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七章 촌마두인(寸馬豆人) (5)
- 콩알만 한 사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광검문(光劍門)은 광검오사(光劍五師)가 공동 문주를 맡고 있다.
광검오사는 원래 한수오검(寒水五劍)으로 불리던 검호들이다. 다섯 명이 한 형제이며, 이곳저곳 떠돌면서 스스로 검을 터득한 야인검(野人劍)을 사용한다.
야인검은 초식 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하지만 분명히 한계도 존재한다.
거친 맹수는 더욱 거친 맹수를 만났을 때 무력해진다. 또 정교한 사냥꾼을 만나도 잡힌다. 초식이 거칠어서 쉽게 파악되는 약점도 있다.
한수오검은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문파를 건립했다.
문파 명칭도 광검문으로 정했고, 난폭하던 검법은 놀랄 정도로 정교해졌다.
광검의 등장이다.
그들은 막대한 돈도 뿌렸다.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는 다리도 놓아 주고, 길도 닦아 주었다.
성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순간부터 그들은 문세(門勢)가 급격히 확장되었다. 광검오사 뒤에 성검문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검공에서도 성검문의 숨결이 보인다.
허도기가 그들을 봤고, 무공을 손봐줬다. 야인검을 광검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니 광검문은 성검문주가 죽으라면 죽고, 살라고 하면 살아야 할 입장이다. 다른 어떤 이십사 위문보다도 성검문과의 연결고리가 단단하다.
광검문은 신흥 문파다.
창건 역사가 이십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급성장했다.
성검문 덕분이다.
성검문이 뒤를 보살펴 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여전히 한수오검으로 머물렀을 것이다.
그런데…… 명부판관이 성검문을 적대시한다.
명부판관은 공부 허도기에게 ‘악행을 저지른 죄인’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실제로 허도기를 치기 위해서 초도성까지 쳐들어간 무지막지한 위인이다.
그런 자가 성검문과 끈끈한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광검문을 내버려 둘까?
사람들은 명부판관의 다음 표적이 광검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기 이거. 어떤 사람이 전해 주라고 합디다.”
지나가던 유생이 문 앞 길가를 쓸고 있는 하인에게 곱게 접힌 편지 한 통을 건넸다.
“길 쓰는 거 안 보시슈? 그런 건 안에 전하슈.”
“부탁 좀 합시다. 안에다 전하면 이름이 뭐냐, 어디서 왔냐, 이건 누구에게 받았냐. 어휴! 갈 길 바쁜 사람 붙잡고 꼬치꼬치 캐물을 거 아뉴.”
“그런 게 싫으면 심부름을 하지 말아야지. 이거 전하는 몫으로 몇 냥 받았수?”
“허 참, 사람도…….”
유생이 동전 두 냥을 내밀었다.
“나도 얼마 못 받았수. 겨우 여기서 저기 전하는 거니 이걸로 땡 칩시다.”
“거, 사람 손도 작네. 좀 더 주지.”
하인이 투덜거리면서 편지를 받았다.
대체로 이렇게 전하는 서신치고 좋은 경우가 별로 없다. 거의 모함이거나 아니면 호소문이거나 투고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서신을 전하는 경우는 더 그렇다.
하인이 당당하게 금전을 요구하는 이유다.
“누가 전한다고?”
“나도 모르지. 솔직히 나도 닷 냥 받았수. 두 냥이면 거의 절반 준 거유.”
“알았어. 알았어.”
하인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서신을 갖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 그러니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 전하기만 하면 된다.
사실 그는 중간에서 서신을 버리려고 했다.
광검문 문지방만 넘으면 길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 슬쩍 버리면 탈도 나지 않고, 동전만 받게 된다. 한데…… 종이의 질이 보통 좋은 게 아니다. 상당히 고급지다. 어쩐지 그냥 버려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분명히 욕먹을 게 뻔한데.”
하인은 투덜거리면서 걸었다.
서신은 빠르게 전달되었다.
광검오사도 모였다. 평소라면 그들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옛날에는 늘 같이 붙어 다녔지만, 광검문이 자리를 잡은 후에는 여유를 즐겼다.
광검오사는 앞을 향해 달리지 않는다. 현재에 만족하며 안주한다. 지금 이 정도의 성세만 계속 이어가면 아무런 여한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다른 문파들처럼 야망도 없다. 검공 수련에도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술 마시기 좋아하고,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한다.
하지만 오늘은 다섯 명 전부 다 모였다.
광검오사 앞에 길을 쓸던 하인이 머리를 조아린 채 엎드려 있었다.
“이 서신을 누가 전해 줬다고?”
“지나가는 유성입니다. 돈 받고 전해 주는 거라고 하던데요.”
“인상착의는?”
“보통. 보통 유생입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도 없었습니다.”
“무인이었나?”
“무인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네놈 눈깔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광검이사가 말했다.
무인이면서도 무인 아닌 것 같은 사람이 많다. 반드시 근육이 탄탄하고 기골이 장대해야만 무인인 것이 아니다. 계집처럼 갸름하면서도 놀라운 무공을 펼치는 자가 많다.
“죄송합니다. 전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도 받아달라고 해서.”
하인은 서신 내용이 뭔지 모른다. 하지만 광검오사가 잔뜩 긴장해 있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든다.
“알았다. 물러가!”
광검오사가 하인을 내쳤다.
더 추궁해 봤자 얻을 게 없다.
“밖으로 보낸 애들은 소식이 없나?”
광검사사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네!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으로 출입하는 사문을 모두 통제하고 있고, 유생이란 유생은 모두 검문하고 있습니다. 그놈은 조만간 잡힐 겁니다.”
수하가 말했다.
“장역(張易), 그놈은? 잡았어?”
“아직!”
“뭐 하고 있는 거야!”
타앙!
광검일사가 손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광검오사는 명부판관이 설치기 시작할 때부터 문파를 더욱 단단히 단속했다. 조금만 삐끗해도 광검문은 당장 부각된다. 놈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높다.
문파를 매우 강하게 단속한 결과, 명부판관의 표적이 될만한 사건은 드러나지 않았다. 확신했다. 광검문을 일부러 노리고 달려들어도 캐낼 것이 없다고.
하지만 어디든 쥐새끼는 있기 마련이다.
“장역 이놈이!”
장역은 문파의 이름을 팔면서 나쁜 짓을 했다. 양민들에게 검을 휘두르고 재물을 갈취했다. 여인을 겁탈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광검문 이름을 온갖 곳에 써먹었다.
그런데도 광검오사는 이런 사실을 새까맣게 몰랐다.
장역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 광검문 주방에서 일하던 자여서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일만 하던 자가 광검문 밖에만 나가면 난리를 쳤다.
무엇보다도 장역은 소아성애자(小兒性愛者)다.
놈이 건드린 소년과 소녀가 무려 백여 명을 넘어선다. 물론 부모에게 돈을 주고 샀기 때문에 소문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서신에는 분명히 적혀 있다.
“이놈 눈치채고 도주한 것 같은데?”
광검삼사가 말했다.
“일단 공고를 하지? 장역의 죄를 밝히고, 놈에게 현상금을 거는 거야. 일단 그놈에게 피해를 본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먼저 보상도 해 주고. 그러면 명부판관 눈에서는 벗어나지 않겠어?”
“문제는 이걸 전한 놈이 누구냐는 거지. 명부판관이 이걸 보냈다면 다음 표적은 우리라는 거잖아. 명부판관이 파악한 놈 중에 이놈 말고 다른 놈이 또 있을 수도 있고.”
“명부판관이 이걸 보냈다면 이놈을 처리하라는 뜻이겠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 이거 아냐?”
“그놈이 한 달간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새끼!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해 놓고 암중으로는 이런 짓거리를 한다 이거지? 어쨌든 이 일부터 처리해야겠지. 이놈을 처리하지 않으면 정말로 명부판관 밥이 돼.”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광검문 문 앞에 공고가 걸렸다.
장역에게는 현상금 금 열 냥이 걸렸다. 또 장역에게 피해를 본 사람은 신고하라는 말도 적혔다. 장역을 잡는 것과는 별개로 광검문이 먼저 보상을 해 주겠다고.
명문다운 일 처리다.
“뭐야? 은 열 냥?”
“네. 맞습니다. 그놈이 은 열 냥을…….”
“말도 안 되는…… 네놈이 그런 돈이 어딨어? 그만한 돈을 어디서 나서 줬냐고!”
“아이고! 나리! 그거 제가 평생 모은 겁니다.”
“이게 어디서 헛소리를! 먼저 보상을 해 준다고 하니까 광검문이 핫바지로 보이냐?”
보상 문제를 처리하던 무인이 인상을 확 찡그렸다.
“제 말이 거짓말이면 제 목숨을 걸겠습니다. 정말이라니까요! 왜 안 믿어 주십니까. 하! 이거 가슴을 열어 보일 수도 없고. 정말이라니까요. 나리!”
동전 한 닢이 없어서 초근목피로 생활하는 자가 은 열 냥을 빼앗겼다고 한다.
말도 안 된다. 이런 자는 평생 입지 않고, 먹지 않고 돈을 모아도 은 열 냥을 모르지 못한다. 또 장역이라는 놈도 이런 자에게까지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넌 얼마야?”
무인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은자 이십 냥…….”
“너 뭐 하는 놈인데?”
“지금은 소작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것들이 정말! 야! 이것들 묶어! 별 거지 같은 놈들이! 오냐, 한몫 챙기겠다 이거지? 좋아. 챙겨 주지. 단단히 챙겨 줄 테니까, 잘 가지고 가!”
보상을 처리하던 무인은 기어이 두 명에게 매타작을 했다. 광검문에 와서 헛소리하는 자는 맞아도 쌌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대단한 악수였다.
“제길! 돈을 안 주면 안 줬지, 사람은 왜 치나?”
“그러게. 보상한다는 말이나 하지 말던가. 어떻게 된 문파가 도망간 놈 하나 못 잡아.”
사람들이 광검문을 보며 수군거렸다.
진퇴양난, 광검오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부닥쳤다.
보상을 해 주자니 광검문 전체를 팔아도 모자랄 만큼 많은 액수가 청구된다. 저들 대부분이 거짓말일 것 같은데, 지금처럼 잡아서 족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장역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광검문 전 문도가 사방을 뒤지고 있는데, 완벽히 사라졌다.
마치 장역부터 유생까지 일련의 행동들이 광검문을 힘들게 하려고 잘 짜 놓은 각본 같다.
광검오사는 수습할 기력을 잃어버렸다.
* * *
“성검문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청수검 왕유가 서신을 내밀었다.
활검문주는 서신을 받았다. 서신이 딱 좋을 때 도착했다. 가슴이 답답하던 차니까.
문주는 단숨에 서신을 펼쳤다.
“후후! 회합을 하자는구나.”
활검문주가 만족한 듯 웃었다.
“잘됐습니다. 성검문도 이번 사건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는 말이네요.”
“그렇지.”
활검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활검문주는 이십사 위문 문주들의 회합을 고려했다. 조금 더 기다려보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으면 자신이 나서서 회합을 만들어 볼 생각까지 했다.
당금 사태를 정리해야 한다.
이십사 위문이 더는 명부판관의 표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당장 활검문은 표적이 될 사건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광검문은 장역이라는 놈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활검문주가 주시하는 것은 낙일문에 전해진 경고다.
명부판관은 낙일문 문주의 검가에 살첩을 놓고 갔다. 정식 방문이 아니니 살첩이라고 할 수는 없고…… 경고의 의미로 종이 쪼가리를 놓고 갔다.
아니다. 종이를 놓고 간 자는 명부판관이 아니다.
명부판관이 부상당했다는 소문은 거짓이 아니다. 대단히 심각한 중상을 당한 모양이다. 놈이 한 달간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도 부상과 연관이 깊을 것이다.
그러면 낙일문에 종이를 놓고 간 자는 누구인가?
낙일문은 경계가 삼엄하기로 유명하다. 낙일문주는 문도를 아주 혹독하게 가르친다. 이십사문 중 수련이 가장 혹독하기로 이름난 문파다. 문도를 매우 잔인하게 몰아친다.
낙일문도는 경계를 설 때, 절대 한눈팔지 않는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곤장 열 대다. 겨우 열 대? 그렇게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말이 열 대지 곤장에 진기를 실어서 후려치기 때문에 열대만 맞으면 엉덩이가 너덜너덜해진다.
그토록 단단하게 경계를 세웠는데 거침없이 뚫렸다.
또 하나…… 종이를 놓고 간 시점이 분명치 않다. 낙일문주가 업무를 볼 때 놓고 갔는지, 자리를 비웠을 때 놓았는지 불분명하다. 만약 전자라면 놈은 낙일문주의 이목까지 속였다.
그런데 그놈, 명부판관도 아니다.
“후후! 이번 회합에는 빠지는 사람이 없겠군. 늘 한두 명씩은 빠졌는데.”
활검문주는 웃었다.
이번 성검문에서 열리는 회합에서 어떤 말이 오갈지 이미 짐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