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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458화 (458/600)

第九十二章 혈삭참맥(血索斬脈) (3)

쒜에에엑!

음검이 뻗어낸 검은 양검이 쓰러지기 전에 달려들었다.

아걸은 신형을 비틀었다.

검이 날아오면 누구라도 몸을 비틀어서 피한다. 매우 당연한 행동이다. 특별한 비초가 아니다.

슈웃!

음검이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 순간,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던 아걸이 몸을 벌떡 일으키면서 관자놀이에 관수를 찔러 넣었다.

음검이 잠시 움찔하는 듯했지만, 곧 뒤로 물러섰다.

너무 약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했다.

아걸이 펼치는 모든 행동이 약해 보인다.

음검은 매우 빠르고 신랄하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모습이 단박에 읽힌다. 한데 아걸과 부딪치는 순간, 그는 평범한 무인이 된다. 검속도 빠르지 않고, 변화로 날카롭지 않다. 그저 그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검초가 된다.

슈웃! 퍼억!

관수가 음검의 관자놀이를 찍었다.

이 정도의 수법(手法)이라면 가볍게 피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마치 목석처럼 서 있다가 푹 찍혔다. ‘이런 멍청한!’이라는 질책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아걸은 쓰러진 양검의 머리에서 반철도를 잡아뽑았다.

순식간에 음양검 두 명이 쓰러졌다.

아걸의 신법에는 자연도의 묘리가 숨겨져 있다.

아걸이 반철도를 날린 모습은 매우 가벼워 보인다. 하지만 칼이 손에서 떠나는 순간에 일어난 회전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타격을 일으킨다.

힘이 파괴력이 아니다. 회전력이 곧 파괴력이다. 그리고 아걸이 일으킨 회전력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순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아걸이 어떤 식으로 칼을 전개하는지 알지 못하면 두 눈 빤히 뜨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한다.

“후후! 역시 무공으로는 안 돼.”

음양진과 함께 달려들던 이원진 사내가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검초를 늦춘 것은 아니다.

쒜에에엑! 쒜에엑!

아걸이 음양진을 상대하는 동안, 그는 오 검이나 뿌렸다.

물론 그가 쳐낸 검초는 모두 허공만 그었다. 아걸이 맞기에는 너무 느리다.

검초를 전개하는 자도 그런 점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무의미한 공격을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본인 입으로 무공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고 말하면서?

츠으으읏!

검초를 전개하는 동안, 사내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술에 잔뜩 취한 사람처럼, 얼굴에 빨간 물감을 칠해놓은 사람처럼 새빨개졌다.

‘설마!’

아걸은 눈을 번쩍 떴다.

마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고문 중에 혈삭참맥(血索斬脈)이라는 수법이 있다.

진기를 주입하되, 와선형으로 비틀면서 틀어박는다. 그러면 상대방의 혈맥이 꽈리처럼 비비 꼬인다. 진기를 투입하는 부분부터 고통이 시작되어서 전신으로 번져간다.

사지에서 몸통으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몸통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당하는 자는 손가락 한 마디 간격으로 비수가 틀어박히는 고통을 받는다. 혈맥이 꼬인다는 것은 피가 제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문이 끝난 후에도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타격이 크다.

이것이 혈삭이다.

참맥은 비비 꼬인 부분을 칼로 쳐내듯이 끊어낸다.

혈맥이 터져서 죽는다. 혈삭참맥은 몸 전체의 경맥을 터트리지만, 어느 한 부분만 터져도 살지 못한다.

참맥은 고문 수법이 아니다. 무엇을 알아내려는 수법으로는 적합지 않다. 참맥을 일으키는 순간, 당사자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을 경험한 끝에 절명한다.

그렇다. 참맥은 철천지원수에게 펼치는 살인 수법이다.

혈삭과 참맥…… 이것을 같이 사용하면 어떤 비밀도 토할 수밖에 없는 고문 수법이 된다. 더불어서 고문을 당한 자는 절대로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데…… 혈삭참맥을 시행하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혈삭을 전개하면 혈맥이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다. 꽈리가 단단하게 뭉친다. 이때, 곧바로 참맥을 시전하면 부풀어 오른 꽈리가 탁! 터져 나간다.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그리고 이 순간에 고문을 받는 자의 내공도 작동한다. 터지는 혈맥과 함께 사방으로 강한 힘이 터져나간다.

화약을 능가하는 인간 화약이 되는 셈이다.

혈삭참맥을 일으킨다고 해서 항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혈삭과 참맥 사이에 시간 조절을 잘해야 한다. 본인의 내공이 꽈리에 대응하는 시간을 잘 찾아내야 한다.

이 시간을 찾아냈다면…… 혈삭참맥은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폭사공(爆死功)으로 변한다.

아걸은 빨갛게 물든 얼굴에서 점점이 박힌 살 색을 찾아냈다.

살 색 위에 홍조가 얹힌 것이 아니라 정반대다. 빨간 얼굴 위에 정상적인 살 색이 점처럼 박혀 있다.

혈맥이 꼬인 전형적인 증상이다.

휘릭!

아걸은 즉시 땅에 쓰러진 무인의 집어 들었다. 순간!

퍽! 퍽퍽! 퍼퍼퍼퍼퍼퍼퍽!

검을 날려오던 무인의 몸이 허공에서 산산이 조각나며 흩어졌다. 그리고 엄청난 피바람이 확! 몰아쳤다. 수천 조각으로 찢어진 살과 뼈, 검편이 암기가 되어서 날아들었다.

아걸은 무인의 시신을 등에 업고, 몸을 최대한 숙였다.

퍽퍽퍽퍽! 퍽퍽퍽!

아걸 주위로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등에 업힌 무인이 강한 충격을 받고 크게 흔들렸다. 성난 파도가 확 몰아칠 때처럼 등에 엄청난 타격이 느껴졌다.

‘정말 혈삭참맥을!’

아걸은 큰 충격을 받았다.

혈삭참맥은 일으키는 순간 뼛골이 끊어지는 듯한 통증이 일어난다.

무공을 펼치는 당사자가 극한의 고통을 이겨야만 참맥까지 이어나갈 수 있다. 자진하겠다고 심장에 단검을 쑤셔 넣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들은 그런 행동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행했다.

악귀…… 악귀의 길이다. 정도의 기둥이라는 이십사 위문에서 사마외도조차도 꺼리는 사악한 공부가 튀어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그 순간, 아걸은 누군가가 웃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다보며 웃는 듯했다.

‘아차!’

아걸이 경각심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퍼어억! 퍽퍽퍽퍽퍽퍽!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팍! 터졌다.

아걸이 혈삭참맥에 신경을 쓰는 사이에 또 다른 한 명이 허공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 역시 혈삭참맥을 시전했다. 더욱이 그는 깨지기 쉬운 얇은 철갑을 복갑(腹甲)처럼 감싸 맸다.

산산이 조각난 복갑 철편이 아걸을 덮쳤다.

‘후웃!’

아걸은 재빨리 신형을 퉁겨냈다. 허도기와 싸울 때처럼 사력을 다해서 몸을 움직였다. 더불어서 급히 장삼을 벗어 하늘을 향해 맹렬히 휘둘렀다.

장삼의 옷깃을 두 손으로 잡고 투망을 휘두르는 것처럼 거세게 휘둘렀다.

파라라락!

장삼이 넓게 퍼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피 비를 가로막았다. 한낱 옷조각이 강철비를 튕겨낸다.

아걸이 휘두르는 장삼에는 무형강기가 실려 있다.

무인은 약한 갈대 줄기만으로도 철편도 쪼갤 수 있다. 집중과 순간적인 타격만 이용해도 철판이 갈라진다. 하물며 진기까지 싣는다면 갈대는 더욱 강해진다. 능히 장검에 비교할 수 있다.

이때 갈대는 사람 목숨도 빼앗는 흉기가 된다.

아걸이 휘두르는 장삼은 위아래도 움직이는 탄성과 회전력이 가미되어 있다. 진기까지 실어서 비록 옷자락이지만 철판처럼 강한 상태가 되었다.

타타탁! 타탁!

혈삭참맥으로 부서진 강편들이 부드럽게 휘말려 떨어지기도 하고 밀려나기도 했다. 하지만,

하지만.

“욱! 큭!”

시간이 흐를수록 상처가 늘어갔다.

지척에서 터져 나온 철편들이다. 적이고 아군이고 상관하지 않는다, 무조건 모두 죽여 버린다는 심정으로 터트렸다.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졌다.

부서진 강편은 이미 죽은 무인들의 몸을 짓이겨 놨다. 미처 혈삭참맥을 펼치지 못한 채 죽은 무인들의 시신이 넝마처럼 너덜거리면서 흩어졌다.

혈삭참맥은 철갑도 뚫을 수 있다. 웬만한 바위나 나무쯤은 단숨에 관통해 버린다.

“후우!”

간신히 혈우(血雨)를 피한 아걸이 잠시 숨을 돌렸다.

뒤에 늘어서 있던 구궁진이 급격히 거리를 좁혀오고 있다. 이원진과 음양진이 무너지는 동안, 이미 그들 네 명이 서 있던 자리까지 바싹 다가섰다.

아걸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들은 검진을 구사하지 않는다. 검진으로 싸울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오직 옥쇄뿐이다. 동귀어진, 같이 죽자고 한다. 그것도 아주 극단의 방법을 취하고 있다.

‘쉽지 않겠는데.’

아걸이 미간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쒜에에에에엑!

하늘에서 묘한 소리가 울렸다.

화살이 공기를 찢는 소리 같은데…… 화살 소리치고는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

‘저건!’

아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철창(鐵槍)!

하늘에서 철창 이십여 개가 날아오고 있다.

숨어있던 여덟 명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일제히 아걸을 향해 철창을 던졌다.

물론 철창으로 아걸을 죽이지는 못한다. 매우 위협적인 공격인 것은 확실하지만, 악어를 죽이기에는 너무 느리다. 느리다기보다는 둔탁하다고 해야 하나?

문제는 철창에 매달려있는 화약이다.

아걸은 화약 공격에 대한 경험이 많다. 그중 야구가 시도했던 방법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열 명을 철삭으로 묶어서 자살시켰던 패악적인 공격.

철창 이십여 개에 매달린 화약이라면 그때 받았던 공격에 비해서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파파팍! 파팍! 치이이익!

철창이 아걸 주위에 떨어졌다.

예상했던 대로 철창은 아걸을 노리고 던진 게 아니다.

심지 타는 냄새가 진하게 스며들었다. 야구가 공격했던 인간 화약처럼 철창으로 이루어진 화약 띠를 둘러쳤다. 화약으로 아걸을 감싸고 일시에 폭발시킨다.

절체절명의 순간 반철도가 번쩍! 빛을 뿌렸다.

후두두둑!

한순간, 반철도에서 광풍이 일어났다. 그를 가로막고 있던 철창이 수수깡처럼 부서져 나갔다.

아걸은 철창을 끊어내자마자 곧바로 구궁진을 뚫었다.

이 아홉 명…… 틀림없이 혈삭참맥을 펼칠 것이다. 거기에 주변을 초토화하는 폭발력이라면 천신도 잡을 수 있다. 아걸이라도 당하지 않을 수 없다. 순간,

꽈앙! 꽈아아앙!

아걸의 전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화약 폭발은 아니다. 철창에 매달린 화약은 아직도 심지가 타들어 가는 중이다.

반철도가 겨냥한 자, 그자가 자신을 폭사시켰다.

아걸은 손에 들고 있던 장삼을 암기 던지듯이 앞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신형을 쏘아내어 장삼을 뒤쫓았다.

타탁! 타타타탁!

뼈와 살점, 그리고 부서진 강편들이 장삼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아걸은 신형을 허공으로 띄웠다. 힘껏 솟구쳐서 두 발로 장삼을 내리찍고, 다시 허공으로 도약했다.

두 번의 도약은 살상범위를 벗어나게 해준다.

자신을 폭사한 무인도 아걸이 이토록 높이 솟구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꽈앙! 꽈아아아앙!

철창에 묶어 놓은 화약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걸의 발밑에서 거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피와 살점이 난무하고, 폭발이 땅을 뒤집어 놓았다. 그야말로 아수라 지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거친 폭풍이 휘몰아쳤다.

쉬이이익!

아걸은 이런 상황을 예측했다. 그래서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할 일만 했다. 발밑에서 일어나는 폭풍은 신경 쓰지 않고 몸을 앞으로 날려 구궁진을 뛰어넘었다.

구궁진의 머리를 밟았다.

정확히 말하면 구궁진을 형성한 사람 중 동쪽에 있는 세 명의 머리 위를 건너뛰었다.

이들의 등 뒤로 내려서면 구궁진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돌파가 아니라 회피다. 몸을 솟구쳐서 구궁진을 피한다. 모두가 폭발과 혈삭참맥에 신경을 쓸 때, 그는 오직 탈출하는 데만 온 신경을 쏟았다.

구궁진에 심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가볍게 피할 수 있다면 당연히 피해야 한다. 그런데,

스스스스! 사사사삿!

아걸이 뛰어넘은 세 명…… 그들이 재빨리 돌아섰다. 남북에 있는 세 명은 즉시 옆으로 달려와서 또다시 남과 북에 벽을 세웠다. 그리고 아무도 없던 동쪽에서 난데없이 세 명이 튀어나와 빈자리를 메웠다.

구궁진이 다시 펼쳐졌다.

원래 서쪽에서 구궁진을 전개하던 세 명은 숲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숨어있는 팔괘진과 드러난 구궁진이 서로 연계한다.

“음!”

아걸은 침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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