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三章 생사존망(生死存亡) (5)
독이냐, 암기냐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활이냐.
그때, 사방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이 일시에 움직이는데, 아걸을 향해서 달려오는 것이 아니다. 숲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무슨……?’
아걸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저들은 분명히 어떤 암수를 전개할 것이다.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저렇게 많은 사람이 움직여서…… 그러면 검진인가? 또 어떤 진을 들고나오려고?
촤르륵! 촤락! 촤르르르!
사방에서 그물이 벌떡 일어섰다.
그물은 ‘펼친다’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일반적인데 지금은 일어선다는 표현이 맞다. 땅에 눕혀져 있던 그물이 용수철로 퉁겨진 듯 벌떡 일어났다.
촤륵, 촤르륵!
그물을 잡은 사람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그물 간의 거리를 조율했다.
커다란 그물을 양쪽에서 두 명이 맞잡고 있다. 두 명, 두 명, 두 명…… 모두 여덟 조, 열여섯 명이다. 그들이 서로 그물을 겹치고 있다.
정팔각형의 그물이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후후!”
아걸은 웃었다.
그렇구나! 자신도 실수를 저질렀다. 그것도 아주 큰 실수를 두 가지나 저질렀다.
하나는 이들을 너무 무시했다.
무공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 그러니 너희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정작 그러면서도 저들이 해 올 공격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두 번째 실수는 눈앞의 위험을 피하기에 급급해서 앞으로 다가올 큰 위험을 보지 못한 것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하나?
철시를 피하다 보니 숲속 공터에 서 있었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공격받기 딱 좋은 장소로 들어섰다. 그런 사실을 저들이 나타난 후에야 알았다.
화화문도, 천시, 그리고 이 공터는 준비된 함정이다.
‘그렇다면…….’
아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맞다! 하늘에도 커다란 그물이 덮여있다. 나무 위에 여덟 명이 앉아 있고, 그들이 그물 끝자락을 하나씩 잡고 있다. 공터 전체를 뒤집어씌울 수 있을 정도로 큰 그물이다.
새가 새장에 갇힌 것처럼 인간이 만든 그물망에 갇혔다.
정팔각형으로 형성된 그물이 어느 정도 일정한 거리까지 다가서면 하늘에 펼쳐진 그물도 떨어질 것이다.
그물망을 뚫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물망을 잡고 있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물망을 찢어버리는 것이다.
두 가지 다 쉽지 않다.
그물망은 모두 여덟 개다. 여덟 개 모두 왼쪽을 잡은 사람이 옆 그물 오른쪽 위로 올라가 있다. 그물은 잡아당길수록 그물은 안으로 조이고, 그물을 잡은 사람은 멀어지는 구조다. 암기가 아니라면 직접 공격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한쪽 그물이 다른 쪽 그물 위로 올라간다면…… 서로 겹쳐진 부분에 빈 곳이 나오지 않을까?
나온다. 저들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그물 밑에 길게 늘어진 가시 철망을 달았다. 공간이 생겨도 축 늘어진 가시 철망 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러면 남은 것은 그물망을 찢는 것인데…… 멀리서 봐도 그물망이 물에 젖은 비늘처럼 반짝거린다.
일반 밧줄로 만든 것이 아니다. 아마도 반철도를 의식하고 만들었지 않나 싶다. 그러면 우악스러운 힘으로 내리쳐도 끊어지지 않을 게 뻔하다.
쒜에에엑!
아걸은 그물을 향해 치달렸다.
그물 전체를 상대할 필요는 없다. 눈앞에 있는 것 하나만 상대하면 된다.
스스스! 스스스슷!
저들은 아걸의 이런 행동을 짐작했다는 듯 빠르게 오른쪽으로 휘돌았다.
아걸은 목표를 한순간에 잃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들이 한 바퀴씩 휘돌 때마다 그물망이 점차 안으로 좁혀진다.
그물망 다루는 솜씨를 보니 하루 이틀 만에 급조한 포위망이 아니다. 무척 오랜 시간 동안 그물을 가지고 씨름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쒜에에엑!
아걸은 저들이 휘도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물을 향해 치달려 갔다. 그때,
촤아아아악!
머리 위에 펼쳐져 있던 그물이 떨어졌다.
이번에 또 착각했다. 정팔각형 그물이 좁혀져 오고 그물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정반대다. 머리 위에 있는 그물이 먼저 떨어진다. 그 후, 그물이 빠르게 좁혀올 예정이다.
쒜에엑!
아걸은 최선을 다해서 치달렸다.
위에서 떨어지는 그물을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니 그물이 떨어지기 전에 앞에 있는 그물을 뚫고 나가야 한다.
‘저기 독침이라도 박아놨으면 치명적…….’
아걸이 하는 생각은 저들도 한다. 똑같은 사람인데 단숨에 죽일 수 있는 생각을 하지 못하겠나. 어차피 공명정대라는 말은 뒷간에 버리고 온 마당에.
슈우우욱!
아걸은 떨어져 내리는 그물에서 시커멓게 번뜩이는 빛을 봤다.
그물에 독침이 박혀 있다. 세침(細針)에 독을 묻혀 놨는데 물기가 마르면서 광택이 어렸다. 독침이 잘 닦아 놓은 흑요석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독침은 차후에 생각할 문제다. 정적 제일 급한 문제는 그가 달려 나가는 것보다 위에서 떨어지는 그물이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시간이 없다!’
아걸은 몰안을 일으켰다.
원래 물안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마음을 명경지수처럼 맑게 유지해야 한다. 전신 감각을 모두 망각하고, 단전에서 일어난 진기를 오로지 두 눈에 모여 보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을 명경지수처럼 맑게 유지할 수 없다. 마음 같은 것을 살필 여유도 없다. 눈앞에 벌어진 일을 처리하기에도 급급하다.
‘몰안!’
생각이 일어나자 곧바로 진기가 두 눈에 응집되었다. 전신 감각은 저절로 떨어져 나갔다. 신체는 소멸하고 오직 두 눈만 살아서 번뜩이는 느낌이었다.
몰안은 차분한 상태에서 일으켜야 하지만, 때로는 정반대 역할도 해 준다.
아걸은 몰안을 언제든 일으킬 수 있다. 그만큼 숙달되어 있다. 집중하자는 느낌만 들어도 몰안이 일어난다. 그리고 정반대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츠으읏!
마음이 맑은 호수처럼 투명해지는 느낌이다.
산 밑에서 위를 쳐다보면 정상이 보이지만, 정상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산 밑이 보인다.
어느 위치에 서 있느냐가 문제다.
명경지수는 몰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지만, 몰안에서 보면 명경지수가 보인다.
아걸은 맑아진 눈으로 그물을 쳐다봤다. 그리고 즉시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파앗!
반철도가 머리 위에서 번뜩였다.
‘저기!’
목표가 뚜렷하게 보인다.
그물코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넓이다. 다람쥐 정도나 빠져나갈까? 원숭이 크기만 되어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는 그물이다.
아걸은 정확하게 반철도의 뭉툭한 칼끝을 그물코에 꽂아 넣었다. 그 순간,
쫘아아아아악!
갑자기 벼락이 고목을 내리찍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채찍으로 꽁꽁 언 빙판을 때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무언가가 거칠게 쪼개지는 소리였다.
그물! 그물이 단숨에 찢겨 나갔다.
일홀문 십대문주의 천력도다. 칼에 하늘의 힘을 싣는다. 천신이 내리치는 칼을 만든다. 전신 진기를 온전히 칼에 담고, 일시에 목표를 쪼갠다.
천력도는 삼십대 문주의 회선도로 이어졌다.
쫘아아악! 쫘악! 쫙!
칼이 맹렬하게 회전하면서 그물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물이 고양이 발톱에 찢긴 종이처럼 조각조각 나서 떨어져 나갔다.
슈웃!
그 틈으로 아걸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난 대사단이다.
아걸은 곧장 몸을 뒤집으며 떨어져 내렸다.
하늘을 뚫었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걸이 훼손한 그물망이 널찍한 공터에 털썩 떨어졌다.
그물을 들고 앞으로 달려오던 무인들은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방에 그물 벽을 치고 아걸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감시만 한다. 땅에 독침 박힌 그물이 떨어져 있으니…… 허공에 떠 있는 네가 어디로 갈 거냐는 투다.
슈아아앗!
아걸은 유성처럼 내리꽂혔다. 땅에 떨어져 넓게 펴진 그물에 그대로 처박히는 듯했다.
순간, 팍! 반철도가 땅을 내리찍었다.
아걸이 다시 튕겨 올라왔다.
아걸은 반철도로 땅을 찍지 않았다. 도신으로 후려쳤다. 그리고 그 탄력으로 다시 솟구쳤다.
슈아아앗! 슈웃!
아걸이 단숨에 그물 벽을 뛰어넘었다. 아니, 어느새 반철도가 허공을 그었다.
쒜에엑! 퍽!
그물을 잡은 무인이 허리를 푹 꺾었다.
반철도는 척추를 갈라버렸다. 쓰러지는 무인을 버려두고 옆에 있는 무인의 가슴도 쳐냈다.
무인들은 이번에는 필승을 자신했을 것이다.
천하에 아걸이라도 이 정도의 함정은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아걸이 땅에 처박힐 순간만 기다렸다.
아걸이 떨어지면 그 위로 그물을 던지려고 했다. 열여섯 명이 그물만 여덟 개를 던진다.
아걸은 독침 막힌 그물을 덮어쓴다. 그 위에, 또 그 위에 그물이 계속 덮힌다.
어떻게 살겠나? 죽을 수밖에 없다.
활에 화살을 재운 채 기다리고 있는 무인도 있다. 아걸이 그물에 갇히기만 하면 그대로 활을 쏠 생각이다.
아걸은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깼다.
퍽! 푹!
아걸은 다른 무인의 복부에 반철도를 틀어박았다. 그리고 계속 반철도를 밀고 갔다. 반철도에 배가 뚫린 자는 아걸이 떠미는 힘에 밀려서 주르륵 뒤로 물러났다.
아걸이 그를 어깨로 밀쳐내고 반철도로 뽑아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나무를 크게 베었다.
팍!
나무가 갈라지며 나무 뒤에 있던 무인이 풀썩 쓰러졌다.
휘리릭! 파팟!
아걸은 반철도를 휘돌려서 칼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칼에 피가 묻으면 가끔 털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목으로 흘러내려서 손에 묻는다. 끈끈한 피가 손아귀로 흘러들면 기분도 좋지 않고, 칼을 쥔 손의 감각도 달라진다.
무인들이 재빨리 뒤로 물러서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물망 공격이 통하지 않았으니 또 다른 수법을 들고나와야 한다. 무공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다.
슷!
아걸을 그들을 노려봤다. 그리고 슬며시 옆구리를 흘겨봤다.
붉은 피가 옆구리를 통해서 흘러내렸다. 어느새 비수 한 자루가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몰안을 일으켜서 허공으로 솟구칠 때…… 비수는 그때 날아왔다. 아걸의 온 정신이 그물에 쏠려 있을 때를 노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소리 없이 다가왔다.
이번은 위험천만했다. 자칫했으면 비수에 꿰뚫릴 뻔했다.
“으음!”
아걸은 옅은 신음을 흘렸다.
비수가 긁고 지나간 자리…… 심상치 않다. 벌써 피부가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독을 발라 놓은 독비수다.
툭! 툭툭! 툭!
아걸은 상처 주변의 혈을 눌러 지압했다. 아니, 독기가 빠져나가는 혈맥과 경맥을 차단했다.
장문혈(章門穴), 대맥혈(帶脈穴), 오추혈(五樞穴)…… 독기가 번져나갈 만한 곳은 모두 막았다.
비수가 어디서 날아왔을까?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다.
아걸의 감각은 거의 초능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예민하다. 그런데도 비수가 날아오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소리와 살기를 완전히 죽였다.
무엇보다도 아걸의 신경이 오로지 그물망에 쏠려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순간에 비수를 날렸다. 또 다른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공격이 터졌다.
‘정말 절묘한 순간을 노렸어. 그렇군.’
아걸은 미간을 살며시 찌푸렸다.
동영 유음류!
아득한 음지 속에서 툭 튀어나온 살법!
비수는 누가 던졌는지 짐작하겠다. 솔직히 이십사 위문 무인들의 솜씨는 아니다. 그들도 은밀하게 비수를 던질 수는 있지만, 허점이 완전히 노출된 순간을 낚아채지 못한다.
이건 볼 것도 없이 동영 인술이다.
동영 인자는 인간이 가장 취약한 순간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원래 그럴 순간만 노려서 암습을 펼치는 문파인지라, 인간이 가장 약한 순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조심해야겠군.’
아걸은 주위를 쓸어봤다.
동영 인자가 숨어 있을 만한 곳은 찾아지지 않았다.
아걸은 옆구리를 다시 흘깃 쳐다봤다.
살짝 스치기만 한 상처인데 심상치 않다. 벌써 검붉은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벌어진 살 틈으로 희끄무레한 것도 보인다. 벌써 농이 잡힌다.
매우 빠른 진행이다.
아무리 독비수라고 하지만, 이토록 빠른 진행을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어떤 독을 사용한 것일까?
쉬이이익!
아걸은 다른 자를 향해 쏘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