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一章 무인결사(武人決死) (4)
까앙! 깡! 까아아앙!
검 세 자루가 또다시 퉁겨나갈 때, 앞에 나섰던 일곱 명 중 남은 네 명이 작은 원을 그리면서 빙글 돌았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삼재진 사이를 파고들면서 검을 떨쳐냈다.
쒜에에엑! 쒜엑! 쫙!
동서남북 사방에서 검이 들어온다.
‘재미있군.’
아걸도 이번 공격은 감히 방심하지 못했다. 단순히 빠름만으로는 상대하지 못할 검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즉시 구대문주의 십이살환도를 펼쳤다.
페에에엑! 쒜엑!
반철도에서 가공할 칼바람이 일어났다.
따따땅! 따땅! 따아앙!
삼재진 사이를 파고들었던 검 네 자루가 퉁겨나갔다. 한데 마치 교대라도 하듯이 삼재진이 다시 공격을 가해 왔다. 더욱이 이번 공격은 골반에서부터 무릎 사이로 공격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천이 골반을, 지가 무릎을 친다.
허벅지만 집중적으로 공격!
페에에에엑! 쒜에엑!
물러섰던 검 네 자루도 다시 들어왔다.
사상(四象)은 동서남북을 말한다. 하지만 무인에게 사상은 다른 의미로 생각되기도 한다.
동은 청룡(靑龍), 용음검(龍音劍)이다. 검풍에서 용의 울부짖음이 들린다. 서는 백호(白虎), 백호강검(白虎崗劍)을 쓴다. 백호가 산을 뛰어넘어 달려든다.
남은 주작(朱雀), 봉황채검(鳳凰彩劍)을 쓴다. 봉황의 날갯짓처럼 우아하면서도 화려하다. 북은 기린(麒麟) 또는 현무(玄武)다. 기비승검(麒飛乘劍)이 대표적이다. 기린이 하늘을 나는 듯한 우아한 검초로 목숨을 해한다.
이렇듯, 사대신수(四大神獸)에 해당하는 검초를 사상에 배치한다.
일반적으로 동과 서는 강맹하고, 북과 남은 고요하면서도 우아하다. 화려한 면도 있다.
사상 검초는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완벽하게 이질적인 검초이기 때문에 한데 뭉쳐서 전개될 수가 없다. 다만 서로 싸울 수는 있다. 사대신수가 어울려서 싸우는 것이다. 청룡, 백호, 주작, 기린이 서로를 노리고 싸운다.
이런 싸움의 조합으로 하나의 검진을 만들어 낸다. 사상진(四象陣)이다.
‘사상진!’
아걸은 앞에 선 자들, 일곱 명의 진법을 눈치챘다.
삼재진과 사상진의 조합이다. 삼재진을 만들기도 어렵고, 사상진을 구성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야말로 피땀 어린 고련 끝에 간신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들은 삼재진과 사상진을 서로 섞었다.
그야말로 무림 사상 나타난 적이 없던 진귀한 검진이 탄생한 셈이다.
일곱 명이 각기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세 명은 서로 합을 맞추어서 삼재진이 구성되고, 네 명의 다툼은 사상진으로 표현된다. 그러면서도 삼재진과 사상진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서로의 검로를 피해서 움직인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검초를 최대한으로 떨쳐낸다.
‘대단하군!’
아걸은 진심으로 탄복했다.
삼재진이 안에 있기도 하고 밖에 있기도 하다. 삼재진이 펼쳐지는 사이를 뚫고 사상진이 들어온다. 사상진을 막는 사이에 다시 삼재진이 몰아친다.
‘이거 신선한데!’
아걸은 상대방의 검초를 받으면서도 빙긋 웃었다.
지금까지 그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검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웃음이 떠오를 만큼 신선한 검초는 없었다. 이런 검진이라면 얼마든지 상대해 줄 수 있다.
‘그럼 당신들은 뭐야?’
아걸은 뒤에 남은 여섯 명을 주시했다.
여섯 명이 육합진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들이 서 있는 위치로 짐작했는데…… 아직 검진을 펼치지 않고 있다. 서둘지 않고 차분히 움직인다.
스읏! 스으읏! 쒜에에엑!
여섯 명도 나름대로 검을 움직이고 있다. 조용히, 지극히 조용히!
‘곧 공격해 오겠군.’
아걸은 진한 호기심을 느꼈다.
육합진은 어떤 식으로 공격을 시도할까? 현재 삼재진과 사상진이 조합을 이루고 있다. 거의 완벽하다. 다른 검진이 끼어들 틈이 전혀 없다.
육합진이 움직이려면 두 검진을 뚫어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뚫고 들어올까?
만약 육합진까지…… 세 가지 검진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공격해 온다면 매우 난감해진다. 정말로 그 변화는 예측불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검이 들어올지 모른다.
‘설마 생으로 검진을 뚫고 오지는 못할 텐데. 분명히 삼재진과 사상진이 길을 열어줄 거야.’
타타탕! 타탕! 타아앙!
아걸은 쉴 새 없이 반철도를 휘둘렀다. 다가서는 검을 쳐 내고, 쳐 낸다. 계속해서 밀어낸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검들이 더욱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때, 뒤쪽에 서 있던 여섯 명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대의 검력이 하나로 모였다. 여섯 방위에 육각 형태로 흩어져 있는데…… 아걸은 분명히 저들의 검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들의 호흡이 완벽하게 일치한다.
쒜에에엑!
검 여섯 자루가 여섯 방위에서 쏘아져 왔다.
파파팡! 파파파파팡!
삼재진이 무릎 아래, 종아리를 노린다. 검 세 자루가 땅에 납작 깔렸다.
사상진은 머리 위에서 싸운다.
동서, 청룡과 백호가 격렬하게 부딪친다. 두 고래 싸움에 낀 아걸만 난감하다. 남북도 치열하게 부딪친다. 환검과 쾌검의 조화가 상당히 부드럽다.
육합진은 몸통 중간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이런 식?’
아걸은 눈썹을 찡그렸다.
일시에 검 열세 자루를 막아야 한다. 두 검진 중 어느 검진도 물러서지 않은 가운데, 육합진까지 가세했다. 더욱이 육합진은 호흡을 완벽하게 맞췄다.
쒜에에에엑!
화살이 날아온다. 검이 날아오는데, 마치 화살이 쏘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섯 명이 점 하나를 공격한다.
노리는 부위는 아걸의 심장!
일제히 심장을 향해서 검이 쏟아져 온다. 그 순간, 삼재진과 사상진도 득달같이 부딪쳐왔다.
단순히 열세 명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검진 세 개와 부딪쳐야 한다. 검이 몸에 닿는 부위는 한정되어 있다. 열세 명이 일제히 달려들지는 못한다. 하지면 검진을 전개하는 속도에 변화를 주면 열세 명이 일시에 달려드는 효과를 낸다.
‘대단한데!’
아걸은 즉시 반철도를 흔들었다.
반철도를 어떻게 사용할까? 어떤 도법을 펼쳐낼까? 어느 검부터 막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아걸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열세 자루의 검을 봤다.
검 열세 자루가 허공에 괘선을 그린다. 일직선으로 날아드는 검부터 빙글 휘돌면서 날아드는 검까지…… 모든 검초를 한눈에 읽고 전신으로 느낀다.
몰안이 일어나고 오체진감이 발동된다. 칼과 몸은 이미 도신일체의 상태를 이뤘다.
더 할 게 없다!
스읏!
아걸은 손을 움직였다. 도법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다. 반철도가 스스로 알아서 움직인다. 허공에 그려진 괘선을 잘라나간다. 그거면 된다.
페에에엑! 까앙! 깡! 까아아아앙!
검과 반철도가 부딪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검이 퉁겨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라도 첫 검에 맞는 자는 없다. 두 번째 검도 퉁겨나갔다. 이것도 당연하다. 반격이 빠른 자는 네다섯 검까지는 퉁겨낸다.
까앙! 깡! 까아아앙!
칠검, 팔검, 구검…… 십삼 검!
검 열세 자루가 모두 퉁겨나갔다. 삼재진, 사상진, 육합진의 조합을 막아냈다.
“웃!”
“허억!”
검진을 전개한 자들이 일제히 물러섰다.
단순히 자신들의 검초가 막혔기 때문에 헛바람을 내지른 것이 아니다. 반철도가 타격을 가하면서 엄청난 힘을 가했다. 손목이 비틀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검진을 전개했는데도 이 정도로 검력을 쓸 수 있는 상대?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온다.
스슷! 스스스슷!
무인들이 다시 검진을 정비했다.
이제는 확연히 보인다. 뒤에 선 여섯 명, 확실히 육합진을 구성하고 있다. 앞에 선 자들의 모습도 뚜렷이 보인다. 삼재진과 사상진을 알게 되자, 저들이 왜 저 자리에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대단하군.”
삼재진 천을 맡은 자가 중얼거렸다.
“후후!”
아걸은 웃기만 했다.
이들은 분명히 일홀도의 적수가 아니다.
삼재진과 사상진을 펼칠 때만 해도 아걸은 넉넉하게 검진을 막아냈다. 구대문주의 십이살환도라는 도법을 전개해서 가볍게 뒤로 밀쳐냈다.
도법을 전개한다는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가벼운 상대라는 뜻이다.
일홀문 문주들의 도법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아걸이 수련한 삼십육 도법은 하나같이 가공할 절기들이다. 하지만 그 도법들은 도법을 창안한 당사자가 펼칠 때, 천지가 놀랄 정도로 무서운 위력을 뿜어낸다.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는 도법에 숨은 진의(眞意)를 알지 못한다.
도법의 오의(奧義)는 깨우치겠지만, 당사자가 도법을 창안하는 순간에 느낀 숨결을 알지 못한다.
그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멀다.
아걸은 삼십육 문주의 도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만큼 능숙해졌다. 하지만 그가 펼치는 도법은 절묘한 초식을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하다.
일문주부터 삼십육문주까지 그 누구라도 허도기와 싸울 수 있다.
당사자가 펼치면 허도기와 싸울 수 있는 도법이 되는데, 아걸이 펼치면 겨우 일부분밖에 막지 못한다.
천지 차이라는 것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사실 일홀문 삼십육 문주의 도법이나 피다가 만 꽃, 사형들의 일탄십검이나 화염도나…… 아걸이 펼치면 똑같은 수준의 도법이 되어 버린다.
아걸은 이 차이를 자신의 일홀도를 만든 후에야 알았다.
지금 그는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는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접전이 벌어져도 긴장이 되지 않을 때, 가벼운 몸놀림만으로도 공격을 피할 수 있을 때…… 상대가 목숨을 위협하지 못한다고 느꼈을 때, 도법을 구사한다.
아걸은 이들의 검초를 막을 필요가 없었다. 검을 튕겨내는 대신에 바로 몸을 벨 수가 있었다. 검진이 특별하지만, 아걸은 질이 다른 칼을 가졌다.
아걸이 검을 튕겨낸 것은 색다르게 펼쳐지는 검진을 더 보고 싶어서였다.
쉿! 쉬이익! 쒜엑!
검진 세 개가 팽팽하게 돌아간다.
검진을 몰랐을 때는 단순히 검의 흐름만 봤는데, 검진을 알게 되자 검초의 배합이 보인다.
쒜에에엑!
육합검진이 공격해 왔다.
외곽에서부터 곧바로 심장을 노리고 쏘아지는 검들…… 삼재진, 사상진에 육합진이 가세하자 이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힘이 되어 버렸다.
타앙! 탕탕탕! 타아앙!
이번에는 이십이대 문주의 산화도를 펼쳤다.
검진은 사방에서 휘몰아친다. 전면, 측면, 배후……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을 동시에 방어해야 한다. 또한, 육합검진 뒤를 바짝 쫓고 있는 두 검진도 주시해야 한다.
스으으읏!
검 여섯 자루를 쳐 내는 순간, 아걸은 다리가 서늘해졌다.
‘벌써! 빠르네!’
슈웃!
아걸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쒜에에엑!
발밑으로 검초가 스쳐 지나갔다.
삼재진이 다가온 줄 알았는데, 검 한 자루다. 그렇다면 사상진이다. 다른 검 세 자루가 더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움직인다.
꽈아아아악!
서쪽에서 백호강검이 날아들었다.
아니, 이것은 눈속임이다. 정작 위험한 검은 남북에서…… 아니다! 사상검진 자체가 눈속임이다. 진짜 검초는 삼재진에 있다. 아무도 이미 쳐냈다고 생각한 검, 용음검을 뒤쫓아서 다가올 것이다. 매우 은밀하게.
파르르르릉!
삼십오대 문주의 회륜도가 펼쳐졌다. 반철도가 거센 회오리를 일으키면서 몸 주위를 빙글 맴돌았다. 머리 위에서부터 다리 밑까지 순식간에 십팔 회전을 일으켰다.
타타당! 타당! 따앙!
검들이 우수수 밀려 나갔다. 그 순간,
슈우우웃!
아걸은 신형을 튕겨내서 일장 밖으로 물러섰다.
저들은 쫓아오지 못한다. 아걸의 물러섬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후우웁!”
아걸은 큰 숨을 들이켰다.
검진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아걸은 무호흡 상태에서 움직였다. 저들의 검진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 숨을 쉬는 것마저 참았다. 정작 보아야 할 것은 검초가 아니라 검진을 구성하는 검수들의 호흡, 숨결이다.
“좋군. 뛰어나.”
아걸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