. 무턱대고 걸어가면 목 날아가겠는데?”
흑후가 허리를 굽혀서 아걸을 쳐다봤다.
분명히 아걸은 혼절해 있다. 하지만 반철도를 잡은 손에서 힘이 느껴진다.
장담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무조건 베인다.
“하! 이거…….”
흑후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아걸의 생사부터 확인했다.
칼 쥔 손을 보면 분명히 살아 있는데,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죽었다.
“살았소? 살았으면 살았다고 대답 좀 해 보고!”
아걸은 대답하지 않았다.
“에구! 살았다고 해도…… 어렵겠는데?”
흑후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걸은 살아 있다.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몸은 전신 화상을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몸에 물집이 잡혀 있다. 살이 새카맣게 탄 곳도 있다.
전신이 불에 그을린 것은 아니지만 화염지옥을 뚫고 나온 흔적만은 뚜렷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걸을 둘러싼 지옥이 화염구망진이었다.
오음산에서도 독진에 걸려서 죽을 뻔하다가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이번에는 화독(火毒), 어떻게 된 게 칼에 맞는 것보다 암습에 당하는 쪽이 더 많다.
“목숨은 건진다고 해도 저 손은…… 에휴!”
흑후가 아걸의 오른손을 보며 탄식했다.
아걸의 오른손은 거인 손처럼 부풀어 올랐다.
지금 바로 데려가서 치료해도 살 것 같지가 않다. 설혹 살아난다고 해도 일홀도는 쓰기는 힘들어 보인다. 또 일홀도까지 쓸 수 있다고 해도 오른손을 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쉐에에엑!
흑후 곁에 눈이 무척 작은 수하, 서목이 내려섰다.
“아무도 없어요. 다 빠져나갔어요.”
“새끼들, 빠져나갈 것 같으면 진작 빠져나가지. 싸움 구경 다 하고 가는 법이 어디 있어? 야! 너, 쟤한테 가서 숨이 붙었나 확인 좀 해 봐. 난 시신은 질색이라서.”
“꼭 이런 일만 날 시킨다니까.”
스읏!
서목이 무심히 아걸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아걸을 일으키기 위해 어깨를 부축해 갔다.
그때, 지금까지 정신을 잃고 축 늘어져 있던 아걸이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선 서목을 쳐다봤다. 물론 왼손에 들린 반철도도 슬쩍 들렸다.
“어!”
서목이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춰 세웠다.
갑자기 산 정상에 서리가 앉았다. 찬바람이 몰아친다. 개구리가 무심히 움직이다가 독사와 딱 마주쳤다. 눈이라도 깜빡이면 여지없이 칼바람이 몰아친다.
스으으읏!
아걸이 천천히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매우 느리게 움직인다. 사흘 동안 피죽 한 그릇 못 먹은 병자처럼 힘이 없다.
이런 움직임이 위협적일 리는 없다. 누가 봐도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그러니 무시해도 된다. 괜히 분위기만 싸하지, 실제로는 별것 없다.
하지만 서목은 움직이지 못했다.
저런 칼에 초가평이 죽었다.
아걸이 움직인 칼이라면 어떤 모습일지라도 무시하지 못한다.
흑후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이대로 두면 서목이 당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정말 이상하지 않나. 아무리 봐도 위협적이지 않은데, 앞에 선 사람은 위협을 느끼니. 그것도 질식할 것처럼 거세게 다가오는 압박감이라니.
“저, 흑후입니다. 흑후. 기억하십니까?”
흑후는 아걸에게 극존칭을 사용했다.
야구와 함께 아걸을 찾을 때부터 그랬다. 아걸을 허도기처럼 대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흑화방의 운명을 아걸에게 걸었으니 주인 모시듯 모셔야 한다. 뒤에서는 다른 소리를 할망정,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린다.
“저 기억하십니까? 허도기 때문에 우리 흑화방, 아예 박살 나버렸는데. 얘들도 다 죽고. 뒈지게 얻어맞았죠. 킥킥! 기억하지 못하시면 섭섭합니다.”
흑후가 서목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면서 계속 말했다.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흑화방을 이끄는 몸 아닙니까. 그 정도 맞는다고 죽을 놈은 아니죠. 허도기가 실수한 거예요. 우리 흑화방을 그 정도로밖에 안 봤다니.”
스으읏!
흑후가 아걸 앞에 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반철도부터 빼앗고 싶다. 손만 뻗으면 낚아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걸이 더 빠르다. 손을 뻗는 즉시 저 칼이 목을 친다.
“우리 자세한 말은 나중에 하고요. 저기…… 제가 지금 상처를 좀 봤으면 하는데…… 아니다. 제가 봐봤자 손댈 것도 없고…… 빨리 산 밑으로 내려가서 의원을 불러야 하는데…… 몸에 손 좀 대도 될지. 시간이 없거든요.”
아걸이 흑후는 쳐다봤다.
무심한 눈길이다. 아무런 기운도 실리지 않아서 공허해 보인다. 하지만 흑후에게는 두 눈에서 불똥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눈길을 보자마자 오금이 저려왔다.
‘분명히 기력을 잃은 눈빛인데…… 아직도 다가갈 수가 없어. 그동안 무슨 칼을 수련한 거야. 일홀도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칼이라더니. 어휴! 살 떨려.’
아걸이 툭! 반철도를 놓았다. 아니, 고개를 떨궜다. 아예 혼절해 버렸다.
“아이고, 이건 뭐 무슨 놈의 눈빛이…….”
흑후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해! 빨리 데려가지 않고! 정말 송장 치우고 싶어!”
흑후가 괜히 신경질을 부렸다.
사실은 마음이 매우 급해졌다. 가까이서 보니 아걸의 상태가 너무 위태로웠다. 자칫하면 손도 쓰지 못하고 저승길로 보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빨리 들어!”
휘이이이잉!
귓가로 바람이 흘러간다.
푸른 숲이 빠르게 휙휙 스치며 지나갔다.
화마에 긁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불길의 흔적은 전혀 없다. 주산 전체가 불길에 휘감겼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움직여도 산불이 일어난 자리는 보일 텐데.
주산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산을 넘어서 반대쪽으로 내려가는 게 아닌가 짐작된다.
흑후가 자신을 데리고 간다. 목숨을 살리려고 빠르게 마을로 뛰어 내려가고 있다.
그 정도는 알겠다.
아걸은 멍하니 누워서 지나가는 풍경을 쳐다봤다.
머릿속이 텅 비었다. 웃기는 얘기지만 통증도 일어나지 않는다. 몸이 아프지 않다. 이미 아픔을 느낄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린 것 같다. 다만 너무 졸리다.
눈을 감으면 죽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만사가 귀찮다. 지금은 그저 한숨 푹 잤으면 좋겠다.
휘이이잉!
아걸은 귓가로 스쳐 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너무 무겁게 떨궈진다.
“으으음!”
아걸은 신음을 흘렸다.
온몸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치밀었다. 몸 전체가 쪼개지는 것 같다.
소를 잡는 큰 도끼가 전신을 마구 난타한다. 뾰족한 송곳이 복부를 마구 짓이긴다.
아! 세상에 이런 고통도 있구나!
아걸은 칼을 많이 맞으면서 살아왔다. 몸 전체가 흉터투성이다. 흉터만 보면 지옥에서 살다가 온 사람으로 착각할 것이다. 또 많은 흉터만큼이나 고통도 심했다.
죽을 뻔한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얼마 전만 해도 죽을 뻔했다. 오음산에서 독에 중독되고, 허도기의 검에 맞았을 때…… 이제는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머릿속을 스쳐 갔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아프지는 않았다.
아픔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다. 그 정도 칼을 맞으면서 살아왔으면 어느 정도 고통에는 익숙해져 있어야지. 천만의 말씀,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수석! 수석! 수석!
누군가가 계속 몸을 만져댄다.
‘아파. 내버려 둬. 건드리지 마.’
아걸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음성은 목구멍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저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 대신에 끙끙 앓는 듯한 신음만 거칠게 흘러나왔다.
“으음! 으으음!”
이를 악물면서 고통을 참지만, 그대로 참아지지 않고 흘러나오는 신음.
“하! 이 사람도 사람은 사람이네. 그래도 비명을 내지르네. 그려.”
“너무 꿈쩍도 하지 않기에 나는 돌로 만든 사람인가 싶었지. 그래도 신음을 들으니 손에 힘이 나는데.”
낯선 음성이다.
그들은 계속 두런두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떤 내용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쪽 피부는 떼어내야겠어. 벌써 괴사야.”
“공음청령액(孔愔淸靈液)이 바닥났어. 조금만 더 있었으면 딱 좋았을 텐데.”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거지. 우리가 지금 집을 몇 채나 부수고 있는지 알아? 이거 한 방울 떨굴 때마다 방 한 개씩은 없어지고 있다고 봐야지?”
“독기는 다 뽑아 냈어. 이 사람, 임시 조치가 매우 뛰어나. 뭘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하네. 침입한 독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뭉쳐 있는 덕분에 쉽게 제거했어.”
그들은 말을 나누면서도 손길을 늦추지 않았다.
아걸은 모든 말이, 모든 행동이 귀찮았다.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아프다니까! 자꾸 만지지 말라고!’
아걸은 갑자기 머릿속이 빙그르르 도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커다란 어둠이 보였다. 시커먼 흑벽이 훅 밀려왔다. 또 깊은 잠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