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29화 (429/600)

第八十六章 부정선택(父情選擇) (4)

“멈춰라!”

대수가 말했다.

오늘은 수검사인 그가 특별히 수문장 역할을 했다. 수문장이 고정되어 있지만, 적어도 오늘은 수검사가 직접 명부판관을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척!

다섯 명, 이인교 두 개가 대수 앞에서 멈췄다.

‘이놈!’

대수는 이인교를 노려봤다.

승교 안에 명부판관이 타고 있다. 문주를 죽인 자다.

바로 어제 문주를 죽이고, 오늘은 문주의 자식까지 죽이겠다고 달려왔다.

“우리 소문주께서 간살을 저질렀다고 했는데, 자체적으로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그런 일이 없었다. 증거를 제시해라.”

대수가 손으로 검을 잡아가며 말했다.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당장 검을 뽑겠다는 의지가 강경하게 내비쳐졌다.

“살첩에 죄인과 죄명을 명시했는데, 동의하지 않으시나 보네. 무조건 증거를 대라고 윽박지를 게 아니라 살첩에 적힌 소문주가 직접 나와서 해명부터 하셔야지.”

깃발을 들고 있던 흑후가 말했다.

“소문주다!”

“그 망나니…… 언젠간 일 저지를 줄 알았어. 기어이 명부판관 살첩을 받네. 이구!”

“그럼 어제 노정문주가 죽은 것도 우연이 아니네.”

“노정문주가 죽었어?”

“명부판관을 찾아갔다가 되레 당한 모양이야. 피투성이가 되어서 관에 실려 왔어.”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흑후가 ‘소문주’라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사람들은 일말의 기대감조차도 놓아 버렸다.

명부판관의 살첩 대상이 소문주라면 십분 이해된다.

“쓸데없는 소리!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모함하지 말고 증거부터 제시해!”

흑후가 입을 열어서 반박하려고 했다.

그때, 이인교 안에서 아걸이 말했다.

“사실 확인부터 하지. 노정문 소문주 강유. 을묘년 사월 사 일, 청명. 수양산 수렵. 그런 일이 있었나?”

아걸의 음성은 나직했지만 모든 사람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아걸이 말할 때는 모든 사람이 숨소리조차 숨겼다.

“그런 일이 있다. 노정문이 청명에 수렵을 나가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지.”

“수양산에는 하영(賀穎)이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아나?”

“모른다. 수양산은 개인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산다. 노정문은 그들을 일일이 통제하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도 있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겠지.”

따악!

아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노정문 앞에 모인 사람 중 이십여 명이 앞으로 나섰다.

“수양산 하음(河陰) 부락에 살고 있습니다. 수양산에 하영이 살았다는 사실을 중명합니다.”

말을 한 사람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다.

“저는 산 밑 구암(九菴) 부락에 살고 있어요. 하영이와는 오다가다 만난 적이 있어요. 제 또래라서 잘 알아요.”

중년 여인이 말했다.

군중들 속에서 나타난 사람들이 한 명씩 하영이 실존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나갔다.

“이건 증거가 될 수 없다. 이 사람들을 매수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다음 증거!”

대수가 말하자 증언을 한 사람 중 노인이 버럭 일갈을 내지르며 말했다.

“이런 개똥 같은 놈들! 네놈들 그때, 수양산 서쪽에서 사냥놀이 하고 있었잖아! 하영이는 동쪽 산자락에 살았고! 네놈들이 사냥놀이를 할 때, 소문주인가 하는 놈이 사냥개 십여 마리를 끌고 하영이를 덮쳤는데, 그걸 몰라! 에라이, 때려죽일 놈들아!”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평소 같으면 노정문 무인에게 이런 말을 하지 못한다. 그저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지금은 명부판관이 앞에 있다.

무엇보다도 하영이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게 되자 분노가 치솟는다.

“다른 증거는 없나?”

대수가 냉랭하게 말했다.

“흑후, 난 입에 담기 힘든 말이라서. 대신 좀 말해 주지. 강유가 어떤 짓을 했는지.”

“어휴! 나도 뭐 입에 담기는 힘든 말인데…….”

흑후가 살첩에 적힌 내용을 말해 나갔다.

부모를 잡아서 나무에 묶고, 그 앞에서 하영이를 강간했다. 욕심을 채운 후에는 검으로 치고, 사냥개의 먹이로 던져주었다. 산 채로. 하영이와 두 부모는 사냥개에게 뜯어먹혔다.

강유는 세 사람을 초옥에 던져 버리고, 불을 질렀다.

흑후가 말을 이어갈수록 사람들의 눈에서는 분노가 피어났다. 노정 문도를 쳐다보는 눈길에 경멸이 스며 나왔다.

죄는 강유가 저질렀으니 강유만 미워하면 된다.

맞다. 하지만 노정문도가 강유를 보호하고 있다. 명부판관 앞을 막아섰다. 명부판관이 벌을 주고자 하는데, 못하게 막는다. 살인귀를 보호하느라고.

따악!

이인교에 타고 있던 아걸이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뒤따라온 승교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여인이다. 여인은 얼굴 전체를 덮는 방갓을 썼다. 거기에 짙은 면사까지 썼다.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또 여인은 거동이 불편한지 매우 뒤뚱거렸다.

여인이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면서 대수 앞으로 다가왔다.

“넌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봐! 선동은 이 정도면 됐어. 정확한 증거를…….”

대수가 말하는 도중, 여인이 방갓을 벗었다. 그리고 이어서 면사까지 툭 잡아 뜯었다.

“엇!”

대수가 깜짝 놀라서 뒤로 반보 물러섰다.

여인은 오른쪽 볼이 없었다.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갔다. 왼쪽 목도 뜯겼다.

얼굴 반쪽이 없다.

저런 모습으로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대수는 여인이 방갓과 면사만 벗었을 뿐인데도 여인이 누군지 단박에 짐작됐다.

‘하영이라는…… 여자?’

맞을 것이다.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겁탈당하고, 개에게 물어뜯기고, 불길에 던져진 여인이다.

여인은 대수 앞에서 옷을 벗었다.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벗어 던졌다. 젖가리개와 한 줌 고의만 남기고 모든 옷을…… 여인이 숱한 사람들 앞에서 완벽한 나신이 되었다.

여인의 나신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옆구리, 가슴, 다리…… 온통 개에게 물어뜯긴 자국이다. 불에 그을린 자국도 가득하다.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상처가 아물었지만, 기형적으로 변한 모습은 감추지 못했다. 특히 허벅지는 뼈밖에 남지 않아서 걷기도 힘들어 보인다.

“아! 하영아!”

증인 중 하영과 오다가다 만나면서 인사를 했다는 여인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오열했다.

여인은 떨어진 옷을 집어서 검 한 자루를 끄집어냈다.

조그만 장도다. 하지만 대수는 장도가 무엇인지 안다. 난화부인의 신물, 오옥검이다.

오옥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가지보다.

노정문주가 난화부인에게 혼인의 증표로 선물한 보물 중 보물이다.

노정문주는 공부 허도기에게 오옥검을 받았다. 성검문주의 공덕을 칭송하면서 바친 검이 노정문으로 흘러왔고, 난화부인의 손을 거쳐서 강유에게 전해졌다.

지금은 여인의 손에 쥐어져 있다.

“그 장도는…….”

대수는 ‘오래전에 소문주가 분실한 것’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한데 여인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그날, 강유 그 새끼가 이 칼로 여길 찔렀어.”

여인이 왼쪽 가슴 윗부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심장을 찔렀다. 하지만 빗나갔다. 솜씨가 미숙해서 빗나간 것은 아니다. 일부러 약간 윗부분을 타격했다. 단숨에 숨을 끊어 놓을 생각이 없었다.

심장 부위를 찔러서 움직이지만 못하도록 만들었다.

강유는 강제로 겁탈해서 쾌락을 취한 후, 여인이 살아 있는 채로 개에게 뜯어 먹이는 것을 보며 즐겼다.

“오옥검은 증거가 될 수 없다. 소문주가 사냥을 나가서 잃어버린 것을 주웠을 수도 있다. 너의 몰골이 사냥개에게 당했다는 증거도 없다. 네가 횡액을 당한 것은 분명하지만, 소문주에게 당했다는 증거는 안 된다.”

“호호호호호호!”

여인이 앙칼지게 웃었다.

한이 베인 웃음이다.

여인은 한낱 민초다. 부모를 지옥 불에 던지고, 자신을 겁탈하고, 개에 물어뜯기고, 불 속에 던진 자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도 믿어 줄 사람이 없다. 지금처럼 되치기만 당한다. 아마도 특정한 의도가 있어서 소문주의 명예를 더럽히려고 한다는 소리나 들었을 것이다.

미친 여자 취급? 아니면 암살? 모든 게 가능하다.

강유는 그러고도 남는다. 노정문은 명문정파이지만 어둠을 숨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노정문주는 아닐지라도 난화부인은 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무려 이십여 년이라는 세월을 숨죽이며 살아왔던 것이다.

명부판관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번에도 나설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분명하다.

아걸이 말했다.

“증거가 하나 더 있지. 개.”

“뭐라고?”

“강유는 이십 년 전부터 개 먹이로 사람을 던져줬어. 지금 증거가 있는 것이 이 사건뿐이라서 이 사건만 들고 나왔지만, 강유가 저질렀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건이 스무 건이 넘어.”

아걸이 ‘스무 건’이라는 말을 하자, 곧 군웅들이 웅성거렸다.

“스무 건이 넘는데.”

“맙소사! 이건 함안성주 못지않은 살인귀잖아!”

“저렇게 개에 물려 뜯긴 자국이 선명한데도 발뺌하는 거 봐. 대수,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철면피네. 그래도 소문주는 지키고 싶다 이건가?”

사람들은 살살 말하지도 않았다. 노정문도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크게 말했다.

아걸이 말을 이었다.

“그 사건 모두 사람이 개 먹이로 준 사건인데, 아쉽게도 증거가 없어. 하지만 이 정도 되면…… 개도 인육에 길들어 있겠지. 개 수명을 십 년으로 잡는다면 벌써 네다섯 번 정도는 갈아치웠겠지만, 그 습관이 어디 가겠나. 강유의 사냥개에게 고기 두 개를 줘 보지. 소고기와 시신. 무엇을 먹나 볼까?”

“사람 시신을 개에게 주겠다는 거냐!”

“너희 시신은 아니니까 발끈하지 마. 어제 죽은 사람의 시신을 사 놓은 게 있어. 우리 목적을 말하니까 시신을 내주더라고. 그런 나쁜 놈은 꼭 잡으라면서.”

사냥을 나가면…… 소문주는 항상 단독 행동을 한다.

사냥이 끝난 후에도 한두 시진쯤 늦게 돌아온다. 어떨 때는 다음날 돌아온 적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만든 적은 없다.

그래서 그냥 호색질을 하다고 왔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명부판관이 말한 그 날, 청명…… 불이 난 것을 기억한다. 모두가 불 난 곳으로 달려가서 불을 껐다. 그리고 안에서 불에 그을린 시신을 찾아냈다.

시신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다. 워낙 험하게 손상되어서 쳐다보기조차 힘들었다.

증인들이 말한 하음부락, 구암부락…… 전부 수양산 자락에 있는 마을들이다.

그러고 보니 저 노파도 기억난다.

자신들이 잡은 사냥감으로 요리를 해 줬다. 그때는 중년이었는데 어느새 노파가 되었다.

대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명부판관은 명확한 증거를 내밀었다. 억지로 부인하려면 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막을 수 없다.

“자! 그럼 우린…….”

흑후가 대수의 동요를 눈치채고 깃발을 쳐들었다. 노정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대수는 흑후를 막지 못했다.

흑후를 그를 지나쳐 갈 때도 멍하니 서서 하늘만 쳐다봤다.

증거가 조금만 부족해도 반드시 막아 줄 생각이었다. 그것이 사부에 대한 도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여인은 분명히 개에 물려 뜯겼다. 개 이빨에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그런 흉터를 보고는 차마 막지 못하겠다.

흑후에 이어서 명부판관이 타고 있는 승교도 그를 지나쳐 갔다. 속곳으로 간신히 치부만 가린 여인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노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대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부!’

“저, 우리도…….”

주위에 늘어서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앞으로 나서며 대수의 눈치를 봤다.

사람들은 대수가 막을 생각을 하지 않자, 곧바로 승교를 뒤쫓아서 우르르 달려들어 갔다. 마치 둑이 무너지듯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문안으로 들어섰다.

“포기하신 겁니까?”

이수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잖아. 봉문하라고. 봉문하자. 그 전에…… 이곳이 짓이겨지겠지. 사람들은 분노할 테고……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문도를 잘 단속해. 세간을 때려 부수는 정도는 감수하라고 해. 불을 지르는 것만 소극적으로 막고. 휴우!”

대수의 마지막 말은 한숨이었다.

노정문 무인은 누구도 검을 들지 않았다.

강유를 막아 줄 사람은 없다. 사태가 완벽히 기울어졌다.

난화부인도 호법을 두고 있다. 오직 그녀에게만 충성하는 개인 호법들이다.

하지만 그들도 움직이지 못했다.

아걸과 함께 우르르 몰려드는 사람들…… 군중의 힘에 눌려서 검을 뽑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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