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17화 (417/600)

第八十四章 오차척살(五次刺殺) (2)

아걸은 두런거리는 작은 이야기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부터 누가 시끄럽게…….’

얘기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떠들 거면 다른 곳에 가서 떠들었으면 좋겠는데, 하필이면 바로 옆에 붙어서 잠도 못 자게 신경을 박박 긁는다.

“몇 개라고?”

“암만 못해도 이만 개는 넘지.”

“이만 개? 그게 정말이야? 한 사람을 때려잡겠다고 철질려 이만 개를 깔았다고!”

“더 되면 됐지 못하지는 않을 거야.”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

화내는 목소리가 들렸다.

“철질려가 단순한 암기라고 하더라도 대충 길만 막는 데 백여 개는 써야 하니까…… 이만 개를 깔았다면, 어휴! 그거 이만 개를 만들려면 대장장이가 몇 명이 붙어야 하는 거야? 이삼십 명이 붙어도 한 달은 걸릴걸?”

“이건 단순한 철질려도 아니잖아. 폭사가 가능해. 철질려 속에 용수철을 넣고, 비침을 정교하게 배치해야 해. 노련한 장인이 아니면 이런 수작업은 해내지 못해.”

“후후! 상대가 공부야. 하지 못할 짓이 어디 있어?”

두런거리는 음성들이 더욱 뚜렷하게 들려왔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누구의 음성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명확히 구분이 지어졌다.

“이걸 산에 쫙 깔아 놓고 사방에서 불을 지른단 말이지. 이걸 혼염구망진이라고 하는데…… 불이 또 예사 불이 아냐. 기름 먹인 불이라 이거지. 불길이 살짝만 닿아도 기름이 확 딸려온단 말이지. 재수 없으면 기름 덩이가 되는 거야.”

흑후의 음성이다.

“그러면…… 초가평과 싸우기 전에도 이런 몸이었나?”

쌍겸이다. 은거 무인들이 침상 곁에 앉아 있다.

“그랬다니까. 나 같으면 절대로 안 싸우지. 아, 이런 몸으로 싸우는 법이 어딨어? 근데 싸우러 올라가더라니까.”

“말리지도 않았나?”

“엥? 말리라고? 사람이 말하기 쉽다고 그렇게 툭툭 말하는 거 아니야. 그 상황을 못 봤으니까 하는 말이지, 말리긴 어떻게 말려! 누가 말려?”

“음!”

지당검이 신음을 흘렸다.

아걸을 말리는 것은 차후 문제다. 아걸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면 먼저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그러자면 두 가지 문제부터 풀어내야 한다.

첫째,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자들을 뚫어야 한다. 혼음구망진을 펼친 자들이다. 정체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그들을 뚫고 들어가야 비로소 아걸과 만난다.

아걸과 만나도 문제가 이어진다.

당시 아걸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상태다. 본인은 멀쩡하다고 자신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몸이 이미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후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움직이지도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아걸은 움직이기는 했지만, 정신은 온전하지 않았다. 상당히 피로해서 탈진 직전이면 오히려 피곤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 착각 상태다.

그런 상태라면…… 누구든 곁에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모조리 베어냈을 것이다.

흑후가 말했다.

“살기등등하게 올라가는 모습, 못 봤지? 그러니까 함부로 말하지. 그 모습을 보면 꼼짝도 못 하게 되어 있어. 그런데 말려? 어떻게 말리냐고!”

흑후가 억울한지 소리까지 질렀다.

‘살아 있었네.’

아걸은 잠에서 깨어나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흑후가 살아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흑후도 위험했다.

야구는 위험을 피하지 못하고 절명했다. 흑화방도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흑후의 생사는 파악하지 못했는데, 살아 있었구나.

‘아!’

그러고 보니 흑후를 산정에서도 봤다. 초가평과 싸우고 쓰러진 후에, 그가 나타났다. 그가 사람을 시켜서 자신을 데려왔다. 귓가로 스쳐 지나가던 바람도 생각났다.

정신을 잃고 있으면서 잠깐잠깐 보고 들었던 모든 일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내가 살았네.’

아걸은 눈을 뜨려고 했다. 하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뜨기는 했는데, 앞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이유를 알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광목으로 둘둘 말려 있다. 마치 시신을 염해 놓은 것처럼 꽁꽁 묶여 있다. 아마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부목을 대놓은 모양이다.

흑후와 은거 무인들은 아걸이 깨어난 것도 알지 못하고,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심심해서 말을 나누기는 하는데, 아걸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애쓰는 모습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다시 검을 쓸 수는 있겠고?”

“그것참…… 이게 재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화상이 경맥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어. 겉으로는 되게 위험한 것 같은데, 사실은 아닌 거지. 아무는 데까지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뭐, 칼을 잡는 데는 이상이 없을 거 같은데?”

“그건 그렇고 이거 이대로 놔둬야 하나?”

나통이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음!”

반철도를 보자 은거 무인들이 또 침음을 토해냈다.

어제만 해도 멀쩡하던 반철도였다. 검에 찍힌 자국이 많았지만, 그래도 칼이었다.

겨우 하루를 못 본 것뿐인데, 그 사이에 아걸은 전신을 붕대로 감고 있고 반철도는 기괴망측한 쇳덩이로 변해 버렸다. 처음부터 반도(半刀)의 형태를 띤 철도이기 때문에, 날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자 이게 정말 칼인지 의문까지 들었다.

“이거 다시 만들어야 하지 않아? 쇠는 그대로 쓴다고 해도.”

“아걸이 선택할 몫이야.”

“그건 아는데. 이걸로 뭐 도법이나 펼칠 수 있겠어? 사람을 베는 건 틀렸고. 그러니 깨어나기 전에 칼을 만들어 놓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본인이 어떤 마음인지 알아야지.”

“그래, 그럼 뭐…… 어차피 하루 이틀에 나을 것도 아니고.”

나통이 말했다.

쾌검을 쓰는 나통에게는 반철도의 기괴한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병기는 늘 제 역할을 해 줘야 한다는 게 나통의 주장이다.

검은 검다워야 한다. 창은 창 역할을 해줘야 한다. 정작 필요할 때 베지 못하는 칼은 무용지물이다. 그러니 항시 병기 손질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그의 신념에 반철도는 정면으로 위배된다.

반철도가 나통 것이었다면, 오히려 나통은 누가 반철도를 녹여서 새 칼을 만들어 주면 더 좋아했을 것이다.

더 날카롭고 좋은 칼이 생겼는데 왜 좋지 않겠나. 그것도 자신이 쓰던 칼이다. 칼의 모양이나 무게, 검병의 위치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면…… 마다할 리 없다.

나통은 병기를 손질하지 않고 막 굴리는 사람이 싫다. 밉다. 병기를 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아걸이 그런 셈이다.

“그래도 이거…… 이렇게 쓰면 안 되는데. 좋은 칼이 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쓰는지. 휴우!”

나통이 답답한지 한숨을 토해냈다.

아걸은 하루를 더 쉬었다.

은거 무인들은 아걸이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아걸의 전신을 광목으로 휘감아놔서 눈을 뜨고 있어도 알아챌 수가 없었다.

그의 몸은 이삼일 쉰다고 해서 나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하루를 더 쉬었다.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초가평과의 싸움을 복기했다.

몸은 염려하지 않는다.

흑후가 많은 의원을 동원했다. 혼절 중에 ‘공음청령액’이라는 말도 들었다. 외상에는 특효로 여겨지는 수액(樹液)이다. 상처도 빨리 아물게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취 효과가 뛰어나다.

공음수는 햇볕을 싫어해서 음지에서만 자란다. 줄기는 겨우 손가락 길이밖에 되지 않는다. 무척 작다. 반면에 잎사귀는 삼 척 이상이나 된다.

그래서 공음수를 나무가 아니라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공음수를 캐내서 잎을 떼어 버리고, 나무만 즙액을 낸 것이 공음청령수다.

나무 하나에 한두 방울밖에 얻지 못하는 희귀한 영약이다.

흑후는 공음청령액을 들이부을 수 있을 정도로 제공했다.

허도기가 지배하는 무림에서는 흑화방이 설 자리가 없다. 허도기를 몰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아걸뿐이다. 그러니 아걸을 지원하고, 아걸이 지배하는 무림에서 흑화방을 유지시킨다.

흑후에게는 분명히 목적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다. 고마운 것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몸은 흑후가 돌보아 줄 것이다. 그러니 몸은 신경 쓰지 말자. 그것보다는 초가평과의 싸움을 복기해야 한다. 이기기 어려운 싸움을 뒤집은 것이니, 복기할 가치가 높다.

‘몸뚱이 하나, 칼 한 자루.’

혼염구망진에 맞닥트렸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그 생각이 계속 초가평과의 싸움까지 이어졌다. 몸이 완벽한 칼이 되어서 부딪쳐 갔다.

초가평은 손에 들린 반철도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가 정작 맞이했어야 할 것은 아걸의 몸뚱이였다. 근본을 알아보지 못하고 본에 붙어 있는 부수적인 칼만 지켜봤다.

아걸은 정상에서 있었던 싸움을 계속해서 복기했다.

부드득!

왼손을 움직여서 몸에 칭칭 감긴 광목을 뜯어냈다.

“엇! 뭐야?”

“앗! 깨어났다!”

은거 무인들이 깜짝 놀라서 돌아봤다.

그중 누군가가 아걸의 손을 꼭 잡았다. 아걸이 광목을 뜯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껏 상처를 동여맸는데.

“진정. 진정하라고. 이거 상처 치료하고 묶어 놓은 거야. 곪지 말라고. 진정해. 진정.”

비석 장태전의 음성이다.

아걸은 장태전을 뿌리치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몸이 많이 다친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장태전이 꾹 눌러대는 힘조차 당해내지 못한다.

“나 좀 일으켜…….”

“뭘 일어서, 일어서긴. 누워 있어. 일어설 몸이 아니야.”

“일어서야…….”

“아, 누워 있으라니까!”

“오늘이 며칠째…….”

“며칠? 삼 일. 우리 만난 지 삼 일밖에 안 됐어. 너 사흘 동안에 이렇게 된 거라고.”

“명부판관.”

“뭐?”

“명부판관…….”

“명부판관이 왜?”

“오늘이 사흘째…… 취화원…….”

아걸은 말하기 힘든지 말하다 말고 숨을 골랐다.

순간, 장태전은 자신이 혹시 잘못 듣지 않았나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걸이 짧게 몇 마디 했지만, 무슨 말인지 즉각 알아들었다.

명부판관의 징벌이 있은 지 사흘째다. 그러면 오늘이 취화원 살수와 만나는 날이다. 취화원은 다섯 번째 징벌 대상자를 선정했을 것이고, 아걸에게 사람을 보냈다.

정상적인 몸이라면 벌써 취화원 살수와 만났을 것이다.

“너 지금 명부판관 노릇을 하겠다는 거야?”

“안서(安西)로…… 가야…….”

“야!”

장태전이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안서로.”

“하! 이놈의 똥고집하고는!”

장태전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걸은 명부판관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거다.

명부판관은 오 일 간격으로 악인을 징벌해 왔다. 그러니 오늘은 취화원 살수를 만나고, 내일은 상대방에게 통보하고, 모레는 징벌해야 한다.

이게 몸이 엉망이 되어서 전신에 광목을 휘감고 누워 있는 자가 한 말이다.

“정 하겠다면 가야지 뭐.”

쌍겸이 말했다.

지금까지 아걸은 입 밖에 낸 말을 거둬들인 적이 없다.

그를 안서로 데려가지 않고 꾹 눌러 앉힌다고 해서 그가 은거 무인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은거 무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걸은 오늘 하지 못한 일을 보충하기 위해서 더 무리한다. 모든 상황을 정상으로 돌려놓는다. 누구에게 부탁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그런 일을 한다.

지금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상황이 더 꼬인다.

“그럼 이런 사람을 끌고 안서로 가자고?”

“가야지, 어떡해? 본인이 이렇게 부득부득 우기면서 간다고 하는데. 흑후가 말한 것처럼 말릴 방도 있어?”

“아무리 그래도…….”

“우리 중에 누가 가장 빠르지? 나통이지? 네가 안서로 가서 취화원에서 보낸 여자를 데려와. 취화원은 우리 얼굴을 다 알고 있으니까, 얼굴만 비쳐도 따라올 거야.”

“그럴까?”

나통이 나섰다.

“네가 떠나면 우리도 바로 출발할 거야. 중간에서 만나자고. 가다가 적당한 곳에 밀마를 남겨놔.”

“안서 어디로 가야 해?”

나통이 물었다.

아걸은 취화원 살수와 만나는 장소를 공개하지 않았다.

오 일 간격으로 바뀌는 장소를 굳이 공개할 이유도 없었다. 아걸이 가면 되었으니까.

“다빈루(多賓樓).”

“다빈루? 알았어. 안서 다빈루 맞지?”

“네.”

“그럼 내가 먼저 간다!”

쉬이이익!

나통이 신형을 날렸다.

“하! 이거야 원…….”

장태전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걸을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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