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章 백살도축(百殺禱祝) (1)
아걸에게는 손님이 와 있었다.
고사와 한항이 구화산 동쪽을 보고 있을 때, 손님은 서쪽을 통해서 들어왔다.
손님은 취운이다.
아걸은 구곡주를 너무 잘 안다. 은거 무인들만큼이나 친하다고 생각한다. 몽설이 친언니처럼 따르는 사람들이고, 어려움을 같이 넘어왔다.
사실 취운은 여섯 번째 살첩 대상자를 알려 주려고 왔다.
대체로 이런 일은 부곡주를 시켰지만, 이번에는 아걸의 몸 상태도 살필 겸 해서 그녀가 직접 왔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몽설이 워낙 애끓어 한다.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아걸 상태를 살펴보고 원주에게 전해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몸이 완쾌되신 것 같네요?”
“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호호호! 다행이네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겸사겸사 왔어요. 안부도 살필 겸, 일도 할 겸. 이제 명부판관도 다시 활동을 재개해야 하니까요. 우선 이것.”
취운이 서신을 내밀었다.
여섯 번째 살첩 대상자 이름이 적혀 있는 서신이다.
그때, 아걸이 일어섰다.
“손님이 왔습니다. 잠시.”
“송가검문주는 굉장히 강한 사람이에요. 이십사 위문 문주 중에서도 상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죠. 무공으로 봐서는 일홀도에 도전하는 게 이상하진 않은데…….”
“이건 당분간 못 하겠는데요. 여기서 탕산까지 가려면 바빠서.”
아걸이 살첩 대상자가 적힌 서신을 다시 취운에게 밀었다.
취운이 서신을 집어서 품에 찔러 넣었다.
“이건 당연히 못 하죠. 탕산까지 가려면…… 보름까지는 빠듯해요. 지금 당장 출발하셔야겠네요? 원주님께…….”
“원주에게는.”
아걸이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원주에게는 탕산 비무에 대해서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도…… 안 되겠죠?”
취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리고 송가검문주가 공고를 한다고 했잖아요. 곧 세상 사람 전체가 다 알게 될 텐데.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아시게 돼요.”
“휴우! 또 화내겠네.”
“그러게요. 그런 일을 왜 덜컥 받아들이신 거예요?”
아걸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원주에게…… 이런 말은 좀 그런데…… 걱정하지 말라고, 나 괜찮다고. 그 말도 같이 해 주세요.”
“네. 하지만 상군, 이제 다시는 다치지 마세요. 원주님이 얼마나 애끓으셨는지 아세요?”
“하하!”
아걸이 웃었다.
몽설의 마음을 왜 모르겠나.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을 구화산으로 보내고, 할배를 수소문해서 보낸 것만 봐도 얼마나 애간장이 끓었는지 익히 짐작된다.
아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이제는 절대로 다치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여 주세요.”
“농담 아니라 진심이에요. 일홀도도 좋지만, 몸도 생각하세요. 이러다가는 제명에 못 죽어요.”
“하하하! 장담이 아니라 아마도 이제는 칼을 맞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걸이 자신 있게 말했다.
“네? 그게 무슨……?”
“그런 게 있습니다. 하하하! 원주에게 말해주세요. 이제는 정말로 믿어도 된다고.”
이거야말로 괜한 말이다. 터무니없는 장담이다. 탕산 비무를 받아들인 사람이 할 말은 전혀 아니다.
취운은 아걸이 탕산 비무가 지닌 뜻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도 아걸은 탕산행을 멈추지 않을 테니까.
이번 일은 몽설이 해결해야 한다.
‘휴우!’
취운은 몰래 한숨을 토해냈다.
* * *
“탕산?”
“네.”
“오빠가 그걸 받아들였다고요?”
“즉석에서요.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알았다고 하시던데요.”
몽설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원래 일홀도가 이렇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도대체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터트릴지 모르는 사람이다. 우물가에 어린아이를 내놓은 어미의 심정도 자신처럼 타들어 가지는 않을 것 같다.
“탕산을 비무 장소로…… 장소 지명이네요. 언니, 탕산에 설치할 수 있는 진법이 뭔지 좀 파악해 주세요.”
“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취운이 말했다.
이십삼 문주들은 아걸에 대해서 샅샅이 파악했을 것이다.
일단 무공으로 상대할 수 없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니 일대일 비무를 해 오는 일은 없다.
송가검문주의 비무 신청은 거짓이다.
이십삼 문주는 틀림없이 진법을 펼친다. 하지만 이십사 위문이 가지고 있는 진법에는 대형진이 없다. 무인이 가장 많이 동원되는 진법이 십상진(十像陣) 정도다. 열 명이 한 사람을 공격하는 검진으로 화화문(花火門)이 펼친다.
그 정도 진법으로는 아걸을 상대하지 못한다.
그래서 탕산을 지명한 것이다. 아직 산세도를 보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외부가 통제된 절곡일 것이다. 한 마디로…… 이십사 위문의 합공이다.
이십사 위문의 합공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연합이다.
각 문파에서 이백 명씩만 차출해도 오천 명이다. 저들은 사오백 명 정도씩은 차출할 수 있다. 무공 고하는 차지하고 일단 동원되는 인원만 만이천 명으로 추산해야 한다.
일만이천 명 대 한 명.
이것이 탕산 싸움의 진실이다. 아걸이 맞이해야 할 싸움이다.
이건 상대가 안 된다. 아걸이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다. 더욱이 탕산은 폐쇄적인 절곡이다. 안에 어떤 기관 장치를 설치할지 알 수 없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만 답답해진다.
아걸은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그런 싸움을 받아들인 것인가. 탕산 싸움이 지닌 의미를 정말 모른단 말인가.
그럴 수 있다. 아걸은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탕산 싸움에…… 그 진법에 휘말리면 안 돼요. 무조건 휘말리면 안 돼요. 저들이 어떤 진법을 펼칠 것인지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알겠습니다. 바로 파악하겠습니다.”
취운이 말했다.
이십사 위문이 어떤 진법을 펼칠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탕산 산세도를 들여다봐도 짐작되는 진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을 바꿔 보자. 지금부터 여기서 상군을 죽여야 해. 어떤 방법으로 죽이는 게 좋을까?”
취운이 말했다.
“상군을 공격해서 효과를 본 게 있어요. 가장 먼저 그것들부터 참조하겠죠?”
취운이 관장하는 오곡에는 정보를 분석해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다. 광안조(光眼組)로 불리는데, 인원은 모두 서른 명이다.
그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했다.
“말해봐. 어떤 공격이지?”
“이건 저희끼리 있을 때 늘 말하곤 했던 건데요. 상군께서 위협을 느낀 공격이 세 가지가 있어요.”
“너희들, 그런 것도 말해? 그런데 세 가지? 뭔데?”
“먼저 야구가 상군을 공격한 방법이 있어요. 화약을 둘러맨 인간을 띠로 만들어서 옥쇄시켰는데 상군에게 통하지는 않았지만, 효과는 있었죠.”
“그건 화약을 대량으로 매입해야 해. 이십사 위문에는 그만한 화약이…… 아!”
화약은 있다. 성검문에는 군에서 사용하는 화약이 상당량 축적되어 있다.
“이번에 상군이 큰 상처를 입은 혼염구망진은 당연히 생각할 거예요. 탕산 지형이 혼염구망진을 펼치기에는 다소 부적합하지만, 산 전체를 태워 버릴 생각이라면 못할 것도 없어요.”
“칠절려와 독만 해결되면 되네? 그것도 얼마든지 가능해. 성검문에서 바로 가져갈 수 있고. 흠!”
취운이 침음했다.
“다른 하나는 진평 싸움이에요. 상군이 혈도비자 무명을 얻은 싸움. 대산방 무인 사백삼십팔 명을 죽인 싸움.”
“그건 상군의 일방적인 승리인데?”
“아뇨. 당시 상군께서는 잠도 자지 못하고 오직 싸움만 했죠. 그렇게 몰아붙이면 많은 사람이 죽겠지만, 상군을 죽일 수는 있어요. 저희는 그 당시 대산방에 무인이 백 명만 더 있었어도 상군이 위험했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어요.”
“음!”
“이 세 가지 싸움의 공통점. 물량이에요.”
“물량…… 그렇군.”
야구가 사용한 화약보다 더 많은 화약을 쓴다. 가능하다.
혼염구망진을 더 크게 펼친다. 이번에는 칠절려를 있는 대로 모두 쓴다. 만 개든, 이만 개든, 십만 개라고 해도 모두 쓴다. 그러면 죽지 않을 수 없다. 이것도 가능하다.
아걸을 무인으로 몰아붙일 수 있다.
아걸은 지치지 않는다. 체력이 말할 수 없이 강하다. 거기에 무공도 최강이다.
하지만 탕산 산세가 오십 리나 펼쳐져 있다. 직접 부딪치는 것은 피하면서 오십 리에 걸쳐 괴롭히는 것이다. 잠을 재우지 않고, 밥 먹을 시간을 주지 않고.
결국은 아걸도 쓰러진다.
이십사 위문이 어떤 절진을 펼칠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아걸은 죽는다.
“이 싸움은 말려야 합니다.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취운이 최종 보고했다.
“광안조가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내린 결론이에요. 제 생각도 마찬가지고요.”
“진법은요?”
“일단 산세도만 봐서는 전혀 알 길이 없어요. 그래서 애들을 보냈는데, 애들이 살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미 저들이 방비하고 있을 테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해요. 어렵다 싶으면 바로 물러나라고 해요.”
“네. 탕산에 간 애들이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한다고 가정했을 때, 여기는 완전 지옥이 될 거예요. 상군이 살아날 가능성은 일 푼도 되지 않아요.”
“일 푼이요?”
“네.”
“그것도 광안조 판단이에요?”
“네.”
취운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답했다.
광안조를 데리고 온갖 방법을 모색해 봤지만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일 푼도 높게 쳐준 것이다. 저들이 실수를 크게 한다는 가정도 포함되어 있다.
몽설이 말했다.
“살아날 가능성이 일 푼. 호호! 일 푼이면 충분하네요.”
“네? 충분하다고요? 일 푼이 말이에요?”
“오빠가 추구하는 칼이 일홀도예요. 호호! 일홀도가 뭔데요? 할푼리모홀. 푼을 천으로 쪼갠 게 홀이에요. 일 푼의 가능성이라면 오빠한테는 아주 넉넉한 거예요.”
“그렇게까지…….”
“그렇죠? 그렇게까지 편안하게 생각하는 건 무리죠? 그런데 오빠가 그만한 가능성에 목숨을 던지고 있잖아요. 아마도 전 참 어려운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원주님.”
“호호호! 괜찮아요. 평생 마음 졸이면서 살 각오는 하고 있으니까.”
몽설이 웃었다.
아걸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걸이 싸우겠다고 하면 싸운다. 이번에도 아걸이 직접 비무를 수락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걸은 탕산으로 간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게 좋다. 비록 생각일 뿐이겠지만, 그러면 한결 편안하지 않겠나.
“가서 오빠 좀 만나야겠어요.”
“네.”
취운이 대답했다.
호황위는 한시도 비워둘 수 없다. 아직도 간자 색출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허도기가 살수를 보내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호황위를 저버리면서 직접 움직인다. 몽설이 구화산까지 가서 아걸을 만나려고 한다.
그만큼 사태가 절망적이다.
이번이 아니면 아걸을 만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몸이 최악인 상태에서 노정문주와 싸울 때도 몽설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아걸을 믿었다.
한데, 지금은 흔들린다.
‘아! 이번에는 정말 어려운 싸움이구나.’
추는 탕산 비무가 갖는 무거움을 절감했다.
몽설은 ‘탕산’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을 예측한 것 같다. 그러니 절진 형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광안조가 말한 것들을 몽설은 이미 생각했다.
“상군을 보시거든 싸움 좀 가려서 받으라고…… 안 되겠죠? 이런 말, 아무리 해도.”
“호호호!”
몽설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