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31화 (431/600)

第八十七章 촌마두인(寸馬豆人) (1)

- 콩알만 한 사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노정문 사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취운이 보고했다.

“별다른 일은 없죠?”

몽설은 당연하다는 듯 담담히 물었다.

별다른 일이 있을 리 없다. 아걸에게 노정문 소문주 강유를 징벌하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걸의 일홀도는 이미 노정문을 넘어섰다.

사실, 노정문은 풍도곡 살귀조차도 감당하지 못한다. 서리가헌, 서리형개…… 두 사람 중 누구라도 노정문 정도는 하룻밤 새에 박살 낼 수 있다.

하물며 그들을 이미 넘어선 아걸을 상대할 수는 없다.

그런데 ‘별일이 있을 리 없죠’ 하고 가볍게 말해야 할 취운이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몽설을 쳐다봤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몽설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취운은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아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취운은 항상 이렇게 말하기를 힘들어한다.

“그 사람, 다쳤어요? 그 사람답지 않네.”

몽설이 태연하게 말했다.

“노정문에서는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소문주는 도주했고, 상군을 가로막던 난화부인은 쌍겸과 싸우다가 절명했습니다. 노정문은 현재 봉문을 선언했고요.”

“노정문에서는? 무슨 말이에요? 그럼 다른 데서 다쳤다는 말이잖아요?”

“사실은…….”

“사실은요?”

몽설이 다그쳤다.

“네 번째 징벌 때…… 함안성주를 징벌한 후, 상군께서 습격을 받았습니다.”

순간 몽설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격동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자신도 모르게 몸의 일부분이 반응한다.

“그 사람이 암습 한두 번 받아본 것도 아니고…… 뭐 자주 있는 일이니까…… 누가 암습했는데요?”

“상군께서 혼염구망진과 부딪혔습니다.”

“혼염구망진? 그건 군진(軍陣)이잖아요? 가만! 그럼 허도기?”

“저희도 그렇게 추측을…… 놀라운 것은 그때 동원된 칠절려가 무려 이만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칠절려에 칠보산도 발라놔서 스치기만 해도 죽도록…….”

취운이 말을 맺지 못했다.

“이, 이만 개? 방금 이만 개라고 했어요?”

“네.”

“맙소사!”

몽설은 입을 쩍 벌렸다.

“그 많은 암기가…… 도대체 그 정도면 살상 범위가 얼마나 되죠? 산 하나는 전부 감싸나?”

몽설이 얼핏 전투 범위를 생각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칠절려 이만 개라고 하면 능히 군대를 상대할 수 있다. 수백 명을 죽일 수 있는 양이다. 그 많은 암기를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동원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

더군다나 혼염구망진? 그렇다면 화공도 썼을 것이다. 칠절려 이만 개를 보완해 줄 기름과 불이 동시에 쓰였다.

“그 사람은 무사해요?”

몽설이 태연히 말했다.

아니다. 결코, 태연하지 못하다. 태연함을 가장했지만, 음성이 덜덜 떨려 나온다. 몽설 자신이 들어도 음성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걸 느낄 수 있다.

“휴우! 화상이 심하고…… 더군다나 그 뒤에 초가평과 싸웠다고 합니다.”

몽설은 고개를 숙여서 무엇인가를 찾는 척했다.

두 눈이 저절로 질끈 감겼다.

‘숨! 숨이 안 쉬어져!’

몽설은 가슴을 쥐어뜯고 싶었다. 답답하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숨통이 꽉 막힌다.

취운에게 발각되지 않으려고 은밀히 숨을 쉬지만, 너무 숨이 막혀서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오직 한 생각, 아걸을 봐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그걸 왜 말하지 않았어요?”

“저희도 전혀 몰랐습니다. 살첩을 전할 때 외에는 상군과 접촉하지 않아서.”

“그 사람 상처가 어느 정도예요?”

“영(零)입니다.”

“영!”

몽설이 고개를 빠짝 쳐들었다.

취화원 살수들은 부상 정도를 영에서부터 십까지 분류한다. 숫자가 적어질수록 위태롭다. 십이 가장 경하다. 칠팔 정도까지는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 육오로 내려가면 반드시 치료해야 하고, 사 밑으로 내려가면 아주 심각해진다.

누군가에게 쫓길 때, 부상이 영인 사람이 있으면 버리고 간다.

이것을 취화원 율법에 아예 기재해 놓았다. 가망 없는 사람을 살리려고 바둥거리다가 모두 잡히느니, 한 사람을 버리고 모두가 사는 길을 택했다. 막상 현실로 부딪혔을 때, 망설임 없이 행하라고 율법으로 정해 버렸다.

부상 정도가 영 상태라면 데리고 가봤자 살 가능성이 거의 없다.

“많이 다쳤네. 그럼 그 몸으로 노정문주와…….”

“네. 저희도 전혀 몰랐으니까. 금령과 만날 때도 이인교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아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인데, 저희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그 사람이 승교 안에서 사람을 맞이할 사람은 아닌데.”

“그러게요. 그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주의가 깊지 못했어요.”

취운이 사죄했다.

“언니가 왜 사죄해. 그 사람이 원래 그런데. 정말 미련해. 그런 곰탱이도 없다니까.”

몽설은 말을 하다 말고 침묵했다. 슬픔이 기어 올라왔다. 그리움이 치솟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갈까 하는 마음이 수십 번 더 치밀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다섯 번째 살첩 대상자가 노정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얼마나 애를 끓었을까? 정상적인 상태라면 고민할 게 전혀 없지만, 몸이 그 정도라면.

이제는 노정문을 건드릴 때가 됐다 싶어서 노정문을 던졌는데, 아걸은 벼락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노정문 전체와 싸우는 것도 생각해야 하니 참으로 답답했을 것이다.

“그럼 그런 몸으로 노정문과 싸운 거예요? 아니, 부상이 영이면 숨도 쉬지 못할 거니까…… 그럼 이번 노정문 일은 은거 무인들이 나선 거예요?”

“노정문주와 비무가 있었습니다. 일홀도와 대정천로비검식의 결전. 그 싸움은 상군이 직접 나서야 하는 싸움이라서. 하지만 이겼어요. 노정문주는 즉사했고.”

일홀도와 대정천로비검식!

아걸의 고집이 읽힌다. 그 사람은 죽을 정도로 아파도 칼을 들었을 것이다.

몽설은 다시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순간 입술이 으적! 하고 씹히면서 짭조름한 핏물이 입안으로 흘러들었다.

이렇게 입술을 씹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아걸이 보고 싶을 때마다 입술을 씹어서 피를 삼켰다. 두 주먹을 어찌나 꽉 쥐었는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지경이다.

온몸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취운은 그런 몽설을 보면서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예전에는 아걸을 만나보지 않겠느냐, 먼발치에서라도 봐라 등등 여러 조언을 해 줬다 하지만 그 사람이 찾아올 때까지 내버려 둬야 한다는 몽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몽설은 이렇게 자신을 참아낸다.

“전보영에 도취라고…… 의원이 있어요. 아주 뛰어난 분인데 그분을 아걸에게 보내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약도 아끼지 말아 주시고.”

“네. 염려하지 마세요. 상군이 다치셨는데 설마 약재를 아끼겠어요? 호호호!”

취운이 일부러 웃었다.

“지금은 육차 징벌을 강행할 수 없어요. 지금부터 한 달간 무조건 쉬라고 하세요.”

“한 달요?”

취운이 되물었다.

부상 정도가 영이면 적어도 일 년은 요양해야 한다. 한 달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근맥은 어떤지, 신경 손상은 어떤지도 살펴봐야 한다.

몽설이 말했다.

“오빠는 한 달이면 일어날 거예요.”

‘어림도 없는데…….’

취운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걸의 상태는 영이다. 그런 몸으로 노정문주와 싸웠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치료했던 의원들을 찾아가서 상세하게 상태를 캐물었다.

의원들마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정도로 부상이 심하다.

의원들 입에서 최소한 일 년은 요양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전에는 절대 안정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한 달 만에 일어나는 것은 무리다.

그런데도 몽설은 자신 있게 말했다.

“소문을 내야겠어요. 명부판관이 한 달간 움직이지 않는다는. 어떤 방식으로 유포할 것인지는 언니가 생각해 주시고.”

“네. 그거야 문제가 없는데…… 정말 한 달이면 될까요? 적어도 반년 정도는.”

“아뇨. 한 달이면 돼요.”

몽설이 웃었다.

“아!”

취운은 퍼뜩 녹선마황을 생각해 냈다.

일홀문에는 천고의 영약이 있다. 아니, 영물이 있다. 산채로 사용할 수도 있고, 죽여서 쓸 수도 있다.

녹선마황!

아걸은 녹선마황을 거부했지만, 아삼은 아직도 녹선마황을 키우고 있다. 조만간 취화원에도 키우는 방법을 알려 준다고 했는데…… 두말할 필요도 없는 영약이다.

녹선마황을 물처럼 들이부으면 한 달 안에도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면 상군을 안정된 곳으로 옮겨야 할 텐데요?”

취운이 물었다.

“구화산(九華山)을 생각하고 있어요.”

“구화산은 사람이 많지 않아요? 워낙 유명한 도교 성지라서. 도인만 해도…….”

“아뇨. 구화산에 도가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참선을 위주로 하는 도문이라서 괜찮아요. 제가 들린 적이 있는데, 도인들도 상당수가 산에 굴을 많이 파고 살더라고요. 생쌀과 과일로 먹으면서 선식을 하니까, 요양하기는 딱 좋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몽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녹선마황이 있어야 해.’

몽설은 좀처럼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늘만 쳐다봤다.

푸드드드득!

드디어 전서구가 날아올랐다.

취운이 가급적 빨리 전서구를 띄웠다. 몽설이 목 빠지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것을 알아서다.

‘빨리 갔다 와.’

몽설은 날아가는 비둘기를 향해 말했다.

그녀도 아삼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황상과 만나러 가기 전에 본 것이 마지막이다. 하지만 적랑대에 연락하면 곧바로 찾아낼 것이다.

아삼이 달려가기만 하면 아걸은 일어날 수 있다.

녹선마황을 떠올리자, 몽설은 아걸과 만났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활검문에 얻어맞고 반 곤죽이 되어서 나가떨어졌다. 지금 아걸보다는 못하지만, 당시 이 내지 삼 정도 되는 부상을 당했다. 중상치고도 깊다.

아걸이 옷을 벗기고 녹선마황을 발라 주었다.

처음으로 사내에게 알몸을 보여 주었다.

몽설은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알몸인 걸 알고 난리 치던 일도 떠오르고.

‘녹선마황이면 몸에 새살을 돋을 수 있어. 넉넉하게 한 달이면 일어날 거야.’

몽설은 가슴이 타들어 갔다.

아마도 저 전서구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악인은 많다.

명부판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인을 제거할 생각이다.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제거하냐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명부판관 혼자서 움직이지만, 곧 수많은 명부판관이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악을 뿌리 뽑는다.

지금 명부판관이 단신으로 징벌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악인을 뿌리 뽑는 본격적인 행보가 아니다. 단지 악인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는 몸풀기에 불과하다.

다섯 번에 걸쳐서 악인을 징벌했다.

한 달간 유예기간을 준다.

그 후에는 가차 없이 눈에 띄는 모든 악인을 징벌해 나간다. 이후, 두 번 다시 유예기간을 주지 않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은혜를 베푼다.

명부판관의 징벌을 피하고 싶거든 회개하고 속죄하라. 자신의 죄를 세상에 내놓아라. 피해자가 살아 있으면 보상하고 피해자가 죽었다면 죄를 청하라.

속죄하고 세상이 주는 벌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명부판관의 심판을 받을 것인가.

“너무 과격하지 않아요?”

몽설이 말했다.

“이 정도는 해야 편히 쉴 수 있어요. 쉬는 이유도 충분하고. 허도기도 속일 수 있고요.”

“유포는 어느 쪽을 생각하고 있는데요?”

“야천요.”

“야천? 적랑대는 야천에서 모두 철수하지 않았나요?”

“호호! 팔룡 휘하 무인들이 야천을 장악해 나가고 있어요. 야천대방에는 흑수혈검을 추종하던 사람들도 있고요. 아직 상군님 입김이 통해요. 이 정도 소문은 순식간에 내줄 거예요.”

“언니, 내게 말하지 않은 게 많네요?”

“풋! 알려고 하지도 않으셨으면서.”

취운이 웃었다.

취운 말이 맞는다. 아걸이 야천에서 손을 뗀 후, 몽설도 야천을 잊었다. 야천을 떠올리면 팔 장로가 생각나서 더더욱 떠올리기 싫었다. 그래서 애써 잊었다.

“좋아요. 이대로 소문내 주세요.”

몽설도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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