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37화 (437/600)

第八十八章 함입곤경(陷入困境) (2)

광동(廣東)에서 배를 타고 한 시진 정도 가면 우각도(牛角島)라는 섬이 나온다.

섬의 형태가 꼭 소뿔을 닮았다고 해서 우각도라고 불린다.

우각도는 무인도가 아니다. 사람이 사는 유인도다. 그것도 작은 섬치고는 아주 많은 사람이 산다. 무려 이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 산다.

나병 환자들이다.

나병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전염되는 악성 나병이 있고, 전염되지 않는 나병이 있다.

우각도 환자들은 전염되는 나병이다.

사실, 사람들에게는 전염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전염 여부와는 상관없이 모두 싫어한다.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따로 살게 만든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같은 나병 환자들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우각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못하게 만든다.

우각도는 좁은 섬이다. 좁은 땅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툭하면 싸움도 일어난다. 사람들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우각도에 들어가면 목숨을 잃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우각도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다. 그래도 찾지를 못한다. 우각도는 관원이나 무인도 들어가기를 꺼리는 지옥 섬이다.

하지만 나병 환자들도 인간인 이상, 먹고 살아야 한다.

섬에는 모든 물자가 부족하다. 물도, 식량도 부족하다. 그러니 뭍에서 식량을 사가야 한다.

우각도만 전문으로 상대하는 나병 상인이 생겼다.

처억! 처어억! 처억!

배가 물살을 헤치며 우각도로 향했다.

바다에 풍랑이 거세서 이틀이나 배를 띄우지 못했다. 오늘도 바람이 거세지만 억지로 배를 띄운 참이다. 우각도 사람들이 눈이 빠지게 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배에는 우각도에 전달할 쌀이 오십 석이나 실려 있었다.

상당히 많은 양이다. 가마니로 따지면 백 가마니다. 하지만 우각도에 풀어놓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린다. 그 많은 쌀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바람이 잔잔해지는데요.”

“그래야지.”

황지평(黃志平)은 쌀을 내주고 용연향(龍涎香)을 받는다.

용연향을 먼저 받기 때문에 실수하지는 않는다. 먼저는 무게가 열다섯 근이나 되는 용연향을 받았다.

그것을 뭍으로 내와서 쌀 천 석에 팔았다.

시간만 넉넉하면 더 받을 수도 있는 초고가의 용연향이었다.

황지평이 우각도에 줄 몫은 칠 할이다. 쌀 칠백 석만 주면 된다. 육백오십 석이 들어갔으니 이번이 마지막 공급이다. 아마도 오늘 섬에 들어가면 다음 차례 분의 용연향을 받게 될 것이다.

우각도는 어디서 그토록 질 좋은 용연향을 구하는 것일까? 바다에 떠도는 고래의 토사물인데.

“어? 저거 뭐죠?”

황지평은 선원이 말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어억! 쏴아아아! 처억!

사방에서 작은 배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쾌선(快船)?’

황지평이 영문을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광동에서 우각도까지는 항해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누구든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사람들이 우각도에 들어가지 않는 것뿐이지, 금역(禁域)으로 지정해 놓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쾌선, 관선(官船)이 다가온다.

“응?”

쾌선이 가까이 다가오자, 황지평은 비로소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쾌선의 형태가 조금 이상하다. 뱃머리에 방패 같은 것이 엇갈려서 걸려 있다. 화살을 막기 위한 방패막이가 맞다. 그렇다면 쾌선은 관선이 아니라 군선(軍船)이다.

평소에는 군선이 다니지 않는 바다인데…… 왜 갑자기 군선이, 그것도 여러 척이……?

군선이 다가온다는 온다는 것은 수군이 바다를 통제한다는 뜻이다.

쒜에에엑! 퍼엉!

쾌선에서 음통(音筒) 묶인 화살이 쏘아졌다.

화살이 허공으로 치솟으며 야밤에 귀신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를 흘렸다.

“돛 내리라는데요?”

“내려. 내리라면 내려야지, 별수 있어?”

황지평이 쾌선 너머를 쳐다봤다.

보선(寶船)이 보인다. 길이가 마흔네 장, 넓이가 십사 장, 돛이 아홉 개나 달린 대형 범선이다.

보선에는 중형 화포가 다수 실려 있다.

탑승 인원이 육십 명에서 팔십 명 정도 되는 사선(沙船)도 다섯 척이 보인다.

중형 화포는 싣지 못하지만, 소형 화포는 얼마든지 싣는다.

‘이건 전쟁이다!’

갑자기 이 많은 수군이 왜 광동 앞바다를 장악한 것일까? 우각도 외에는 볼 것도 없는데. 범선들이 항해하는 길목도 아니고, 어장이 충실한 곳도 아닌데.

돛을 내리자 쾌선이 범선 곁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수군이 빠르게 올라왔다.

“뭐냐?”

“쌀입니다.”

거리낄 것이 없다.

“어디로 갖고 가는 거냐?”

“우각도죠. 저는 우각도를 출입할 수 있습니다. 관에서 교역증도 받았는데요.”

황지평이 자신 있게 말했다.

나병 환자들과 교역하려면 특별히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관군의 통제도 받는다. 괜히 장사한답시고 우각도에 들어갔다가 나병이라도 옮아서 나오면 큰일이다. 그래서 일정 기간 주거지까지 통제받는다.

“허락하지 못한다. 돌아가라.”

“네? 안 되는데요? 이거 안 가져가면 우각도 사람들, 굶어 죽습니다. 그러잖아도 이틀이나 늦어서…….”

“돌아가!”

수군이 강압적으로 말했다.

“아이고, 나리. 정말입니다. 오늘 이걸 전하지 않으면 저들은 굶어 죽습니다.”

“우각도는 소분(燒焚) 처리된다. 나병이 너무 극심해.”

“소, 소분요? 저들을 모두 태워 죽인다고요?”

“너도 소분 처리되고 싶어? 그럼 들어가든가. 들어가는 것은 자유지만 나오지는 못해. 나오면 바로 격침한다. 이걸 전하고 싶으면 전해. 네 자유다.”

“저, 저기!”

황지평은 돌아가려는 수군을 붙잡았다.

“저기 보선에 타고 계신 분…… 장군님 직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그건 왜?”

“혹시 제가 말씀을 드려볼 수 있는 분이 아닐까 해서. 이래 봬도 저도 발이 꽤 넓은 편이라서요.”

“수군도독(水軍都督) 시위등(柴偉登) 장군님이시다. 아는 분이야? 모르지?”

“아, 예. 존함은 많이 들었습니다만…….”

“돌아가라고 할 때 돌아가.”

수군이 쾌선으로 건너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황지평은 입을 꾹 다물었다.

수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우각도를 불태운다는 말이 괜히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여차하면 방해꾼들 모두 고기밥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태도다.

“섬에 다가서지 않고 쌀을 던져주는 방법은 없을까?”

“아휴. 그게 되나요.”

“그렇지. 안 되지.”

보선과 사선이 우각도를 포위했다. 들어가는 배, 나오는 배 모두 통제한다.

더욱이 보선을 이끄는 사람이 수군도독이다.

명령 한마디면 사신 이삼십 척이 당장 달려올 수 있다. 수군만 삼천여 명이다.

수군은 배에 실린 쌀을 압수하지 않았다.

제물을 노린 게 아니다. 간혹 수군이 길을 가로막고 범선을 위협하는 때도 있다. 뇌물을 진상하라는 무언의 협박인데, 그런 경우 대부분을 들어준다.

황지평도 그럴 때를 대비해서 뇌물을 준비해 놨다. 지금 당장 선실로 들어가서 목궤를 열기만 하면 된다.

지금은 뇌물도 통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장군의 직함과 이름을 서슴없이 말해 주었다.

누군가 알아볼 수 있으면 알아보라는 투다. 뭔가? 더 큰 뇌물을 바라나? 아무리 그렇다고 우각도를 소분해 버리겠다는 말은 너무 심하지 않나.

우각도 사정을 아는 선원들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든 쌀을 전해줘야 하는데…… 쌀을 전하지 않아도 당장 굶어 죽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이 무척 어려워진다. 진짜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한다.

“배를 돌려.”

“돌려요?”

“안 그러면 우리가 고기밥이 돼.”

황지평이 말했다.

도독을 찾아가서 사정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헛수고다. 그럴 것 같았으면 참장 정도 되는 사람이 배에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은밀히 뇌물을 요구했겠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우각도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 * *

탁자 위에 서신이 올려져 있다.

워낙 많은 보고가 올라오고 있어서 그저 그런 보고인가 싶었다. 지금 당장 급한 일도 없고…… 그래서 무심히 지나쳤다. 차분히 운공조식까지 마쳤다.

그렇게 이것저것을 하다가 반 시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탁자에 앉았다.

서신이 눈에 띈다.

‘아침부터 무슨……?’

사령은 서신을 힐끔 쳐다봤다. 그 순간 봉투에 적힌 이름이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황지평? 우각도에서 온 서신이다!

황지평은 소신을 보낼 때 파발마를 사용한다. 매우 빠른 준마를 이용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치달리게 만든다. 중간에 교체되는 파발꾼만 서른 명이 넘는다.

그들에게 지불하는 돈이 얼마인가. 한 번 소식을 전하는 데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보통 사람 일가족이 일 년을 살 만한 돈이 길에 뿌려진다.

그만큼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만 전서를 보낸다.

사령은 급히 서신을 뜯어서 내용을 읽었다.

“우각도가! 수군도독 시위등!”

사령은 수군도독 시위등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허도기!

수군도독 시위등은 허도기 사람이다.

나라의 녹을 먹는 장군에게 허도기 측근이냐고 물으면 대단한 실례다. 그런 말은 할 수도 없고 물어볼 수도 없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모두 안다.

“후후후!”

사령은 웃었다.

수군이 우각도를 포위했는데, 그것이 과연 수군 도독 개인의 생각일까? 아닐 것이다. 허도기가 시킨 일이라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알 것이다.

“이 사람 참…… 욕심이 끝이 없군.’

사령은 눈살을 찌푸렸다.

척 봐도 안다. 허도기가 찍소리하지 말고 발밑으로 기어 와서 시키는 일이나 하라는 뜻이다.

우각도를 소분시킨다고? 불태워 버린다고?

백주대낮에 어떤 미친놈이 그런 짓을 해. 그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후후! 허도기는 하고도 남는다.

사령은 허도기가 마을 하나를 산채로 불태우는 모습을 봤다. 전쟁터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불타는 마을을 보면서 태연히 술잔을 기울였다.

우각도가 포위되었다면 동죽림(冬竹林)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동죽림 쪽은 황지평처럼 빨리 소식을 보내올 사람이 없다. 그래서 소식이 늦어질 뿐, 그들 역시 매우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을 게 뻔하다.

수포 환자들이 약을 공급받지 못하면…… 거의 반쯤 미친다. 고통이 뼛골까지 치밀어서 견디지 못한다. 통각을 마비시키는 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각도는 나병 환자, 동죽림은 수포 환자들의 본거지다.

마유 마인이 그곳에서 나온다. 허도기 덕분에 우각도와 동죽림이 편안해졌다. 약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우각도 생활도 비교적 편해졌다.

그럴수록 마유 마인들의 충성은 깊어진다.

허도기는 묻고 있다. 그것이 너 혼자 한 일이냐고. 내가 없으면 넌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마유 마인들을 자유롭게 풀어달라? 그들은 원래부터 자신 것이었다고 말한다.

허도기가 쉽게 놓아주지 않을 줄은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닦달할 줄은 몰랐다.

”잠시도 짬을 안 주는군. 한 발짝도 떼지 않았는데, 바로 목줄을 조여와. 후후!”

사령이 웃었다.

허도기와 손을 잡으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도움은 곧바로 사슬이 된다. 사실, 허도기가 순순히 보내준다고 할 때 그 말도 믿지 않았다.

반드시 어떤 반격이 돌아올 줄 알고 있었다.

순종이냐, 반격이냐.

사령은 탁자 옆에 달린 줄을 잡아당겼다.

쩔렁!

소리가 울리며 얼굴과 몸 전체를 검은 천으로 감싼 흑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검문에 기별을 넣어라. 내가 공부를 만나러 가겠다고.”

흑의인이 고개를 숙인 후, 나갔다.

허도기와 싸우는 것은 무리다.

우각도 마인들은 수군의 화포를 뚫을 수 있겠지만, 우각도에 머무는 수많은 사람이 모두 고수인 것은 아니다. 그들 중 태반은 무공을 펼칠 줄 모른다.

”후후후! 누굴 원망하나. 내가 잡은 손인데.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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