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四章 상불출래(想不出来) (4)
무공은 실전으로 귀결된다. 실전을 배제한 무공은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
수련은 과정이다.
모든 무공이 수련으로 시작해서 수련으로 진행하다가 실전으로 마무리된다. 실천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모든 무공의 처음과 끝이 실전으로 향한다.
아걸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미 실전 경험이 그 누구보다도 많지만, 아직도 실전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아걸은 정말 강한 자들과 싸워 왔다. 지금까지 싸웠던 사람 중에 누구 하나 약한 자가 없었다. 실제로 목숨이 위험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중에는 사형이나 공부 허도기와 같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벽들도 있었다.
그런 벽들을 하나하나 넘어왔다.
솔직히 이십사 위문 무인들은 그런 벽에 비하면 너무 가볍다.
그렇다고 이 싸움이 약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 싸움은 또 다른 면에서 처절하다. 일대일의 싸움이라면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무리를 지으면 싸리비도 몽둥이가 된다.
쒜에에엑! 퍼억!
반철도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죽음이 일어났다.
사람이 또 한 명 죽었다. 하지만 여전히 갈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 강하고 격렬하게 싸우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난다. 더 빠르고 더 확실하게 공격하고 싶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살심은 아니다. 싸움을 갈망할 뿐이다.
노정문주와 싸우면서 이 순간에만 집중하는 도초를 얻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순간에 번뜩이는 도초이니 순도(瞬刀)라고 말할 수 있다.
그걸로 일홀도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닌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아걸은 또 다른 도초를 찾아냈다. 아니, 찾아낸 것이 아니라 저절로 찾아왔다. 몸이 이상야릇한 도초를 펼치고 있다.
물론 노정문주와 겨루면서 얻은 순도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저벅! 저벅!
아걸은 천천히 걸었다. 급하게 서둘지 않는다.
무인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지만, 자신도 덩달아서 급할 필요가 없다. 저들이 아직 몸 가까이 달라붙지 않았다. 그렇다면 검도 달라붙지 않은 것이다.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는 적 때문에 다급할 필요는 없다.
저들의 병기가 몸 가까이 달라붙을 때, 그때 비로소 반응하면 된다. 칼을 쓰는 속도가 상대보다 월등히 빠르다고 자신할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검을 겪어 보지도 않았는데 빠른지 느린지 어떻게 아나?
안다. 본능으로 느껴진다. 검을 들고 있는 모습, 걸음걸이, 긴장도 등등 무인이 드러내는 모든 모습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낸다.
나보다 약하다. 느리다.
적의 병기를 신경 쓰지 않으니 마음도 평화롭다. 목숨이 오가는 실전이지만 전혀 긴장되지 않는다. 반면에 저들은 더욱 긴장한다. 너무 긴장해서 얼어붙은 모습이 똑똑히 보인다.
쒜에에엑! 쒜엑!
검이 몸 가까이 다가붙었다.
쒜엑!
아걸은 비로소 칼을 썼다.
가장 단순한 칼!
이들과 싸우면서 새롭게 찾아낸 도초다.
칼은 단순해야 한다. 단순해야 빨라지고 강해진다. 단순해야만 칼의 제 모습이 선명히 드러난다.
칼은 절대로 어지럽거나 화려할 필요가 없다.
강하게 치기 위해서 진기를 전력으로 집중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힘이 잔뜩 들어간 칼이 오히려 진기를 싣지 않고 쳐 낸 칼보다 느릴 수도 있다.
칼이 점, 저들의 몸이 점이라고 하면 점과 점만 연결하면 끝난다.
가장 단순한 도초다.
다른 변화는 모두 무시하고 딱 점과 점만 연결할 때에 가장 빠른 칼이 튀어나온다. 어떤 변화든 칼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그만큼 칼의 움직임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칼의 움직임이 많아지는 만큼 빠르지 않다.
패도(覇刀)는 어떤가? 패도를 쳐 내기 위해서는 진기를 올곧이 집중시켜야 한다.
진기가 잔뜩 들어간 칼, 물론 빠르고 강하다.
하지만 점과 점을 일직선으로 잇는 칼, 최단 거리로 그어내는 칼보다는 느리다.
풀썩!
반철도에 격타당한 무인이 쓰러졌다.
무인이 쓰러지면서도 비명을 토해내지 않았다.
아걸에 일홀도는 비명을 허락하지 않는다. 타격과 동시에 생명이 끊어진다. 그러니 비명을 지를 틈도 없다. 솔직히 상대는 자신이 죽는 것도 모른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팍 끊어진다.
아걸이 고통 없이 죽일 마음으로 일부러 정성 들여서 쳐 낸 칼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쳐내는 칼인 순도와 점과 점만을 잇는 칼, 직도(直刀)가 어울려서 만들어 낸 죽음이다.
‘변화를 주지 않고 가장 빠른 거리로…….’
점과 점을 잇는다는 말은 단지 칼만 최단 거리를 연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쪽 점에서 저쪽 점을 향해 칼이 쏘아진다. 즉, 이쪽 점에서 저쪽 점을 노리고 전력을 다한다. 아걸은 이미 칼을 던졌고, 그다음은 모른다.
반철도가 알아서 저쪽 점을 향해 날아간다.
이것이 가장 빠르고 가장 강한 칼이 된다.
진기를 있는 힘껏 쥐어 짜내서 순간적으로 타격하는 것보다 더 강한 타격이 이루어진다. 미약한 진기만으로도 진기가 가득 응집된 칼만큼이나 강한 칼을 쳐 낼 수 있다.
지금 아걸이 펼치는 일홀도에는 자연도의 묘리가 녹아 있다.
아걸은 자연도를 터득할 때 인간의 움직임과 병기의 움직임을 연구했다.
칼은 누가 쓸까? 사람이 쓴다.
칼은 사람이 쓰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초식을 펼쳐 낼 때 가장 많은 움직이는 주체는 칼일까, 몸일까?
많은 사람이 몸이 움직이고 칼이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심을 품고 칼을 꺼내 들 때만 칼이 움직이기 때문에 당연한 말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 싸움이 벌어지는 순간에는…… 아니다. 칼이 먼저 움직이고 몸이 뒤따라 간다.
몸으로 칼을 이끄는 것은 하수다.
칼이 날아가고 몸이 칼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그러면 진정한 칼의 위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연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칼이 지닌 속성을 제대로 드러내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아걸이 휘두르는 일홀도에 녹아 있다.
어느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 곳이 아니다.
쒜에엑! 쒜엑! 퍼억!
칼과 검이 어우러졌다. 그리고 좌우에서 협공을 가해 오던 두 명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아걸은 마유 마인들과 싸운 경험이 있다.
그들은 두 명이 일 개 조가 되어서 천지검과 수평검을 사용했다.
분명히 아걸은 그들과 싸울 때 여유롭지 못했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과 다시 싸운다면 매우 편안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십사 위문 무인을 상대할 때처럼 마유 마인들의 검도 눈앞에 다가올 때까지 긴장하지 않고 지켜볼 수 있다. 검이 몸에 닿을 찰나, 반철도가 덮쳐 버린다.
순간적인 반응, 유효 적절한 타격!
칼이 움직이고 아걸이 움직였다. 마치 몸이 반철도에 끌려가는 기분이다.
이것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다. 정말 그런 기분이 든다. 반철도를 휘두르면 칼의 무게가 몸을 끌어당긴다. 그러면 칼이 휘도는 방향으로 몸이 따라서 휘돈다.
분명히 칼이 먼저고 몸이 나중이다.
이런 도초를 계속 써 보고 싶다. 순도와 칼을 앞세운 직도가 매우 편안하게 몸에 달라붙는다.
아걸이 싸움에 갈증을 느끼는 이유다.
쒜에엑! 퍼억!
벌써 서른 명인지 마흔 명인지 모를 무인을 쓰러뜨렸다. 그런데도 지치지 않는다. 이제 겨우 반철도를 서른 번에서 마흔 번 정도 흔들었을 뿐이다.
이것이 수련이라면, 저항하지 못하는 나무를 서른 번쯤 가격했다고 해서 힘들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긴장하지 않으니 심력 낭비도 없다.
아걸이 그런 상태다.
그렇다. 이 싸움, 언제까지든 할 수 있다.
진평에서 대산방 무인 사백십칠 명을 죽일 때처럼…… 그렇게 힘들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때도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싸웠다. 나중에는 너무 지쳐서 칼을 들 힘도 없었다. 차라리 저들에게 검을 맞고 누워 버릴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지금은 똑같은 일을 벌인다고 해도 넉넉하게 싸울 수 있다.
쒜에에엑!
아걸은 무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무인들도 재빨리 검을 들어서 협공을 가해왔다.
저들은 약하지 않다. 저들의 검이 상어 이빨이 되어서 달려든다. 득달같이 몸뚱이를 베어온다.
반철도가 검과 검 사이를 유유히 헤쳐나갔다.
파앗! 퍼억!
반철도가 번뜩일 때마다 사람이 쓰러진다.
“크윽!”
가끔이지만 비명도 터졌다.
아걸이 미숙한 것이다.
새로운 무리를 깨달아서 무아지경 속에서 펼치고 있지만, 아직 몸이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사용하는 도법이 몸에 붙을 때까지는 상당한 수련이 필요하다.
아걸은 그 수련을 실천을 통해서 터득하고 있다.
백수일전(百修一戰)이라고 했다. 백일 수련한 것보다 한 번 실전해서 써 본 칼이 더 낫다는 말이다.
쒜에엑! 쒜엑! 퍼퍼퍽!
다시 세 명이 쓰러졌다.
개가 똘똘 뭉치면 호랑이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걸과 이십사 위문 무인들의 싸움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뭉치고 기를 써도 상대가 안 된다.
그저 무너진다.
주위에 사람이 없다.
“후웁!”
아걸은 숨을 들이켰다.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일시 공백 현상이 일어났을 뿐이다. 그리고 벌써 두 사람이 나타나고 있다.
“천호문주다.”
“부문주.”
두 사람이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아걸을 향해 검을 겨눴다.
천호문주의 검은 노정문주에 비해서 밀리지 않는다. 굳이 말하면 호각지세다.
검 끝에서 강한 경기가 밀려 나온다.
‘검을 부드럽게 움직이네. 날카롭고 아름다워.’
분명 수천, 수만 번 검을 휘둘러 본 손길이다.
부문주 역시 극강의 검도를 지녔다. 문주에 비해서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스스슷!
두 사람이 좌우로 갈라졌다.
두 사람은 이십사 위문의 문주요 또 한 사람은 부문주다. 그런데도 합공을 취한다. 절정 검객 두 명이 합공을 하면서도 창피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이들은 아걸과 자신들의 무공 차이가 현격히 벌어진다는 걸 안다.
솔직히 말하면 며칠 전과는…… 소축십검 초가평과 싸웠을 때와는 크게 다르다. 그때의 무공이었다면 이토록 여유롭게 이들을 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노정문주와 싸우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고, 이번 탕산행에서 또다시 깨달음을 얻었다.
어떻게 하면 미약한 진기로도 강한 칼을 쳐 낼 수 있는지 방법을 알아냈다.
아걸이 깨달은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많은 무인이 이미 알고 있는 평범한 무리(武理)이다.
점과 점을 잇는 최단 거리로 검을 쓴다.
이것은 쾌검의 속성이다. 쾌검을 추구하는 사람치고 이 단일선(短一線)의 무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걸이 새삼스럽게 없던 것을 찾아낸 것이 아니다.
사실, 일홀문 사대문주의 탄궁도 역시 이런 단일선의 무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철도와 상대의 심장을 최단 거리로 연결하는 작업이 탄궁도다.
하지만 아걸이 깨달은 것은 단일선의 진정한 오의다.
머릿속으로 알고 억지로 만들어내는 단일선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알아서 일으키는 단일선이다.
쒜에엑! 쒜엑!
천호문주와 부문주가 합공을 취해왔다.
가볍다. 아니, 무겁다! 더 무겁다! 뭐가 이렇게 강해!
문주와 부문주의 검은 달려오는 순간마다 강도가 변했다. 처음에는 미풍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엄청난 힘을 실은 패검이 되어서 날아왔다. 저 검에 부딪히면 반철도가 되었든 대도가 되었든 산산이 부서져 나갈 것 같다.
이상하지 않은가? 검과 칼이 부딪치는데 오히려 칼이 부서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이 천호이십사검 중중초다.
페에에엑!
아걸이 반철도를 쳐 냈다.
반철도는 천호이십사검의 중중초를 가르면서 들어갔다.
저들의 검기가 갈라진다. 저들의 무거움이 일시에 가신다. 반철도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저들의 패력이, 엄청난 검기가 점차 스러져간다. 소멸한다.
도기가 검기를 갉아먹는다.
퍼억!
천호문주가 먼저 격타당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부문주도 목을 얻어맞았다.
풀썩! 투툭!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
마치 장난 같은 칼질, 그 칼이 절대 검호 두 명이 힘없이 쓰러졌다.
아걸은 반철도를 축 늘어뜨리고 하늘을 쳐다봤다.
일홀도!
일홀도를 얻었다.
아걸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예전에도 일홀도를 얻었다고 자부한 적은 몇 번 있었다. 이것이 일홀도다. 아니, 이것이 내 일홀도다. 예전 것은 아니다. 이번 일홀도가 진짜 일홀도다.
그런 느낌을 이번에도 갖는다.
그리고 이번 느낌은 예전과는 전혀 다르다. 지극히 격렬한 환희가 몸을 감싼다.
천호문주 같은 검호를 단칼에 베어 냈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칼로는 더는 추구할 게 없다는 느낌이 든다. 흔히 정상에 올라선 자만이 정상의 모습을 안다고 했다. 개안(開眼)이라고 하나? 그런 느낌이다. 갑자기 칼에 대한 눈이 환이 밝아졌다.
“후후후! 후후후후! 하하하하하하!”
아걸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