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81화 (481/600)

第九十七章 전운감지(戰雲感知) (1)

‘내가 할 일이 아니야.’

몽설은 수북이 쌓인 서신들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황상에게 이끌려서 어쩔 수 없이 황궁에 몸을 담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가 밀려왔다. 아무리 고쳐서 생각해도 황궁 일은 자신이 할 일이 아니다.

조위 장군을 따라서 황상을 만날 때는 일정 기간 호위만 맡는 줄 알았다.

쉬운 일은 아니다. 공부 허도기의 암수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일이 쉬울 수는 없다.

십인지수(十人之守) 난적일구(難敵一寇)라고 했다. 열 명이 지켜도 도둑 한 명을 막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물며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살인이라면 더 어렵다.

한데 황궁에 들어서니 호법 이외에도 많은 일이 떠넘겨졌다.

호황의 수장이라는 자리는 황제를 지키는 자리가 아니다. 황제의 일을 암암리에 돕는 자리다. 황제를 대신해서 정사를 대신 처리하는 자리였다.

승상조차도 제치고 황제와 직접 의사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섭정(攝政)보다도 더 강력하다.

몽설은 그만한 권력을 손에 쥐었을 쥐었는데도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여인이 몸집 큰 사내의 옷을 빌려 입었을 때처럼 거치적거렸다.

물론 그녀는 정사에 간여하지 않는다. 엄연히 황상이 있는데 그녀가 뭐라고 나서겠나? 그녀가 집중하는 부분은 오직 황제의 안위에 대한 부분에 국한된다.

즉, 몽설은 허도기에 연관된 부분만 파헤친다.

그런데 허도기가 하는 국력(國力)과 관계된 일들이다. 그러다 보니 정사라거나 외침에 관한 보고들까지 빠짐없이 보고된다. 거의 정사를 살필 때와 같다.

책상에 쌓인 서류만 봐도 알 수 있다.

허도기와 관계된 일이 저만큼 많다.

매일매일 전국 각지에서 날아든 보고가 하루종일 읽어도 남을 만큼 쌓인다.

‘후유!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몽설은 탄식을 토해내며 책상에 앉았다.

수북이 쌓인 서류 중 절반은 버릴 것이다. 허도기와 관계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나머지 절반 중에서도 구 할 이상은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

분명히 허도기와 관계된 일인데…… 황상이 손을 대지 않는다.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명령권자가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으니 손을 쓸 수가 없다.

겨우 살아남은 몇 장의 서류 안에서만 움직인다. 그래도 하루가 바쁘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일의 우선순위를 놓쳐버릴 수 있다.

몽설은 빠르게 서신을 읽었다.

버릴 것, 버릴 것, 버릴 것……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눈길이 딱 멈췄다.

“군선 이백 척?”

남해 대만도(臺灣島)에서 올라온 보고다.

군선으로 추정되는 대형범선 이백 척 가량이 파사해협(巴士海峽) 근처로 다가섰다는 보고다.

‘이백 척이면…… 배 하나에 이백 명만 타도 사만 명!’

‘대형범선’에는 이백 명에서 삼백 명이 탈 수 있다. 이 중 오십 명은 노잡이다. 대형범선이면서 유사시에는 쾌선보다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확실히 군선일 것이다.

범선에는 최소 사만 명에서 최대 칠만 명 정도가 배에 타고 있다.

“으음!”

몽설은 침음했다.

이 사건은 지금 당장 조처를 해야 할 정도로 다급해 보인다. 물론 이 사안은 벌써 황상에게도 전해졌다. 황상이 보고를 훑어보고 난 후에 그녀도 알아두라고 보내온 것이다.

외침에 관한 부분은 병부(兵部)로 집약되고, 병부는 제일 먼저 황상에게 보고한다.

“이걸 왜 내버려 두시지?”

몽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제를 보필하면서 제일 먼저 느낀 의문이 왜 반역 의도가 분명한 허도기를 가만히 방치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솔직히 황궁이라는 곳보다 피비린내가 진한 곳도 없다.

황궁은 그 어떤 곳보다도 잔인한 맹수들의 세계다. 황궁에서는 골육상잔(骨肉相殘)이 끊이지 않는다. 조카를 죽이고, 형제를 죽이고, 자식도 죽인다. 부인을 죽이는 일은 예사다. 눈밖에 벗어나면 고개를 돌렸다는 이유만으로도 죽인다.

황궁은 아주 차가운 맹수들의 세계다.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다. 권력을 가지려고 혹은 지키기 위해서라면 혈육조차도 무참하게 베어 버린다.

황상은 허도기와 약간의 인연이 있을 뿐이다.

그런 인연이나 의리만으로 지금처럼 야욕이 노골화된 상황에서도 못 본 척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의심이 조금만 들어도 당장 잡아다가 국문을 취하지 않던가.

허도기가 황제를 노린다면 이것은 대단한 역모다.

왜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을까? 허도기에 대한 정보가 수도 없이 들어오고 있는데.

허도기는 세외팔국을 돌아보고 있다.

명분은 좋다. 나랏일에서 손을 떼고 야인으로 돌아갔으니 바람도 쐴 겸 타국 무공을 견식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세외팔국을 휘돌면서 어떤 일을 벌어지고 있는지는 환히 안다. 허도기에 대한 정보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온다.

물론 증거는 없다. 전부 다 ‘이럴 것 같다’ 하는 말들이다.

정확하게 허도기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간자도 허도기 주변으로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

허도기는 여전히 천하제일검이다. 허도기에게 발각되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또 허도기 주변에는 마유 마인들이 깔려 있다. 사령을 비롯해서 많은 마인 마인들이 주변을 지킨다. 마인이 성검문 무복을 입고 당당하게 앞에 나섰다.

허도기는 흠을 잡을 수 없는 간웅(姦雄)이다.

‘군선 이백 척…… 이것도 분명히 허도기와 연관이 있어. 괜히 온 게 아니야.’

대만도에 군선을 출항시키면 해상에 떠 있는 군선들은 뒤로 물러난다. 싸울 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추격하면 물러나고 돌아서면 다시 돌아온다.

그런 일이 벌써 엿새째 반복되고 있다.

대만도에는 범선 이백 척을 타도할만한 병력이 없다. 범선이 대만도에 상륙하면 순식간에 점령될 게 뻔하다. 육상 병력을 모두 합쳐도 오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대만도가 절대적인 열세인데도 저들은 공격하지 않는다. 그저 해협에 떠 있을 뿐이다.

‘이건 전쟁이야. 그런데 왜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않지?’

몽설은 정말로 황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제는 남만이 꿈틀거린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남만 각 부족에서 건장한 청년들이 차출되어 집합하고 있다는 보고다.

이것도 전쟁을 의미한다.

다만 전쟁 대상이 중원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남만은 주변 국가들과도 전쟁 중이다.

남만 땅은 늘 피가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사납고 흉맹하다. 남만족 전체가, 어른이나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중원을 노리면 운남(雲南)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중원은 조용하지만 세외는 들썩거리고 있다. 언제든 피비린내가 몰아칠 수 있다.

하지만 몽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명령권자 황상이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즉시 조치해야 한다고 보고했는데도 웃기만 한다.

- 그 일은 두고 보지.

그 말 한마디면 모든 행동을 멈춰야 한다.

“언니.”

몽설이 취운을 불렀다.

“네.”

취운이 즉시 대답했다.

‘언니’라는 호칭은 사석에서나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몽설은 개의치 않는다. 황상 앞에서도 구곡주를 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곡주는 공사를 구분한다.

사석에서는 편하게 말을 해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깍듯이 존대한다. 몽설은 취화원 원주만이 아니다. 호황위 군주이기도 하다. 중원 제이인자다.

“이거 읽어봤죠?”

몽설이 서류를 내밀었다.

“네.”

“언니 생각은 어때요?”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지?”

“왜 이래요? 다 알면서. 이거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나요?”

“외침은 병부에 맡기시죠.”

“병부가 전혀 움직이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죠. 당장 움직여야 하는데…… 조위 장군님은 여전히 함곡관(函谷關)에 계세요?”

“네.”

“지금 아래쪽이 급한데 위도 문제라는 건가?”

몽설이 미간을 찡그렸다.

대막에서 불어오는 폭풍이 있다. 동북에서 불어오는 북동풍도 있다. 천축에서 불어오는 서풍도 주시해야 한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사방팔방에서 몰아칠 것이다.

확실히 몽설이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여기서부터는 조위 대장군의 영역이다. 병부가 맡아서 할 일이다.

몽설은 천하 정세를 두고 군대를 부릴 만큼 병법에 능숙하지 않다. 또 병권을 주고 군사를 움직일 만큼 장수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 않다.

그런데 왜 황제는 몽설에게 이런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저…… 군주님.”

“네.”

“일단 이 일은 놓으시고 다른 일부터 신경 쓰시는 게…….”

취운이 다른 쪽에 쌓인 서류를 가리켰다.

“후유!”

몽설은 한숨부터 토해냈다.

왼쪽에 쌓인 서류들…… 읽기 싫다. 손대기 싫다. 아니, 손대야 하는데 해결방법이 없다. 오른쪽 서류를 읽으면서도 마음은 왼쪽 서류에 가 있었다. 어떤 내용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읽지 않아도 안다. 당장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그런데 아직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서류를 읽으면…… 아무 해결책도 없이 마음만 들끓어야 한다.

스읏!

몽설은 더 미룰 수 없어서 서류를 끌어당겼다.

죽은 망령들이 깃들어 있는 서류!

백살도축! 허도기의 살수가 중원을 휘젓는 소리!

관원들이 죽는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파견한 취화원 살수들이 암습에 당한다.

사실 취화원은 요 며칠 사이에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취화원 선수들도 강하지만 동영 인자도 강하다. 한쪽은 세상에 드러나 있고 한쪽은 어둠 속에 숨어서 공격한다. 누가 유리한가? 암살이라면 숨어서 공격하는 쪽이 유리하다.

취화원 살수들이 펑펑 나가떨어지고 있다.

왼쪽 서류들은 그에 대한 보고다.

“오늘은 몇 명이죠?”

“일곱, 스물…… 둘, 여섯입니다.”

취운이 힘들게 대답했다.

“스물…… 둘.”

몽설도 힘들게 말했다.

스물둘, 스물두 명.

취화원 살수 스물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관원은 일곱 명이 죽었다. 그에 반해서 동영 인자는 여섯 명밖에 잡지 못했다.

백살도축이 매우 잔인하게 진행되고 있다.

“유음류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없습니다. 좀 더 열심히 찾아보겠습니다.”

취운이 말했다.

취운이 지금까지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동영 인자들이 은밀하다는 뜻이다.

하기는…… 아걸조차도 독비를 맞을 만큼 은신술이 뛰어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숨어서 공격하니, 취화원 살수들이 당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여섯 명을 죽이는데 스물두 명. 희생이 너무 커요.”

“이게 최선입니다.”

취운도 찌푸린 얼굴을 펴지 못한 채 말했다.

원래 관원은 금군이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여의치 않다.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황상만 바라보고 있다.

간자 색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다.

많은 자를 추려냈지만, 여전히 간자가 남아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배신할지 모른다. 다른 문제라면 몰라도 사람이 한순간에 죽고 사는 문제에서는 한 사람의 변심이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금군을 움직일 수가 없다. 현 상태에서 서로 예의 주시하는 게 최선이다.

백살도축이 완성되면 정사가 무너진다.

실무를 행한 관료들이 모두 제거되면, 실질적으로 나라를 움직이는 중간 명령권자들이 일시에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러면 당연히 혼란스러워진다.

물론 그들의 임무는 하위 관원이 인계받으면 된다. 하지만 각 부(部)를 정상적인 상태로 유지하려면 대략 한두 달 정도는 소요된다. 그동안은 혼란을 피할 수 없다.

그 기간에 세외팔국에서 침략하면 안팎으로 맹수를 맞이하는 셈이 된다.

“방법이 없어. 이렇게 나가다가는 백살도축이 완성돼. 그동안 우리 취화원도 무너질 거고. 언니, 할아버지한테 연락을 취해 주세요. 도움을 받아야겠어요.”

“적랑대 움직이시게요?”

“적랑대 숙원이 공식적으로 무림에 발을 딛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허도기가 견제하고 있어서 들어서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알겠습니다. 즉시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그런데 적랑대를 움직이시려면 할아버님보다는 적랑대주에게 직접 연락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연락방법은 알고 있는데요.”

“아뇨. 할아버지에게 연락해 주세요. 취화원도 살수 문파, 적랑대도 살수 문파. 살수 문파가 연합한다는 인상은 좋지 않아요. 표면적으로는 따로 움직이는 게 나아요.”

“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취운이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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