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44화 (444/600)

第八十九章 만심절도(滿心絶刀) (4)

“이 정도면 다 본 것 같은데.”

공검문주(空劍門主)가 말했다.

아걸의 무용담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아걸이 어떤 행보를 거쳐 왔는지도 잘 안다.

그것을 이번에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걸이 어떤 싸움에서 무슨 무공을 사용했는지, 어떻게 강자를 죽였는지.

이제 기준을 세울 차례다.

“총관.”

공검문주가 총관을 불렀다.

“네.”

“진개님에게 제안을 전해 주겠나?”

“네. 말씀 주십시오.”

“비공식적으로 비무를 요청한다고 말씀드리게.”

“진개님하고요?”

“그렇게 말하면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

“그럼 공검문주님에 직접……?”

“내가 하지. 그렇게 전해 주시게.”

그때, 팔천검문 문주가 불쑥 나섰다.

“아니. 공검문주님, 이 비무는 제게 양보해 주시죠. 진개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한 수 배워 봐야겠습니다.”

팔천검문 문주가 입가에 잔소를 베어 물며 말했다.

그는 대청에서 진개하고 거친 입씨름을 했다. 옆에서 말리는 바람에 눈싸움이 진검 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부딪쳐 보지’하는 악감이 자리 잡았다.

“진개님은 진검 싸움만 하시는데…….”

“가서 말씀만 전해 주시게.”

“네. 알겠습니다.”

총관이 허리를 숙였다.

이 싸움은 진검 싸움이 아니다. 혈무대 비무처럼 생사를 건 싸움이 아니라 기준을 정하는 싸움이다.

진개는 비무를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이쪽 진영에서 아걸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은 진개밖에 없다. 아걸과 직접 검을 맞댄 사람이 필요한데, 모두 죽었다. 그나마 진개가 아걸과 겨뤄 봤다.

그가 아걸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 있게 말해 줘야 한다.

소축십검은 분명히 이십사 문주를 능가한다. 그 정도는 안다. 사실은 옛날이나 그랬지 지금은 비등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객관적인 평가가 그렇다.

소축십검이 앞선다면 어느 정도나 능가하는지, 압도적인지 아니면 겨우 한 끗 차이인지…… 그런 점을 알고 싶은 것이다.

“팔천검문주. 비무를 하더라도 살살. 여기서 어색해지면 서로가 곤란하지 않겠소.”

“후후! 나도 살살하고 싶은데, 그놈이 그렇지 않을 거라서. 검에는 눈이 없으니 어디로 향할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공부께서는 이해해 주실 거요.”

팔천검문주는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덜컹!

문이 열리면서 외팔이 사내 진개가 들어섰다.

진개의 손에는 목검이 들려 있었다. 비무를 왜 청하는지 이유를 알아챈 것이다.

“나와와 비무를 하자고 했다고?”

진개가 후원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팔천검문주가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내가 하자고 했어.”

“그래. 들었다.”

진개가 거침없이 하대했다.

진개는 마흔이 조금 넘었다. 팔천검문주는 환갑에 가깝다. 연배로 보면 존칭을 써야 한다. 예의범절을 무시하지 않는 명문 정파의 무인이니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진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기.”

총관이 급히 팔천검문주 앞으로 다가서며 목검을 내밀었다.

혈무대 비무가 아니니 수련하는 것처럼 목검 비무로 하는 것이 상례다.

그때, 진개가 말했다.

“팔천검문주 같으면 진검을 사용해도 무방한데.”

완전한 비아냥이다.

“진검을 사용해도 좋다면. 나도 내 검이 손에 익어서.”

팔천검문주가 총관을 쏘아봤다.

“휴우!”

총관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목검을 지닌 채 물러섰다.

한 사람이 진검을 사용해도 좋다고 하고 또 한 사람은 그걸 받아들였다.

차앙!

팔천검문주가 검을 뽑았다.

진개가 말했다.

“내 무공은 직사광류다. 내가 가장 애용하는 검초지. 그 속에 은장재계이살을 숨겨. 검 속에 암수를 숨기는 건데, 비겁하다고 해도 할 수 없고.”

은장재계이살은 암수가 아니다. 조명십해 중 하나로, 고도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살수다.

“그 무공을 펼쳤는데, 서리가헌 그 자식이 내 팔을 잘라 버렸어. 그 당시, 서리가헌은 아걸에게 당해서 팔 하나를 잃은 상태였거든. 그럼 어느 정도 비교가 되지?”

진개는 목검을 들러서 옷자락만 펄럭이는 오른팔을 툭 쳤다.

“지금 내 무공은 좌수검법이야. 하지만 오늘은 좌수검법을 사용하지 않을 거고.”

진개가 목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이 목검으로 예전처럼 직사광류를 펼쳐 보지. 은장재계이살을 섞어서. 보고 싶은 부분은 다 볼 수 있게 천천히, 자세히 보여 줄 테니까. 하하하!”

진개가 거칠게 웃었다. 그리고 진기를 끌어냈다.

파아아앙!

순간, 진개의 몸에서 매우 강한 기운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마기(魔氣)!’

진개가 마기를 드러낼 리 없다. 성검문이 아닌가. 소축십검이 손댈 게 없어서 마공을 수련하겠나. 분명히 마기는 아닌데, 마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매우 강한 기운이 뻗어 나왔다.

“으음!”

마주 선 팔천검문주가 침음했다.

진개의 무공이 변하고 있다. 강렬한 마기에서 패도적인 강기(剛氣)로 변해간다. 힘이 넘쳐서 마기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도대체 소축십검은 어떤 무공을 수련한 것인가!

꾸욱!

팔천검문주는 검을 단단히 잡았다.

팔천검은 모두 팔 식으로 이루어졌다. 천(穿)이란 뚫는다는 뜻이다. 단지 찌르는 것이 아니라 뚫어 버린다. 보통 찌른다는 행위보다 더 깊다.

강한 쇳덩이도 찌른다. 연약한 무도 찌른다.

무와 쇳덩이를 찌르는 게 같을 수 없다. 쇳덩이는 아주 강한 힘으로 찔러야 하고, 무는 힘을 주지 않아도 찌를 수 있다. 찌르는 방법이 다르다.

팔천검문주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찌르는 방법을 연구한 끝에 여덟 가지로 집약시켰다.

이것이 팔천검이다.

팔천검문 문도는 입문하는 날부터 찌르는 수련을 시작한다. 마유 마인들이 사용하는 백인검처럼 팔천검문도 오직 찌르는 한 수에만 전심전력한다.

언제 어느 순간에 암기가 날아와도 찔러서 쳐 낼 수 있을 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팔천검 수련에 들어간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이미 찌르는 수법에 대해서 기본을 습득한 후이기 때문에 다른 초식은 매우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

팔천검문 문주가 검을 눈 위치까지 높이 들어 올렸다.

저벅! 저벅!

진개는 팔천검문주의 검이 보이지 않는지 거침없이 걸어왔다. 반면에 문주는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기운에서 밀린다.

문주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음!”

“이거야 원…….”

이십삼문 문주가 나직이 탄식했다.

진개의 전신에서는 어떠한 허점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철갑을 뒤집어씌운 거 같다.

“공격하지 못하겠나?”

진개가 서서 웃었다. 비웃음인가? 순간!

’틈!’

쒜에엑! 쒜엑!

팔천검문주가 쾌속하게 검을 뻗어냈다.

파파파팟! 파파팟!

순식간에 십칠 검이 터졌다. 찌르고, 후려치고, 다시 찌르고…… 찌르는 검이 요체다. 하지만 중간중간 베는 검과 후려치는 검이 섞여서 혼란을 일으킨다.

파랑!

진개의 몸은 곧 검기에 휘감겼다.

“팔천검이 더욱 깊어졌군. 옛날의 팔천검이 아니야.”

활검문주가 탄성을 토해냈다. 한데,

꽝!

한순간, 화약이 터지는 듯 격렬한 충돌음이 일어났다.

진개가 어느새 목검을 쳐 냈다. 그가 펼쳐 낸 직사광류는 팔천검보다 훨씬 빨랐다. 팔천검이 십칠 검을 펼치는 동안, 일 초도 뻗어내지 못했는데…… 목검을 들자, 천지가 격동했다.

“크윽!”

팔천검문주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일 초 격퇴!

말이 안 되는…… 이십사문 문주가 외팔이 검객에게 일 초에 패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으음!”

문주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팔천검문주는 검든 손을 밑으로 축 늘어트렸다. 단 일격을 부딪쳤을 뿐인데, 손목에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검을 들고 있는 손이 부르르 떨린다.

“지금 내가 펼친 공부는 그 당시 서리가헌과 싸울 때와 비슷해. 이 무공으로 팔이 잘렸다고. 아걸에게 팔이 잘린 놈에게. 그러니 아걸과 부딪쳤다면 죽었겠지? 하하하!”

진개가 웃었다.

“난 사부님의 뜻을 모르겠어. 아무래도 이 싸움은 일방적인 패배 같은데 말이야. 좌우지간 당신들이 아걸과 어떻게 싸우는지 지켜보지. 또 내 검이 보고 싶은 사람?”

진개가 문주들을 돌아봤다.

문주들은 침묵했다.

이건 차이가 너무 난다. 문주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깨달았다.

진개의 무공은 문주들이 넘볼 정도가 아니다. 지금쯤은 비슷해졌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또 진개는 ‘지금 펼친 공부’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의 무공은 옛날보다 훨씬 더 발전했다는 말이지 않나.

그런데도 진개는 여전히 아걸을 두려워하는 듯하다.

진개가 팔이 잘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병신! 오죽했으면 팔이나 잘리고 다녀’ 하고 비웃었다. 그것도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하지만 이제는 비웃을 수가 없다.

진개가, 쓰레기 진개가 이토록 커 보이기는 처음이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본 결과,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명부판관이 공격해 오면 당하는 수밖에 없다. 저항하는 방법이 없다. 그가 지명하는 자를 순순히 내주는 게 상책이다.

그것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협살을 선택해야 한다.

문주들은 개방 타구진을 떠올렸다. 개방 타구진에는 이천 명 이상이 동원된다.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서 수천 명이 운집한다. 같이 공격한다.

하지만 타구진을 욕하는 사람은 없다.

활검문이나 공검문이 타구진을 펼친다고 해도 욕할 사람이 없다. 자파의 진법이든 타파의 진법은 진법은 사용할 수 있다. 용인된다. 펼칠 수만 있다면.

그것은 협살로 보지 않는다. 진법으로 인정해준다.

하지만 스물세 명의 문주가 연합해서 진을 펼치면 그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상은 당장 이십삼 위문을 욕한다.

스물세 명이 손을 합친 것, 연수합공이 된다. 비겁한 자들이 똘똘 뭉쳐서 한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듣는다.

이게 참 무서운 논리다.

물론 개방 타구진을 사용할 수도 없다. 진법의 묘리를 알지 못한다. 이십사문 중에는 진법을 쓰는 문파도 있지만, 아걸을 잡을 정도는 되지 않는다.

“총관.”

공검문주가 다시 총관을 불렀다.

“네.”

총관은 항시 대기하고 있다. 불편하거나 할 말이 있을 때는 총관을 부르면 된다.

“여기 오기 전에 문주님이 선물을 주실 거라고 했는데. 문주님한테서는 아직 아무 연락도 없나?”

“선물은 진작 드렸는데요.”

공검문주가 총관을 쳐다봤다. 무엇을 주었냐는 물음이 눈길에 담겼다.

총관이 벽에 걸린 족자를 가리켰다.

“저기.”

족자에는 강렬한 붓놀림으로 선이 굵은 산수도가 그려져 있다.

험악한 산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산수도만 봐도 상당히 깊고 험한 산이라는 것을 알겠다.

“저 그림이 바로 탕산절곡도(碭山絶谷圖)입니다. 수묵화라서 탕산의 모습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는 황톳빛이 강한 산입니다.”

총관이 조용히 말했다.

‘탕산?’

순간 이십삼 문주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탕산! 아걸과 싸우기 딱 좋은 산이다. 안에서는 신나게 싸울 수 있고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이다. 바깥을 통제하면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문주들은 성검문주 허도기의 뜻을 알았다.

“저건 독배인데.”

활검문주가 말했다.

탕산에서 이십사문이 몰살당할 수 있다. 또 아걸을 죽인다고 해도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이기고도 지게 된다. 이건 누가 봐도 독배다.

“후후! 독배라도 안 마실 수가 있나. 마셔야지.”

공검문주가 말했다.

“이건 독배도 아주 지독한 독배인데. 기분이 안 좋아.”

활검문주가 여전히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말씀하시고.”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지독한 독배인 줄 알면서도 마시는 수밖에 없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