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23화 (423/600)

第八十五章 별호적력(別號的力) (3)

“누구 이름이 적혀 있는지 말해 주세요!”

“누굽니까!”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이수 낙화절검의 침묵, 그리고 이어지는 명부판관의 회향은 극심한 불안감을 몰고 왔다.

정말로 노정문에 살인귀가 있다!

노정문은 한낱 무가가 아니다. 사평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삶의 근원이다.

명부판관이 살인귀가 깔끔하게 처리하고 물러서는 선에서 그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게 쉽지 않다. 서신에 적힌 사람이 중요한 인물이라면…… 노정문주나 수검사 중 일인이라면…… 노정문과 명부판관이 정면 대결을 벌일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자신들의 삶도 무너질 수 있다.

명부판관이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나?

명부판관을 쳐다보는 눈길도 곱지만은 않다. 노정문 살인귀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어차피 죽은 사람은 자신들과 관계된 사람도 아니다.

지금까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사람일 것이다.

몇몇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해서 노정문이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문주는 어떤 선택을 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반반이다.

문주는 악을 원수처럼 미워한다. 그러니 노정문에 살인귀가 있다면 당장 내칠 것이 뻔하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노정문주 자신이 살첩 대상자라면 명부판관과 전면전을 벌일 수도 있다. 노정문 모든 무인을 총동원해서 명부판관을 죽이고자 한다면…… 이겨도 문제, 져도 문제다.

노정문이 이겨서 명부판관을 죽인다고 해도, 노정문주가 살인귀라는 의심은 지우지 못한다. 노정문이 명부판관에게 박살 난다면 사평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길 것이다. 당장 사평은 유령 도읍이 되고 만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다.

명부판관은 정말 증거를 잘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반격당한다.

이런 상황이니…… 솔직히 말하면 명부판관의 심판이 썩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살첩을 전한 자들이 뒤돌아서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흩어지지 못했다. 흩어질 수 없었다. 적어도 서신에 적힌 이름이 누구인지 정도는 알고 싶었다.

“내일 정말 큰 일 나는 거 아냐?”

“설마. 명부판관이 아무리 날고뛴다고 해도 노정문이 보통 문파야? 이 정도 바람에는 쓰러지지 않아.”

“그렇겠지? 문주님이 워낙 공명정대하신 분이니까. 서신에 적힌 사람이 문주님은 아니겠지? 제발 문주님만 아니면 되는데. 그러면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잖아.”

이수 낙화절검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노정문을 쳐다봤다. 일부는 내일 벌어질 일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 미리 자리를 잡아두는 사람도 있었다.

* * *

노정문 소문주 강유.

을묘년(乙卯年) 사 월 사 일, 청명(淸明).

수양산(首陽山) 수렵(狩獵) 중 은중인(隱衆人) 삼인 간살 및 흉살.

- 강유는 청명일 수렵 중, 수양산에 살던 고적인(孤寂人) 일가족 삼 인을 발견.

- 부모를 제압한 후, 나무에 묶음.

- 부모가 보는 앞에서 딸을 강간.

- 욕심을 채운 후, 나무에 묶인 두 사람에게 각각 칠 검과 오 검을 사용. 요혈을 피해서 검격(劍擊)하여 목숨을 부지시킴.

- 검격 당한 부모를 산 채로 사냥개 먹이로 던져 주어서 물어뜯기는 광경을 보며 즐김. 변태적인 살인 욕구자.

- 이후, 딸에게 오 검 검격.

- 죽은 사람들을 집안에 던져 넣고 방화. 살인 완전 인멸.

서신에 적힌 내용은 참담했다.

명부판관은 이 죄를 물어서 내일 소문주 강유를 처단하려고 올 것이다.

그를 막아설 수 있나?

서신에 적힌 내용을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노정문 소문주가 개망나니라는 사실은 사평성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주색잡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달려온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사평성에 있는 반반한 여인치고 강유에게 희롱당하지 않은 여인이 없다.

투전판도 항상 비상 상태다. 강유가 움직인다는 소리만 들려도 모든 노름꾼이 싹 사라진다. 투전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다음은 반드시 폭력이 일어난다.

강유는 사냥도 자주 나간다.

사냥개 열 마리를 데리고 나가 사냥을 하는데 잡아 오는 짐승은 변변치 않다. 어쩌다가 노루나 멧돼지를 잡아 오는 경우도 있지만, 빈손으로 올 때도 많다.

사냥은 핑계, 본래 목적은 주색잡기.

사냥을 핑계로 사평성을 빠져나가서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는 소문이 자자한 터이다.

공공연하게 입 밖에 내놓고 떠드는 사람은 없지만, 소문주가 언제 뭘 어떻게 했다는 말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려온다. 대부분 주색잡기에 관한 말들이다.

강유가 언젠가 큰 사달을 일으킬 줄 알았다.

한데 부모가 보는 앞에서 딸을 강간해? 그리고 죽여? 일가족을 사냥개 먹이로 던져 준 것도 모자라서 집에 불을 놔? 모두 태워 죽였다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강유는 인간으로서 자격이 없다. 결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정말 강유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명부판관의 칼을 받아야 한다.

이수 낙화절검은 서신에 적힌 내용을 말할 수 없었다. 서신을 읽는 순간, 사평성 모든 사람은 소문주를 인간 이하로 여길 것이 눈에 빤히 보였다.

사신에 적힌 사람이 수검사라거나 노정문주였다면 그렇게까지 민심이 돌아서지 않는다. 서신을 읽어도 여전히 노정문을 믿는 마음이 클 것이다.

증거를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어!

하지만 대상이 소문주라면 말이 달라진다. 당장 믿는다. 노정문은 명부판관을 막지도 못한다. 그를 막으면 소문주의 죄과를 덮어 주는 것이 되어 버린다.

소문주…… 틀림없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

이것은 심증이지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언제 명부판관이 잘못된 말을 한 적이 있던가. 명부판관은 내일 강유가 그런 살겁을 저질렀다는 증거를 들이밀 것이다.

을묘년이라면 벌써 십오 년 전 사건이다. 아주 오래된 사건이라서 증거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는데…… 어떤 증거를 내밀지 모르겠는데…… 증거는 분명할 것이다.

지금까지 명부판관은 잘못된 증거를 내민 적이 없다.

이수 낙화절검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줄 알면서도 서신을 들고 문턱을 넘어섰다.

사람들이 서신에 누가 적혀 있냐고 물어왔지만, 어떤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대청에는 열 명이나 앉아 있다. 하지만 모두 조용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노정문은 일 년에 두 번, 사냥을 나간다.

사월 사 일, 하늘이 점차 맑아진다는 청명에 사냥을 나간다.

겨우 내내 움츠렸던 몸을 활짝 열어젖힌다는 의미가 있다. 개인 수련을 마치고 단체 수련으로 접어드는 시기이기에 문도 전체가 단합하지는 의미도 있다.

구월 초아흐레, 중양절(重陽節)에도 사냥을 나간다.

중양절 사냥은 청명 사냥과는 반대의 뜻이 담겨 있다. 단체 수련을 마치고 개인 수련으로 접어든다. 내년에도 밝은 모습으로 만나자는 뜻도 있다.

장소는 늘 수양산이다. 수양산이 노정문 개인 자산이라서, 마음껏 활보할 수 있다. 사람들을 출입할 수 없게끔 입산 통제를 한 후에 사냥하면 불의의 사고도 방지된다.

노정문이 일 년에 두 번, 수양산으로 사냥 나간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서신에 적힌 청명일이라는 날짜 지정과 수양산이라는 장소 지정, 그리고 사냥 나간다는 내용은 무시해도 좋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적시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수양산에는 은중인 혹은 고적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몇몇 살고 있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사람들이 수양산으로 들어와서 움막을 짓고 산다. 산을 일궈서 조그만 텃밭을 만들고, 약초 몇 뿌리 심어서 생활고를 해결한다.

그런 사람들이 대여섯 정도 된다.

노정문은 그들을 내버려 두었다. 오죽하면 노정문 개인산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들어와 살겠는가.

그러니 서신에 적힌 고적인 삼 인을 발견했다는 말도 무시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라도 조금만 생각하면 지어낼 수 있는 말이다. 모함으로 우길 수 있다.

을묘년 춘계 사냥이 관건이다.

수검사 여섯 명은 모두 을묘년 춘계 사냥에 참여했다.

세 명은 수검사 자격으로, 다른 세 명은 그때까지만 해도 수련 문도로 참여했다.

을묘년 춘계 사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일을 기억하기에는 세월이 너무 오래 지났다. 매년 두 번씩 열리는 사냥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수검사 여섯 명은 모두 한 가지 사건을 기억해 냈다.

수양산에서 불이 났다. 불길은 크지 않았다. 마침 노정문 문도가 사냥을 마친 후에 불이 나서 모두가 달려들어서 불길을 잡았다. 자칫했으면 큰 산불로 번질 수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집 한 채를 태우는 선에서 그쳤다.

불행하게도 집 안에 있던 사람은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타죽었다.

딱 한 번, 딱 그때 한 번만 불이 났었다.

“그때…… 세 명이었지? 타죽은 사람이.”

“맞아.”

“사냥이 있었고, 사람이 타 죽은 것까지는 사실이네. 그럼 중간만 빠진 건데.”

시선이 자연스럽게 소문주 강유에게 향했다.

“왜들 이래? 그때 나도 같이 사냥한 것, 몰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사냥할 때만큼은 진심이야. 도대체 날 어떻게 봤기에 그런 눈으로들 쳐다보는 거야!”

강유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을 흔들며 부인했다.

“이게 살첩인 것은 분명하고…… 어쨌든 내일은 명부판관이 증거를 가지고 올 텐데. 문제는 명부판관이 제시한 증거는 너무 완벽해서 반박할 말이 없다는 거지. 지금까지 모두 그랬으니까, 이번에도 그렇다고 봐야 하는데.”

대수(大秀), 대제자, 첫째 제자 오명근(吳銘勤)이 말했다.

“증거가 완벽하다는 말은 모함이 완벽하다는 말도 되지. 지금은 내가 그런 짓을 했냐고 따지기보다 명부판관이 나를 죽여서 얻는 이득이 뭔가부터 따져야 할 때가 아닌가? 우리 노정문이 마수에 걸려들었다는 생각은 안 해?”

강유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고 오명근을 쳐다봤다. 그리고 빠르게 이어서 말했다.

“살첩을 전한 것만 봐도 이상해. 그놈, 예전에는 살첩을 공개적으로 전하지 않았어. 은밀히 통보해서 정리할 시간을 주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살첩을 전했단 말이야. 많은 사람에게 우리 노정문 안에 죄인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어. 그걸 낙화절검이 덥석 물은 거고. 한심한.”

강유의 눈길이 낙화절검을 향했다.

강유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강유는 개망나니 소리를 듣지만,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주먹은 휘둘러도 굴복시키는 선에서 그치지 더 나아가지 않는다.

문제는 오명근이 말한 것처럼 명부판관이 증거를 제시하면 반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것이 모함이라고 해도 강유는 걸려들게 되어 있다.

그때, 문주 옆자리에 앉아 있던 화복의 여인이 앙칼진 음성으로 쏘아붙였다.

“한낱 시정잡배가 던진 서신에 이토록 전전긍긍하는 이유가 뭐야? 설마 우리 소문주께서 정말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런 쓸데없는 게 날아들면 당장 검을 뽑아서 목을 쳤어야지! 뭐 했어! 낙화절검!”

“죄송합니다.”

낙화절검이 고개를 숙였다.

“명부판관이라는 자, 절대로 들어서게 해서는 안 돼! 오늘 밤 안으로 끝내버려!”

여인이 다시 앙칼지게 말했다.

명부판관을 암암리에 죽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일이 오기 전에 명부판관을 죽이면, 명부판관은 자신이 가진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 살첩은 전했지만, 오지 못한다. 명부판관이 한 말은 헛소리가 되어 버린다.

노정문이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뿐이다.

명부판관이 오지 않은 것과 노정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만 말하면 된다. 물론 명부판관의 시신은 절대로 발견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휴우! 너희는 물러가라.”

묵묵히 침묵만 지키고 있던 노정문주가 힘들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부님! 저희도…….”

대수가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노정문주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더는 말하지 말고 물러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문주 뜻이 너무 완고하다.

수검사들이 모두 물러난 자리에서 소문주, 오대 독자 강유에게 사실은 물어볼 생각인 것 같다.

강유와 수검사는 내외하는 사이가 아니다. 서로 치부를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비슷한 연배에 무공까지 비슷한 경지라서 죽이 잘 맞는다.

소문주가 조금만 정신을 차렸다면 훨씬 더 가까웠을 것이다.

어쨌든 수검사는 강유가 향후 자신들이 모실 문주라는 점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이번 일도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 설혹 강유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해도 같이 대책을 세울망정 질책이나 추궁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사부가 워낙 강하게 제지한다.

스읏!

수검사들이 몸을 일으켜서 대청을 물러났다.

침묵이 흘렀다.

이제 대청에는 세 사람만 앉아 있다.

노정문주와 소문주 강유, 그리고 문주의 이처(二妻)이자 강유의 생모인 난화(蘭花) 부인만 남았다.

“이번 일, 막으셔야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명부판관이라는 자에게 휘둘리면 안 돼요!”

난화 부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조용!”

노정문주는 난화 부인의 말문도 막았다.

“조용히…… 생각 좀 합시다.”

노정문주가 의자에 깊이 몸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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