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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453화 (453/600)

第九十一章 무인결사(武人決死) (3)

탕산의 밤은 매우 춥다.

낮은 찌는 듯이 더운데 밤이 되자 마치 겨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춥군.’

아걸은 마른나무를 주워 모았다.

노숙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라서 아무 생각 없이 산으로 들어왔는데, 노숙을 몰랐다면 꽤 곤란할 뻔했다.

타닥! 타닥!

빨간 불꽃을 한껏 피워내 모닥불이 따스한 기운을 전해 주었다.

‘진작 피울 걸 그랬나? 좋군.’

아걸은 두 손을 뻗어서 잠시 따뜻한 불기를 쬐었다. 그러다가 몸을 눕혔다.

은거 무인들을 떼어 놓고 들어온 곳은 잘한 일 같다.

그들이 힘을 보태준다면 탕산 싸움을 풀어가는 데는 상당한 도움이 되겠지만, 아무래도 이 싸움은 자신 혼자서 치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쒜엑! 타탁! 후두둑!

주위에서 날벌레들이 기승을 부렸다.

탕산에 발을 들여 놓을 때부터 뒤를 쫓기 시작한 날벌레들이 이제는 아예 드러내 놓고 주위를 에워쌌다.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사실이 그렇다. 저들은 소리를 흘리지만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는다. 멀러 떨어진 곳에서 소리만 흘린다. 몸을 사리면서 기척만 드러낸다. 나무도 건드리고, 풀잎도 발로 차서 소리를 낸다. 일부러 나뭇가지도 분지른다.

온갖 거친 소리를 흘리면서 주위를 에워쌌다.

쉬이잇! 쒜엑!

갑자기 날벌레 중 몇몇이 매우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래도 아걸은 모닥불 옆에 몸을 뉜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츠으읏!

그를 향해서 달려들던 날벌레들이 다시 물러났다.

그럴 줄 알았다. 달려드는 시늉만 내다가 물러날 줄 알았다. 살기가 감지되지 않는다. 달려드는 발길에 불안감이 깃들어 있다. 아걸이 일어나서 쫓아올 것을 염려한다.

저들은 이런 일을 반복하고 있다.

한시도 아걸을 편히 쉬게 만들지 않는다. 우린 언제든지 너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도를 드러낸다.

긴장하라는 거다.

아걸은 긴장하지 않았다.

지금 아걸은 날벌레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모닥불에서 일어나는 따뜻한 온기에 몸을 맡길 뿐이다.

‘좋네.’

탕산, 깊은 산의 맑은 공기와 모닥불의 따뜻한 온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뚜욱!

나무까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깊은 적막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신경이 곤두선다. 두 귀가 소리 난 곳을 향해 쫑긋거려진다. 모닥불을 쳐다보던 눈길도 저절로 돌려진다.

아걸은 아예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무시했다.

신경 차단? 맞다. 신경을 꺼버렸다.

맑은 공기, 밤이 토해내는 어두움, 그리고 모닥불에서 일어나는 온기만 느낀다.

스르륵!

아걸은 눈을 감았다.

적들이 지켜보는 한가운데서 태연하게 잠을 청한다.

저벅! 저벅! 저벅!

아걸을 향해서 날벌레들이 다가왔다.

츳!

아걸은 눈을 떴다.

이 발걸음 소리는 지금까지 들었던 날벌레들의 움직임 소리와는 아주 다르다. 단지 위협을 가하려는 발걸음 소리가 아니다. 움직임에 거침이 없다.

아걸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다.

스읏!

아걸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쳐다봤다.

아직 날이 어둡다. 달도 별도 밝다. 축시쯤 됐으려나?

“훗!”

아걸은 피식 웃었다.

새벽부터 다가오는 것을 보니 오늘 하루도 꽤 피곤할 듯싶다. 최소한의 휴식조차도 배려하지 않고 달려든다. 잠을 자지 못한 것, 밥을 먹지 못하는 것도 네 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잠을 두 시진 정도는 잔 것 같다.

‘잠은 이 정도면 충분해.’

아걸은 두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어 올리며 기지개를 켰다.

모닥불은 거의 꺼져가고 있다. 작은 불씨만 남아서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다.

아걸은 품에서 건포를 꺼내 입에 물었다.

딱딱한 육포가 입안에서 침과 섞이며 살살 물러지기 시작했다.

육포 한 조각이 아침 식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음식일 것이다. 막연한 느낌이지만 이들은 송가검문주와 결착을 내기 전까지는 계속 공격해 올 것이다.

‘송가검문주와 싸움이나 제대로 하게 해 주면 다행일 것이고…… 그마저도 힘들 것 같은데. 후후!’

아걸을 일어섰다.

이들은 준비를 철저히 했다. 자신에 대해서 분석하고, 대처방법을 강구했다.

그런 것들이 차분히 펼쳐질 것이다.

아걸은 탕산 싸움을 허도기가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적이 강해지라고 내준 선물이니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이 부분에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아걸은 허도기에게 적의를 품지 않는다. 적어도 탕산 싸움 자체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지금 탕산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명부판관이 할 일이 아니다. 허도기가 자신을 죽이고자 벌인 최대의 싸움이다. 그러니 허도기가 선물을 주었고, 이를 일홀도가 받아들인 격이다.

그렇다! 아걸은 이 싸움을 일홀도를 한층 더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그래서 허도기가 내준 선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선물을 맞이해 보자!

스읏!

아걸이 일어선 것과 아걸 앞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난 것은 거의 동시였다.

파앗! 파파팟!

눈과 눈이 마주쳤다.

‘열세 명?’

아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무공을 간파했다면 이 정도 무인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터인데, 왜 이들만 보냈나? 숲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자들이 또 있나?

숲에는 많은 사람이 숨어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무공이 대단히 강한 자들이다. 단순히 나타난 것만으로도 묵직한 중압감을 뿜어낸다.

하지만 뛰쳐나올 것 같지 않다.

이번 싸움은 이들 열세 명이 주축이다. 오직 이들만으로 첫 싸움을 벌인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자신을 상대할 만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이다.

‘진법!’

아걸은 절반을 알아채고, 절반은 알지 못했다.

주위를 에워싼 열세 명은 상당히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

앞쪽에 일곱 명이, 뒤에 여섯 명이 늘어서 있다.

아걸은 뒤에 늘어선 여섯 명을 보고 일종의 검진을 펼친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뒤에 늘어선 여섯 명과 앞에 나선 일곱 명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아니, 사실은 앞에 나선 일곱 명조차도 진형을 형성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모두 제각각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걸은 뒤쪽 여섯 명의 움직임 속에서 무형의 사슬을 찾아냈다.

저들 여섯 명이 줄 하나에 묶여 있는 느낌이다.

세 명은 삼합(三合), 세 명은 방합(方合)이다. 그리고 삼합과 방합 사이에 충(沖)이 일어난다.

‘육합진(六合陣)!’

아걸은 여섯 명이 서 있는 자리, 그리고 서로 합하고 견제하는 기운으로 판단해서 육합진을 떠올렸다.

저들이 서 있는 자리는 딱 육합 형태다.

뒤쪽 여섯 명이 육합진을 구성했다면, 앞에 나선 일곱 명도 어떤 검진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무지 어떤 검진인지 추측이 되지 않는다.

‘너무 어설픈데?’

일곱 명은 한달음에 달려들어서 반철도를 휘두르면 즉각 나가떨어질 것 같다.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할 것이며, 하물며 이들이 공격한다는 것은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분명히 앞에 나선 일곱 명은 매우 어설프다. 이들의 움직임 속에는 일정한 규칙이라든가 진법의 묘리가 담겨 있지 않다. 이들은 분명히 진법의 형태로 서 있는 것 같은데, 아걸은 솔직히 무슨 진법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꾸욱!

아걸은 반철도를 굳게 잡았다.

차앙! 창!

아직 싸울 준비를 하지 않고 있던 무인도 검을 뽑았다.

아걸과 그들은 말을 나누지 않았다. 서로가 누구인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서로 안면도 없던 사이지만, 서로의 가슴에 죽음을 심어 넣으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츠으읏! 츠츠츳! 쉐에에엑!

앞에 선 일곱 명 중 세 명이 공격을 해 왔다.

‘천지인(天地人)!’

아걸은 단번에 이들 세 명이 사용하는 검진을 알아봤다.

천지인으로 구성되는 삼재진(三才陣)이다. 틀림없다. 두 명의 검초가 정반대다.

한 명은 천(天)이고, 한 명은 지(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마유 마인들이 사용하던 천지검과는 다르다. 하늘과 땅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검초의 위치만 다르게 잡는다.

남은 한 명은 중간의 형태를 취한다. 인(人)!

천이 상단을 취하고 지가 하단을 취하면 인의 위치에 있는 자는 중단을 취한다.

천지인 삼재진은 검속도 다르다. 천이 빠르면 지는 느리다. 인은 중간이다. 반대로 지가 빠르면 천이 느려진다. 하지만 역시 인은 같은 중간 속도다.

이런 검진은 상대하기가 매우 쉬운 것처럼 보인다.

속도가 빠른 것부터 막고, 인을 막고, 나머지를 막는다. 검초도 상중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첫 번째 검초만 받아내면 다른 두 검초는 순차적으로 받으면 된다.

한데 그렇지 않다. 삼재진은 실제로 부딪쳐 보면 무척 상대하기 난해한 검진이다. 매우 상대하기 쉬울 것 같은 검진인데, 실제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어느 것부터 먼저 상대해야 할지 알지 못하게 된다.

삼재진에 검속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겨우 종이 한 장 차이다. 실제로는 세 검 모두 매우 빠르다. 천과 인을 막는 사이에 이미 지가 몸통을 가격한다.

이것이 삼재진의 묘리다.

천과 지의 속도 차이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한데 공격을 받는 당사자에게는 매우 큰 차이처럼 보인다. 천은 무척 빠르고, 지는 무척 느리게 느껴진다.

삼재진이 일으킨 착각이다.

삼재진은 공격 형태에서도 묘리를 발휘한다.

천이 상단을 취하고 지가 하단을 취하면 이는 중단을 취한다. 검형이 변화해서 지가 상단으로 올라서면 천은 하단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인은 여전히 중단을 점유한다.

이런 공격도 역시 차례로 막으면 될 것 같다.

인의 위치에 있는 자는 늘 인의 위치만 공격하니 받아내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아니다.

천지인의 검형 간극이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에 상단과 하단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에는 천과 지의 간격 차이가 겨우 검신 폭 정도에 불과할 때도 있다. 이럴 경우, 천지인이 거의 같은 위치를 공격한다.

하단을 점유한 지가 옆구리를 베면 인은 가슴을 친다. 천은 머리를 공격한다.

이런 위치가 좁혀진다.

지가 어깨를 친다.

공격받는 자는 천과 지가 위치를 변경했다고 생각한다. 어깨는 분명히 상단이기 때문이다.

한데 인이 목을 친다. 천은 머리를 공격한다.

이런 간격은 더 좁혀질 수가 있다. 지가 귀밑을 치면, 인은 귓구멍을 치고, 천은 귀 위를 친다.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삼재진의 검형은 이처럼 좁혀질 수도 있다.

넓게는 몸 전체를 공격할 수 있고 적게는 신체 일부분에 집중될 수도 있다.

삼재진의 검속과 검형이 자유자재로 변화할 때, 삼재진은 무척 맞서기 힘든 검진이 된다.

차앙! 깡! 타아앙!

아걸은 반철도를 쳐 냈다. 상중하, 삼단으로 공격해 오는 검 세 자루를 물리쳤다.

쉬이익! 쉭! 쒜에에엑!

삼재진이 급변했다. 공격이 몸 전체로 확 펼쳐지기도 하고, 일 점에 집중되기도 했다.

모으고, 흩어짐이 무척 유연하다.

세 검 모두 거의 같은 속도로 공격해 오는데 빠르고 느리다는 느낌이 확연히 일어난다. 이럴 경우, 상대는 제일 먼저 빠른 검부터 마주쳐 간다.

깡! 까앙! 깡!

반철도가 검 세 자루를 연신 격타했다.

삼재진이 검진의 묘리에 힘을 입어서 무척 날카롭게 공격해 오지만…… 사실 아걸을 상대하기는 무리다. 저들의 검세가 너무도 뚜렷하게 보인다.

아걸은 반철도를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검이 몸이 닿을 무렵, 그제야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아주 가볍게 검진을 상대했다.

아걸이 반철도를 전개하는 속도는 무척 빠르다.

삼재진의 검형을 단순한 빠름만으로 막아낸다.

몰안, 정확한 눈!

도신일체, 마음이 일어나는 즉시 움직이는 칼!

삼재진을 상대하는 데 굳이 도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삼재진을 이 정도까지 수련했다면 상당한 고련을 거쳤을 텐데, 그런 절대 검진조차도 아걸을 요리하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아걸에게 여유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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