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四章 상불출래(想不出来) (5)
“쏴라!”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무인들은 일제히 화살을 쐈다. 천호문주를 일검에 베어버린 절대 강자에게 기가 질려 버렸다. 그래서 제발 이 화살에 죽어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쐈다.
이십사 위문 무인들은 송가검문주가 죽은 후에도 일제히 화살을 쏜 적이 있다.
그때, 모든 화살이 아걸을 직접 겨냥했다.
지금은 직접 겨냥하지 않는다. 아걸을 쏘는 게 아니다. 지역 전체를 공격 목표로 정해 놓고 지역사(地域射)를 한다.
가로로 스무 대, 세로로 스무 대, 모두 사백 명이 사백 대를 쏜다.
화살과 화살 간의 간격은 반장이다. 바둑판처럼 수많은 점이 생기고 각기 맡은 점에 쏜다.
이 정도 지역사라면 아걸이 제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간격이 반 장이라면…… 충분히 피할 공간이 나오는데? 더욱이 이곳은 숲이지 않나. 나무도 있고, 바위도 있다. 무인들이 원하는 곳에 꽂아 넣을 수 없다. 이런 지역사는 사방이 확 트인 광활한 땅에서나 유용하다.
맞다. 그래서 화살에 화약을 매달았다.
이십사 위문 문주들은 아걸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치명적인 상황을 분석했다.
최근 아걸은 초가평과 싸우면서 아주 심한 상처를 입었다. 죽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심한 상처였다. 그런 상처를 입고도 명부판관 노릇을 한 게 신기하지만.
그 싸움! 초가평과 싸우기 직전에 당한 암습!
칠절려와 불의 조합이었다. 불이 발을 붙잡아 두고,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칠절려가 타격을 가했다.
솔직히 그 함정을 아걸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그 상황을 재현한다.
꽈아앙! 꽈아아앙! 꽈앙!
화살 사백 대가 일제히 터졌다. 화살에 달아놓은 화약이 나무를 쪼개도 바위를 날려 버렸다. 흙을 뒤집었다. 아걸이 숨은 숲을 초토화했다.
문제는 아걸이 평지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숲은 무인들이 쏘는 화살을 막아준다. 나무에 막히고 돌에 퉁겨 나간다.
그래서 화살을 쏘는 방향에 약간 편차를 두었다.
방향은 약간 틀어져도 상관없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거리는 맞춰라. 무슨 일이 있어도 화약이 사방 십 장의 바둑판 위에서 터져야 한다.
꽈앙! 꽝! 꽈아아앙!
첫 번째 화살은 정확한 정사각형을 이루지 못하고 터졌다.
폭이 넓게 터진 것도 있고 좁게 터진 것도 있다. 하지만 그 차이는 미미하다.
아걸은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 분명히 폭발에 휘말렸다.
“이시(二矢)!”
명령이 즉시 떨어졌다.
무인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즉시 화살을 다시 날렸다.
쏴아아아아! 쒜에에엑!
화살이 벌떼처럼 쏟아져 나갔다.
이번 화살은 정확하게 바둑판 모양을 그려냈다. 첫 번째 화약 폭발로 숲에 있던 나무와 바위들이 거의 깨져 나갔다. 나무들이 뿌리째 뒤집혔다. 바위가 가루가 되었다.
아걸은 분명히 화살 영향권 안에 있다. 단언하지만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죽었나, 살았나? 아마 죽었을 것이다.
꽈아아앙! 꽈앙! 꽈아아앙!
두 번째 화살은 거의 반 장 간격을 유지하며 터졌다. 가리는 것이 부서져 나가서 정확하게 목표를 겨눌 수 있었다.
숲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
꽈아아아아앙!
두 번째 화살 사백 대가 터지는 폭발음은 탕산 전체를 뒤흔들었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 거대한 굉음을 울렸다.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였다.
숲에서 뿌연 흙먼지가 피어났다.
‘이런 폭발에서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없어. 살아남지 못해. 어떻게 살아?’
무인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자신들이 터트린 화약 공격이지만 입이 저절로 벌어질 정도로 폭발력이 강했다.
일부 무인은 오직 숲만 주시했다.
안공이 특별히 뛰어난 무인들인데…… 아걸이 빠져나오는지를 살폈다. 이런 폭발 속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목숨이 질겨서 엉금엉금 기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았다.
아걸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삼시!”
명령이 또 터졌다.
이번에도 무인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지체 없이 화살을 쏘았다.
쉐에에에엑! 쒜에에엑!
화살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까만 파리 떼가 허공을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엔 이번 화살은 이시보다도 더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거의 완전한 바둑판 형세를 이뤄냈다.
꽈앙! 꽈아아앙!
거의 반 장 간격으로 폭발음이 일어났다.
숲에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번져 올랐다.
아걸을 가려주던 연무는 산산이 흩어졌다. 폭발이 연무를 흩트려버렸다.
사방 십 장 이내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개미 한 마리 살지 못한다. 폭발이 얼마나 컸는지 땅이 움푹움푹 패였다. 숲이 사라지고 황무지가 나타났다.
무인들은 다시 활에 화살을 채우면서 명령을 기다렸다.
뿌옇게 피어난 흙먼지는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뿌연 먼지 너머로 나무가 터져 나가고, 부러지고, 뿌리가 뽑혀서 나뒹구는 모습은 흐릿하게 보인다.
“안쪽 상황이 잘 보이지 않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가장 궁금한 것은 아걸이 살았느냐 하는 점이다.
안쪽 상황이 안 보여도 상관없다. 화살은 정확하게 원하는 위치에 꽂혔다. 원하는 바대로 터졌다. 궁술을 전문적으로 수련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 화살은 당길 줄 안다.
죽었나? 죽었을 거야, 여기서는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해.
무인들의 생각은 한결같았다.
다만 한 가지, 아걸이 워낙 강인해서 말이다. 죽음 속에서 기어 나오는 인물이라서…… 그게 불안하다. 죽음을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지 못한다.
그들은 눈에 불을 켜고 앞을 지켜봤다.
걸어 나오는 사람은 없다.
아걸도 세 번에 걸친 지역사, 화약 폭발은 견디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화약이 무려 천이백 개나 터졌다.
화살 한 대에 실린 화약은 능이 암석을 부술 정도가 된다.
꿀꺽! 꿀꺽!
마른 침만 삼켜진다.
뿌옇게 피어오른 흙먼지 속을 쳐다보는 눈길에 긴장감이 어렸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빨리 확인할 방법이 없나? 그때, 흙먼지를 헤치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기!”
무인 중 한 명이 흙먼지 속에서 걸어오는 그림자를 봤다. 그리고 즉시 경악성을 토해냈다.
“사시!”
경악성과 명령은 거의 동시에 터졌다.
이미 화살을 재우고 있던 무인들은 즉시 화약 심지에 불길을 댕겼다. 그리고 화살을 쏘았다.
쒜에에엑! 쒜에에에엑!
다시 화살 사백 대가 날아간다.
이번 화살은 지역사가 아니다. 아걸을 직접 겨냥했다. 아걸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를 향해서 쏜다. 아걸이 피해도 상관없다. 끝까지 따라붙을 것이다.
타악! 타탁!
화살이 너무 촘촘하게 밀집되는 바람에 날아가는 도중 서로 부딪히며 깨졌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런 현상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미 연구 과정에서 충분히 생각했다.
이미 화약을 담은 화살이 날아가는 중이다. 중간에 서로 부딪혀서 떨어진 화살에도 화약이 매달려 있다. 심지 역시 꺼지지 않고 타들어간다.
지금까지 쏜 화살이 일정한 범위를 겨냥한 지역사라면, 지금은 예측 불가능한 지역사인 셈이다.
꽈아앙! 꽈앙! 꽈아아아아!
화약이 터졌다.
희뿌연 흙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 정확히 그자의 주변에서 화약이 터졌다.
화약 천육백 개, 화살 천육백 대가 사방 십 장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화약 천육백 개…… 이 폭발을 누가 감당하나. 누가 살아나올 수 있을까.
이번에는 죽었을 거야. 놈이 아무리 염라대왕에게 은혜를 받은 놈이라도 살아남지 못해.
무인들은 폭발로 쑥대밭이 된 숲을 지켜봤다. 그런데,
저벅! 저벅! 저벅!
누군가가 걸어나온다.
흙먼지가 너무 진해서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다는 점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무인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이게 말이 돼?’
‘우리가 지금 누굴 상대하고 있는 거야? 저놈 귀신이라도 돼? 어떻게 안 죽을 수 있지?’
무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곤혹스러웠다.
궁수 역할을 한 무인 사백 명은 이십사 위문에서 차출되었다. 그래도 가장 활에 능숙하다는 사람들만 뽑았다. 궁수가 아니라 검사인 것이다.
문파 대 아걸의 싸움은 끝났다.
송가검문주와 천호문주가 죽었으니 그 방법은 버린다. 이제부터는 이십사 위문의 연합 공격이 시작된다. 이십사 위문 문도 모두가 그때그때 지휘를 맡은 문주의 명령을 쫓는다.
이들 무인 사백 명은 화화문주(花火門主)가 지휘했다.
이십사 위문 중 가장 화약을 잘 알고 있어서 맡은 것인데……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화화문주의 미간도 잔뜩 일그러졌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런 폭발 속에서 살아나온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지도를 보면서, 또 탕산에 와서 궁수를 배치하면서…… 이 자리는 지옥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 ‘두웅!’하고 북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화살을 날리던 무인들이 일제히 뒤로 빠졌다. 그리고 그들 뒤를 받치고 있던 일단의 무리가 앞으로 나섰다.
폭발이 일어난 곳과 그들이 있는 곳은 십 장 정도 떨어져 있다. 십 장 너머에서 사방 십여 장에 이르는 지역사가 이루어졌다. 사방 열 장이 폐허로 변했다.
촤아악! 촤아아악!
그들은 능숙한 손길로 기름을 부었다.
폭발이 일어난 곳까지 기름이 흘러간다. 궁수와 폭발 사이의 공간을 기름이 메운다.
이번에 나타난 무인들은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정중앙을 중심으로 사방 이십 장 거리에서 사방 십 장을 포위했다. 그리고 기름을 붓는다.
초가평과의 싸움 전에…… 아걸은 철질려를 피했다. 하지만 화공에는 어쩌지 못했다. 그의 신법이 아무리 고절하다고 해도 불길이 사방 오 장만 넘어서면 건너뛰지 못한다. 이것은 이미 입증된 것이니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그 당시, 아걸은 허공에 징검다리를 놓는 부교도수(浮橋渡嗖)라는 신법을 펼쳤다.
나무를 잘라서 토막을 낸 후, 허공에 던진다.
이것이 허공에 뜬 다리, 부교다. 부교를 밟고 신형을 띄운다. 부교에서 부교로 이어간다. 부교를 밟고 도약한 후, 다시 나무토막을 던져서 부교를 만든다.
부교도수에 능숙해지고, 진기만 끊기지 않는다면…… 이론상으로는 배를 타지 않고 장강(長江)도 건널 수 있다. 절벽 위를 훨훨 날아오를 수 있다.
물론 진기가 끊기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는다.
그러면 실제로는 어떨까? 아걸은 장강은 고사하고 작은 강도 건너지 못한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다. 아걸은 폭이 오 장밖에 안 되는 불길도 넘지 못했다.
물론 기름에 화린(火燐)을 섞어 놓은 게 결정적이다.
탁탁! 타오르는 불길은 평범하지 않다. 화린을 태운 불길이라서 인화성이 매우 높다. 살짝 옷자락만 그을려도 불길이 온몸을 집어삼킨다.
저벅! 저벅!
안쪽에서 사람이 걸어 나온다.
그는 서둘지 않는다. 분명히 사방에서 쏟아붓는 기름 냄새를 맡았을 텐데도 태연히 걸어온다.
아직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화약 폭발에 정신을 놓아 버렸나? 기름 냄새가 탕산을 진동하는데, 이런 곳으로 태연히 걸어와?
‘오늘 내 놈은 여기서 죽는다!’
“불!”
명령이 떨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횃불을 던졌다.
화아아아아아악! 화아악!
불길이 매우 급하게 치솟았다.
기름을 쏟아붓던 무인들은 일제히 대산(大傘)을 꺼냈다. 그리고 맹렬히 휘돌렸다.
비를 막아주는 대산이 지금은 바람개비 역할을 한다. 넓이만 반 장에 이르는 큰 우산이 빙빙 돌아가면서 불길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화아아아악!
불길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설마 여기서도 살아나려고…….’
절대로 살아남지 못한다. 불길은 계속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사방 이십 장을 모두 집어삼킨다.
“폭화!”
정검문주(晶劍門主)가 명령했다.
그러자 뒤로 물러났던 궁수 사백 명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화약을 매단 화살이 아니라 기름 덩이를 묻힌 화살이 쏘아졌다.
화살은 사방에서 일어난 불길을 더욱 안으로 끌어들인다. 사방 이십 장 불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쒜에에에엑! 쒜에에엑! 파라라락!
화살이 기름 덩이를 쏟아붓고, 대산에 밀려난 불길은 더욱 급하게 안으로 치고 들어간다.
‘절대 살지 못해.’
무인들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