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63화 (463/600)

第九十三章 생사존망(生死存亡) (3)

까앙!

검과 칼이 부딪쳤다.

화려한 불꽃!

나비의 움직임이 신들린 듯 화려하다.

송가검문주의 검초가 얼마나 화려하고, 날렵하고, 경쾌한 것인지 여실히 보여 준다.

이번에 전개한 칠 초는 송가검문 무인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모두에게 공개된 초식 공칠(公七)이다. 하지만 공칠도 쓰는 사람에 따라서는 절정 검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비삼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사실, 비삼은 검초라기보다는 암수에 가깝다.

정상적인 검초에서는 볼 수 없는 치명적인 일격이 내포되어 있다. 검초의 흐름에 휘말리면 숨겨진 수에 당할 수밖에 없도록 초식 구도가 짜여 있다.

비초는 아는 사람이 적어야 효과가 크다.

가능한 목숨을 걸만한 싸움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이유도 공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송가검문주는 비삼부터 토해냈다. 그리고 공칠을 나중에 드러냈다. 일명 절명 초식이라고 불리는 비초를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공개했다.

자! 어떠냐! 이게 비초다! 이게 정초(正招)다!

아걸에게 비초와 정초를 모두 쏟아냈다. 결과가 어떤가? 몸에 티끌만 한 상처라도 남겼나? 옷자락 한 올 건드리지 못했지 않나. 비초도 건드리지 못하는 무인이 있다. 그러니 비초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 정초를 믿어라!

아걸은 비초를 사용하지 않는다. 역대 일홀도가 모두 그렇다. 틀만 알면 따라서 할 수도 있는 정초들이다. 수련 경지가 그들을 따라가지 못할 뿐이다.

타아아앙!

거친 일격을 끝으로 송가검문주와 아걸은 좌우로 갈라섰다.

약속한 십 초가 지났다.

“아! 고맙네.”

“됐습니까?”

“나는 됐는데, 자네는 이제부터 시작이겠군.”

“괜찮습니다.”

“가능하면 고통 없이 끝내주게.”

“알겠습니다.”

아걸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약속한 십 초를 교환하면서 서로의 무공 차이를 확실히 깨달았다.

한 사람은 전력을 다했고, 한 사람은 유유히 막았다.

한 사람은 어떻게 막는지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한 사람은 검초가 날아오는 모습을 뚜렷하게 봤다.

이런 점을 두 사람 모두 안다.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면 일 초에 승부가 결정된다.

아걸이 터무니없이 무공이 높아서가 아니다. 두 사람 정도 되면 털끝만 한 차이를 천지 차이로 벌일 수 있다. 미세한 차이가 단숨에 승부를 결정짓는다.

쒜에에엑!

송가검문주가 검초를 쳐 냈다.

이번 검초는 지금까지 펼쳐 보인 검초와는 사뭇 다르다. 화려하지도 날쌔지도 않다.

슛!

비초를 전개할 때처럼 몸통을 찔러오던 검이 느닷없이 가슴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니, 가슴을 찌르는가 싶더니 휘익! 검의 방향을 바꿔서 목을 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다.

마치 갈지 자를 거꾸로 쓴 것 같다. 밑에 있는 획부터 위로 그려냈다.

타앙!

목을 치던 검이 반철도에 막혔다.

검이 흐르는 궤적에 칼이 서 있으면 검은 더 나아가지 못한다. 칼을 짓누를 내공이 없는 한, 제 자리에 멈추어 선다. 아니면 밖으로 퉁겨 나간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검과 칼이 부딪치는 순간, 아걸이 반철도를 예각으로 세웠다. 검은 뭉툭한 반철도의 날을 가격했다. 두툼한 도신이 아니라 날을…… 당연히 검에 전달되는 반탄력이 크다.

따아악!

검이 부러져 나갔다.

순간, 탁! 반철도가 혈화를 뿌렸다. 탕산의 맑은 공기 속에 진한 피비린내가 역하게 번졌다.

쿵!

송가검문주가 쓰러졌다.

송가검문주는 부탁했던 것처럼 거의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죽음이 너무도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몸이 고통을 알기 전에 이미 숨이 끊어졌다.

휘리릭!

아걸은 반철도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 * *

아걸이 잘못 안 것이 있다.

송가검문 검공은 문주가 창안한 것이 아니다. 문주는 제 사대 문주였다. 문주 이전에 삼대가 더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흠이 있었기 때문에 중소문파에 만족해야만 했다.

공부 허도기가 검공을 만져 주었다.

송가검문 무인들이 수련한 신법은 공부가 정리해 준 것이다.

하지만 개조된 신법을 수련했는데도 간혹 진기가 끊기는 현상이 계속 일어났다.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매끄럽지 못했다.

그런 단점이 아걸 앞에서는 여실히 드러났다. 처음부터 목숨을 빼앗길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

“그때는 정말 참담했지. 우리가 뭘 수련한 건지 모르겠더라고. 문주가 일도에 목숨을 잃었을 때는. 하지만 문주는 목숨을 바쳐서 가는 길을 알려 줬지. 암영검. 귀영보. 그 두 가지 무공을 들었기 때문에 오늘의 송가검문이 있는 거지. 그때…… 문주가 목숨을 바쳐서 숙원을 풀어줬던 거야.”

송가검문은 이십사 위문 중 유일하게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십사 위문에서 벗어나 정통 검문의 길을 걷고 있다.

제오대 송가검문주 송전휘는 매년 탕산을 찾아 제사를 지낸다.

제사대 문주가 죽은 자리, 송가검문주를 바로 그 자리에 모셨기 때문에.

제사대 송가검문주는 송가검공을 완성한 문주로 기억되고 있다.

* * *

아걸과 송가검문주의 싸움은 매우 간단하게 끝났다.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것은 이 싸움에서 아걸이 다치거나 최소한 지치기라도 하는 것이다. 몸에 검을 박지는 못해도 힘들게는 만들어야 하지 않나.

송가검문주가 그 정도는 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아걸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아주 멀쩡하다. 힘도 남아서 여전히 펄펄 난다.

송가검문주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모두가 봤다시피 최선을 다했다. 최선 이상으로 전력을 다해서 싸웠다. 이런 점은 인정해야 한다.

송가검문주가 펼친 마지막 초식은 송가검문의 검공이 아니다.

공칠비삼이라는 열 개의 초식 중에서 정수만을 뽑아 연환수로 공격했다.

아마도 싸움 중에 깨달은 그만의 절초였을 것이다.

송가검문주는 목숨 건 실전에서 막 생각난 미완성 무공을 전개할 만큼 절박했다.

착착착! 착착!

무인들이 활을 겨눴다.

검사들에게 활을 쥐여 줬을 때, 그들은 거부감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꼈다.

탕산에 소집된 무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검을 얻었다고 자부하는 검사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활을 쓰라고 건네주는 건 모욕처럼 여겨진다.

사실 그들은 합공도 창피했다.

합공은 워낙 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일 대 일로는 승부가 되지 않으니 무리를 지어서라고 합공한다. 그래야 찍어 넘길 수 있다. 누가 일 대 일 대결을 벌일 것인가? 할 수 있으면 나서라.

그럴 수 없어서 합공을 받아들였다.

지금도 그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스르륵 그들에게 찾아왔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조용히 활을 든다.

검으로는 아걸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자신들과 아걸은 차이가 너무 많이 벌어진다.

둥!

북이 울렸다.

타앙! 쒜에엑! 쉐엑! 쒜에에에엑!

무인들은 일제히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현장에는 목이 베인 송가검문주도 쓰러져 있다. 그들이 쏘아낸 화살은 문주의 몸에도 틀어박힌다. 시신이 순식간에 고슴도치로 변해 버렸다.

그런 점을 아랑곳할 때가 아니다.

무인들의 눈에는 아걸만 보였다.

‘제발 맞아라! 이 악귀야!’

아걸은 반철도로 휘둘러서 화살을 막아내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자신이 걸어왔던 길, 계곡을 향해 뛰어 내려간다. 비무의 목적을 이뤘으니 절혼곡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 싸움은 탕산에 모이 무인 대 아걸의 싸움이다. 하지만 명목상으로는 아걸 대 송가검문주의 싸움이다. 송가검문주를 죽였으니 싸움은 끝났다.

이대로 아걸이 떠나도 할 말이 없다.

두웅!

급히 북이 울렸다.

그러자 아걸이 치달리는 앞쪽에서 일단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열 명씩 세 줄로 늘어섰다.

‘연환사(連環射)!”

첫줄에 있던 열 명이 활을 쏘고 곧바로 주저앉는다. 그리고 활에 화살을 재운 후, 다시 일어선다.

그들이 앉았다가 일어설 동안, 둘째 줄과 셋째 줄에 있는 무인도 화살을 날린다. 그리고 그들 역시 주저앉아서 화살을 재운 후에 다시 일어선다.

사람이 앉았다가 일어서는 동안 무려 서른 대의 화살이 쏘아지는 셈이다.

이런 연환사는 특이한 공격법이 아니다. 실제로 전장에서 많이 쓰이는 궁법이다.

연환사는 전장에서 탄생했다.

활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쏠 수가 있다. 그저 약 일다경 정도 순서를 맞추는 연습만 하면 연환사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무척 피하기 어려운 공격수다.

이들의 목적은 아걸이 계곡을 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좌우에서는 화살 비가 쏟아지고 있다. 몸을 가릴 곳이 전혀 없는 계곡에서 어디로 피할 것인가.

직사(直射)라면 바위 뒤로 몸을 숨길 수 있지만, 화살은 곡사(曲射)다. 직사와 곡사가 동시에 가능하다. 또한, 한쪽에서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서 공격한다.

몸을 가릴 곳이 없다.

쒜에에엑! 쒜에에에엑!

화살이 급하게 날아들었다.

그래서인지 아걸은 성난 들소처럼 앞쪽으로 달려들었다.

무인들이 쏘아대는 화살은 수십 대이지만 아걸의 움직임은 화살 무더기를 피할 만큼 빨랐다. 왠지 화살이 아걸의 뒤만 쫓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후웃!”

아걸은 숨을 골랐다. 그리고 치달렸다.

그는 화살 공격을 받은 적이 많다. 화약, 암기…… 온갖 종류의 공격을 받아봤다. 요즘 들어서는 싸움이라고 하면 무공 싸움이 아니라 그냥 전투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이런 공격을 피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화살을 인간이 날리기 때문에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집중점을 바꾸면 된다.

화살을 쏘는 사람이 몇 명일지라도 상관없다. 그들 모두, 한 명도 예외 없이 목표를 보고 화살을 날린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걸에게 화살이 집중된다.

지금처럼 한쪽만 막고 쏘는 연환사, 사방을 틀어막고 폭우처럼 쏟아내는 망사(網射)…… 모두 마찬가지다. 노리는 표적은 포위망 안에 갇힌 한 점이다.

아걸은 점이 되어서 잠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움직이지 않는 목표를 향해 화살이 쏘아진다. 그 순간 탕! 신형을 바로 옆으로 움직인다. 대략 삼 장 내지 사 장도 쭉! 뻗어 나간다.

목표가 이동한다. 하지만 무인들은 목표를 따라가지 못한다. 아니, 즉시 쫓아온다. 하지만 그러려면 활에 화살을 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잠깐의 공백이 생긴다.

반철도와 이 공백을 잘 이용하면 화살을 피할 수가 있다.

일반 무인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할 것이다.

일반 무인들 눈에는 공백이 보이지가 않는다. 아걸이 말한 것처럼 목표점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눈부신 신법이 필요하다.

사형의 일탄십검이 이때 쓰인다.

사형의 일탄십검은 원래 빠른 신법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소낙비처럼 퍼붓는 칼의 변화를 추구한 도법이었다.

그것을 아걸이 변형시켰다.

타격 순간 눈부시게 변하는 도법에서 쏜살같이 달려드는 일탄십검이 훨씬 강력하다.

사형도 죽을 무렵에는 달려드는 속도가 무척 빨라졌다. 그것은 신법을 특별하게 추구했다기보다는 일탄십검에 능숙해지다 보니 몸도 빨라졌던 탓이다.

아걸은 사형의 도법에서 반짝 묘리를 얻었다.

정지 후 이동, 그리고 공격!

화살이 아걸의 뒤만 쫓고 있다고 느껴진 것은 잘못된 느낌이 아니다. 사실이 그랬다.

하지만 무인들은 이런 형상을 직접 목격하고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활이 절대적으로 빠르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어서다.

아걸의 빠름을 인정하기 곤란한 것이다. 자신들은 펼칠 수 없는 빠름이기에.

’연사를 뚫자!’

따따탕! 따탕!

아걸은 반철도를 휘둘러서 연속적으로 화살을 튕겨냈다. 그리고 앞으로 훅!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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