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42화 (442/600)

第八十九章 만심절도(滿心絶刀) (2)

“수련하겠습니다.”

아걸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툭 던졌다.

“응? 뭘 한다고?”

“수련해야겠어요.”

“갑자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너 미쳤냐?”

아삼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아걸을 쳐다봤다.

아걸은 이제 겨우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정도다. 한데 수련이라니?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그렇지, 지금과 같아서는 반철도를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다.

또 지금은 반철도를 줄 수도 없다.

아삼은 이제 막 반철도의 형태를 잡았다. 본격적으로 날을 갈고 손잡이도 만들어서 끼워 넣어야 한다. 그런 후에도 도신에 실금이 가지 않았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할 일이 많다.

“적당한 동굴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 말에는 아삼뿐만이 아니라 은거 무인들까지 모두 아걸을 쳐다봤다.

동굴까지 생각했다면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벌써 수련 계획을 잡은 것 같다. 몸이 아프니 폐관 수련은 아닐 테지만, 동굴을 운운하니 독립적으로 떨어져서 수련할 것 같다.

“정말 수련할 거야?”

장태전이 물었다.

“일단 촛불 수련부터 했으면 하는데.”

“뭐? 촛불 수련? 하하! 난 또 뭐라고.”

장태전이 빙긋 웃었다.

“그건 뭐 하려고?”

아삼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촛불 수련이라는 말에 은거 무인들도 고개를 돌리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쌍겸은 낫을 숫돌에 갈았다.

장태전은 화차(花茶)를 음미하는 중이다. 근처 도문에서 얻었다는데 향기가 매우 좋다.

아걸이 말한 촛불 수련은 대체로 중상급자 정도 되는 수준에서 시작한다.

촛불 수련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가장 일반화된 것이 일렁거리는 촛불을 베는 수련이다. 이 정도는 하급자나 중급자도 시도하곤 한다. 일렁거리는 촛불에서 초는 건드리지 않고 심지만 잘라내는 거다.

상급자로 들어서면 촛불을 벤다. 심지를 베는 것이 아니라 일렁거리는 순간을 벤다.

물론 이런 수련을 하려면 안공이 매우 뛰어나야 한다. 먼저 촛불을 주시할 수 있도록 안공 수련을 먼저 하고, 촛불의 움직임을 명확히 볼 수 있을 때쯤 베는 수련으로 들어간다.

일렁거리는 한순간에 불길을 베어낸다.

이 정도 되면 굉장한 상급자다. 촛불을 벨 때쯤에는 이미 고수라는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은거 무인도 모두 한 번씩은 해 본 수련이다.

물론 아걸도 촛불 수련을 했다. 그것도 아주 어렸을 때 했다.

아걸 무공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몰안은 촛불 수련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 수련을 다시 하겠다는 말은 기분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자신의 무공을 돌이켜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촛불 수련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반철도를 휘두를 필요는 없다.

촛불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수련은 충분하다. 그 외에 촛불을 베는 행위는 부수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아걸 정도 되면 굳이 칼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적당한 동구를 찾아 주세요. 초도 넉넉하게 준비해 주시고.”

“그냥 편히 쉬지?”

“내 생각도. 지금은 뭘 하는 것보다 그냥 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쉬는 것도 약이거든.”

은거 무인들이 만류했다.

사실, 아걸 정도 되면 굳이 촛불 수련을 할 필요가 없다. 아니, 촛불 수련을 하기 위해서 동굴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지금처럼 방 안에 누워서도 그 정도의 수련은 충분히 가능하다.

천장에 점 하나를 찍는다. 그러면 그 점이 촛불이 된다.

점을 주시한다. 점이 촛불처럼 흔들린다고 상상하면서 주시한다. 그러면 정말로 점이 움직인다.

언제 어디서나 이 수련을 할 수가 있다.

굳이 어둠을 찾아서 촛불을 켜 놓는 형식을 취할 필요가 없다.

“아! 정말 말들 많네. 귀까지 따갑잖아. 내가 수다쟁이 여자와 있나?”

아걸이 농담으로 말했다.

“뭐! 여, 여자! 하! 노인네는 우리를 완전 게으르고 무지한 놈 취급하더니 손자는 아예 그냥 성을 바꿔버리네. 조손이 입을 맞춘 건가? 오늘 왜 이러지?”

쌍겸이 투덜거렸다.

“하하하!”

무인들이 호쾌하게 웃었다.

아걸이 촛불 수련을 한다고 하면 굳이 말릴 이유가 없다.

다만 동굴에는 햇빛이 들지 않는다. 상처 치료에는 따뜻한 햇볕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데. 햇볕을 쬐는 것과 음습한 동굴에 있는 것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

음습한 동굴이 상처에 좋지 않을까 봐 염려된다.

빨리 회복하려면 동굴에서 기거하는 것보다는 쾌적한 곳에 누워 있는 편이 훨씬 좋다. 하지만 본인이 굳이 동굴에서 기거하겠다면 어쩔 수 있나.

“내가 알아볼게. 여긴 뭐 동굴 천지야. 어중이떠중이 도사들이 하도 굴을 뚫어 놓은 탓에. 찾아보면 널찍하고 괜찮은 곳이 있을 거야. 한 번 찾아볼게.”

황열이 말했다.

황열은 딱 좋은 곳을 찾아냈다.

동굴은 매우 넓고 편했다. 다만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짙은 약초 냄새가 후각을 콱! 찔렀다.

“이게 무슨 냄새죠?”

“난들 아나? 먼저 있던 놈이 연단술에 관심이 있었나 봐. 이것저것 약초들을 모조리 때려 넣고 팍팍 끓이다가 사라진 거지 뭐. 이런 냄새는 괜찮지? 신경 쓰이면 말하고.”

“상관없습니다.”

아걸이 대답했다.

약초 냄새는 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충들을 물리쳐 주는 역할을 한다.

황열도 그런 점 때문에 이곳을 택했을 것이다.

동굴 안에는 푹신한 침상까지 놓여 있었다. 은거 무인들이 일부러 동굴까지 침상을 날라 주었다.

“이렇게 안 해 주셔도 되는데.”

“워낙 귀하신 몸이어야 말이지. 이렇게 모시는 것도 이번 한 번뿐이야! 다음에는 길에서 얼어 죽어도 모른 척할 거니까, 절대 다치지 말라고.”

황열이 아걸을 조심스럽게 침상에 뉘며 말했다.

“촛불 수련이라면 어두운 게 좋지?”

“네.”

“그럴 줄 알고 문짝도 만들어 놨다. 동굴 입구에 걸쳐만 놓을 거니까 빛이 조금은 들어올 거야.”

“감사합니다.”

“초는 두 시진은 갈 거야. 식사 가져올 때 새 걸로 갈아 주면 되고. 하루에 세 번만 갈아 주면 되지? 잠은 충분히 자야 해.”

“네.”

아걸은 만족했다.

탁! 탁탁!

촛불이 타들어 간다.

아걸은 하염없이 촛불을 쳐다봤다.

촛불은 시선을 빼앗아간다. 머릿속이 텅 빈다.

맞나?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얼핏 생각하면 촛불을 지켜보면 무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정반대로 온갖 망상이 일어난다.

사람은 그렇게 끈기 있는 동물이 아니다. 조금만 가만히 있어도 견디지 못하는 동물이다.

일단 촛불을 쳐다보면 지루해진다. 그리고 지루함이 망상을 불러온다.

육체적인 현상도 일어난다. 촛불을 쳐다보면 눈이 아파온다. 눈가가 뻐근해지고, 연신 두 눈이 끔뻑거린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눈물까지 흐른다.

그런 수련도 있긴 하다.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고, 핏빛으로 충혈이 되어도 계속 촛불을 쳐다보는 수련이 있다.

무인은 검이 몸을 찔러도 냉정하게 검신을 쳐다볼 줄 알아야 한다. 검이 몸을 찌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동요 없이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단단한 눈이 있어야 한다.

촛불을 보면서 그런 힘을 기를 수 있다.

촛불 수련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매우 어렵다. 어떤 수련을 하느냐에 따라서 얻어지는 것도 천차만별이다.

아걸은 촛불을 쉽게 쳐다볼 수가 있다. 몰안을 유지하면 된다. 진기를 일으켜서 모든 감각을 떨쳐 낸다. 오직 두 눈만 살아서 움직이도록 만든다.

아걸은 언제까지고 무심한 마음으로 촛불을 지켜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이게 법이다.

아걸이 다시 수련하고자 하는 촛불 수련은 법을 일으키지 않는다. 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 촛불을 쳐다보듯이 멍하니 쳐다본다.

보통 사람은 촛불을 쳐다보면 망상이 일어난다.

아걸도 망상이 일어난다. 다만 망상이 일어나면 ‘아! 내가 망상 속에 휘둘렸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촛불을 쳐다본다. 하늘거리는 불꽃을 본다.

몰안을 일으키지 않고, 진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두 눈으로만 촛불을 본다.

이런 수련은 무궁 수련이라기보다는 참선에 가깝다.

타탁! 타탁! 타타탁!

촛불이 일렁거린다.

촛불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단지 촛불만 보는 게 아니다. 나 자신도 본다. 내가 있고 촛불이 있다. 촛불이 움직이면 내 눈도 움직인다. 촛불을 따라서 움직인다. 촛불의 움직임에 대응해서 눈동자가 움직인다.

이런 움직임을 쫓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망상이 일어날 틈도 없다. 실질적으로 지금 일어난 움직임에 대응하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저 움직임이 검이라면, 즉시 대응해야 한다.

이건 매우 강력한 공부다.

아직 수련 초입이라서 모르겠는데, 아마 밤이 깊어도 잠조차 오지 않을 것이다.

아걸은 계속 움직였다.

하나에 하나.

촛불 움직임에 내 움직임도 하나.

그는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침상 위에 누워 있다. 하지만 촛불의 움직임에 따라서 영혼 전체가 흔들린다.

덜컹!

동굴 입구를 가렸던 나무판자가 치워졌다.

“잘 되냐?”

할배다. 할배가 밥과 녹즙을 들고 들어왔다.

“밥부터 먹을래, 치료부터 할까?”

할배가 말했다.

아걸은 촛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촛불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 그러다 보니 할배와 말조차도 나눌 수 없다.

말을 하려고 입을 열면 촛불의 움직임을 잃어버린다. 검인 날아오는데 눈을 감는 것과 같다. 움직임을 계속 쫓아가야 한다. 시선을 떼어서는 안 된다.

아걸은 멍하니 촛불만 쳐다봤다.

아삼은 즉시 아걸의 이상한 상태를 알아챘다.

“너 뭐 하냐?”

아삼이 아걸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아걸도 할배가 쳐다보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눈동자를 돌리지 못한다. 오직 촛불의 촛불만 쳐다본다.

“너 인마! 왜 이래!”

아삼이 깜짝 놀라서 아걸의 완맥을 와락 움켜잡았다.

츠으읏!

아삼이 진기를 불어넣었다. 진기로 진기를 살피고 있다. 아마도 주화입마를 염두에 둔 모양이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아걸은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촛불의 움직임…… 촛불이 있고 내가 있다. 촛불이 움직이고 내가 움직인다.

이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웃기는 말이지만 심신이 매우 상쾌해진다. 굉장한 황홀감, 쾌락이 일어난다. 도신일체를 극한 상태로 이끌었을 때 일어나는 쾌락과 흡사하다.

아걸은 전혀 괴롭지 않았다. 촛불에 얽매였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촛불을 보는 게 즐거웠다. 아편에 중독된 사람처럼, 쾌락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인마!”

탁!

할배가 아걸의 머리를 쳤다.

“응?”

아걸은 그제야 눈을 끔벅거렸다. 그리고 할배를 쳐다봤다.

아걸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각하고 있다. 아편 같은 것에 중독된 사람과는 전혀 다르다. 명쾌하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 쾌락을 느낀다.

“그거참…… 한참 수련 중이었는데.”

아걸이 입을 열었다.

아걸은 말을 하면서 입에서 단내가 난다고 느꼈다. 몇 날 며칠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참선하던 사람이 드디어 입을 열었을 때, 입에서 묵은내가 나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 들었다.

“너 뭐 하고 있었냐?”

“수련한다고 했잖아.”

“수련이 아니라 너 완전히 미친 것 같았어. 정신이 쏙 빠진 거 같았다고. 진기가 이상하진 않고?”

역시 할배는 주화입마를 생각했다.

“괜찮아. 치료부터 해. 어쩐지 배가 안 고프네.”

아걸이 말했다.

배만 안 고픈 게 아니다. 아프지도 않다.

아걸은 전혀 진기를 일으키지 않았다. 전신 감각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이 상태는 몰안과는 분명히 다르다.

물안을 일으켜도 통증을 느끼지 못할 수가 있다.

이때 통증을 못 느끼는 현상은 통각을 일부러 죽여 버리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 아걸은 통각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통증을 못 느꼈다. 몸과 마음이 합일돼서 일어나는 정신 합일의 쾌감이 통증을 눌러 버렸다.

몸에서 일어난 통증보다 머릿속에서 일어난 환희가 더 컸다.

어떠한 통증도 느끼지 못할 만큼 기쁘고 황홀했다.

몰안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지금 일어나는 무통증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스읏! 스으으읏!

아삼이 붓으로 녹색 즙을 적셔서 아걸의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아걸은 녹선마황의 즙액이 몸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단지 시원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약효가 살 속으로 스며들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모든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감각이 예민해졌다.

촛불 수련을 한 지 단지 하루다. 아니, 이제 한 시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건 정말 무서운 공부다!’

아걸은 촛불로 눈길을 던졌다.

이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두렵다. 이 공부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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