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六章 천하제일(天下第一) (3)
털썩!
몽설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축하해.”
“정말 좋지? 호호!”
취운과 월영을 제외한 칠곡주가 우르르 달려와서 앞다퉈 축하 인사를 했다.
축하 인사는 자신이 받을 게 아니다. 일홀도를 한층 더 강화시킨 아걸이 받아야 한다.
‘한층 더 강화.’
몽설은 아걸의 일홀도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탕산에 가 있던 취운은 아주 호들갑스럽게 보고해 왔다.
- 상군께서 일홀도를 완성했습니다! 천하제일도! 천도였습니다!
취운답지 않게 들뜬 보고다.
취운은 돌다리도 두들겨 본 후에 건널 정도로 신중한 성격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침없이 ‘천하제일도, 천도’라는 말을 사용했다. 세 번이나 거듭해서 언급했다.
취운이 천하제일도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면 정말 일홀도를 완성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걸의 칼이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천하제일이라는 말은 모든 무공 위에 군림한다는 뜻이다. 최소한 취운이 알고 있는 무인 중에는 아걸을 능가할 무공이 없다고 단언한 셈이다.
물론 취운의 안목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다. 실력 이상으로 강하게 보는 사람이 있고, 또 능력보다 못하게 보는 무인도 있다.
이것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다.
사람의 무공을 자로 잰 듯 정확하게 판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취운은 천하제일검 허도기의 무공을 봤다. 혈무대에서 허도기가 아걸을 벨 때, 딱 한 번 봤다. 그것도 순식간에 터져 나온 검초라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런 검초는 어떻게 판별하나?
취운이 판별한 무공은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왜곡은 중요하지 않다. 취운은 아걸의 일홀도는 보는 순간, ‘이것이 지상 최강’이라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물론 ‘지상 최강’이라는 느낌 속에는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는 아걸의 칼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뜻이 깔려 있다.
순간적인 느낌이 아니다. 하루 이상, 상당히 긴 싸움을 지켜본 끝에 터진 탄성이다.
아걸은 이십사 위문 무인들을 전멸시키지 않았다. 상당히 많은 부인이 살아남았다.
초반에 아걸과 부딪힌 자들은 굉장히 운이 나빴다. 아니, 운이 좋았나? 그들은 그나마 아걸을 죽일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품고 공격했으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아걸의 일홀도는 인간의 일홀도였다. 그런데 싸우는 도중에 칼이 바뀌었다. 인간의 칼이 아닌 천신의 칼, 천도로 바뀌었다.
아걸은 천도로 바뀐 후에도 칼을 쳐냈다. 하지만 그 칼은 오래 쓰지 않았다.
아걸 자신이 무의미한 살상이라고 여긴 것이다.
이십사 위문 무인들은 저항을 포기했다. 여전히 검을 들고 싸우려는 자도 있지만, 아걸을 죽이겠다는 생각은 없다. 단지 물러설 수 없어서 죽으려는 것이다.
검에서 길을 얻었다는 무인들이 너무도 강력한 도법 앞에 얼어붙고 말았다.
몽설은 탕산 싸움을 알지 못한다. 아걸이 어떻게 싸웠는지, 어떤 일홀도를 얻었는지 짐작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보고 싶다.
‘일홀도를…… 얻은 게 맞아? 그럼 앞으로는…… 풋!’
몽설은 생각을 이어가다가 피식 웃어 버렸다.
일홀도를 얻었으니 앞으로는 싸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얼핏 했는데…… 어림없는 생각이다. 아걸은 앞으로도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허도기와 싸워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허도기와도 싸워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아걸의 일홀도에는 끝이 없다. 아걸은 만족하지 않는 호수다. 아무리 물을 들이부어도 넘치지 않는다. 늘 계속 부족하다.
“혈검도 최고인데. 솔직히 말해봐. 일홀도보다 혈검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삼곡주 청란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
몽설은 일시 말문을 잃어버렸다.
혈검경 역시 중원 최고를 지향한다. 그리고 중원 최고 검학이 될만한 자격도 있다.
혈검경은 인간이 펼치는 검법이 아니다. 영혼이 인간의 육신을 조정한다.
니환궁의 검, 니환일검을 일으키면 공격할 곳과 막아야 할 곳이 환히 보인다. 쾌검을 그리면 쾌검이, 환검을 그리면 변화난측한 환검이 터져나간다.
혈검경을 육성 이상만 수련해도 능히 최강 고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그러니 절정으로 연마하면…… 혈검경 역시 ‘중원 최강’이라는 말을 놓고 다툴 수 있다.
허도기는 아걸보다 늘 강했다.
두 사람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싸움을 벌였지만, 그때마다 목숨이 위태로웠던 사람은 아걸이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혈검경을 수련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걸이 허도기에게 패하는데, 왜 혈검경을 더 열심히 수련하나? 결국은 허도기와 싸울 수 있는 무공은 혈검경이라는 무의식의 발로가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몽설은 공부 허도기를 염두에 두었다.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지만…… 공부와 싸울 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그때를 위해서 바쁜 와중에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아걸을 믿지 못해서 혈검경에 매달린 것인가?
그런 측면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한다. 아걸과 몽설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무공이 지닌 아주 못된 독선이다.
무공은 어떤 무공이든 자신이 최고로 잘났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주위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무공이라면 더욱 그렇다. 넓은 세상을 생각하지 않는다.
몽설도 그랬다. 일홀도나 조명십해가 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십 성에 이른 혈검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한데 취운의 보고를 접한 순간…… 문득 깨달았다.
혈검은 아직도 멀었다.
취운이 아는 사람 중에는 원주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취운은 몽설의 무공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일홀도를 보고 퍼뜩 몽설을 떠올렸다면 혈검과 일홀도는 비등한 것이다. 몽설을 생각했다는 것은 혈검이라면 일홀도를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니, 두 무공의 우열을 정하지 못한 것이다.
취운은 니환일검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이십사 위문 무인들이 일홀도 앞에서 검을 들지 못했다고 한다. 워낙 압도적인 도법이라서 감히 맞서 싸울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거다.
혈검은 그렇지 않다. 혈검을 보고 기가 질린 사람은 없다. 모두가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덤빈다.
혈검은 아직 인간의 검이다.
사실, 몽설은 일홀도와 혈검의 우열을 생각하지 않았다. 삼곡주 청란이 느닷없이 혈검에 대한 말을 물어와서 잠깐 자신의 무공을 돌이켜봤을 뿐이다.
“상군께서 돌아오시면 비무 한 번 하자고 해 봐. 일홀도도 보고, 원주의 무공도 보게.”
“풋! 혈검은 일홀도를 못 이겨요. 십 성에 이른 혈검이라고 해도 안 돼요.”
“십 성을 이뤄도? 말도 안 돼. 혈해검신이 생존해 있을 때는 일홀도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는데. 상군과 싸우기 싫으니까 그렇지? 호호호!”
육곡주 화요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뇨. 정말 상대가 안 돼요. 아걸의 일홀도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혈검경을 십이 성 수련한 후에 한 단계 더? 오빠는 무공 이외의 것을 얻었어요. 그래서 상대가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사부가 전수해 주거나 비급으로 얻을 수 없는 것…… 보지는 못했지만 그걸 얻은 것 같아요.”
“비급을 넘어선 것.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는 한데, 우리에게는 뜬구름 같은 말인 건 분명하고. 원주, 어떻게 할 거야? 명부판관, 계속해?”
팔곡주 소명이 차분하게 말했다.
“취운 언니에게 오빠를 만나보라고 할 거예요. 만나서 오빠의 의중을 들어야겠어요. 어쩌면…… 명부판관은 더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몽설은 막연하지만 ‘천하제일’의 의미가 희미하게 와닿았다.
살인 명령이 떨어지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 수 있는 사람과 명령이 떨어져도 달려들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아예 죽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다.
허도기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원 살수 중에 허도기의 청부를 받아들일 문파가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허도기를 암살한다? 어떻게?
살수 문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청부를 받아들이는 기본 전제다.
아무리 강한 자도, 지극히 은밀한 곳에 꼭꼭 숨어 있는 자도 모두 죽일 수 있다.
방법, ‘어떻게?’가 문제다.
그런데 그 방법은 연구하면 나온다.
상대를 꼼꼼하게 조사하고, 분석해서 현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어떤 때는 이런 작업만 해도 살행 방법이 저절로 떠오를 때가 있다.
강한 자는 어떤 무공을 사용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한다. 숨어 있는 자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부터 찾아낸다. 죽이겠다고 생각하고 조사를 하면 반드시 길이 나온다.
모든 사람은 실수하기 때문이다.
허점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허점이 튀어나온다.
살수 문파는 진득하게 기다렸다가 한순간만 포착하면 된다.
그런데 허도기 같은 사람은 암살할 수가 없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허점을 무공으로 덮어 버린다. 살수들이 허점을 파고들기 전에 무공이 먼저 허점을 막아선다.
이러니 아예 실수를 드러내놓고 산다.
허도기는 경계조차 하지 않는다. 누구든 공격할 수 있으면 하라고 말한다. 실제로 허도기를 조사해 보면 암살할 방법이 수만 가지는 나온다.
하지만 어떤 허점을 노리고 들어가 보면 어느새 허점이 단단하게 메워져 있다.
무공! 무공으로 메워놓는다.
살수가 검을 들고 공격해 오는 것까지는 허락하지만, 격타는 허락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검초가 모든 공격을 손쉽게 잠재워 버린다.
결국, 공격한 살수들만 척살당한다.
이것이 절대 강자의 힘이다.
당금 중원 무림에서 절대로 살수 청부를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오직 한 명, 허도기뿐이다.
취화원도 허도기에 대한 살수 청부는 받지 못한다.
구중궁궐에 숨어 있는 황제조차도 청부 대상자다. 실제로 황제를 죽이고자 동영 인자들이 달라붙었다.
황제는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절대 강이 없다.
황제를 보호하는 것은 권력이다. 금군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타인이 신변을 보호한다. 황제는 권력으로 몸을 휘두른 최상위 인물이다.
강한 자들이 주변을 물샐 틈 없이 에워싸기 때문에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황제를 암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타인에게 목숨을 맡기면 반드시 허점이 생긴다.
살수 문파의 입장에서는 황제보다도 금군의 경계망을 살피는 데 주력하면 된다.
먼저 말했지만 ‘어떻게’가 문제다. 방법은 찾으면 나온다.
그러면 동영 인자들이 허도기에게도 달라붙을 수 있을까?
허도기가 누군지 모른다면 달라붙을 수 있다.
이런 것을 보고 ‘청부를 잘못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인데, 가끔 어리숙한 살수 문파가 이런 실수를 한다. 문파 전체가 몰살당할 수 있는 치명적인 실수다.
허도기 같은 자는 취화원 정도는 단신으로 무너뜨릴 수가 있다.
그가 검을 들고 취화원으로 들어선다면 누가 그를 막을 수 있을까? 서리가헌이 찾아왔을 때도 막지 못했는데. 어떤 방법으로 상대할까? 없다.
절대 강의 힘은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청부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은 이런 것이다.
아걸이 허도기와 같은 경지에 올랐다.
절대로 공격할 수 없는 인물!
취운은 무공 고수이면서 살수다. 무공 고수로서는 일홀도를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칼이라고 봤다. 살수로서는 절대로 청부를 받아서는 안 되는 인물로 봤다.
물론 아걸도 사람인 이상 암수에는 항상 노출된다. 독이나 함정으로 유인해서 죽일 수 있다.
아걸을 죽이고자 한다면 그런 수를 써야 한다. 물론 그런 수법조차도 허도기처럼 무공으로 메꿀 것이다. 허점이 수없이 드러나겠지만, 정작 공격할 수가 없다. 공격하기만 하면 죽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들어가면 죽는다.
아걸이 죽일 수 없는 상대로 인식되었다.
그렇다면 명부판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원 무림에 아걸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허도기는 준동하지 못한다. 아니, 허도기는 계속 움직이겠지만, 손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중원에 남은 자들은 아걸의 눈치를 살필 것이다.
아걸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아걸에게 맡겨야 한다.
몽설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취운 언니가 아주 소중한 보고를 해줬어요. 이제는 허도기와 싸운다고 해도 오빠가 죽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게 어디에요? 이거면 됐어요.”
맞다. 아걸은 허도기와 싸울 수 있는 칼을 얻었다.
“이제 우린 우리 일만 신경 써요. 우리 뒤에는 천하제일 일홀도가 버티고 있잖아요. 호호호!”
몽설은 정말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오빠 일홀도 빨리 보고 싶어. 빨리 와. 와서 나한테도 보여 줘. 신의 무학이 어떤 건지 보고 싶어.’
“호호호! 호호호호!”
몽설은 깔깔대며 웃었다. 칠곡주가 빤히 쳐다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