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25화 (425/600)

第八十五章 별호적력(別號的力) (5)

“취화원은 증거를 언제 언제 가져온대?”

황열이 물었다.

“아침에 가져오겠죠.”

아걸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취화원은 증거를 오 일째 되는 날, 아침에 가져온다.

아걸이 살첩에 대한 증거가 무엇이라는 점을 미리 알면 당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른 채 살첩을 전할 수 있도록 당일 아침에 말해 준다.

이 제안은 아걸이 먼저 했다.

취화원이 가진 증거가 무엇인지 모른 상태에서 완벽하게 취화원을 믿고 일을 진행한다.

이런 제안을 할 때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오 일 중 명부판관 일은 딱 하루만 하겠다. 다른 나흘은 오직 일홀도만 탐구하겠다.

아걸만의 생각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에 이어서 이번 다섯 번째까지 그 방식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노정문이라는 대문파와 칼을 맞댈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아걸은 취화원이 가진 정보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내일// 정말 내일 싸울 거야?”

황열이 물었다.

“그 몸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거, 알지?”

쌍겸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걸은 침묵했다. 몸을 일으킬 수도 없는 상태인데, 싸움이라니.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노정문과는 반드시 싸움이 일어날 것 같다. 저들이 거의 발작 직전이다.

아걸의 침묵은 강행 의사로 읽혔다.

말이 되건 안 되건 아걸은 명부판관 임무를 계속 수행한다. 앞으로 나아가다가 싸움이 벌어지면 싸우는 수밖에 없다. 돌아갈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니.

싸우겠다는 아걸의 뜻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때,

저벅! 저벅! 저벅!

어둠을 뚫고 누군가가 걸어왔다.

“누구냐!”

쌍겸이 즉시 낫을 들고 일어섰다.

“내 손님입니다.”

아걸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걸은 은거 무인들이 눈치채기 전에 이미 상대방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듯하다. 그렇다면 대방의 무공도 이미 파악했다는 말이 된다.

아걸은 그런 사람이다. 무인이기에 상대방이 누군지에 앞서서 어느 정도로 강한지부터 살핀다.

아걸이 자기 손님이라고 말하자, 은거 무인들은 바짝 긴장한 채 어둠을 쳐다봤다.

아걸을 찾아온 손님치고 반가운 사람은 없다.

저벅! 저벅!

한 사람이 걸어왔다.

다소 작은 키에 깡마르고 단단해 보이는 노인.

그는 허리에 검을 찼다. 검을 느슨하게 차서 걸을 때마다 검이 철커덩거린다.

“노정문주 강천화!”

흑후가 제일 먼저 노정문주를 알아봤다.

“강천화?”

“음!”

은거 무인들은 침음을 흘리며 병기를 움켜잡았다.

노정문주 강천화는 일문을 이끄는 검성(劍聖)이다.

검의 경지가 높으면서도 성품이 인후하고 너그러워서 성인으로 불린다.

성검문과 소축십검의 워낙 유명해서 이십사위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원을 쩌렁 울리는 명문 대파의 수장이 비범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제길! 빨리도 왔네. 저 사람이 바로 노정문주 강천화야. 노정문을 창립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패배하지 않은 무적의 검수이기도 해.”

흑후가 말했다.

“소문이 잘못됐어.”

아걸이 담담하게 말했다.

“뭐? 그럼 노정문주가 누구에게 패하기라고 했다는 거야?”

“성검문주 허도기.”

“아! 내 말은 허도기는 빼고.”

흑후가 말했다.

허도기는 너무 강하다. 차원이 다른 무인이다. 그러니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

저벅! 저벅!

노정문주가 이인교를 향해 걸어왔다.

“잠깐! 거기 서지?”

쌍겸이 낫을 겨누며 말했다.

“일홀도와 겨루러 왔다. 일홀도가 아닌 사람은 볼일이 없으니 옆으로 물러서지.”

노정문주는 은거 무인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승교를 향해 다가섰다.

“거참 말귀를 못 알아듣네. 서라는 말이 그렇게 어렵나?”

슷!

쌍겸이 재차 노정문주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때, 승교 안에 있던 아걸이 말했다.

“일홀도에 도전한 제 손님입니다. 비켜 주세요.”

“안 돼!”

“쌍겸. 부탁입니다.”

“이런 제길!”

쌍겸이 화를 내면서 낫을 거뒀다.

“일홀도에 도전한 사람입니다. 절 일으켜 주시고, 의자 좀 갖다 주세요. 앉아야겠습니다.”

“여기 의자가 어딨어!”

흑후가 못마땅한 듯 빽 소리를 질렀다.

아걸이 하는 모습을 보니 노정문주가 싸울 듯하지 않은가.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하면서.

“흑후.”

“안 돼! 무슨 말을 해도. 이 싸움은 네가 져!”

“추한 모습은 한 번만 보여 주면 되지 않을까? 검을 뽑을 기분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면 일홀도가 아니지. 결과는 어떻게 되더라도 싸움을 하기 전에는…… ‘이놈하고는 정말 싸워 보고 싶다’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흑후는 멀거니 가마를 쳐다봤다.

아걸은 움직이지 못한다. 자신 스스로 일어서지 못한다. 의자에 앉히더라도 부축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싸우려고 하니…… 이 얼마나 무지한 놈인가.

“문주님,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몸이 불편해서 잠시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걸이 노정문주에게 말했다.

노정문주가 아걸의 상태를 모르고 찾아온 것이 아니다. 노정문의 정보망이 그렇게 약하지 않다. 몸을 운신할 수 없다는 정도는 알고 찾아왔다.

문주가 기다리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큰 접전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역시 상태가 좋지 않군. 부상이 심한가?”

대답은 황열이 했다.

“이봐! 그런 사실을 알고도 찾아온 거야? 치사하게 아픈 사람한테 싸우자고? 후후! 노정문이 뭐? 광명정대한 문파라고? 아놔, 개떡이나 줘라.”

노정문주는 황열의 비웃음을 흘려들었다.

그는 오직 아걸만 쳐다봤다. 아걸을 죽이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노정문주는 아걸이 부상당했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일홀도를 쓰는 것도 안다. 명부판관이 아걸이라는 점을 안다. 또 일홀도는 도전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안다.

현재 상태에서 아걸에게 도전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무인이라면 멀쩡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칼을 맞이하고 싶을 것이다. 무예의 고하를 가리는 것이라면.

노정문주는 오직 아걸을 죽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자식의 생사가 걸린 문제를 만나면 노정문주 같은 사람도 이렇게 변하는 것인가.

“말을 해서 뭐해? 저 낯짝을 봐. 뻔뻔하잖아.”

쌍겸이 노정문주를 도발했다.

노정문주가 쌍겸의 도발을 받아치면, 그걸 빌미로 노정문주에게 달려들 심산이었다. 하지만 노정문주는 묵묵히 참았다. 어떤 비아냥도 귓가로 흘려들었다.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다.

덜컥!

흑화방 수하가 나무 의자를 가져왔다.

“가져왔어.”

흑후가 말했다.

말한 대로 의자를 가져왔는데, 정말 싸울 것이냐고 한 번 더 묻는 것이다.

“절 일으켜서 의자에 앉혀 주세요.”

아걸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싸우기로 결정했다. 일홀도의 싸움이다. 아걸의 상태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이지만, 그래도 싸운다. 이것이 일홀도다. 이런 상황을 피해서 최적의 상태에서만 싸웠다면 앞선 삼십육 문주도 단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막강한 도법을 구사하며 오래오래 잘 살았을 것이다.

일홀도는 승부를 피하지 않는다.

죽음 직전에 이르렀어도, 저승에 반쯤 발을 딛어 놓은 상태에서도 싸우자고 하면 싸운다.

사실, 일홀도를 베는 방법은 널리 알려져 있다. 누군가가 장난처럼 말한 것인데, 사실이 그렇다. 일홀도의 주인이 죽을 만큼 몸이 아플 때 비무를 청한다.

상당히 치사한 방법이긴 하지만 일홀도를 베어 넘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런 일을 노정문주 같은 고수가 직접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아걸은 농담처럼 흘린 말, ‘그런 상태에서도 일홀도는 싸울 거야.’라고 한 말을 지킨다.

흑후가 승교 안으로 들어와서 아걸에 조심스럽게 안아 일으켰다.

“정말 싸울 거야? 웬만하면 저 사람들에게 넘기지?”

흑후가 아걸의 귀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의자에 앉혀 주세요.”

“이게 뭐 하자는 건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으면서.”

흑후는 투덜거리면서 아걸을 승교에서 끌어냈다.

“훅!”

아걸은 몸이 움직여지자 상당히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찡그리며 거친 숨을 쏟아냈다.

비명을 흘리지는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아걸은 싸움이 결정된 순간부터 눈빛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몸인데도 딱딱한 강직이 느껴졌다.

흑후가 아걸을 의자에 앉혔다.

“반철도 주세요.”

“아! 정말…….”

흑후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꾹 닫았다.

아걸의 눈, 이미 투사의 눈이다.

아걸의 몸, 이미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일촉즉발의 탄성이 느껴진다.

‘이 사람은…….’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곧 죽을 것 같던 사람이 싸움 앞에 서자 맹수가 된 것을.

흑화방 수하가 재빨리 아걸의 반철도를 가져왔다.

날이 다 빠져서 뭉뚝한 쇳덩어리나 마찬가지인 볼품없는 칼이다.

아걸은 오른손으로 받지 못하고 왼손으로 받아쥐었다. 오른손은 퉁퉁 부어올라서 칼을 쥘 수도 없다.

“싸울 수 있겠나?”

노정문주조차도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런 상태인 줄 알고 찾아왔지만, 그래도 아걸의 모습을 보자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몸이 좋지 않아서 이 상태로 맞이해야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말도 안 된다. 상대는 이십사위문 문주 노정문주다.

노정문의 제자들은 소축십검을 상대하지 못한다. 수검사 여섯 명이 있지만 몇 수 아래다. 하지만 노정문주는 소축십검을 능가한다. 허도기에게는 패했지만, 그 외에는 아직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대검호의 검을 의자에 앉은 채로 상대한다? 차라리 빨리 죽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 자식놈이 명부판관의 살첩을 받았어.”

“흥! 살인귀 자식을 뒀으면 창피해해야지. 뭘 잘했다고 검을 들고 설쳐.”

쌍겸이 계속 노정문주를 긁었다.

노정문주가 말했다.

“내일 증거를 제시하면……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 모두 명부판관을 한 걸음도 들이지 않겠다고 투지를 불사르지만, 자네가 증거를 내민 순간 노정문 문도는 검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어. 노정문이 살인귀를 비호할 수는 없으니까.”

“제가 어떤 증거를 제시할지 알고 있습니까?”

“그런 건 상관없지. 명부판관이 내민 증거는 모두가 인정하게 되어 있어. 지금 세상이 자네를 보는 눈이 그래. 명부판관은 절대적으로 옳다. 명부판관이 제시한 증거는 조작되지 않았다. 후후! 그러니 결사 항전은 안 된다는 거지. 이런 점, 알고 있었지 않나.”

“몰랐습니다. 그런 부분은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사실이다. 아걸은 내일 어떤 증거가 내밀어질지 모르고 있다. 그러니 증거 제시 후의 일을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네를 노정문에 들이지 않는 방법은 증거가 제시되기 전에 죽이는 것뿐이지. 증거가 사실인지 조작된 것이니 사실 여부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러니 나야말로…… 내 행동 이해해 주게.”

“만약, 살첩에 적힌 사람이 자식이 아니라 제자들이었다면, 그래도 이렇게 왔을 겁니까?”

“오지 않았겠지. 대신 내 손으로 제자를 베었을 거야.”

“사실 여부도 따지지 않습니까? 제가 어떤 증거를 제시하는지 본 후에 베어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내가 방금 한 말을 헛들었군. 명부판관이 증거를 제시하면 무조건 옳은 것이지. 증거가 조작되었어도. 현재 민심이 그래. 그러니 증거 제시와는 무관하게, 조작 여부에 상관없이, 제자는 살인귀가 될 걸세. 우리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그러니 미리 죽이는 것이 오히려 명예를 지키는 길이 될 거야.”

“그렇습니까?”

“알겠나? 자넨 이미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을 쥐었어. 별호라는 게…… 그래. 그게 별호의 힘이야. 후후! 그러니 자네 상태가 좋지 않아도 검을 뽑을 수밖에 없는 거지.”

“이해합니다.”

“고맙네.”

스릉!

노정문주가 검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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