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27화 (427/600)

第八十六章 부정선택(父情選擇) (2)

까앙! 깡! 깡!

순식간에 삼 초가 교환되었다.

장검으로 몸을 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을 통하든 반철도의 영역을 넘어서야 한다. 반철도를 제친 후에야 아걸을 칠 수 있다. 검권이 도권보다 긴 것은 노정문주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만, 아걸을 죽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첫 번째 검이 반철도에 막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아걸이 쾌속하게 칼을 휘둘러서 장검을 받아쳤다.

노정문주는 장검이 막힌다고 느낀 순간, 바로 검을 미끄러뜨려서 손목을 쳤다.

아걸은 뭉툭한 쇳덩이로 검을 튕겨 냈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며 오히려 문주의 복부를 갈랐다. 노정문주는 뒤로 물러서면서 아걸의 머리를 내리쳤다.

아걸은 반신을 비틀며 검초를 피했다.

이 모든 움직임이 한순간에 일어났다.

은거 무인들이 보기에는 노정문주가 검을 찌름과 동시에 물러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이런 움직임들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노렸다.

“후욱!”

“훅!”

아걸과 노정문주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탁기를 쏟아냈다.

파팟!

노정문주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그는 아걸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분명히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몸인데…… 이토록 빠른 칼이 어디서 튀어나올 수 있었을까.

싸움을 향한 투지가 극한의 고통을 이겨냈다.

철컥!

노정문주가 검을 고쳐잡았다.

이번에는 두 손으로 검을 잡았다. 검을 가슴 중앙에 세우고, 검 끝은 아걸의 머리를 노렸다.

“후우욱!”

아걸은 삼 초 교환으로 힘이 들었는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큰 숨을 토해 냈다.

‘숨이 비었어!’

순간, 노정문주가 번쩍 허공으로 신형을 띄웠다.

머리를 친다. 전신 진기를 모두 풀어낸다. 일격…… 피할 수 없는 빠름으로 승부한다.

순간, 아걸도 의자를 박차고 솟구쳤다.

까앙!

언제 도검이 부딪쳤나? 빨간 불똥이 눈에 확 들어오고, 뒤늦게 검음이 터졌다. 아걸이 의자를 박차고 뛰어오르기 전에 이미 격검이 있었다.

파라락!

한순간, 변초가 일어났다.

노정문주는 비장의 일 초가 막히자 바로 변초를 일으켰다. 머리에서 옆으로 검을 늦춰서 어깨를 찍었다.

쒜에엑!

노정문주가 내리친 검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아걸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는 순간이다. 그가 의자를 박차는 순간, 이미 격검이 이루어졌고 변초까지 지나갔다. 그런데…… 노정문주가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다.

진파!

아걸은 반철도에 진파를 실었다.

검과 칼이 부딪치는 순간, 반철도에서 강한 탄력이 튀어 나갔다. 그리고 그 탄력은 노정문주의 검을 타고 흘러서 정확하게 손목을 격타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손목 신경이 무뎌졌다.

진파의 영향은 곧바로 노정문주가 일으킨 변초에 작용했다. 정확하게 어깨를 후려쳤는데, 검이 어이없게도 어깨 옆으로 흘러내렸다. 노정문주 같은 사람이 목표를 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진파는 순간적으로 일어난 파동이라서 상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파앗! 퍽!

반철도가 노정문주의 가슴을 쳤다.

“컥!”

노정문주가 헛바람을 내질렀다.

두 사람은 서로 어깨를 맞댔다. 아걸은 노정문주를 밀치고 나아가지 못했다. 노정문주 역시 아걸을 밀어내지 못했다. 찰나 만에 진기가 싹 소멸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몸뚱이조차 밀어낼 힘이 없었다.

스륵! 풀썩!

두 사람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상반신은 여전히 상대방에게 의지한 상태다. 어깨를 기댈 상대가 없었다면 앞으로 꼬꾸라졌을 것이다.

“엇! 아걸!”

은거 무인들이 급히 아걸을 불렀다. 하지만 아걸에게 다가서지는 못했다.

두 사람은 싸움 중이다. 아니 싸움은 끝났다. 노정문주의 오른쪽 가슴뼈가 뭉텅 잘려 나갔다. 베인 것이 아니라 뭉툭한 쇠뭉치에 짓이겨져서 떨어져 나갔다. 마치 곰에게 앞발로 후려 맞은 듯 뼈와 살점이 너덜거렸다.

그래도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 노정문주가 일격을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후절초다.

은거 무인들 입장에서는 노정문주를 떼어 놓고 싶다. 드잡이 한판이 끝났으니 이만하면 됐지 않나. 노정문주가 사력을 다해서 치는 검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

아니다. 마지막 승부까지 아걸이 끝내야 한다.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싸움을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이 아걸이다. 그러니 이후도 아걸 몫이다.

노정문주는 일격을 날라지 않았다.

사실, 그의 상태는 옆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중했다. 힘을 도저히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노정문주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스르륵 눈을 감았다.

절명했다.

“아걸!

그제야 은거 무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아걸의 상태를 살폈다.

아걸의 몸은 다시 만신창이가 되었다. 몇 번 움직였다고 상처가 터져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검에 맞은 거야?”

“아뇨.”

“그런데 왜 피를 흘려!”

“아! 치료나 해 줘요. 너무 아파.”

“쯧! 아프다는 놈이 그렇게 움직여? 아예 펄펄 날던데? 이런 몸으로 노정문주를…… 킥! 좌우지간 괴물 같은 놈이야. 너와 싸우는 놈은 재수 없는 거야.”

“후후!”

아걸이 웃었다.

“왜 웃냐? 내 말이 꼽냐?”

“아뇨. ‘성검문주 허도기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떠올라서.”

“허도기는 예외지. 그놈과 싸우는 놈도 재수 없는 거야. 한마디로 너나 허도기나 둘 다 재수 없어.”

황열이 부지런히 손을 놀려서 흘러내린 핏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나보다 빠른 쾌검이었어.”

나통이 중얼거렸다.

“정말이야? 난 비슷하다고 봤는데.”

장태전이 말했다.

“후후! 나보다 훨씬 빨랐어. 내가 막아섰다면 당하는 쪽은 나였을 거야.”

“후후! 그런 검을 저런 몸으로 막아낸다. 아걸, 저거…… 황열 말대로 괴물이 틀림없어. 하하!”

장태전이 웃었다.

“대정천로비검식…… 비검의 뜻을 알았어.”

“그 말에 다른 뜻이 있었나? 난 몰랐는데?”

“그냥 대정천로라고만 해도 충분할 것을 왜 굳이 비검식이라는 말을 덧붙였나 의아했거든.”

“의아할 것도 많다. 무림에 비(秘)자를 쓰는 무공이 어디 한둘이야? 별것도 아니면서 무슨 큰 거라도 있는 것처럼. 사실 알고 보면 모두 싱겁기 짝이 없잖아.”

“그걸로 충분해.”

“……?”

“후후! 싱겁든 우습든 일단 ‘비’ 자가 들어가면 신경을 쓰게 되어 있어. 그걸로 충분해. 후후! 이제 알았어.”

“무슨 소리야?”

“대정천로비검식이라는 검법 명칭에 신경 쓰면 방심이 일어나. 웃기지?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인데도 방심이 일어난다고 하니. 하지만 실제로 그래.”

“여전히 이해 곤란. 자세히.”

“비검. 숨겨진 검. 숨겨진 검초. 변화.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하는 궁금증. 변화를 막아내면 이기고, 보지 못하면 당한다는 착각. 싸움에 임한 자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그리고 정작 대정천로는 정직하게 쾌검으로만 승부하는 거야.”

“흠!”

장태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통이 하는 말을 이해한다. 하지만 상대가 쾌검으로만 공격해 와도 능히 상대할 수 있다. 아무리 머릿속에 딴생각을 했다고 해도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나통이 하는 말은 장태전에게는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쾌검을 사용하는 상대, 나통과 노정문주처럼 간발의 차이로 승부를 결정하는 상대에게만 통용된다. 그런 상대에서는 티끌만 한 잡념도 승부를 가르는 요소가 된다.

은거 무인들은 아걸과 노정문주의 싸움을 모두 지켜봤다. 어느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봤다. 순간순간 쏟아지는 변화와 힘을 직접 경험한 듯 느꼈다.

두 사람의 신들린 듯한 몸놀림 속에서 어떠한 공방이 오갔는지 안다.

그렇기에 감탄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은거 무인들이 감탄한 것 속에는 아걸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 들어있지 않다. 정상적인 두 무인이 맞서 싸웠고, 주고받은 공방이 놀랍다. 이 부분에 대한 감탄이다.

“빨리! 빨리! 의원은?”

“곧 올 겁니다.”

“의원을 부르러 보낸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와! 빨리빨리 움직이지 못해!”

흑후가 수하를 다그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 * *

술시말(戌時末:저녁 9시), 노정문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다른 때 같으면 이미 십 장 간격으로 밝혀 놓던 화톳불이 오늘은 삼 장 간격으로 밝혀졌다. 밤새 잔치라도 벌일 때처럼 장원 전체가 대낮처럼 밝다.

그러면서도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사방에서 경계의 눈빛이 번뜩이지만 당황하거나 호들갑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노정문은 명문이다.

조용한 가운데 차분하게 다가올 싸움을 준비한다. 상대가 명부판관이 아니라 허도기나 마유 마인들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차분히 준비할 것이다. 그때,

따각! 따각! 따각!

어둠이 안긴 고요함을 흔들면서 말 한 필이 다가왔다.

노정문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다가오는 말에게 향했다. 노정문 무인만이 아니라 노정문 밖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내일 벌어질 일을 구경하려던 사람들도 말을 지켜봤다.

마부가 보인다.

무인은 아니다. 사평마방(沙坪馬房)의 마부인 길삼(吉三)이 말고삐를 잡고 천천히 걸어왔다.

삐걱! 삐거덕!

수레 소리도 들린다.

말, 마부…… 그리고 조그마한 수레.

말은 농사를 지을 때 쓰는 조그마한 수레를 끌고 있는데, 수레에는 불길하게도 관이 놓여 있었다.

“뭐야? 명부판관이 이런 짓도 하나.”

수문 무인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명부판관이 소문주의 척살을 예고했다. 그래서 미리 관을 보내오는 줄 알았다.

“뭐냐!”

당연히 마부를 향한 언사도 곱지 않았다.

“저…….”

마부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뭐냐니까!”

“무, 문주님! 문주님의 시신입니다.”

마부가 엉겁결에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뭐? 무슨 헛소리야?”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수문 무인들은 마부의 말뜻을 언뜻 알아듣지 못했다. 문주는 장원 안에 계실 건데, 문주의 시신이라니!

그들은 마부가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부가 다시 말했다.

“무, 문주님이 명부판관에게 도전했다가 지셨습니다. 명부판관이 시신을 보내드리라고 해서…… 가져왔습니다. 제 뜻은 아닙니다! 억지로 시켜서.”

그제야 수문 무인들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한달음에 수레로 다가섰다.

수레에 목관이 있다.

관뚜껑이 얹혀 놓기만 했다. 못질을 하지 않아서 누구든 뚜껑을 열어 볼 수 있었다.

수문 무인이 관뚜껑을 밀쳤다.

그 속에 노정문주 강천화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누가 봐도 노정문주다. 가짜로 만든 모형이 아니다. 밀랍으로 만든 인형도 아니다. 진짜 문주다.

문주는 가슴 부근이 뭉툭 떨어져 나갔다.

지금도 가슴에서는 붉은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목관 안이 핏물로 흥건하다. 지금까지 많은 피를 흘렸을 텐데,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다.

“문주님!”

“어서 안으로! 안으로 모셔!”

노정문이 발칵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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