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45화 (445/600)

第八十九章 만심절도(滿心絶刀) (5)

“한 달이 얼마나 남았지?”

“며칠 안 남았어.”

“그럼 명부판관은 다시 하는 건가?”

“해야겠지. 목표가 허도기잖아. 결국, 이 행군은 초도성에 들어간 후에야 멈출 거야.”

은거 무인들이 말했다.

이제 곧 명부판관이 활동을 재개할 순간이 왔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아걸이 멀쩡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걸이 한층 더 강해졌다는 점도 마음을 놓게 만든다.

“비석! 호명이야.”

“뭐? 나?”

풀밭에 누워서 마음 편하게 하늘을 쳐다보던 장태전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요즘 들어서 아걸이 더욱 날뛰고 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비무를 하자고 한다. 시작했다 하면 말도 안 되게 무너트리면서 그래도 계속하자고 한다.

“저놈 저거 어떻게 콧대 좀 팍 꺾는 방법이 없나?”

“없어.”

쌍검이 단호하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어떻게 방법을 찾아봐야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묘수가 없을까?”

“없다니까. 빨리 가서 얻어터지고 와.”

“응? 하! 하하하!”

장태전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쌍검과 황열은 비슷하게 싸운다. 낫이나 승표는 분명히 다른 병기인데, 아걸은 같은 병기를 대하듯 엇비슷해 보이는 움직임으로 파훼한다.

지당검 고사와 한항도 비슷하다.

두 사람은 검을 들고 싸우지만, 검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당검은 두 발을 자유롭게 사용해야 하니 그렇다 치고, 한항은 무식할 정도로 가까이 붙어서 검을 쓴다.

이에 대한 대처법도 비슷하다.

아걸은 손발을 맞추듯이 편하게 대응한다. 아무리 난해한 변초를 전개해도 같은 사문에서 같은 무공을 수련한 사람처럼 편하게 대응한다. 이 초식은 나도 알고 있다는 듯이.

나통은 더 웃긴다.

청성파의 절학인 사전절광검이 일순간에 꺾인다.

이쪽에서 번갯불이 튀어 나가면 아걸도 번갯불로 응수한다.

몰안이 더욱 깊어졌나? 몸놀림은 전과 비슷한 것 같은데, 빠름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나마 비석이 망신은 조금 덜 당한다.

비석 장태전의 절기는 남만 토탄사의 비석탄이다. 비석을 날리는 수법이다.

접근전이 없다.

이것이 그나마 망신을 덜 당하는 이유다. 비석탄이 중간에 끊기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갔다 올게.”

장태전이 일어섰다.

풀밭에 누워있던 사람들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이제 아걸이 청하는 비무는 호기심 거리가 아니다. 고통이다. 제발 비무를 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무를 할수록 자신이 형편없는 것 같아서 괴로우니까.

“이건 상대가 안 되는 걸 알면서 왜 자꾸 하자고 해?”

“수련이잖아요.”

“야! 절기가 꽝꽝 막히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심정도 헤아려야지!”

“그런 것까지?”

“뭐!”

“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아걸이 판자를 들어 올렸다.

장태전이 두 손을 등 뒤로 돌렸다. 던지는 순간을 보이지 않으면 조금은 위협을 가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선풍회륜(旋風回輪)으로…….’

“시작할까?”

“네.”

장태전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팽그르르 회전을 일으켰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맴을 도는 선풍회륜 신법이다. 다른 무인들은 쓸모없어서 배우지를 않지만, 비석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매우 중요시한다.

선풍회륜은 비석이 날아가는 시점을 숨겨 준다.

쒜엑! 쒜에엑!

드디어 비석이 날았다.

언제 어디서 터졌는지 알 수 없다. 갑자기 파공음이 터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돌이 날아온다.

비석탄은 매우 빠른 돌팔매질이다. 너무 빨라서 파공음을 듣는 순간, 이미 격타가 이루어진다. 소리를 듣거나, 이상한 예감을 느끼면 이미 늦은 것이다. 그런데,

타탁! 탁! 타타탁!

아걸이 너무도 여유롭게 피해 냈다.

옆으로 몸을 돌리기도 하고, 손에 든 판자로 쳐내기도 한다. 더운 여름날에 부채질하듯이 가볍게 손을 휘젓는다. 그리고 그때마다 비석이 튕겨 나간다.

“으……!”

장태전은 신음했다.

방금 그가 전개한 비석탄에는 십 성의 공력이 실려 있다.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서 던졌다. 그런 돌을 아걸은 장난하듯이 가볍게 피해 내고 있다.

“뭐야? 이제는 막지도 않는 거야? 가만히 서서 막아도 충분한데, 왜 피해?”

“피하는 게 더 편하니까요.”

아걸은 비석을 모조리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을 신법으로 피했다. 어쩔 수 없는 것들만 판자로 쳐냈다.

아걸은 가장 확실하게 피할 방법을 찾는다. 먼저 피하고, 피할 수 없으면 막는다. 서 있는 상태에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도 몸을 써서 피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군. 그럼 이 와중에도 비석탄을 다 봤다는 얘기잖아.”

“조금 봤습니다.”

“다 봤으니까 그런 움직임이 나오지. 너, 앞으로 나한테 비무하자고 하지 마. 더 할 것도 없어.”

장태전이 눈살을 찡그렸다.

그는 아걸에게 몰안이 있다는 것은 안다. 도신일체를 이룬 몸이라는 것도 안다. 아걸의 정신 집중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지금 아걸은 정신 집중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매우 편안하게 서서 대응한다. 그런데도 몰안을 일으킨 것보다 더 밝은 눈으로 비석을 지켜봤다.

확실한 것은…… 비석탄으로는 아걸을 잡아 낼 수 없다는 거다.

조만간 취화원에서 여섯 번째 살첩 대상자를 알려 올 것이다.

아걸이 구화산에 있으니 아마도 이곳에서 하루나 이틀 거리에 있는 곳에서 살첩 대상자를 고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십사 위문은 일단 비켜 간다.

은거 무인들은 주변에 있는 문파나 고관대작들을 살펴봤다. 이번 여섯 번째 살첩 대상자로 과연 누가 지목될지 궁금했다. 한 달 동안 유예기간을 준 다음에 다시 개시되는 활동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경고의 의미가 더욱 강해야 할 것으로 본다.

“오늘이나 내일쯤 올 텐데.”

“오늘 올 거야. 아걸에게도 여유를 줘야지.”

“그렇지? 나는 어떤 놈이 무슨 죄를 지었을지 궁금해서 죽겠다니까. 취화원이 고른 자들은 하나같이 그냥 뒤통수를 빵빵 치잖아. 매번 어찌나 놀라는지.”

한항과 고사가 한가롭게 잡담을 주고받았다.

그대, 멀리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한항과 고사는 즉시 대화를 중지하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상대를 쳐다봤다.

걸어오는 발걸음이 매우 진중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길을 걸어 올라오는데도 빈틈이 전혀 없다. 어디서 공격해도 즉시 반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

무인이다.

구화산은 도교의 성지다.

이곳은 도인들을 생각해서 무인도 발을 들여 놓지 않는다. 구화산은 산적이나 비적도 피해간다. 그들도 도인들이 상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몽설이 아걸에게 이곳을 치료처로 선택해 준 것도 무인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오는 거지?”

“그런 것 같은데.”

“되게 강하지?”

“그래 보여.”

두 사람은 바짝 긴장했다.

걸어오는 자는 상당히 강하다. 은거 무인들과 겨뤄도 전혀 손색이 없다.

누군가? 누가 되었든 좋은 생각으로 오는 자는 아닐 것이다.

저벅! 저벅!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는 얼굴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나이는 대략 오십에서 육십 정도 되는 중장년이다.

허리에는 검을 차고 있다.

한눈에 봐도 내력이 있어 보이는 고검(古劍)이다. 검집에 새겨진 문양이 매우 정교하다. 검을 요대에 묶지 않고, 줄로 늘어트려서 걸을 때마다 찰랑찰랑 움직인다.

확실히 완숙한, 무(武)로 일가를 이룬 모습이 풍긴다.

은거 무인들은 상대를 알아보지 못했다. 워낙 강호에 눈과 귀를 닫고 살아온 탓이다. 강호인이라면 상대가 누군지 즉각 알아봤겠지만, 두 사람은 정말 몰랐다.

사내가 다가와서 두 사람 앞에 섰다.

“이쪽이…… 지당검 고사인 것 같고…… 그쪽은…… 한항?”

오히려 상대가 두 사람을 알아봤다.

“우리가 그렇게 유명했나? 이름까지 알아봐 줄 정도는 아닌데. 당신은 누군데?”

고사가 물었다.

“나도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은 사람이라서. 송가검문(宋家劍門) 섭혼탈명(攝魂奪命) 송하청(宋夏淸).”

상대가 이름을 밝혔다.

고사와 한항은 더는 방심하지 못했다. 상대는 이십사 위문 문주 중 한 명이다. 노정문주와 엇비슷한 무공을 지닌 절정 검수다. 은거 무인쯤은 발아래로 여기는 자다.

“여기는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긴. 아걸을 만나러 왔지. 아걸은 아직도 부상 중인가?”

“부상은. 언제 다친 적이 있다고. 그런 적 없는데?”

“하하하!”

섭혼탈명 송가검문주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밝게 웃었다.

“사람이 안 믿네. 다친 적 없다는데.”

“그렇다고 치지. 어떻게? 연통을 넣어 줄 텐가, 아니면 안내를 해 줄 건가?”

“용건이 뭔데?”

“그건 당사자에게.”

“우리한테 말해도 똑같아. 말해 보지? 무슨 용건인지.”

“일홀도에 도전하러 왔는데, 이런 말도 감당할 수 있나?”

“도전? 하하하! 웬만하면 그냥 가지?”

고사와 한항은 송가검문주가 일홀도에 도전하러 왔다는 데도 놀라지 않았다.

지금은 아걸이 멀쩡하다. 노정문주와 싸울 때처럼 반철도도 들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다. 또 아걸은 그때보다도 훨씬 강해졌다. 그때의 아걸은 지금의 아걸을 이기지 못한다.

상대가 허도기라면 모를까, 다른 자들은 상대가 안 된다.

“지금까지는 좋은 말로 했고. 비키든가 쓰러지든가. 나는 당신들을 벨 준비가 되어 있어.”

스읏!

송가검문주가 검을 잡았다.

“우리 정도는 안중에도 없다? 어쩌나.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용건을 말하든가, 돌아가든가.”

“죽는 게 원이라면. 정당한 비무이니 누구도 원망하지 못할 터. 해 볼까?”

송가검문주는 정말 싸울 생각이다.

파앗!

두 눈에서 살기가 뿜어졌다. 벌써 진기도 팽팽하게 일어났다.

“이거 미치겠네.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나? 좋아. 송가검문주의 검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알아보지.”

고사가 훌쩍 나섰다.

그때 뒤에서 아걸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 형님들, 이번에는 제 손님도 낚아채려고 그러십니까? 저한테 도전한 사람인데, 왜 형님들이 가로채요?”

아걸이 멀쩡한 모습으로 유유히 나타났다.

송가검문주는 너무도 멀쩡한 아걸의 모습에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담담해졌다.

아걸이 송가검문주 앞으로 걸어왔다.

“일홀도에 도전하러 오셨습니까?”

아걸이 정중하게 말했다.

“도전하지. 단! 일시와 장소는 내가 지정한다.”

“뭐 그렇게까지. 칼 한 번 쓰면 되는 것, 그냥 여기서 하면 어떻겠습니까?”

아걸이 편안하게 웃었다.

아걸은 진기를 일으키지 않았다. 위협적인 면모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보통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전혀 강해 보이지 않는다. 이 자가 정말 명부판관, 혈도비자인지 의문스럽다.

“비무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나름대로 나도 제법 명성이 높은 사람이라서. 격식은 차려야지. 그래야 송가검이 일홀도를 꺾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어떻게 하자는 말씀이신지.”

“우리 싸움에 증인을 초빙할 생각이네. 우리 사문 어르신과 강호 대문파 장문인 서너 명 정도. 그 정도는 증인을 서 줘야 일홀도를 어떻게 꺾었는지 말해 주지.”

“그러시죠.”

아걸이 흔쾌히 대답했다.

“날짜는 오는 보름, 시간은 정오. 장소는 탕산 절혼곡. 어떤가? 뭔가 미심쩍은 점이 있으면 소를 미리 살펴봐도 무방해.”

송가검문주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탕산까지는 꽤 먼 거리인데, 늘 있는 비무를 치르러 거기까지 찾아가기도 그렇고. 장소를 변경해도 됩니까? 조금 가까운 곳이었으면 좋겠어서요.”

“통보는 했으니 공고문을 붙이겠네. 누구든 구경할 사람은 오게 할 생각인데. 자네가 오든 안 오든 그건 자유고. 탕산까지가 먼 거리라고 하지만 우린 항상 그곳에서 결전을 벌인 탓에 양보할 생각이 없네. 장소는 무조건 탕산이야.”

“알겠습니다. 가죠.”

아걸이 승낙했다.

“그럼 보름에 보지.”

송가검문주가 뒤돌아섰다.

그는 기습이나 암습 같은 것은 전혀 염려하지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걸어갔다.

“이거 뭔가 찜찜한데. 냄새가 나.”

“그렇지? 나도 냄새를 맡았어.”

고사와 한항이 말했다.

“저 새끼 저거…… 분명히 뭔가 있어. 뒤를 캐볼까?”

고사가 물었다.

“뭐가 있으면 어떻습니까? 자! 형님들 그 문제는 제쳐 두고 우리 비무나…….”

아걸이 두 사람에게 비무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옆에 없었다. 어느새 신법을 펼쳐서 멀리 도망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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