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72화 (472/600)

第九十五章 사령현신(死靈現身) (2)

“저! 저놈들!”

쌍겸의 눈이 확 뒤집혔다.

이십사 위문 무인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이건 도저히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라고 할 수가 없다. 이십사 위문은 사람이 아니다. 악귀들의 집단이다.

악귀들이 사람 한 명을 죽이기 위해서 우르르 떼를 지어서 달려들고 있다.

꽝! 꽈앙! 꽈아아앙!

폭음이 탕산 전체를 떨쳐 올린다.

저들이 얼마나 많은 화약을 사용하고 있는지 추측조차 되지 않는다. 무척 많다는 것만 안다.

여기는 무인의 싸움터가 아니다. 전쟁터다.

탕산 전체가 마치 지진이라도 일으킨 일어난 듯 우르르 흔들리고 있다.

“이 미친놈들이!”

쌍겸은 봉우리 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폭발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깜짝 놀라서 몸을 움츠릴 정도다. 하물며 저 화약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을 아걸은 어쩌겠나.

“이 쌍놈의 새끼들!”

쌍겸은 당장 낫을 빼 들었다. 그리고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산을 치달려 내려갔다.

“뭐냐?”

앞을 가로막아서는 부인들이 있었다.

“비켜! 이 개새끼들아!”

다짜고짜 낫이 휘둘러졌다.

“크윽!”

“컥!”

느닷없이 등 뒤에서 급습을 받은 무인들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푹푹 쓰러졌다.

이십사 위문 무인들의 눈은 모두 절곡으로 향했다. 정반대 방향인 산봉을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아걸을 도와주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이곳에 온다면 늑대 무리 속에 뛰어든 토끼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토끼 신세가 되어야 할 누군가가 마구잡이로 낫을 휘두른다. 눈에 보이는 족족 쳐 죽이고 있다.

“적이다!”

“급습이다!”

무인들이 분분히 뒤돌아섰다.

“그래, 새끼들아! 나 여기 있으니까 와서 죽여 봐! 이 더러운 새끼들아!”

쌍겸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낫을 휘둘렀다.

그는 원래 아걸의 탈출을 위해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화약 냄새가 탕산 전체에 자욱이 번지는데 어떻게 더 지켜보나,

쒜에에엑! 까앙!

누군가가 거칠게 내리치는 낫을 받아냈다. 그리고 단숨에 검을 비틀어서 복부를 그어왔다.

“엇!”

쌍겸은 급히 뒤로 물러섰다.

낫을 받아내는 솜씨며, 복부를 그어오는 빠름이며…… 무시할 수 없는 검이었다.

검은 물러서는 쌍겸을 쫓아서 찰거머리라도 되는 듯 찰싹 달라붙었다.

쒝쒝쒝! 쒜에에엑!

순식간에 칠 금이 쏟아졌다.

“킥킥킥!”

쌍겸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검수(劍數)가 상당히 높다. 검을 이 정도로 구사하는 고수라면 적어도 이십사 위문 문주이거나 적어도 상위 서열 안에 있는 자들일 것이다.

“좋아! 재미있어! 킥킥킥!”

쌍겸은 낫을 득달같이 휘둘렀다.

그의 쌍겸은 아걸을 만나기 전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다. 아걸을 만나고, 아걸과 비무를 하고…… 아걸이 자연검을 터득하는 동안 은거무인도 배운 바가 있다.

그저 아걸을 도와주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무공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쌍겸은 원래 혈투박(血鬪拍)을 사용했다.

낫이라는 병기가 근접 병기라서 몸을 바싹 붙인 채 치고받는 박투술을 애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굳이 혈투박이라고 할 것도 없다. 바싹 붙어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

그의 낫은 자유롭다.

쌍겸은 아걸을 본받아서 두 낫에 자유를 주었다.

어떻게 하면 낫이 자유로울까? 무엇을 보고 낫이 자유롭다고 하나? 낫을 쓰는 사람이 초식에 구애받지 않고 낫이 흘러가는 대로 풀어주는 것이 자유다.

즉, 목숨에 연연하면 안 된다.

모든 개념이 정반대로 뒤바뀐다. 병기가 목숨을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다. 주인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말고 네 갈 길을 가라고 풀어주는 게 자유다.

나는 죽더라도 상관없다. 가라!

쌍겸은 몸을 반으로 쪼개 오는 검초 앞으로 다가섰다. 자신이 스스로 검 앞에 몸을 들이 밀은 격이다.

상대가 별 미친놈 다 봤다는 듯 거침없이 몸을 쪼개 왔다. 그 순간!

쒜에에엑!

어느새 휘둘러진 우겸이 상대방의 검을 휘감고 옆으로 밀어냈다. 검초가 변화하지 않도록 낫에 꺾어진 부분이 단단히 검신을 옭아맸다. 동시에 좌겸이 옆구리를 찍었다.

퍼억!

무인의 옆구리가 찍히면서 피가 확 솟구쳤다.

아니, 사실은 좌겸이 옆구리를 찍기 전에 먼저 일어난 일이 있다.

검신을 옭아맨 우겸이 검신을 따라 밑으로 쭉 내려가서 방패막이와 부딪혔다.

타당!

낫과 방패막이가 부딪치는 순간, 낫이 번뜩 꺾이면서 검수의 손목을 그었다.

이 한 수, 손목을 긁는 한 수 때문에 상대방은 검초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이 한 수는 절묘한 환각도 불러왔다. 마치 쌍겸의 몸이 검에 찍히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켰다.

상대는 우겸이 변화하는 것도 좌겸이 쓸어오는 것도 보지 못했다. 자신의 검이 쌍겸을 내리찍는 것만 보았다. 검신이 쌍겸의 머리를 찍고 있지 않은가.

맞다. 상대가 느낀 것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 검은 쌍겸의 머리를 반으로 갈라내려고 한다. 단지 우겸이 조금 더 빨랐다.

우겸이 손목을 그어버리자, 그가 쳐낸 검초가 단숨에 변했다. 쌍겸을 찍지 못하고 옆으로 빠졌다.

“문주님!”

사방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킥킥!”

쌍겸은 웃었다.

“이 새끼…… 검이 심상치 않다고 여겼는데, 문주였어? 문주라는 놈이 이런 검초를 가지고 있는 놈이 화약이나 터뜨려 대고…… 너희 놈들 오늘 다 죽었어! 죽어!”

쒜에에에엑!

쌍겸은 경악성을 내지르며 우르르 달려드는 검수들을 향해 마주 쏘아 갔다.

“저 미친!”

황열이 눈살을 찌푸렸다.

쌍겸은 선봉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아걸이 탈출할 때를 대비해서.

탈출의 시작은 변장술의 달인 한항이 시작한다.

아걸이 위험하다 싶을 때 즉시 이십사 위문 무인들 속에서 한항이 튀어나온다.

그가 아걸을 낚아챌 것이고 더불어서 숲 어딘가에 숨어 있을 비석 장태전이 비석탄을 날린다.

그때 쌍겸과 자신이 지금처럼 산봉을 치달려 내려가면서 공격을 가해야 한다. 이십사 위문 무인들의 이목을 단숨에 자신들 쪽으로 끌어당겨야 한다.

그래야 틈이 생긴다.

계곡에 집중되는 시선을 자신들에게 돌리면…… 집중 공격을 받게 된다.

그렇다. 자신들은 산 중턱 어딘가에서 죽을 것이다.

비석 장태전 또한 아걸을 구한 위치에서 비석을 날리다가 죽는다.

한항만이 아걸을 구출해서 곡구로 달려간다.

곡구에는 지당검 고사와 쾌검의 달인인 나통이 있다. 그들이 한항을 내보낸 후, 곡을 틀어막는다. 쫓아 나오는 이십사 위문 무인들을 모조리 상대한다.

은거무인들은 탕산에서 살아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모두 죽을 생각이다.

하지만 때라는 것이 있다.

한항이 아걸을 구했을 때가 바로 시작점이다.

그랬는데…… 저 미친놈이 벌써 날뛰고 있다.

“휘우!”

황열은 한숨을 내쉬었다.

쌍겸은 수법이 매우 악독하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손속이 악랄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마인이라고 칭해진다.

맞다. 그는 마인이었다. 하지만 변했다. 그와 같이 지내면서 그가 남달리 악독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성격이 매우 급하면서 강직한 사람은 환영받지 못한다.

쌍겸이 그런 성격이다. 그는 옳으면 옳고 틀리면 틀린 거다. 어중간한 것이 없다. 타협을 모른다.

쌍겸의 눈에는 이십사 위문 무인들의 행동은 사마외도가 저지르는 악행보다 더한 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분을 참지 못하고 달려 나갔다.

이런 쌍겸을 두고 마인이라고 할 수가 있나? 마인이 아니라 오히려 협의에 가득 찬 정도 무인이라고 해야 한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마인이라고 말한다. 왜? 정도인인 자신들에게 대들었기 때문에.

그가 휘두르는 쌍겸이 평범한 병기가 아니라는 점도 마인으로 지목하기에 딱 좋다. 사람을 죽이는 데 낫을 쓰다니. 얼마나 흉포한 성정인가.

우리에게 대항하는 자는 마인이다.

정도 무인들이 이런 식이니, 쌍겸은 더욱 마도 쪽으로 흘러간다.

“휴우! 어차피 시선을 분산시키는 일은 조그만 소란 정도로는 안 되지. 산이 발칵 뒤집힐 정도는 되어야 해. 쌍겸 혼자서도 안 되고, 나만 움직여서도 안 되고. 이렇게 시작했으니…… 목적이라도 이루는 게 좋겠지.”

쉬이이익!

황열도 봉우리를 뛰어 내려갔다.

쌍겸은 급습은 이목을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는 곧 죽는다. 그러니 쌍겸에게 모든 검이 집중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몇 명이라도 끌어내야 한다.

저들 시선이 양쪽으로 분산되면 아걸은 한층 움직이기 편할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아걸은 무사히 몸을 피했을까? 폭발이 심상치 않다. 절곡 전체가 송두리째 날아가는 듯했다. 더군다나 지금은 절곡 전체에 불길이 일어나고 있다. 이십사 위문 무인들이 대산으로 불길을 안으로 쏟아붓고 있다.

불길 속에서 기름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코를 알싸하게 만드는 냄새는 화린 냄새일 것이다.

저 불길…… 지옥의 불길이다.

아걸이 저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황열은 노정문주와 싸우던 당시에 아걸을 떠올렸다. 붕대로 몸을 칭칭 감고 싸우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어떻게 그 모습을 잊을까.

아걸은 검을 쥐기도 힘들었다. 손에 물집이 잡혀서 검을 쥐는 것조차 기적이었다. 그런데 노정문주를…… 아니다. 잊자. 이런 기적은 또다시 일어날 수가 없다.

아걸은 신이 아니다. 인간이다.

저 불길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한항이 어떻게든 알아서 하겠지.

“누구냐?”

황열 앞을 가로막아서는 무인들이 있었다.

쒜에에엑!

황열은 다짜고짜 승표를 떨쳐냈다.

승표를 쫙 늘이면 길이가 이 장에 이른다. 줄 끝에 매달린 추는 철추와 버금간다.

퍼억! 퍽!

무인들이 피를 흘리며 나가떨어졌다.

황열은 침묵의 살인자다. 그는 싸움할 때 말을 섞지 않는다. 말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한다.

검을 들고 마주 섰으면 생과 사만 남는다. 여기에 집중한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상대방의 이름은 알아서 무엇하며,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서 무엇하며, 상대방의 무공이 무엇인지 안들 무엇하나. 아무 필요 없다.

나에게 어떤 공격을 가해오는지만 본다.

그 공격을 무너뜨리지 못하면 내가 죽을 것이고 공격을 무너뜨리면 네가 죽을 것이다.

그것만 남는다.

솔직히 이런 점은 아걸에게 배웠다. 아걸과 비무하면서 오직 이 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아걸이 어떤 종류의 무인이고, 어떤 도초를 사용하는지 알 필요가 없다.

아걸의 무공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 어제와 똑같은 칼을 생각하면 크게 낭패한다. 오직 이 순간,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도법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어찌어찌 한두 칼 정도는 막아낸다.

“크으윽!”

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황열은 느낌상으로 무인들이 자신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점점 강해진다.

처음에는 한두 검이 다가왔는데, 지금은 동시에 오륙 검이 지쳐든다. 그리고 계속해서 무인들이 밀려온다. 몸을 움치고 뺄 수도 없는 밀밀한 대나무 숲에 갇혔다는 느낌이 든다.

쒜에에엑! 까앙! 깡깡깡!

승표가 연거푸 표적을 놓쳤다.

“후우!”

황열은 가쁜 숨을 토해냈다.

승표는 검에 휘말리면 안 된다. 줄이 검에 휘감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말은 반대로 해석할 수 있다. 황열의 약점은 적에게는 공격 목표다.

더욱이 황열은 계속해서 많은 검과 부딪치고 있다.

승표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 덕분에 저들이 가까이 붙지 못하고 있지만…… 이곳은 또 숲이라서 승표를 쓰는 데 제약이 따른다. 승표를 자유롭게 쓸 수 없다.

“귀신 같은 놈!”

황열은 피식 웃었다.

무인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아걸에게 하는 말이다.

아걸은 이런 검을 너무도 손쉽게 밀어내고 베어버렸다. 귀신 같은 놈이지 않나? 정말 인간 같지 않은 놈이다.

쒜에에에엑!

황열은 승표를 극한으로 떨쳐냈다.

‘내가 아걸과 싸운 놈이야! 너희 정도는 상대가 안 돼!’

승표 끝에 매달린 철추에서 극강의 건기가 쏟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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