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章 백살도축(百殺禱祝) (4)
타타타닥!
몽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들었다.
“하하하하!”
근위대장이 웃었다.
“왜 웃으세요?”
취운이 따지듯이 물었다.
“군주께서 저렇게 급히 뛰는 모습은 처음 봐서. 아마도 낭군을 말리지 못한 거 같은데.”
“말린다고 들으실 분이 아니세요.”
취운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궁금하군.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 군주의 저런 미모로도 발길을 막을 수 없는지.”
“그러게요.”
근위대장의 말을 몽설이 받았다. 그리고 급하게 물었다.
“별일 없었죠?”
“지금까지는 아무 일 없었는데……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 느낌이 싸하다고 할까?”
근위대장이 몽설을 보며 말했다.
“무슨 징조라도 있었나요?”
“징조 같은 건 없었는데, 뭐라고 할까? 동요하는 것 같다는 느낌? 남몰래 모여서 수군거리고, 눈치도 보고…… 바깥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들어왔는데, 궁녀들이 동요할 정도로 심한 내용인 것 같아. 무슨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소문인지 알려드려요?”
근위대장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황상을 모욕하는 말까지 일부러 들을 필요는 없지. 내 앞에서는…… 누구도 황상에게 좋지 않은 말을 못 해. 내 검이 용서하지 않을 거거든.”
“훗! 좋은 생각이에요.”
“군주도…… 탕산 일도 급하겠지만 당분간은.”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할게요.”
몽설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근위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길한 일은 몇 시진 지나지 않아서 바로 일어났다.
“커어억!”
상선(嘗膳)이 피를 토하고 죽었다.
황상 곁에는 시중을 드는 시선태감(侍膳太監)이 있다. 흔히 상선이라고 부른다.
상선은 황상에게 바쳐지는 음식을 기미한다. 황상이 식사하기 전에 음식을 맛보거나 은젓가락을 이용해서 독이 쓰였는지 일일이 확인한다.
상선은 금선옥포(金蟾玉鮑)를 기미했다.
전복, 새우, 까치알, 콩, 오이…… 예로부터 금선옥포는 해미진품지관(海味珍品之冠)이라고 한다. ‘해산물의 왕관’이라는 뜻이다. 맛이 아주 좋아서 다른 해산물과 비교할 수가 없다.
상선은 맛있는 음식을 먼저 먹어볼 수 있는 특권을 마음껏 누렸다.
다음으로 완두황(豌豆黃 : 완두떡)을 기미했다.
그런 후, 피를 토하고 죽었다. 황상에게 올리는 아침 식사 조선(早膳)이 피로 얼룩졌다.
“황상을 안으로 모셔라!”
근위대장이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독이…… 없습니다.”
어의가 완두황을 점검한 후, 말했다.
“금선옥포는 어떠냐?”
“금선옥포에도…… 독이 없습니다.”
“먹어 봐라.”
“네?”
“독이 없다면 직접 먹어 봐. 어의라면 네가 한 말을 지켜야 할 것 아니냐?”
“대장!”
“먹어라. 먹지 않으면 벤다!”
어의는 마지 못해서 금선옥포를 먹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완두황을 짚었다. 독이 없다고 확신하지만, 상선이 죽지 않았나. 어의가 모르는 독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죽는다.
“대장!”
어의가 근위대장을 쳐다봤다.
근위대장은 묵묵히 어의만 노려봤다.
체념한 어의가 완두황을 먹었다. 하지만 멀쩡했다. 상선처럼 피를 토하고 죽지 않았다.
“음!”
근위대장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때, 몽설이 말했다.
“삼인독이에요.”
“삼인독?”
자신할 수 있다. 상선은 금선옥포와 완두황 이외에도 뭔가를 먹었다. 삼인독은 황상을 노린 것이니, 나머지 하나도 음식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어의에게 나머지 음식도 하나씩 맛을 보라고 하면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몽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삼인독…… 이게 말로만 듣던 허도기의 삼인독인가? 옛날 서리가헌과 서리형개가 부모님에게 이 독을 투여했다. 부모님이 삼인독에 중독되어서 힘을 쓰지 못했다.
상선을 피를 토하고 죽었지만, 아버지는 이런 상태에서도 허도기와 싸웠다.
상선의 모습이 처참하다. 독이 얼마나 독한지 얼굴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지독한 독성 때문에 토해 낸 핏물에서 역겨운 시궁창 냄새가 풍긴다.
삼인독은 무색, 무취, 무형이지만 이 세 가지 독이 섞이면 이런 형태가 된다.
“흉수를 잡아야 해요. 수라간을 뒤져 봐 주세요.”
“그러지.”
근위대장이 재빨리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죄송합니다.”
몽설이 머리를 숙였다.
“질부 탓이 아니지. 후후. 알겠는가? 황궁이 어떤 곳인지? 날 지키는 사람이 잠시라도 허술하면 이런 일이 생겨. 이거 참…… 살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이 짧은 시간을 왜 이렇게 뺏지 못해서 안달들인지. 후후!”
황상이 웃었다.
몽설은 민망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걸이 탕산 싸움에 갔다고?”
“네.”
“살아올까?”
“살아올 거예요.”
“살아오면 한번 만나봐야겠어. 어떤 사내인지 보고 싶군. 후후!”
황상이 힘들게 말했다.
날이 갈수록 오음절맥이 깊어지고 있다. 나날이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간다.
황상은 호숫가에 있는 화정루(和定樓)에서 차를 즐겼다.
유일하게 한가한 시간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곧 태황전(太皇殿)으로 가서 정무를 봐야 한다.
“햇볕이 좋군.”
황상은 고개를 들어 따스한 햇볕에 눈길을 돌렸다.
아침에 있었던 독살 사건은 깨끗이 잊어버린 듯 흉수에 대한 언급조차 꺼내지 않았다. 순간,
파아아앗! 파앗!
물속에서 커다란 물고기가 풍덩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물고기는 곧바로 황상을 향해 득달같이 쏘아왔다.
햇볕에 검광이 반짝 빛났다.
황상이 놀라 눈을 끔뻑일 때, 어디선가 또 한 줄기 빛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빛은 호수에서 튀어나온 물고기를 향해 빗살처럼 쏘아져 갔다.
팟! 퍽!
물고기와 빗살이 정면충돌했다.
풍덩!
물고기는 다시 연못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붉은 핏물과 함께 한 사람이 둥실 떠올랐다.
수달 가죽 옷을 입은 자객이다. 머리에 쓴 복면부터 신발까지 전부 수달 가죽이다.
전문 살수다!
‘인자.’
몽설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몽설도 동영 인자를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인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지 알겠나?”
황상이 연못에 붉게 번지는 핏물을 보며 말했다.
“네.”
몽설이 차분히 대답했다.
“조처를 취할 수는 있고?”
“없습니다. 통제권 밖에 있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자는 저지할 수 있습니다.”
황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은 눈앞에서 암살이 있었는데도 놀라지 않았다.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태연하게 찻잔을 들어서 차를 음미하기까지 했다.
“오늘 벌써 두 번째. 이제 싸움이 시작됐다는 건가. 본격적으로 나를 노리네. 후후!”
황상이 웃었다.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방금 그 아이는 이름이 뭐지?”
“월영이라고 합니다.”
“검이 굉장히 빠르던데. 은밀하고, 날카롭고. 보통 살수는 아냐. 그 검은 뭐라고 하나?”
“사생락이라고 합니다.”
“사생락. 다행이네. 우리 중원 무공이 그래도 동영 무공보다는 앞서니. 후후!”
황상은 이미 연못에 쓰러진 자가 동영 인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자술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복장을 보고 인자를 떠 올린 것이다.
“오늘은 차를 마실 수 없겠군. 사람이 죽은 모습을 보면서 차를 마신다면 사람이 아니지.”
황상이 일어섰다.
황상은 계단을 밟으며 화정루에서 내려왔다. 그때 정자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궁녀가 와락 달려들면서 막 땅을 밟는 황상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순간,
쒜에에엑! 파팟! 팍!
또 한 줄기 빛이 나타났다.
빛은 궁녀의 비수 든 손을 잘라냈다. 그리고 연이어서 옆구리를 길게 베어버렸다.
“악! 아악!”
궁녀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황성은 놀란 눈으로 궁녀를 쳐다봤다. 궁녀는 황상을 오래 모셔왔다. 거의 사오 년은 수발을 들었다.
“죽이고 싶더라도 좀 참지. 짐 곁에 살검이 붙어 있는 것을 모른 것도 아니고.”
궁녀는 황상의 말을 듣지 못했다. 몸을 부르르 떨더니 툭! 고개를 떨궜다.
황상은 검을 등 뒤로 세운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화요를 쳐다봤다.
“방금 그것도 사생락이냐?”
“네.”
화요가 대답했다.
“짐 곁에 사생락이 몇 명이나 붙어 있나?”
황상이 몽설을 보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짐한테도 말을 못 하는 건가?”
“듣는 귀가 너무 많습니다.”
황상은 궁녀들을 쳐다봤다.
“그렇군. 이게 현실이군. 이 사람들은 전부 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인데, 이제는 믿을 수 없게 되었군.”
“조만간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믿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약속드립니다.”
“그래. 애써 봐.”
황상이 뒤돌아섰다.
하루가 지났다.
근위대장은 배후로 세 명을 잡아냈다.
세 명 모두 금군이다. 한 명은 수라간에 암행(暗行)한 적이 있다. 본인 말로는 유과(油果)를 훔쳐 먹으려고 들어갔다는데 믿을 사람이 없다.
또 한 명은 경비를 담당했다. 그가 번을 서는 시간에, 그를 지나쳐서 연못 속으로 스며드는 그림자를 본 사람이 있다. 물론 그때는 잘못 봤거니 했다. 낯선 자가 금군 옆을 지나가는 일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은 궁녀와 열애 중이었다.
황상을 암살한 세 명의 배후에 금군이 있다.
근위대장은 흉수 세 명에 대해서 황상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지금부터 자숙하겠습니다.”
“안 돼요.”
몽설이 즉각 반대했다.
“어제 세 명이 암습을 했고, 그 세 명 모두 금군하고 연관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이 너무 쉽게 드러났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흉수가 너무 쉽게 잡혔어요.”
“군주의 말은?”
“저쪽에서는 금군이 황상 곁을 떠나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적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는 없잖아요. 또 잊고 계시는데, 저희 취화원에도 간자가 정리되지 않았어요. 이렇게 해요. 앞으로는 취화원과 금군이 서로를 지켜보는 거예요.”
“상호 감시인가?”
“상호 감시는 불신을 조장해요. 자칫하면 취화원과 금군의 알력 다툼으로 번질 수도 있고. 이걸 막을 자신이 있으시면 시작해 보죠?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해. 취화원 혼자서는 벅차.”
황상이 두 사람의 의견을 강제로 조율했다.
“군주.”
근위대장이 몽설을 불렀다.
“대장군이 황상께 원주를 추천했을 때, 황상의 대답이 어땠는지 압니까?”
“아니요. 어떤 말이든 지금은 안 들을게요.”
근위대장이 몽설을 말끔히 쳐다봤다.
“지금은 모든 선입견을 지워야 할 때예요. 이번 일이 끝난 후, 한가해지면 편한 마음으로 얘기해 주세요.”
“이렇게 되면 내가 한 방 먹은 건가? 하하! 나는 이제 군주를 믿을 수 있겠어. 나는 군주를 믿으니, 이제 군주가 나를 믿게 하면 되는 건데. 좋아, 상호 감시. 해보지. 사실 황상 경호, 절반쯤은 포기했는데. 주변에 믿을 사람이 너무 없었어. 한데 이제는 해 볼 마음이 생기네. 군주 덕분에.”
근위대장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