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六章 천하제일(天下第一) (1)
중원 오악(五岳) 중 하나인 태산(泰山)은 높이가 오백 장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태산 최고봉인 옥황정(玉皇頂)의 높이가 오백십삼 장이다.
보통 인간이 옥황정까지 올랐다가 하산하는 데 시간이 어느 정도나 소요될까?
하루면 된다.
탕산 높이는 사백 장이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하루 만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가 있다.
아걸은 정상에 오른 것도 아니다. 절혼곡이라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길을 따라 곡구로 빠져나오기만 하면 된다.
절혼곡이 쉽게 드나들 수 없는 험지라지만 계곡인 것은 분명하지 않나. 중간에 아무런 일도 없다면 산책하듯이 유유히 걸어도 한 시진이면 빠져나올 수 있다.
개울에 앉아서 풍광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져도 반 시진만 더 보태면 충분하다.
아걸에게 필요한 시간은 딱 그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늘을 시간을 두 배로 늘렸다. 탕산에 들어선 무인들을 용서하지 않을 시간이다. 이곳에 은신한 동영 인자들을 모조리 벨 생각이다.
이십사 위문 무인들의 기세가 꺾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십사 위문이 압도적으로 우세할 것 같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 상황이 되었다.
이십사 위문 무인들이 자파가 자신하던 무공과 검진을 사용했다. 거기에 암격 수법으로 암기와 불, 화약, 죽음의 공포를 잊게 만드는 광마단을 덧붙였다.
그런데도 아걸을 잡지 못했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힘이 강해야 한다. 당연하다. 바보라도 이런 대답은 할 줄 안다.
그러면 어떤 힘을 가져야 하나?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 상대를 죽일 수 있는 힘이면 뭐든 동원해야 한다. 치사하다거나 비겁하다, 비열하다는 말은 필요 없다. 그런 말은 우선 상대를 죽이고 난 후에 고민해야 한다.
상대를 죽이지 못하고 되려 이쪽이 당하는 판인데 무슨 말인들 못 들을까.
힘이 부족할 때는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방법도 있다. 옛말에 한 손이 열 손을 당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다수가 밀어붙이면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되어 있다.
그런 모든 통설조차도 탕산 싸움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십사 위문은 그야말로 모든 힘을 다 사용했다. 하지만 아걸은 너무도 편하게 뚫었다.
“아!”
취운이 탄성을 토해냈다.
취화원은 이 싸움에 개입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 싸움은 아걸의 싸움이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아걸 혼자서 헤쳐나와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걸이 위험한 것을 빤히 보면서 돕지 않을 수 없다.
- 은밀히, 지극히 은밀하게 도와라!
취운은 월영이 이끄는 제일곡 살수 백 명과 함께 탕산에 잠복해 있었다.
아걸에게 말하면 절대 반대할 게 너무 빤해서 말하지 않았다.
흑후에게도 비밀로 했다. 이런 일에는 여러 사람이 개입하면 화가 전가될 수 있다.
탕산에는 절대 무인들이 웅거해 있다.
아걸을 구하려고 나선다면 취화원 살수들조차도 목숨을 보전하기 힘들 것이다.
탕산에서 취화원 살수들이 벌이는 모든 행동은 살수 개개인의 단독 행동으로 처리된다.
오직 취화원의 단독 행동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나설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아!”
입에서 나오는 건 탄성뿐이다.
“상군이 언제 저렇게 강해졌지?”
월영이 중얼거렸다.
“…….”
취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탕산에 진을 친 무인들은 사마외도가 아니다. 이십사 위문 무인들이다.
사마외도 천 명이 모여 있다고 하면 단지 ‘참 많이도 모였네’하고 말할 것이다.
사마외도의 무공은 증명되지 않았다. 또 숨어서 사는 사람들이라서 알려진 사람이 거의 없다. 어중이떠중이? 아니, 그보다는 조금 더 강한 무인 천여 명이 모여 있다고 해서 중원 무림이 흔들린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이십사 위문은 평가가 전혀 다르다.
이십사 위문은 증명된 문파다. 이십사 위문에 소속된 무인들도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다. 정도 무림의 기둥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단지 천 명이 모인 것이 아니라 번뜩이는 칼 천 개가 모여 있다.
중원 무림을 쥐락펴락하는 강한 감들이 모두 한 자리에 자리한 셈이다.
아걸이 이들을 베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이들의 연수합격을 단신으로 물리치고 있다. 무공뿐만이 아니라 온갖 비열한 공격조차도 거뜬히 받아친다.
저 칼! 저 신위!
양 떼 속에 호랑이가 뛰어들었다.
“우리 원주님 이제 두 발 뻗고 주무시겠네.”
취운이 말했다.
“두 발을 어떻게 뻗어. 공부와 싸울 일이 남았잖아.”
월영이 말했다.
“이제는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싸움이 됐으니까. 지는 게 확실한 싸움에서 누가 이길지 모르는 싸움이 됐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두 발 뻗고 잘 수 있지.”
“그런가? 그럼 빨리 원주님한테 소식을 전해야겠네?”
월영이 활짝 웃었다.
탕산 싸움은 취화원이 개입할 싸움이 아니다. 오직 아걸 혼자서 해결해야 할 싸움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아걸을 돕겠다고 탕산에 들어선 은거 무인들도 뒤로 쭉 물러나 있다. 은거 무인들을 죽이겠다고 달려들던 이십사 위문 무인들도 물러서 있다.
팽팽하던 줄이 끊어졌다.
아걸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십사 위문 무인들이 급하게 물러선다.
이제 아걸에게 대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몇몇 문주가 남아서 진퇴를 고민한 모양이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다.
“저 정도면 천하제일 아냐? 아무도 상대가 안 돼.”
월영이 말했다.
‘천하제일? 천하제일! 천하…… 제일!’
취운은 월영이 한 말을 되뇌었다.
그렇다! 천하제일!
지금 아걸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딱 한 마디, 천하제일이라는 말이다.
그 말 외에는 어떤 말도 아걸을 설명할 수 없다.
무엇인가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은 ‘천하제일’이라는 말이 가진 비중 때문이다. 천하제일이라는 말은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다.
물론 입으로는 어떤 말이라도 할 수가 있다. 천하제일이라는 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데 아니다. ‘천하제일’이라는 단어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느끼는 것이고, 마음으로 굴복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튀어나오는 말이다.
아걸이 지금 그런 상태다.
‘천하…… 제일…….’
취운은 아걸을 보면서 천하제일이라는 말 외에 어떤 말도 생각하지 못했다. 현재, 아걸을 보는 모든 사람이 취운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공부 허도기는 일초단검이라고 불렸다.
일 초에 승부를 내기 때문인데…… 무림 역사상 가장 강력한 별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별호조차도 지금은 부르지 않는다.
허도기를 부를 때는 ‘공부’라고 부르거나 옛날 외호인 창숙이라고 부른다. 이름이나 일초단검을 들먹이는 사람은 없다. 왜? 그가 천하제일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허도기를 ‘천하제일인 허도기’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다.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은 마음속에 새겨진 말이다.
마음에 각인된 말을 입 밖으로 흘리면 아부가 된다. 당연한 것을 칭송하기 때문이다.
천하제일인이 되면 별호가 사라진다. 천하제일인이라는 말보다 더 강력한 별호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천하제일인 허도기’라고 부를 수는 없고.
그래서 별호가 없던 옛날 초기 무렵으로 되돌아간다.
창숙 혹은 공부.
아걸도 마찬가지다 명부판관이라는 말은 아걸을 지칭하기에는 너무 편협하다. 혈도비자라는 별호는 광오하지만 역시 아걸을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천하제일인이 되는 순간, 명부판관이나 혈도비자라는 별호는 떨어져 나간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아걸은 명부판관도 혈도비자도 아니다. 천하제일인, 단지 천하제일인일 뿐이다.
중원 무림에 천하제일인 두 명이 탄생했다.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가 두 명이나 생겼다. 그러니 이 두 명은 숙명적으로 자웅을 결해야 한다.
두 사람이 원하지 않아도 싸워야 한다. 세상이 자웅을 가르라고 말한다. 둘 중의 한 명만 천하제일인이 되라고 한다. 제일(第一)이라는 말은 무이(無二)다. 둘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한 명만 존재해야 한다.
성검문의 조명십해와 일홀문은 일홀도는 숙명적으로 싸우게 되어 있다.
허도기는 불구대천지수다. 아직은 공부이지만 역모를 꾀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국가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중죄인이 되기 일보 직전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 역시 티끌만 하게 작아져 버렸다. 천하제일이라는 말에 모두 묻혀 버렸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구대천지수라거나 복수, 원한 같은 말들이 어떤 말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명령으로 기억되겠지만, 무인은 다르다.
무인이 하늘에 오르면 다음은 하늘과 하늘의 싸움만 남는다.
취운은 아걸을 보기 전까지는 ‘천하제일’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했다.
당금 무림에서 천하제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당연한 듯이 공부 허도기를 말한다. 그 말이 아주 당연한 말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천하제일의 무공이 어느 정도냐고 물으면? ‘아무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막연히 대답할 뿐이다.
공부의 무공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공부의 무공을 보았다면…… 그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아걸이 펼치는 무공을 보면서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취운은 아걸을 보면서 깨닫는 바가 있었다. 구룡을 힘으로 짓눌렀다.
지금은 마유가 장악하고 있다.
아걸을 의식해서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암중으로 야천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면 야천은 누가 거머쥐었나? 아걸인가, 마유인가? 아걸 이전에는 구룡이 거머쥐었고…… 아걸이나 마유가 지나간 후에는 누가 쥘 것인가?
야천은 임자가 없다.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사람이 잠시 머물다가 떠날 뿐이다.
야천은 장소나 물건이 아니다. 특정한 환경이다. 살아 있는 생명이다. 그러니 누구의 소유도 될 수가 없다. 단지 임시로 맡아서 운용할 뿐이다.
아걸도 야천의 주인이 아니었다.
지금 아걸은 그 어떤 것도 잡은 것이 없다. 오직 칼 한 자루만 쥐고 있다.
하지만 칼 한 자루 속에 중원 천하가 담기고 있다.
아걸과 싸움 중인 이십사 위문 무인도, 싸움을 지켜보는 취화원 살수도, 이 싸움을 전혀 모르는 중원 무인들도…… 모두가 아걸의 칼 밑에 머리를 숙이는 중이다.
야천? 야천도 이 순간부터는 일홀도에 굴복한다.
아걸이 야천에 전혀 간여하지 않아도, 눈길조차 주지 않아도 야천은 아걸을 중원의 주인으로 여길 것이다. 아걸이 하는 말을 법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천하제일이란 이런 것이다.
공부가 이런 식으로 중원 천하를 휘어잡았다.
공부가 무림을 떠난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공부의 말이라면 쩔쩔매는 이유가 이런 무공을 봤고, 마음으로부터 굴복했기 때문이다.
취운은 눈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자신들이 알던 ‘장악’이라는 개념과 천하제일인이 취하는 ‘장악’이라는 개념은 완전히 다르다.
천하제일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다.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머리를 숙이고 굴복한다.
천하제일인이 아닌 사람들은 온갖 발버둥을 치면서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손에 쥐는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천하제일인이 빌려준 것이다.
그 차이를 이제야 알았다.
이십사 위문 문도가 공부의 말 한마디에 탕산에 모인 이유…… 너무도 당연하다.
이제 아걸도 그런 반열에 올라섰다.
‘천하제일인…… 이게 천하 제일인이구나.’
취운은 눈에서 격동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천하제일인의 칼을 본다는 것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영광은 아니다. 지극히 축복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