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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434화 (434/600)

第八十七章 촌마두인(寸馬豆人) (4)

- 콩알만 한 사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큰 문파일수록 먼지가 풀썩일 가능성은 더 크다.

이십사 위문 노정문이 봉문한 사건은 무림에 파장을 일으켰다.

호도문 문주가 죽은 것과 노정문이 봉문한 사건은 완전히 다르다.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명부판관은 세 번째 사건으로 호도 문주를 척살했다.

호도 문주가 죽은 사건을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없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인면수심, 천하에 다시 없는 살인마를 죽여서다.

호도문 문주가 명부판관의 표적이 되어서 죽은 사건이지만, 똑같은 내용이라면 성검문주 허도기가 한낱 목동에게 참살당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지만, 명분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노정문은 다르다. 노정문은 소문주 강유가 살인마다. 그가 죄를 지었다. 한데, 소문주가 잘못한 일로 인해서 노정문이 봉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얼핏 생각하면 매우 당연해 보인다.

소문주가 잘못했으니 봉문하는 게 맞지 않나? 그것도 사람을 이십여 면이나 간살했는데…… 봉문이 아니라 차라리 멸문시켜야 맞는 게 아닐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노정문주가 살인마라면 노정문주가 죽어야 한다. 그리고 노정문은 재평가받는다.

그 외에 사람들…… 소문주를 비롯해서 수검사, 또 노정문 무인들…… 그들이 살인마일 경우에는 일차로 당사자가 징벌당하고, 이차로 관계된 사람들이 도덕적인 책임을 진다.

물론 강유가 한 일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사람이라면 하지 못할 행동을 했다.

대체로 그런 경우, 잘못을 저지른 강유는 합당한 벌을 받는다. 대부분은 죽게 된다. 노정문주와 난화부인은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를 감수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사과해야 하며, 조용히 은거하는 게 맞다.

노정문은 수검사에게 이어진다.

강유가 살인마이지, 노정문이 살인을 부추기거나 충동질한 게 아니지 않나.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지독하게 당했다.

노정문주가 명부판관에게 살해당했다. 난화부인은 한때 마인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쌍겸에게 죽임을 당했다. 낫으로 가슴이 패이고, 목이 찔려서 죽었다.

그래도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정도 무림의 거파(巨派)가 마도인에게 유린당했는데도 소문주의 잘못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명부판관은 노정문을 봉문까지 시켰다.

물론 봉문은 수검사 자신들이 스스로 행한 일이지만, 세상이 봉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명부판관이 노리면 멸문당한다!

문주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문파 내에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곧바로 트집잡힌다. 털어서 먼지가 풀썩이면 멸문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아니면…… 명부판관과 싸우든가.

활검문주 송조덕 앞에 두루마리 서류가 수북이 쌓였다.

“이게 전부……?”

“죄송합니다.”

청수검 왕유가 머리를 숙였다.

명부판관이 워낙 펄펄 날뛰고 있으니 당분간 모든 문파가 몸을 사리는 것이 좋다.

공식적으로 명부판관은 성검문 혈무대 비무를 치렀다.

상대로는 성검문주 허도기를 지명했는데, 뜻밖에도 정국장군 조경호가 나섰다.

조경호는 죽고, 명부판관은 허도기에게 패했다.

다시 나타난 명부판관은 호도문 문주에 이어서 노정문 문주조차 쓰러트렸다. 명실공히 중원 최고의 검학 중 하나라도 일컬어지는 대정천로비검식을 깨트렸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기록된 행보다.

비공식적인 행보를 들여다보면 숨이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혈도비자가 되어서 날뛴 일, 소축십검을 쓰러트리고, 남만족 칠백여 명을 몰살시키고…… 공부 허도기의 손에서도 네 번이나 빠져나가는 신통력을 발휘했다.

신통력? 맞다. 신통력이다. 허도기 같은 사람과 싸워서 네 번이나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이다.

만일의 경우, 적으로 돌려야 할 자의 이력이 이렇다.

‘우리는 감당할 수 없다.’

이것이 활검문주의 생각이다.

명부판관이 칼을 들이밀면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지만, 가능하다면 비켜서고 싶다.

“이게 전부…… 명부판관의 표적이 될만한 일이라는 거냐? 이게 전부?”

“기준을 조금 엄격하게 잡았습니다. 명부판관이 초토성 성검문으로 가는 동안 처벌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했는데…… 이 정도는 넘길 수도 있지만, 시비를 걸면 걸릴 수도 있어서.”

두루마리 종이에는 은밀히 숨겨졌던 사건들이 기재되어 있다.

활검문이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한바, 암암리에 숨겨진 사건·사고가 무려 이백여 건에 이른다.

여기 적힌 내용은 호도문주나 함안성주 혹은 강유처럼 살인에 중독된 자들이 아니다. 연쇄살인마가 절대 아니다. 살인일 경우에도 거의 대부분 엉겁결에 저지른 단발성 살인이다.

하지만 내용이 좋지 않다. 이권을 위해서 타인을 죽인 경우, 패륜을 저지른 경우, 빚을 갚지 않고 오히려 무력을 앞세워서 핍박한 경우 등등 온갖 죄가 포함된다.

개개인은 한두 건에 불과하지만, 문파 전체로 보면 죄악이 수두룩하다.

살인치고 정상적인 살인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무력을 앞세워서 약한 자를 몰아붙인 일치고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없다.

확실히 잘못된 사안들이다.

명부판관이 시비를 걸려면 충분히 걸 수 있다.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가 된다. 이 정도는 하고 눈감고 넘어갈 수도 있고, 당장 칼을 들고 달려들 수도 있다.

활검문은 대문파다. 문도가 상당히 많고, 관계된 사람도 많다. 그러니 많은 일이 일어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좋은 일뿐만이 아니라 나쁜 일도 일어나고 있다.

활검문 손에 죽은 사람이 절대 적지 않다.

그 많은 죽음 속에는 억울한 죽음도 있을 수 있다. 당시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묻고 지나간 일인데, 지금 활검문주 탁자 위에 악령이 되어서 되살아났다.

“이것 중 어느 하나만 꼬투리가 잡혀도 표적이 된다 이거지. 이것들 외에 다른 건 없나?”

“숨겨진 비밀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왕유가 말했다.

“으음!”

활검문주는 또다시 침음을 흘렸다.

노정문주는 자식이 팔난봉 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손가락질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자기 자식이 무려 여인 이십여 명을 간살한 사실은 알지 못했다.

활검문도 마찬가지다.

만약 활검문도 중에 그런 자가 있다면 그자가 이실직고하겠나. 꾹 입 다물고 말지. 죄를 털어놓으면 용서해 주겠다고 해도 그런 말을 누가 믿나.

진짜 살인귀들은 자신의 죄가 완벽하게 은폐되었다고 믿는다. 범죄도 완벽했고, 시신 처리도 깔끔했다. 본 사람도 없다. 아직 조용한 것을 보면 모르나.

발각되지 않은 일을 혹시 발각될까 두려워서 이실직고하는 미련한 놈은 없다.

명부판관처럼 눈앞에 증거를 들이밀어야 ‘아! 들켰구나’ 하고 깨닫는다. 아니, 그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발뺌하는 게 살인마들의 특성이다. 그러니 그전에는 입을 열게 할 방법이 없다.

‘의심되는 자는…… 후후! 거기까지 나가면 안 돼.’

활검문주는 툭! 하고 한 마디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눌러 삼켰다.

수하 중에 의심스러운 자가 있을까? 찾아보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켜보는 것은 곤란하다. 수하를 의심의 눈으로 지켜보면 하나같이 다 의심스럽다.

어떨 때는 의심스러워도 믿어줘야 하는데, 지금은 믿는 수하도 믿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유가 말했다.

“말해 봐.”

“명부판관이 우리 활검문을 치겠다고 작심하면 어떤 꼬투리라도 잡을 겁니다.”

“그렇겠지.”

“더욱이 지금 세상 사람들은 명부판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명부판관이 활검문을 노려본다는 소문만 들려도 우리 활검문은 죄인 문파가 됩니다.”

“으음!”

“이런 상황은 다른 문파도 마찬가지일 텐데, 문주님들이 회합을 열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회합?”

“명부판관이 노리는 건 뻔하지 않습니까? 성검문을 노리겠죠. 그러니 문주님들끼리.”

“후후후!”

활검문주가 웃었다.

지금 상황이 답답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왕유 말대로 회합을 가질 수는 없다.

회합을 열면 무슨 말을 주고받을까? 명부판관과 싸우자고? 이유가 있어야 싸우지. 명부판관을 공적으로 몰아붙일 만한 꼬투리가 있어야 싸우지.

아니면 명부판관과 화합하자고?

명부판관과 화합한다는 것은 허도기에게 등을 돌린다는 뜻이 된다. 명부판관이 허도기를 노리는 게 분명한데, 명부판관 옆에서 희희낙락거리는 것이 가능하겠나.

회합을 열면 무조건 싸우자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진다.

명부판관을 공적으로 몰아붙일 이유가 없으니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일홀도 대 자파 무공의 싸움 형식을 빌어야 한다. 명부판관이 아니라 일홀도와 싸워야 한다. 공식적인 명칭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아걸 한 사람만 본다.

그 싸움이 가능할까?

활검문주는 인상을 찡그렸다.

가능하지 않다. 옛날이라면 모르겠는데, 지금의 아걸은…… 야천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린 놈이다. 남만족을 쓸어버렸다. 소축십검마저 요절냈다.

“왕유, 사람을 보내서…… 다른 문파를 지켜봐.”

“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라고 해.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연락하라고 전하고.”

“네.”

왕유가 힘차게 대답했다.

* * *

“우리는 별일 없겠지?”

“별일 없습니다.”

“전부 다 확인해 본 거지?”

“네. 꼼꼼하게 다 확인했습니다.”

“그래? 그럼 됐다.”

낙일검문(落日劍文) 문주 조승삼(趙丞衫)은 안심했다.

평소 문도를 엄격하게 관리해 왔기 때문에 흉악한 범죄 행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한번 점검해 보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보고해. 미적거리지 말고.”

“네!”

제자가 물러갔다.

조승삼은 길게 기지개를 켜며 명부판관을 떠올렸다.

‘명부판관. 음!’

명부판관이 아걸이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범부들은 모를 수 있지만, 무인은 거의 모두 안다.

이십사 위문은 언젠가는 명부판관과 부딪쳐야 한다.

한데 명분 싸움에서 뒤지고 있다. 아걸이 명부판관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한, 그를 향해 검을 들기가 쉽지 않다. 정의를 행하는 사람에게 ‘너 잘못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아걸은 완벽한 증거를 내세운다.

증거가 오염되어야 한다. 잘못된 증거를 내세워서 명부판관도 실수한다는 점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면 한순간에 명부판관이 쌓은 탑은 무너진다.

한데 명부판관이 누굴 노리는지 알아야 증거를 오염시키지.

‘결국은 검으로 싸워야 하는데…….’

낙일검법은 무적이다. 비록 허도기에게 패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낙일검법을 오성밖에 수련하지 못했다. 강호 경험도 일천해서 검을 뽑으면 무조건 달려들기만 했다.

이십 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또다시 허도기와 싸울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순순히 승부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낙일검법을 십이성으로 끌어올려야 해. 아직도 부족해.’

그의 눈길이 검가(劍架)로 향했다.

검가에는 애검 네 자루가 올려져 있다. 손질이 잘 되어서 늘 반짝거린다.

‘응?’

조승삼은 검가에서 낯선 이물질을 발견해 냈다.

작은 종이 쪼가리가 검가 밑에 떨어져 있다. 책에서 떨어져 나온 듯 색깔도 누리끼리하다.

평소 시녀들이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청소를 해 놓는데, 웬 종잇조각이.

조승삼은 검가로 걸어가서 종잇조각을 집어 들었다.

다른 곳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시녀를 시켜서 치우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종이가 떨어져 있는 곳이 검가다. 자신의 애검을 놓은 곳이다.

검가를 더럽히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는 종이를 집어 올렸다. 한데 종이에 깨알만 한 글씨가 적혀 있지 않은가.

조승삼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종이에 적힌 글씨가 너무 깨알 같다. 꼭 누군가가 은밀히 소식을 전하는 밀서처럼 보인다.

조승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종이에 적힌 글을 읽었다.

- 간정(幹正)

경자년(庚子年) 시월 십사일.

안야(安冶) 황산(黃山) 여인 강간.

조승삼은 입을 쩍 벌렸다.

‘이건…….’

명부판관이 뇌정문에 전한 살첩과 같은 형식의 글이다.

“허! 허허!”

조승삼은 허탈하게 웃었다.

명부판관의 다음 목표가 자신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물론 그는 명부판관을 상대할 자신이 있다. 그가 노정문주를 베었다고 하지만 자신도 그를 벨 자신이 있다. 솔직히 이십사 위문 문주치고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명부판관. 후후! 나한테 선전포고를 한 건가? 어쨌든 이건 처리해야겠지. 간정! 이놈!”

조승삼의 눈가에 분노가 어렸다.

간정이 낙일문에 입문한 게 거진 이십 년이다. 그동안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 강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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