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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439화 (439/600)

第八十八章 함입곤경(陷入困境) (4)

두두두두! 퍼퍼퍽! 히히히힝!

말 울음소리와 모래 파이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사방을 둘러봤지만, 말이 달려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앞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무엇인가가 달려오고 있다.

사령은 하늘을 쳐다봤다.

‘뜨겁군.’

해가 지독스럽게 뜨겁다.

사막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사막에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다. 차양을 펼치고, 느긋하게 낙타 위에 앉아서 사방을 둘러볼 때나 아름답다.

모래 위에서 달리는 말과 대치하면 또 이곳처럼 힘든 곳이 없다.

“없는 물로 간신히 목욕하고 나왔는데 또 모래를 뒤집어쓰게 생겼네, 참 고약한 양반이라니까.”

사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유를 놓아달라!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섭섭했었나.

마유를 놓아준다는 말은 자신이 한 게 아니다. 허도기가 약속한 것이다. 본인이 본인 입으로 약속해 놓고 그 약속을 지키기가 이렇게 싫었나.

사령은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나갔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이 모래 속에 푹푹 박혔다.

사막의 모래에도 단단한 모래가 있고 고운 모래가 있다.

사령은 매우 고운 모래 위에 서 있다. 발을 헛디디면 밑으로 쭈르륵 흘러내린다. 이런 곳을 전장으로 택한 것도 비적들이 이곳 지리를 잘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사령은 모래 언덕을 넘어갔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보였다. 말을 타고 온 비적들이 모래 언덕 아래 진을 치고 늘어섰다.

그들은 언덕을 달려 올라오지 않는다. 사령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린다.

안 내려가고 버티면 어떻게 되나? 저들도 버틴다. 사막에서는 물이 넉넉한 쪽이 이긴다. 저들은 말에 물을 잔뜩 싣고 있다. 아쉬울 것이 없다.

스륵! 스륵!

사령은 미끄럼을 타듯이 슬슬 미끄러지며 모래 언덕을 내려갔다.

“하앗! 끼럇!”

얼마쯤 내려갔을까? 드디어 거센소리와 함께 비적 한 명이 말을 치달려 나왔다.

그것이 신호다.

“끼럇!”

“타앗!”

사방에서 비적들이 앞뒤를 다투며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흑사단의 숫자는 무려 쉰 명 가까이 되었다. 천여 명에 이르는 흑사단 중 극히 일부이지만, 매우 위협적이었다.

쒜에엑! 퍼억!

말 다리를 베어내고, 떨어지는 자를 쳐올렸다. 내리치는 검을 피해서 몸을 빙글 돌리며 다리를 썰어냈다. 쓰러지는 말을 피해 펄쩍 뛰어올랐고, 다시 쿵! 하고 쓰러진 말을 힘껏 지르밟으며 허공 높이 솟아올랐다.

파르르!

휘도는 검에 비적단의 머리가 걸렸다.

“크악!”

비적단은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비적단은 강하지만 아직 마유의 주인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하다. 너무 부족하다.

허도기가 이런 점을 모르고 이들을 보냈겠나. 아니다. 알면서도 보냈다.

뜨겁게 내리쬐는 폭양 아래에서 싸우면 땀과 피가 범벅이 된다. 그런 모습으로 자신에게 기어 오라는 거다. 모래까지 곁들이면 거지꼴이 되니 더 좋다.

멀쩡한 모습으로 오는 모습은 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객잔에서 죽인 무인도 그렇고, 이들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엉망이 되어서 오라고 한다.

한 번 더 오기를 부려 볼까?

자신이 쓰러트리고 있는 말에는 물이 있다. 가죽 주머니 속에 물이 한가득 들어 있다. 그것들을 모으면 다시 목욕할 수 있는데, 어디 해 볼까?

그러면 허도기는 비적단을 또 보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령을 만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유를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마유는 취하되, 사령은 취하지 않는다. 사령을 제거하고 다른 자를 내세워서 마유를 운영하게 만든다.

이건 역시 허도기이기에 가능하다.

쉬이잇! 쒜엑!

허공으로 솟구치며 내지른 검에 비적단의 몸이 꿰어졌다.

사령은 검을 꽂은 채, 몸으로 상대를 밀치고 들어갔다. 바로 뒤에 있는 다른 자에게 달려들었다.

퍼퍼퍽!

다른 자가 당황해서 동료의 등을 후려쳤다.

그 순간, 사령은 죽은 자의 몸에서 검을 빼냈다. 그리고 뒤에 있는 자를 향해 칼을 검을 던졌다.

쒜에엑! 퍼억!

비적이 검을 머리에 꽂은 채 훨훨 날아가 떨어졌다.

사령은 방금 죽은 자의 칼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즉시 옆으로 휘둘렀다.

까앙! 깡!

그를 노리고 급하게 달려들던 칼이 멈춰 섰다.

사령과 칼을 맞댄 자는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받았을 것이다. 손을 움찔거리면서 연신 뒤로 물러섰다.

사령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한 명을 치고, 또 한 명을 친다.

“크아아악!”

비적단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나가떨어졌다.

허도기는 고행을 원한다.

사령은 허도기의 주문에 맞춰서 지니고 있던 물도 버렸다.

온몸은 피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걸을 때마다 모래가 풀썩이며 달라붙는다.

뜨거운 폭양이 살을 태운다. 몸에 묻은 피를 딱딱하게 굳힌다.

사령은 흉신악살이나 다름없는 몰골로 사막을 걸었다.

입술이 바짝바짝 탄다. 물을 괜히 버렸나? 아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허도기가 원한다.

마유를 풀어주겠다는 약속은 자기가 어겨 놓고 오히려 큰소리를 땅땅 친다.

스읏!

사령을 힘들게 모래 언덕으로 올라섰다. 그러자 두 눈이 시원해졌다. 갑자기 드넓은 호수가 나타났다. 완전한 옥빛, 시퍼런 호수가 눈앞에 찰랑거린다.

녹주(綠洲:오아시스), 광해(廣海)라고 불리는 녹주다.

‘찾아왔어.’

사막을 걸으면서 혹여 길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다. 사막은 처음 와보는 것이라서 모든 게 당황스러웠다. 땅은 넓은데, 어디로 움직이든 모두 엉뚱한 곳으로 갈 것 같았다.

녹주 한쪽에 일단의 무리가 있다.

대형 천막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지만…… 사령은 녹주 가까이에 있는 넓은 차양에 눈길을 주었다.

그곳에는 대나무로 만든 나무 침상이 있다.

한 사람이 누워 있다. 두 여인은 발치에 쪼그리고 앉아서 다리를 주무른다. 또 한 여인은 머리맡에 앉아서 어깨도 주무르고, 과일도 사내의 입 안에 넣어주고 있다.

스스륵!

사령은 모래 언덕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제대로 걸어서 내려갈 수가 없다. 발을 내딛기만 하면 저절로 쭈르륵 미끄러진다.

차양 아래 누워 있는 사람은 역시 허도기다.

그는 팔자 좋게 드러누워서 뜨거운 폭양을 즐기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 누워 있는데도 무척 시원해 보인다. 허도기 앞에 넓은 녹주가 찰랑거리고 있어서일까?

“응? 사령 아닌가? 여기는 무슨 일로?”

허도기가 물었다.

사령은 허도기 앞으로 가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돌이켜 생각해 봤습니다만 아무래도 충성을 바칠 분은 공부뿐인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응? 이건 사령의 모습이 아닌데? 사령은 늘 당당하고 힘이 넘쳤잖아? 힘이!”

허도기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거두어 주십시오.”

사령이 머리를 숙였다.

“싫어. 자넨 마인 아닌가. 마인을 거뒀다가는 명부판관에게 혼나. 그러잖아도 명부판관이 나쁜 자들을 혼꾸멍 내주고 다니는데, 나보고 그 마수에 걸려들라고? 싫어. 싫어.”

허도기가 고개를 내돌렸다.

“명부판관, 최대한 빠른 시일에 처리하겠습니다.”

“아! 아니야, 아니야. 뭔가 오해한 거 같은데. 내가 바라는 건 싸움을 방해하면서까지 일부러 살려 준 명부판관을 다시 죽이라는 말이 아냐.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하지?”

“그때 일은…… 죄송합니다. 솔직히 그때는…… 제가 미쳤습니다.”

“명부판관이 안 나올 수도 있었는데, 나왔어. 안 그래? 그때 아걸을 제거했다면 벌써 저 나라는 내 손에 들어왔을 텐데. 넌 아주…… 아! 이러면 안 되지.”

타앙!

허도기가 옆에 있던 과일 그릇을 던졌다.

그릇은 정확하게 사령의 검을 맞췄다.

허도기의 말을 듣던 사령이 검을 뽑아서 막 자신의 팔을 잘라가던 참이었다.

오음산에서 아걸을 살려준 대가로 팔 하나를 우선 바치려고 했다. 사실 그때는 아걸을 살려 놓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더 나아 보였다. 허도기를 견제하기에. 그렇지 않으면 마유를 지상에서 없애 버릴 사람이니까.

“명부판관을 제 손으로 죽이겠습니다.”

사령이 다시 머리를 숙였다.

“그게 아니야. 명부판관은 이십사 문주가 이미 처리하고 있어. 명부판관은 정당하게 처리해야지, 암수를 쓰면 안 돼. 마검에 죽일 수는 더더욱 없고. 누구 영웅 만들어 줄 생각이야?”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시해 주십시오!”

“쯧!”

허도기가 혀를 찼다.

“정 뜻이 그렇다면 야천이나 어떻게 해 봐. 야천.”

허도기는 여전히 야천에 집착한다. 그놈의 명성이 뭐라고. 명성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

명부판관을 보니까 대단한 것 같기는 하다. 한 번 사람들한테 이렇다고 인상을 주면 영원히 그렇게 된다.

무인들이 가지는 별호가 단순히 무공의 특성을 나타낸다거나 어느 지역에서 두드러진 무위를 나타내는 자 정도로만 인식했는데…… 별호의 힘이 말 못 할 정도로 강하다.

아마도 별호가 지닌 힘을 제대로 써먹는 사람은 아걸밖에 없을 것이다.

허도기가 바라는 것이 그것인가?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에 흡족한 답을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몰골이 그게 뭐야? 가서 씻어. 여기 물 많아.”

허도기가 녹주를 가리켰다.

“네.”

사령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분노가 치민다. 이건 뭔가? 마치 용서라도 해 준다는 말투이지 않은가. 그래도 마유를 이끄는 수장에게…… 이 무슨 어린애 같은 모욕질인가.

하지만 내심을 겉으로 표시할 만큼 미숙하지는 않다.

“그럼!”

사령이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녹주로 갔다.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가서 몸을 씻기 시작했다.

뜨거운 폭양 아래 있는 맑은 물.

사막의 물은 멀리서 보면 맑아 보여도 가까이 다가가 보면 썩어 있는 게 태반이다. 또 사막의 물은 염분 기가 있어서 상당히 짜다. 동물은 먹지만 인간은 먹지 못한다.

광해 녹주의 물은 먹는 물이다. 지하에서 계속 물이 솟구친다고 들었다. 그때,

두두두두! 히히히힝!

모래 언덕 너머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두 필이 아니다. 지축이 울릴 정도로 많은 말이 달려오고 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린다.

‘비적대? 흑사단이 전부 모인 건가?’

사령은 피식 웃었다.

허도기는 사막에서도 일인자다. 사막을 장악하고 있는 비적대가 허도기에게 꼼짝하지 못한다.

히이이이잉!

거친 말 울음소리와 함께 말 한 필이 모래 언덕 위로 올라섰다.

말 한 마리 사람 하나. 말 두 마리 아니 말 열 마리 사람 열 명. 말 백 마리 사람 백 명…….

“웃!”

사령은 깜짝 놀랐다.

말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하얀 광목을 둘둘 말아 감은 것처럼 이상하게 만든 옷을 입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하얀 천으로 둘둘 말아 감았다.

서역인(西域人)들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칼은 파사도(波斯刀)라고 불린다. 반월도(半月刀)와 흡사하게 휘어졌다. 전형적인 베는 칼이다. 마상도(馬上刀)로 쓰기 딱 좋다.

실제로 이들은 기마전에 능하다. 질풍처럼 달려가서 단숨에 적을 쓰러뜨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역인들이 모래 언덕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두두두두두두!

멀리서 말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때가 임박했나!’

사령은 물속에 서서 멍하니 모래 언덕만 쳐다봤다.

‘요즘 북해 합륭국이 자주 국경을 자주 건드린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쪽도?’

허도기가 북해를 다녀간 다음부터 합륭국의 침습이 심해졌다.

사실 사령조차도 허도기가 세외 팔국을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을 눈으로 보니 믿지 않을 수 없다.

허도기는 이들을 움직일 수 있다.

도대체 허도기가 어떤 미끼를 던졌기에 이들이 움직이는 것일까?

두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크게 울리자, 언덕 위에 늘어서 있던 기마병들이 좌우로 쫙 갈라졌다.

그 사이로 백마를 타고 흰 광목을 두른 자가 나타났다.

그는 잠시 멈추는 듯하더니 이내 언덕을 달려 내려왔다.

그자가 나타나자 허도기도 침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반갑다는 듯 두 팔을 활짝 펼쳤다.

휘릭!

그가 말 위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리고 반갑게 달려와서 허도기를 꽉 부둥켜안았다.

두 사람은 곧 사령이 알아들을 수 없는 서역 말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허도기가 누워 있던 침상에 같이 앉았고, 과일을 같이 집어 먹었다.

서역인들은 이미 전쟁 준비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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