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62화 (462/600)

第九十三章 생사존망(生死存亡) (2)

아걸과 송가검문주가 마주 섰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싸우는 동안 끼어드는 자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아걸이 절혼곡으로 들어와서 송가검문주 앞에 설 때까지 방해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송가검문주를 마주한 지금도 기웃거리는 사람이 없다.

아걸과 이십사 위문 문주의 결전인데 아무도 구경하지 않는다.

사실은 구경할 틈이 없다. 싸움은 싱겁게 끝날 것이고, 곧 자신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착착! 착착착!

족쇄를 채웠다. 아걸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뒷문을 조이고 있다. 계곡에서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인의 장벽을 세우는 중이다.

두 사람의 싸움은 분명히 아걸의 승리로 끝난다.

송가검문주가 쓰러지는 것이 신호다. 그 이후로 절혼곡에는 피가 넘쳐흐를 것이다.

스릉!

송가검문주가 검을 뽑았다.

“말도 안 되는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나?”

송가검문주가 진지하게 말을 걸어왔다.

“뭡니까?”

아걸이 반철도를 굳게 잡으며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오직 무공으로 말을 할 차례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포식한다. 약한 자들이 힘을 뭉쳐서 강자를 죽인다.

“십 초만 양보해 주게.”

송가검문주가 뜻밖의 말을 했다.

아걸이 무슨 말이냐는 듯 송가검문주를 쳐다봤다.

아걸이 비록 공부 허도기와 검을 맞대는 절정고수라고 하지만 송가검문주 역시 절정고수임은 틀림없다. 두 사람의 무공 차이는 실낱같다.

그런 사람에게 십 초를 양보한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해 줄 수 있겠나?”

송가검문주가 물어왔다.

표정이 무척 진지하다. 절대 농담으로 흘리는 말이 아니다. 아걸을 죽이기 위한 꼼수로도 보이지 않는다.

“난감합니다.”

아걸이 솔직히 대답했다.

“그래도 평생을 검과 함께 살아왔는데…… 마지막 순간에 여한 없이 검초를 펼쳐보고 싶어서 말이지.”

“이 자리는 비무가 아닌 거로…….”

아걸이 다소 냉정하게 말했다.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질책도 들어 있었다.

“우리 송가검문의 검공은 공칠비삼(公七秘三)이지. 비삼. 후후! 쓸데없는 짓을 했어. 다 알려 줘도 어차피 자네 같은 사람을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데.”

“무인이 패배를 인정하고 싸우는 건 옳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싸움이 아닙니다.”

“말만 이럴 뿐이야. 나도 검을 들면 사정 봐주지 않아.”

“네.”

“십 초를 양보해 줄 텐가?”

또 그 소리! 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말인가.

하지만 정말로 송가검문주의 표정은 진지했다. 꼭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표정이다.

“좋습니다.”

아걸이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받아들였다.

사실, 이 대답은 목숨을 건 대답이다. 이제 십 초 동안 송가검문주는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무조건 공격 일변도로 검초를 전개할 것이다.

허점이나 반격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공격, 공격, 공격, 공격만 한다.

“고맙네. 십 초 양보 기꺼이 받지. 자네 덕분에 저승길 편히 가게 생겼어.”

스읏!

송가검문주가 말을 하면서 기수식을 취했다.

두 다리를 살짝 구부리고, 왼손 두 손가락을 앞으로 뻗어서 검을 받쳤다.

검은 눈높이다.

무작정 달려드는 기수식이 아니다. 공격 일변도 역시 아니다. 정교한 초식을 펼치려는 기수식이다.

아걸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송가검문주를 잘못 판단했다.

지금, 이 싸움은 죽고 죽이는 생사결전이 아니다. 아걸 같은 철벽을 상대로 자신이 수련한 검학을 아낌없이 펼쳐 보이려고 한다. 철벽을 뚫어 보려고 한다.

아걸이 본격적으로 칼을 휘두르면 일초? 이초? 혹은 삼초만에 승부가 갈린다.

그런 싸움도 있고 자신이 어느 정도나 검학을 성취했는지 알아보고 싶은 싸움도 있다.

말도 안 되지만 송가검문주는 지금 자신을 살피고자 한다.

이게 말이 되나? 탕산에 혈전장을 만들어 놓고, 최고 중심처에서 싸움을 시작을 알리는 사람이.

휘리릭!

아걸은 반철도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리고 칼을 들어 올렸다.

타타타탁! 타타탁!

송가검문주가 좁은 보폭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쒜에에엑!

검초가 날아온다. 눈부신 검초다. 순간적으로 검이 눈앞을 스쳐 간다. 아슬아슬하게 피했나? 아니다. 곧바로 다시 달려든다. 내리치던 검이 옆으로 눕혀지더니 곧바로 휘돌려서 위로 쳐올린다. 그리고 다시 아래로 내리찍는다.

타앙! 탕!

반철도와 검이 거칠게 부딪쳤다.

아걸은 내리치는 검을 반철도로 막았다. 철벽처럼 꽉 틀어막았다.

검이 널찍한 도신을 격타했다. 물론 반철도가 만든 철벽을 찍어 누르지는 못했다.

검이 통겨 올라갔다.

순간 송가검문주는 검을 놓아 버렸다. 오른손에 잡았던 검을 놓았다. 그리고 왼손으로 낚아챘다.

검이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겨지는 찰나의 순간까지도 아낀다.

사실 적과 접촉하는 순간에, 싸우는 와중에 검을 옮겨 잡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검을 놓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자칫하면 바로 목숨을 잃는다.

쒜에에엑! 촤라라락!

좌수검법, 왼손이 순간적으로 십칠 변을 일으켰다.

검이 난무한다. 검화가 피어난다. 왼손 손목만을 이용해서 휘두르는 검이다.

이런 무공은 아걸도 가지고 있다. 은거 무인들과 지내면서 터득한 자연도다. 관절의 굴절만 잘 이용해도 진기를 실은 병기만큼 위력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다.

스읏!

아걸은 반철도로 철벽을 만들었다.

아걸도 송가검문주처럼 손을 쭉 뻗었다. 그리고 손목만을 이용해서 반철도를 휘둘렀다. 둥글게, 둥글게 휘둘렀다.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렸다.

송가검문주는 화려한 검화를 피워낸다.

아걸은 오직 회전하는 철판만 만들어냈다.

까앙! 깡! 까아아아앙!

칼과 검이 거칠게 부딪혔다.

그 순간, 송가검문주는 또다시 검을 허공으로 던졌다.

아무리 십 초를 양보한다고 했지만…… 정말로 아걸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검초를 펼쳐낸다.

송가검문주는 허공에 뜬 검을 오른손으로 낚아챘다.

파파파팟! 파파팟!

이번에는 찌르는 검이다. 찌르고, 찌르고, 또 찔러온다. 순식간에 이십여 번이나 찔러 왔다.

아걸은 상반신의 움직임만으로 검초를 피했다.

느낌인데…… 화살 수십 대가 동시에 날아드는 것 같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는 생각도 든다.

송가검문주의 검초는 매우 뛰어나다. 능히 한 지역의 폐주가 될 만하다.

타아앙!

아걸은 반철도를 휘둘러서 장검을 옆으로 밀어냈다.

타탁! 타앗!

송가검문주가 뒤로 훌쩍 물러섰다.

“하하! 상대가 안 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어지간히 싸움이 되네. 내 검초 어떤가?”

“너무 복잡합니다.”

“그런가? 허점을 몇 번이나 찾아냈나?”

“글쎄요.”

아걸은 말끝을 흐렸다.

이것이 실전이라면 일 초에 끝났다. 첫 번째 격돌에서 반철도는 장검을 부러뜨렸을 것이다. 그다음은 손목을 치고, 이어서 곧바로 목을 친다.

반철도의 강맹함이 장검의 가벼움을 누른다.

송가검문의 검초는 매우 가볍다. 날렵하다. 그래서 빠르고 변화가 무쌍하다. 하지만 중병과 부딪치면 곧 한계가 드러난다. 힘에서 눌려 버린다.

사실, 이 검초는 아걸이 이미 지나쳐 온 무공이다.

병기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다!

검은 살짝만 스쳐도 살이 베인다. 실수로 난간에서 뚝 떨어뜨린 검에 죽을 수가 있다.

이게 검의 날카로움이다.

잘 간 검을 휘두르는 데는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다. 검을 쥔 듯 안 쥔 듯 가볍게 쥐고 초식을 펼치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속도나 변화는 확실히 이쪽이 낫다.

그러자면 신법이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송가검문의 신법은 약간 부족하다. 신법이 검의 빠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니 간혹 초식의 부조화가 드러난다. 진기가 끊긴다.

송가검문주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알고 있지만 검초를 뒷받침할 만한 적절한 신법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 검초는 송가검문주가 직접 창안했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송가검문주가 송가검문 검초의 조사가 되는 셈이다.

“‘후후! 역시! 약점을 알아봤군.”

송가검문주가 아걸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읽어냈다.

“솔직히 신법이 약합니다.”

“그렇지? 여기에는 어떤 신법이 좋을까?”

역시 송가검문주는 검법의 취약점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타파에 드러날까 봐 고심깨나 했을 것이다.

“글쎄요.”

“말해주게. 부탁이네.”

송가검문주의 표정이 절실해 보였다.

“제가 무공을 많이 아는 편이 아니라서.”

“도법을 쓰는 사람에게 검법을 말해달라는 게 우습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게 있으면 말해주게.”

송가검문주가 끈질기게 물어왔다.

참 웃기는 일이다. 생사 결전장에서 무공을 논하게 될 줄이야.

“칼 외에 다른 무공은 신경을 써본 적도 거의 없어서…… 제가 가장 많이 본 게 살수 문파의 무공입니다. 적랑대, 취화원. 귀문. 지금은 멸문했지만 귀문의 귀영보가 어떨지. 귀영보는 취화원의 암영검을 본떠서 만든 것이니.”

아걸은 말을 하다가 말았다.

말을 하다가 생각해 보니 정말 우습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취화원 암영검, 귀문 귀영보. 취화원 암영검, 귀문 귀영보. 취화원 암영검, 귀문 귀영보.”

송가검문주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아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말한 것을 기억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그러다가 문득 눈치챘다.

숲속에 사람들이 있다. 한 사내가 무릎을 꿇은 채 송가검문주를 보고 있다. 송가검문주가 쓰러지면 곧 혈전이 벌어질 텐데, 전혀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싸움만 지켜본다.

지금 송가검문주는 그에게 신법을 알려 주고 있다.

“후유!”

아걸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마도 조금 전에 펼친 삼초…… 평소에는 문도에게 전수하지 않던 비초일 것이다. 공칠비삼이라고 했나? 절정검객만 은밀히 알던 것을 완전히 공개했다.

“자, 염치없지만 칠 초 더 부탁하네.”

“그러시죠.”

아걸이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문주님은 돌아가실 것이다. 문주님이 돌아가시면 모두 대례를 올린다. 복수할 생각은 하지 마라. 절대 이 싸움에 가담하지 마라. 문주님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마라. 그저 슬프게 흐느끼기만 해라. 너무 슬퍼서 싸움을 잊은 것처럼.”

송전휘가 말했다.

문주는 비초를 모두 공개했다.

물론 송전휘는 비초를 알고 있다. 자신 곁에 있는 무인들도 아는 무공이다. 이들은 송가검문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 무인이다. 이곳에 온 무인치고 약한 자는 없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한 톨의 찌꺼기까지 모두 전수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신법도 말해 주었다.

그렇다고 취화원에 달려가서 암영검을 알려 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귀문의 귀영보를 찾을 수도 없다.

문주는 송가검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해 주었다.

무거운 신법을 버리고 가볍고 날렵한 신법을 택하라. 암영검을 참조하라.

사실 이런 점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신법을 연구하는 중이다. 변화막측한 것, 빠른 것…… 온갖 신법을 시도해 봤지만, 여전히 맥이 끊긴다. 무공을 창안한다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암영검을 봐야 한다. 그러면 송가검문은 지금보다 두 배는 더 강해질 수 있다.

문주는 숨죽인 채 살라고 했다. 송가검문을 해체하고 민초가 되어서 편히 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지금 송가검문이 나아갈 길을 문주 자신이 직접 몸으로 알려 주고 있지 않은가.

송가검문 무인들은 문주의 마지막 검초를 붉게 충혈된 눈으로 지켜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