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四章 오차척살(五次刺殺) (3)
“왜? 왜?”
밖에 출타했다가 돌아온 흑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한눈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읽혔다. 아걸을 일으키는 사람, 물건을 챙기는 사람…… 모두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아걸이 명부판관을 하겠대.”
“누가 뭘 해?”
흑후가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오늘 안으로 안서로 가야 하는데, 조심해서 움직일 방도가 없을까? 마차를 구했으면 좋겠는데.”
황열이 흑후를 보며 말했다.
“내 참 기가 막혀서. 뭘 한다고? 명부판관? 저 몸으로? 지금 저 사람, 불구덩이 속에 있는 것과 똑같아. 사람들이 어떻게 말릴 생각은 하지 않고.”
“흑후.”
아걸이 흑후를 불렀다.
‘흑후?’
흑후의 눈빛에 기광이 번뜩였다.
아걸은 흑후에게 늘 일정한 간격을 두었다. 흑후가 가깝게 다가서려고 해도 거리감이 저절로 느껴졌었다.
지금 아걸은 그런 거리감을 버린 채 자신을 불렀다.
단순히 호칭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니다. 아니, 호칭만 생각한다면 오히려 기분이 나쁘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감히 별호를 찍찍 불러대!
아걸이 말하는 음성을 들은 사람이라면 ‘흑후’라고 부른 말 속에 포함된 따뜻함을 읽을 수 있다.
아걸은 도와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다.
“뭐라고 해도 안 된다니까!”
흑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요전번…… 야구와 함께 아걸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흑후는 아걸에게 존칭을 사용했다. 아걸로 마찬가지로 존칭을 썼다. 흑후는 다가서려고 했고, 아걸은 거리를 두었다.
아걸이 따뜻함을 담자, 흑후도 거리감을 버렸다.
“내가 지금 가지 않으면 몽설이 걱정한다니까.”
“뭐, 뭐, 뭣! 겨우 그따위 이유로! 걱정 좀 하라지! 아니, 신랑이 다쳤으면 신부가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 뭘! 세상 모든 여자가 그런 걱정을 하면서 산다고. 무인 남편 둔 게 그럼 뭐 시골 훈장님처럼 태평하게 글이나 읽고 살 줄 알았나?”
“흑후, 갑시다.”
“하! 미치겠네. 사람이 말을 하면…….”
그러자 장태전이 아걸을 부축하고 걸음을 옮겼다.
아걸이 장태전에게 가자는 눈빛을 보냈고, 장태전이 받아들였다.
“하! 이 사람들, 정말! 알았어! 알았다고! 가면 될 거 아냐, 가면! 여기서 안서가 뭐 동네 안방인가? 그러고 갈 생각이야? 어휴! 말을 말아야지! 야! 가마 가져와! 가마!”
흑후가 빽 고함을 내질렀다.
모두 취화원이 아걸을 주시할 거로 생각하지만, 몽설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몽설은 두 사람의 원수를 그녀가 상대한다고 생각한다.
호황위에 머물면서 허도기를 상대하지만, 그녀가 상대하는 허도기는 성검문주 허도기다. 공부 허도기가 아니다. 공부가 나라를 집어먹든 말아먹든 상관하지 않는다. 호황위가 먼저냐, 원수가 먼저냐고 물으면 분명히 원수가 먼저다.
몽설은 허도기를 무너트리는 방책으로 호황위를 사용한다.
아걸이 하는 일은 성검문주 허도기를 무너트리는 일이다. 그래서 취화원 살수를 보낸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을 지금 시작했다. 부모의 원수, 허도기에게 검을 겨눴다.
이 일은 내가 한다. 허도기를 내가 무너트린다. 그러니 오빠는 일홀도만 얻어라. 결국, 마지막 승부는 일홀도와 조명십해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필사적으로 얻어라.
아걸이 일홀도를 얻지 못하면 허도기에게 죽임을 당한다.
몽설이 하는 이런 일이 오히려 아걸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는 안 되지 않나.
마지막 결전이 벌어지는 순간까지, 몽설은 절대로 아걸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일홀도를 얻는 데 티끌만큼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래서 취화원은 아걸을 주시하지 않는다. 최대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을 붙이지도 않는다. 취화원은 티끌만 한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준다. 취화원 걱정을 일절 하지 말고 오로지 일홀도 수련에 매진하라는 뜻이다.
취화원과 아걸이 접촉하는 것은 오직 척살 대상자가 누군지 알려 올 때뿐이다.
그 후에는 다시 아걸에게서 신경을 거둔다.
취화원이 수집한 증거를 건네줄 때도 접촉을 최대한으로 줄인다. 아걸이 직접 찾을 수 있는 증거라면 척살 대상자를 알려줄 때 함께 건네준다.
아걸이 징벌을 잘했는지 아닌지도 보지 않는다.
취화원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눈을 감고 있다. 명부판관이 하는 일에서 완전히 관심을 떼어낸다. 다만 아걸이 취화원을 부를 수도 있어서 멀리 가지는 않는다. 근처에서 대기한다.
일의 결과는 반 시진이 되지 않아서 세상 전체가 알게 된다.
그 반 시진을 미리 알자고 아걸을 지켜보지 않는다. 소문이 흘러나오면 그제야 안다.
몽설이 호황위에 몸담지 않았다면 취화원 살수를 아걸에게 보내는 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걸이 칼에 베이고, 쓰러져도 소식을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몽설이 죽는 순간이 와도 마찬가지다.
흑후는 이인교(二人轎)를 가져왔다.
두 사람이 앞뒤에서 드는 가마인데, 가마가 조금 변형되었다. 앉은 부분을 사인교처럼 넓혔다. 아걸 한 사람만 반듯이 누워갈 수 있을 정도다.
“마차가 좋지 않나?”
쌍겸이 말했다.
“흔들려. 심하게.”
“이건 안 흔들리고?”
“이인교를 네 명이 들면 덜 흔들리지.”
흑후가 손짓을 했다.
한쪽에 시립해 있던 장정 네 명이 가마 앞으로 달려왔다.
네 명은 키가 똑같다. 체형도 비슷하다. 두 눈에 기광이 갈무리된 것을 보면 무공을 충실히 수련했다. 특히 두 다리가 무척 튼튼해 보인다. 신법 수련이 꽤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네 명은 흑후가 일부러 고른 자들이다.
“속도는 신경 쓰지 마라. 최대한 가마가 흔들리면 안 돼.”
“넷!”
장정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이인교를 맨 사내들이 쾌속하게 질주했다.
흑후는 속도에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장정들은 무척 빨랐다. 아걸이나 은거 무인이 걱정할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지는 않았다. 가마를 평평하게 유지하면서 치달리는 모습을 보면 이런 종류의 신법만 특별하게 수련한 게 아닐까 싶다.
“그만!”
흑후가 명령했다.
그러자 가마를 메고 달리던 장정들이 관도 위에 사뿐히 가마를 내려놓았다.
장정들이 그늘을 찾아서 쉬었다.
흑후는 정확하게 반 시진을 달리게 한 후, 일다경을 쉬게 했다.
가는 길이 먼 만큼 푹 쉬게 해 주어야 잘 달릴 수 있다. 마음이 급하다고 마구잡이로 몰아치면 처음에는 빠를지 몰라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서종(西淙)까지만 가자. 거기까지만 가면 돌아오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
“네! 저희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놈들아, 너흴 걱정하는 게 아냐. 너희가 튼튼해야 나중에 내 가마도 멜 것 아니냐. 날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흑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푹 쉬겠습니다.”
장정들이 흑후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두 발을 쭉 뻗고 누웠다.
발을 머리보다 높이 들고 쉰다. 피를 쏠리게 해서 다리의 피로를 풀려는 것이다.
확실히 이들은 달리는 데 특화된 신법을 수련했다.
아걸은 가마에 누운 채, 눈을 감았다.
몸이 아파서 눕게 되면 운공을 할 기회가 많아진다. 아프다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좌공은 할 수 없지만, 와공(臥功)은 할 수 있다.
좌공과 와공이 다른 점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무인이 좌공을 선호하는 것은 와공의 경우 수마(睡魔)의 위험에 빠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
땅은 편안함을 불러온다.
서서 취하는 입공(入功), 앉아서 하는 좌공, 누워서 하는 와공이 다를 바 없다. 다만 편안함과 연관을 가진다. 입공은 가장 불편하다. 장점은 수마의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와공은 가장 편안하다. 하지만 수마의 위협이 있다.
입공 시에는 두 발바닥만 땅에 붙어 있다. 땅에 붙은 범위가 좁다. 그래서 불편하다. 좌공 시에는 엉덩이와 다리가 붙어 있다. 편안함과 수마의 위험이 중간이다. 와공은 반신이 붙어있다. 몸이 가장 많이 붙어 있는 만큼 수마의 위험이 그만큼 크다.
아걸 같은 초고수가 되면 수마의 위험쯤은 우습게 넘겨야 하지 않을까?
아걸은 굳이 와공을 취할 필요가 없다. 그가 와공을 취할 때는 몸이 불편해서다. 그러니 몸이 불편한 만큼 편안함에 기대는 마음도 강해진다.
사실상 아걸 같은 사람이 와공을 취하면 수마가 당장 달려든다.
‘후웁! 후우우웁!’
진기를 일으켜서 일주천 시켰다.
경략을 살펴보고, 독기가 남아 있는지 살폈다. 조금이라도 불편하다 싶으면 진기를 밀집해서 밀어 넣었다. 경맥 전체가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이럴 때 녹선마황이 있으면 좋을 텐데.
일홀문도에게 녹선마황은 하늘이 내린 신약이다. 만약 녹선마황이 없었다면 일홀문주들의 죽음은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삼십육 대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칠십 대, 팔십 대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그만큼 녹선마황은 절대적인 친구였다.
그런데도 아걸은 녹선마황을 멀리했다. 멀쩡한 대도를 내버려 두고 반철도를 손에 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녹선마황에 의지하려는 마음을 떼어 놓으려고 했다.
녹선마황 같은 영물이 품에 있으면 아무래도 칼이 느슨해진다. 웬만한 검쯤은 맞아도 상관없다는 투가 되어버린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행동이 이어진다.
그런 싸움이 아니라 온전한 일홀도를 얻고 싶었다.
진파와는 다른 의미다. 진파도 동귀어진 수법이지만, 진파는 자신이 만들어 낸 구명법이다.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면 목숨을 구해줄 절초가 된다.
진파를 일으켜야만 막아낼 수 있는 공격이라면 이미 목숨이 지옥을 건너간 것이다. 진파를 일으키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 된다. 녹선마황을 사용할 시간조차 없게 된다.
녹선마황이나 멀쩡한 칼은 일홀도의 적이다.
진파는 목숨을 구해준다. 계속 일홀도를 추구할 수 있게 도와준다. 적이 아니라 친구다.
녹선마황이나 진파나 같은 행동을 취하게 만들지라도, 의미는 명확하게 다르다. 아걸이 취하는 것과 취하지 않는 구분도 여기에 있다. 일홀도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기꺼이 취한다.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면 아무리 영물이라도 취하지 않는다.
지금은 녹선마황이 있었으면 싶다.
사형 덕분에 목숨을 두 번이나 구했다. 허도기 손에서 목숨을 건졌고, 이번에 또 살았다.
흑후는 아걸의 상태를 보고 기적이라고 했다.
칠보산이 투여된 상태에서도 버텨냈을 뿐만 아니라 화상도 신경을 건드리지 않았다. 치료하는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근골에 이상이 없다.
녹선마황을 모르니 의아한 것이다.
녹선마황을 먹고 발랐다. 그 네 마리가 지금 자신의 숨을 붙여 놓고 있다. 만약 그 네 마리가 없었다면 초가평을 상대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마 산정에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녹선마황…… 이제는 있어야겠어. 어떻게 된 게 날이 갈수록 상처가 더 심해져. 무공이 강해지면 다치는 것도 가벼워져야 하는데, 더 심해. 후후!’
아걸은 웃었다.
몽설이 자신의 상처를 보면 눈물만 글썽이면서 묵묵히 치료할 것이다.
몽설이 보고 싶다. 잘 있겠지?
“허도기가 어디 있는지 모르지? 지금 북해에 있어. 이건 몽설도 모를걸? 최고급 정보야. 돈으로 따지면 집 한 채 값은 받아야지. 우린 이런 정보를 팔아먹고 살아.”
흑후가 말했다.
“북해 합륭국(哈隆國)에 있는데, 국왕을 꼬드기는 중인 것 같아. 국왕과 어느 정도 말을 맞췄는지 국경에서 심심찮게 충돌이 일어나고 있지.”
‘합륭국.’
합륭국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말은 많이 들었다.
얼어붙은 땅, 동토(凍土)에도 사람이 산다.
곰이나 물개, 늑대를 사냥해서 먹고산다는 야생 민족이 모여서 나라를 세웠다.
그들은 무척 사납다. 열 살이 되면 창을 들고 늑대 사냥을 나간다고 한다. 어린애 열 명이 나가면 칠팔 명은 사냥감을 들고 돌아온다. 두세 명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데, 늑대에 물려 죽은 것은 아니다. 얼어 죽는다.
“허도기가 합륭국 하나만 믿는 게 아니야. 합륭국도 무모하게 치고 내려오지는 않고. 허도기가 또 움직이겠지. 이런 사실은 아무도 몰라. 워낙 조용히 움직이고 있어서.”
허도기는 군대를 변방에 묶어 놓을 생각이다.
군대만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못 박아 두면 황궁 정도는 쉽게 떨굴 것이다.
합륭국이 움직였다는 것은 이미 다른 나라 몇몇도 움직였다는 뜻이 된다.
“허도기가 군대를 묶어 놓고 황상을 칠 계획인 거 같은데, 대책이 없어. 군대의 절반은 허도기 쪽이라고 봐도 무방하거든. 지금 황상께서 적자가 아니라서 그렇기도 해. 적통을 이은 사람이 서자면 항상 불안한 법이거든.”
흑후가 혼잣말처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