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一章 무인결사(武人決死) (5)
“으음!”
“음!”
사람들은 신음을 흘렸다.
숲에서 지켜보는 사람 중에 팔천검문 무인들이 펼치는 검진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어떤 현상들은 옆에서 지켜보는 제삼자 눈에 더 잘 보일 때가 있다. 검진이 그렇다. 검진은 싸움과는 다르다. 진형을 맞춰서 체계적으로 공격해야 한다.
검진의 위력이 당사자가 느끼는 것보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 훨씬 더 잘 보인다.
사람들은 검친 세 개의 조합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감탄했다.
무인 열세 명이 하나의 검진을 펼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세 명이나 네 명이 펼치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공격이 전개될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진 세 개를 합쳐서 전개하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굳이 검진 세 개를 합쳐서 전개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생각도 든다.
검진 세 개를 하나로 합친 것…… 이것이 얼마나 가공스러운 검진인지는 직접 당해봐야 한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할 자격도 없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터지는데, 직접 당한 사람은 어떨까.
검진이 다른 검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제 위력을 충실히 드러내려면 찰나, 찰나를 고민해야 한다. 수많은 연구와 수련이 반복되어야 한다.
팔천검문이 그런 일을 해냈다.
만약 저 검진을 상대하는 사람이 아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팔천검문 문주가 아걸을 상대로 정공법을 시험해 보겠다고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명확히 알았다. 팔천검문주는 정공법으로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 정도의 검진을 준비했다면 그만한 자신감을 가져도 충분하다.
다만 상대가 아걸이다. 그 점이 팔천검문 무인들에게는 불운이다.
‘끝났어.’
이십사 위문 문주들은 싸움의 결과를 예측했다.
검진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아걸을 사정없이 몰아친다. 상처를 입히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반철도에 밀린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아걸이 반철도를 고쳐 잡았다.
휘이이이잉!
반철도에서 싸늘한 예기가 일어난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단지 칼만 고쳐잡았는데도 검진을 압도한다. 무공 차이가 너무 현격히 벌어진다.
아걸이 공부 허도기와 싸워서 목숨을 부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공부님과 싸워서…… 당당히 실력으로 견뎌낸 거야.’
이십사 위문 문주들은 아걸의 무공을 똑똑히 봤다. 아걸이 어느 정도로 강한지, 그가 사용하는 일홀도가 어떤 것인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봤다.
아걸은 단 일 초면 어떤 자든 죽여 버리는 공부의 발검술을 견뎌낸 자다.
‘물려! 이대로 죽이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어서 물리라고!’
이십사 위문 문주들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아걸과 싸우는 무인들이 자신의 문도는 아니지만, 그들이 수련해 낸 검진이 너무 아깝다. 적어도 이런 식으로 한 번 쓰고 버리는 패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팔천검문 문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파팟! 파파파팟!
눈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가?’
‘그래.’
서로가 서로의 진심을 읽었다.
아걸은 오래 싸울 상황이 아니다. 사실 이들은 곁가지다. 진짜 싸움은 따로 있다.
이 정도면 검진에 대한 궁금증도 풀었다.
이제는 결판을 내려고 한다.
‘다음 수에서 끝낸다.’
아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눈빛에서 드러났다.
두 눈이 야수처럼 빛난다. 감정을 철저히 배제해서 처고 음습한 악귀처럼 보인다.
“으……!”
검진을 형성한 무인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걸은 살기를 띠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눈으로 말했다.
그 정도면 살의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굳이 살기를 드러내지 않아도 아걸의 눈짓에서, 몸짓에서, 칼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정진(正陣)!”
아걸에게 대항이라도 하듯 삼재진 천무(天武)가 소리쳤다.
열세 명의 검수는 검을 꾹 움켜잡았다. 마지막으로 사력을 다해서 검초를 전개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통하지 않던 검진이 새삼스럽게 통할 리는 없다. 그러니 아마도 이번에 펼치는 초식을 마지막으로 생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여한은 없다. 할 만큼 했다.
스스슷! 스슷!
무인들이 조금씩 움직였다. 검진에 맞춰서 자리를 잡는다. 최후의 일격을 준비한다.
아걸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뜻이 그렇다면 뜻대로.’
어차피 무인은 검날을 베고 산다.
어느 날 한순간 예정에 없던 자를 쓰러트리듯이 자신 역시 쓰러지는 게 당연하다. 운이 좋으면 이기고, 운이 나쁘면 자신이 무너진다. 오늘은 운이 나쁠 뿐.
이제 그 일을 마무리 지을 때가 왔다.
쒜에에엑!
삼재진이 급격하게 거리를 좁혀왔다. 그리고 곧바로 뒤이어서 사상진이, 마지막으로 육합진이 일시에 휘몰아쳤다.
이번 일격이 최후일지라도 여한이 없도록!
그래서 사력을 다해서 검초를 전개한다.
패애애애앵! 쒜에에엑!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던 날카로움, 강함, 쾌속한 변화, 폭풍 같은 힘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다.
아걸은 도법을 전개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의 도법도 떠올리지 않았다.
반철도를 들었지만, 칼을 들었다는 사실조차도 의식하지 않았다.
검을 쳐다본다. 노정문주를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망연히 쳐다보기만 했다.
쒜에에엑!
검이 궤적을 그렸다.
아름다운 선들이 그려진다. 하나, 둘, 셋…… 허공에서 이리저리 새로운 선들이 생겨난다. 수십 가닥으로 늘어난 선들이 일제히 몸뚱이를 가격해 온다.
스으으읏!
아걸은 신형을 움직여서 궤적을 피했다.
아직까지 칼은 쓰지 않았다. 궤적들이 몸을 스치며 지나가도 내버려 두었다. 새로 생겨나는 선이 있고, 몸을 스치면서 지나간 선이 있다.
아름다운 도식이 떠오른다.
저 선들과 부딪히지 않고 선 사이로 파고든다. 몸이 흐르는 대로 움직이게 내버려 둔다. 손에 들린 칼이 저절로 움직인다. 몸을 거칠게 두들긴다.
퍼억! 퍼어어억!
“커억!”
검수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반철도는 몸에 붙어 있다. 그러니 몸이 움직이면 반철도도 움직인다. 반철도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몸이 이끌고 있다.
의식, 생각, 지식…… 세상에서 배운 모든 무학을 버렸다.
즉살(卽殺)!
본능인지, 몸에 익은 무공인지, 그것도 아니면 신기 들린 행동인지 모르겠다. 정확하게 보고 거침없이 벤다.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취한다.
쒜에에엑! 슛! 슈우우웃!
천지인이 날아들었다.
저들은 목에서부터 가슴까지를 노렸다.
공격이 능사가 아니다. 천지인은 죽을 각오를 한다. 자신들이 앞을 막아서서 뒤따르는 검진을 가려준다. 정작 실초는 사상진 혹은 육합진에 있다.
당연히 이번 공격은 변형된 천지인이다.
천과 지는 정면을, 인은 등을 찔렀다.
반철도가 천과 지의 사이를 갈랐다. 그들이 그려내는 궤적을 피해서 칼을 썼다.
퍽! 퍼억!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아걸은 빙글 돌았다. 몸을 회전시킬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딱 하나의 행동, 회전하는 행동만 일어난다. 더불어서 손에 들린 칼도 몸을 따라서 빙글 돌았다.
쒜에에엑!
칼이 인이 쳐 낸 검 밑으로 흘러 들어갔다.
퍼억!
순식간에 세 명이 나가떨어졌다.
아걸은 다시 빙글 휘돌았다. 당연히 사상진이 먼저 닥쳐올 것 같지만 육합진이 먼저다. 사상진 중 한 명이 삼재진보다 먼저 나가떨어졌다. 그들은 뒤로 빠졌고, 검진을 정비한다.
쒸이이익!
검 여섯 자리가 아걸의 몸을 꿰뚫어 왔다.
그 순간 아걸은 찔러오는 검을 따라 마주쳐 갔다.
아걸도 피하지 않았다. 찔러오는 검을 향해 오히려 몸을 꽂아 넣었다. 마치 달려드는 검을 향해서 스스로 달려드는 형국이다. 자진할 생각인가?
쉬릭! 쉬이익!
검과 칼이 교차했다.
아걸은 눈부신 속도로 검을 피해냈다. 그 순간, 반철도는 이미 두 점의 목을 쳤다.
“크아악!”
검수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아걸은 성난 들개다. 미친 호랑이다. 이미 검수들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검진 중 하나는 완전히 소멸했고, 다른 두 개도 이미 무너졌다. 그런데도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남은 자들을 거침없이 도륙해 버린다.
쉬이이잇! 퍼어억!
반철도가 검수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칼을 맞은 자가 육합인지 사상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다. 이미 검진이 무너졌지 않나. 사상진을 구성했던 주작인 것 같은데…… 누가 되었든 상관없다. 어차피 모두 쓰러진다.
쒜에에엑! 퍼억!
또 한 명이 강력한 도기에 휘말려 절단되었다.
아걸은 손에 사정을 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이미 싸움은 끝났다는 점을 안다. 하지만 계속해서 칼을 쓴다. 확실히 결단을 내주는 것이 이들에 대한 도리다.
‘살기를 원하진 않을 터…….’
그렇다. 검수들은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평생을 검진에 파묻혀 지내왔다. 검진이 무너진 지금 이들은 삶의 희망을 잃었다. 무인으로 남아 있을 희망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이 이들에게는 훨씬 행운이다.
파팟! 퍼퍼퍼퍽!
아걸은 가능한 빨리 반철도를 쳐 냈다.
검수들도 사람인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 그 전에 먼저 베어낸다. 최선을 다한 끝에 여한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도리!’
쒜에엑! 퍼퍼퍽!
순식간에 검수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었다.
칼을 어설피 맞아서 신음을 흘리는 자는 없다. 매우 빠르게 쳐 낸 일격들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치명타다.
휘이이잉!
숲에 바람이 불어왔다.
산 사람은 없다. 검수 열세 명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은 죽음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하지만, 이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수련한 검진과 함께 묻혔다.
‘여한이 없을 것이야.’
아걸은 죽은 무인들을 향해 피식 웃었다.
사실, 자신이나 이들이나 다를 바 없다. 이들이 자신에게 도전한 것이나 자신이 허도기에게 도전한 것이나 매한가지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도전한다. 지금까지 수련한 무공을 아낌없이 펼쳐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걸은 검수들을 쳐다볼 때, 그런 눈빛을 읽었다.
언젠가 자신이 띄었던 눈빛이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휘릭!
아걸은 반철도를 휘둘러서 칼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숲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들 모두 지금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아걸 생각에…… 저들은 지금 죽은 검수들처럼 정의롭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무인으로 죽었지만, 저들은 오로지 죽이기 위한 살인자로 다가올 것이다.
검수들은 죽음은 정대한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진 세 개의 조합으로도 이기지 못한다면 무공으로 겨뤄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니, 문주들이 연수해서 공격한다면 더 강한 공격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문주들은 그런 위험을 자초하지 않을 것이다.
정도 문파는 반드시 공명정대하게 싸워야 한다는 신념은 버렸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탕산을 싸움터로 선택했고, 이 많은 사람이 칼을 간다면 말이다.
이제부터는 온갖 암수가 난무할 것이다.
‘너희보다는 차라리 남만족이 더 강했어. 그래도 그들은 무공으로 싸우고자 했으니까. 후후! 허도기. 당신, 무림을 어떻게 만들어 놓은 거야?’
아버지가 성검문주로 있을 때, 성검문은 무림을 통제하지 않았다. 많은 무림 문파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최강 문파라는 소리를 들었고, 영향력도 상당했지만, 성검문이 나서서 무림을 통제하지는 않았다. 정복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의 성검문은 무림 정복자다.
무림을 진압하고 이십사 위문을 키워냈다. 그리고 그들은 암수로 싸우고자 한다.
저벅! 저벅!
아걸은 숲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