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71화 (471/600)

第九十五章 사령현신(死靈現身) (1)

화살은 일시에 쏘아졌다.

각기 다른 사백 명이 시위를 놓았지만, 한 사람이 쏜 것처럼 정확하게 발사되었다.

날아오는 속도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아걸 눈에는 빠른 화살과 느린 화살이 보였다. 강한 화살과 약한 화살도 구분되었다.

화살 사백 개가 한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화살을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인간이 지닌 안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느낌으로 화살이 구분된다. 본능적으로 약하고 강한 게 구분된다.

‘저기!’

아걸은 망설이지 않고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다행스럽게도 화살은 한쪽에서만 날아온다. 사방에서 포위하고 쏘는 게 아니라 한쪽에 일렬로 늘어서서 화살을 당긴다. 그래도 충분하니까.

사방을 포위하고 화약 매단 화살을 날렸다가 실수라도 하면 괜히 아군을 상하게 할 수 있다.

기름을 붓는 것은 사방에서 부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포위한 것이고, 화살을 쏘는 데는 일렬로 늘어서기만 해도 충분하니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인다.

이렇게 되면 최저거리를 쏘는 사람은 십 장 거리만 날리면 된다. 최대로 쏘는 사람은 이십 장이다.

십 장과 이십 장 차이는 별 것 아니다. 그래서 무심히 넘어간 것 같다. 시위를 당기는 데 힘의 차이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무시해 버렸다.

바로 이 점이 아걸에게 몸을 피할 기회를 주었다.

바위 뒤로 몸을 숨기고, 반철도로 확! 땅을 그었다. 그러자 쟁기에 갈린 논처럼 낙엽 깔린 숲에 기다란 칼자국이 생겼다.

퍽! 퍽! 퍽!

순식간에 땅을 향해 삼 도가 터졌다.

아걸은 깊게 팬 흙구덩이 속에 몸을 뉘었다. 순간,

꽈앙! 꽝! 꽈아아앙!

사방에서 귀를 찢어버릴 듯이 굉렬한 굉음이 울렸다.

‘휴우! 사방을 포위해서 공격했다면 정말 피하기 힘들었을 텐데. 실수를 많이 하네.’

이십사 위문 무인들은 연수합격을 한 적이 없다. 공부가 내린 명령을 어길 수 없어서 모이기는 했지만, 전력을 다해서 손발을 맞출 의사도 없는 편이다.

저들은 완벽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더 치밀했어야 한다.

꽈앙! 꽈아앙! 꽈앙!

반장 간격으로 그어진 바둑판에 화약이 터졌다.

화살이 몸 위로 떨어지는 것은 걱정하지 않는다. 일단 바위가 막아준다. 바위 밑에 바싹 붙어서 땅을 팠기 때문에 직접 타격은 불가능하다.

바위 뒷면에서 터진 화약이 문제다. 폭발하면서 퉁겨진 암석이 살상 병기가 되어서 날아들 수 있다.

꽈앙! 꽈아아앙!

폭발이 등을 쓸며 지나갔다.

쒜에엑! 쒜에에에엑!

두 번째 화살이 날아왔다.

사실, 두 번째 화살은 피하기가 더 쉽다. 저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첫 번째 화살 무더기는 숲을 초토화했다. 하지만 숨을 장소도 많이 만들어 놨다.

땅이 움푹 팼다. 반철도를 쓰지 않아도 몸을 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 나무가 부러지고 꺾였다. 큰 나무는 화살도 막아주고, 폭발도 가려준다.

숲이 폐허로 변했으니 피할 데가 어디 있겠나 싶겠지만, 오히려 피할 곳이 많다.

아걸은 바위 옆에 부러진 나무를 끌어와서 엄폐물을 만들었다.

아걸은 등을 땅에 눕히고 똑바로 누웠다. 반철도는 세워서 가슴 앞에 얹었다.

정말 재수가 나빠서 엎드려 있는 장소에 화살이 떨어진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

아걸도 그런 화살까지는 피하지 못한다.

그때를 대비해서 하늘을 보며 똑바로 누웠다. 화살이 날아들면 즉시 쳐 낼 생각이다.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최선이다.

폭발이 끝나면 밖으로 걸어 나갔다.

화살 소리가 끝나면 폭발음이 일어난다. 폭발음까지 가시면 숲이 비명을 지른다. 여기저기서 상처 입은 숲이 우지끈! 후드득! 소리를 지른다.

화살도 폭발도 위험하지만, 숲이 내지르는 비명도 위험하다.

아걸은 바깥 공격보다는 숲의 비명에 신경을 쓰며 걸었다. 그런데 저들이 또 화살을 쏜다.

‘화약으로 공격을 하면서 화약이 만들어내는 결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후후! 차라리 이게 낫네. 이런 공격에 익숙하면 정도 문파가 아니지. 차라리 낯설고 빈틈 많은 게 나아.’

그나마 이십사 위문의 문파답게 보인다.

야천이나 마유 마인들이 이런 공격을 했다면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도 문파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 광명정대함의 표본이다.

이들은 이런 식의 공격을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스읏!

아걸은 움푹 파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이미 주위에 엄폐물이 너무 많이 생겼다. 힘들게 피할 필요도 없다. 한두 걸음만 옆으로 이동하면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있다.

간혹, 구덩이 안으로 떨어지는 화살도 있다.

아걸은 그런 화살만 반철도로 쳐 냈다. 구덩이 밖으로 떨어지는 화살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저들이 화약 심지를 다소 짧게 만들어서 화약을 공중 폭파했다면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들은 이런 점들도 깊이 있게 논의했어야 한다.

화약을 공중에서 터뜨릴 만큼 궁술이 뛰어나지가 않다.

제대로 화약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아걸이 싸웠던 싸움들을 연구하고 공격 방법은 찾아냈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경험치가 빈약하다.

이런 미숙함이 아걸을 죽음에서 구해주고 있다.

‘끝났군. 화살 천이백 대, 화약도 천이백 개. 이거면 집 한 채는 사겠군. 돈이 참 많아. 저 사람들.’

아걸을 일어섰다.

쒜에에엑!

화살이 다시 울음을 쏟아냈다.

이번에는 직격이다. 바로 날아온다. 지역사가 아니라 몸뚱이를 노리고 달려든다.

‘위험!’

아걸은 처음으로 위험을 느꼈다.

지역사는 피할 곳이 없는 반면에 폭발이 골고루 일어난다. 바둑판 전체를 일시에 쑥대밭으로 만들지만, 폭발력 또한 바둑판 전체에 고루 분산된다.

몸뚱이를 직격하는 화살은 폭발력도 응집된다.

몸에 맞든 안 맞든 몸 주위에 대량의 화약이 일시에 터진다. 땅을 파고 안에 들어가 있다면 단숨에 함몰되어 버릴 것이다. 몸 앞에 떨어진 화살, 몸을 스치면서 지나간 화살…… 땅이 뒤집히는 폭발이 일어난다.

슈우우우웃!

아걸은 최대한 빠르게 옆으로 이동했다.

이번 공격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옆으로 치달리는 것이다. 날아오는 화살을 반철도로 쳐 내면서 급히 옆으로 치달린다. 화약이 밀집된 곳에서 벗어난다.

꽈아아앙! 꽈앙!

네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불이 붙었다. 사방에서 일시에 일어난 불길이 매우 빠르게 안쪽으로 밀려온다.

‘내 싸움을 철저히 연구했군.’

아걸은 미간을 찡그렸다.

가장 힘들게 싸웠던 싸움들이 재현되고 있다. 그때보다 더 강하고 악랄하게 바뀌었다. 그때도 피하지 못했는데, 이번엔들 피할 수 있냐고 묻는다.

‘음!’

아걸은 침음했다.

예전 경험이 없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이 불길을 뛰어넘었을 것이다. 주위에서 적당한 나무를 고를 것이고, 발판으로 삼을 만하게 잘라낸다. 나무토막은 대여섯 개면 된다. 허공에 던져서 징검다리를 만들면 쉽게 벗어난다.

불길이 사납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불길은 평범하지 않다. 불길 속에 화린이 섞여 있다. 살짝 옷자락만 스쳐도 전신에 불이 붙는다. 육신이 불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때와 똑같은 공격!

아걸은 주위를 쓸어보았다.

주위에는 부러진 나무가 많다. 그리고 저번처럼 나무를 잘라서 허공에 띄워 다리로 삼으면 이 정도의 불길쯤은 충분히 건너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스읏! 탁! 타탁!

아걸은 나무를 주워서 빠르게 다듬었다.

예전에 사용했던 방법을 다시 구사한다. 그러면 불길에 휘말려 전신 화상을 입을 게 뻔하다. 충분히 건너갈 줄 알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방법 외에는 불길 속에서 빠져나갈 방도가 없다.

다른 불길 같으면 땅을 파고 들어가서 숨는 방법을 취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다고 해도 불길에 공기가 빨려 나갈 테니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역시 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유일한 돌파구가 된다.

문제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주위를 둘러싼 불길은 평범한 산불이 아니다. 기름에 이끌린 불이다. 물이 흐를 때처럼 계속해서 흘러내려 오는 불길이다. 이 불길은 땅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한마디로 불길 안쪽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말살된다. 개미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한다.

불길 안에서 삶을 강구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아걸은 굵직한 나무를 집어서 발로 밟기 편하게 잘랐다.

오 장 정도를 건너뛰는 데는 나무토막 다섯 개면 충분하다. 또 자신의 진기로 체공하는 여력도 대여섯 개가 최대치다. 그 이상은 준비할 필요가 없다.

이번에는 가능치를 훨씬 넘어서 두 배를 준비했다.

열두 개!

불길은 건너뛸 수 있다. 문제는 화린이다. 화린을 피하지 못하면 이미 한 번 경험했던 지옥을 또다시 경험하게 된다.

몸이 엉망진창인 상태에서 이들과 싸워야 한다.

사실 그런 상태가 되면 절정 고수 한 명을 상대하는 것보다 이들 수백 명을 상대하는 것이 더 어렵다.

‘방법이 없어. 가자!’

타타타탁! 타타탁!

아걸은 뒤로 삼 장쯤 물러섰다가 불길을 향해서 전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망설임 없이 주사위를 던진다. 신형을 날린다. 도약과 동시에 나무토막도 던졌다.

타악!

나무 조각을 밟고 더 높이 뛴다.

타탁! 타악!

또다시 나무토막을 던지고 힘껏 내리찍으면서 신형을 튕겨 올렸다.

높이! 높이! 될 수 있는 한 높이!

높이 올라가지 않으면 불길을 당한다. 하지만 기름이 만들어 낸 불길은 작지 않다. 모닥불을 건너뛰는 게 아니다. 이미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한 나무들을 집어 삼켜 버렸다.

이 불길보다 더 높게 올라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읏! 파라라라락!

아걸은 반철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예전과 다르다. 예전에는 오직 불길을 벗어나는 데만 전력을 다했다. 앞으로 달려가는 행동 외에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직진하는 힘 외에 여타의 힘들은 모두 달리는 데 방해가 된다. 달리는 속도가 늦춰진다. 불길을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최선을 다해서 앞으로만 달리는 것이다.

이번에는 다르다.

파라라락!

회선도가 펼쳐졌다.

슛! 슈슈슛!

반철도가 몸 주위를 흐르며 단도격타를 일으켰다.

반철도에서 경풍이 일어난다. 몸 가까이 달려드는 불길을 밖으로 밀어낸다.

도기, 도풍이 몸을 감싸면서 휘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반철도가 감싸면서 휘둘러졌다. 동시에 두 발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앞을 향해 치달렸다.

반철도로 도풍을 일으켜서 불길을 밀어낸다는 생각은 나무토막을 준비할 때부터 했다. 그래서 자신의 역량보다 더 많은 나무를 준비한 것이다.

또 하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진기다.

체공하는 데 소모되는 진기, 그리고 반철도를 휘두르는 데 쓰이는 진기.

이런 식으로 진기를 소모하면 삼 장도 못 가서 뚝 떨어진다.

진기 보충이 절실하다. 어떻게든 중간에 진기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 도약하기 전에 일으킨 진기만으로는 불길을 벗어날 수 없다.

‘딱 한 번만 더!’

아걸은 이번에 또 하나의 실험을 한다.

허공에서 숨을 내뱉고 공기를 거둬들인다. 들이마신 진기를 단전에 축적해서 다시 진기를 휘돌린다.

공전(空轉)이다.

모든 인간은 허공에서 숨을 바꿀 수 없다. 도약하기 전에 일으킨 진기가 착지할 때까지 유지된다. 진기가 끊기면 몸도 떨어진다. 사실상 인간들은 체공 시간이 지극히 짧아서 진기를 바꿀 생각도 하지 못한다.

아걸도 공전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결전을 벌일 때도 굳이 공전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 지금 가진 진기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판에 무슨 공전인가.

아걸은 공전을 수련해본 적이 없다.

이론상으로 공전은 인간이 무한한 힘을 발휘하게 해 준다. 작은 진기로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큰 힘을 계속 발휘해도 지치지 않는 몸이 된다.

아걸은 아직 그 정도까지 진기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해 보려는 거다.

이게 되면? 앞으로도 계속 수련해야지.

안되면? 손해 볼 게 있나? 어차피 잃을 게 없는데. 이게 아니면 불길에 휘말리는데.

츄아아아앗!

진기를 새로 일으키면서 나무토막을 밟았다.

타악!

나무토막이 힘차게 밟힌다. 새로운 힘이 깃드는 게 느껴진다.

새로 공전된 진기는 원래의 진기보다 약하다. 원래의 진기가 십이었다면 허공에서 공전된 진기는 칠이나 팔 정도의 힘밖에 내지 못한다.

그 정도면 됐다. 그래도 상관없다. 진기가 계속 유지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반철도에 계속 도풍을 담을 수 있다.

쉬이이잇! 쒜에에엥!

아걸은 나무토막을 박차고 솟구쳤다. 더불어서 반철도도 더욱 급하게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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