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七章 전운감지(戰雲感知) (2)
섬서(陝西), 진령산맥(秦嶺山脈)과 황토고원(黃土高原) 사이에 동서 천 리, 남북 삼백 리의 넓은 땅이 있다.
관중(關中)이다.
관중은 주변이 험지로 둘러싸여 있다. 동서남북이 모두 천험의 험지다.
관중으로 들어설 수 있는 곳은 네 곳이다.
당연히 이 네 것에는 천군만마도 막아낼 수 있는 단단한 성벽을 세웠다.
동쪽으로는 화산(華山) 위쪽에 관문을 세웠다. 동관(潼關)이다.
서쪽으로는 진령산맥과 육반산(六盘山)이 만나는 곳에 대산관(大散關)을 구축했다. 남쪽으로는 진령산맥과 단강(丹江) 만나는 곳에 무관(武關)을 세웠고, 북쪽으로는 육반산 끝자락에 숙관(肅關)을 만들었다.
이 네 곳을 거치지 않고는 관중으로 들어설 수 없다.
관중이라는 말 자체가 관(關) 속에 있는 땅, 사관(四關)에 둘러싸인 땅이라는 뜻이다.
관중에서 동관을 거치면 중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동관은 관중과 중원을 잇는 가장 중요한 길목인 셈이다.
그래서 동관 너머에 또 하나의 관문을 설치했다. 중원 제일 험지라고 불리는 함곡관(函谷關)이다.
세외에서 관중으로 들어서려면 북쪽의 숙관이나 서쪽의 대산관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관중에서 중원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다시 동쪽의 동관이나 남쪽의 무관을 통해야 한다. 그리고 동관을 거친다면 다시 함곡관과 마주친다.
함곡관은 세외에서 중원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관문이다.
중원에는 관문이 백 개가 넘는다. 하나같이 주요 길목을 차단하고 있다. 하지만 함곡관처럼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관문도 없을 것이다. 함곡관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지명만큼은 들어봤을 것이다.
함곡관은 중원 역사에 가장 많이 등장한다.
그만큼 전략의 요충지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전쟁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함곡관의 중원의 목줄이다.
세외에서 들어선 자는 관중 땅을 먼저 밟는다. 그때부터 함곡관에서는 그들을 지켜볼 수 있다.
만약 관중에 들어선 사람들이 다수이며, 무장했으며, 악의를 품고 있다면 어떨까?
관중은 처절한 싸움터가 된다.
침략자가 강성하면 함곡관을 틀어막을 것이고 침략자가 약하면 관중이 그들의 무덤이 된다.
사실상 침략자는 숙관이나 대산관도 넘기 힘들다. 두 곳을 뚫고 관중에 들어서도 동관과 무관이 기다린다. 동관을 뚫으면 다시 함곡관이 나타난다.
조위 장군이 함곡관에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음!”
조위 장군이 침음했다.
대산관과 숙관에서는 매일 전령을 보내온다.
사실, 그들은 함곡관에 전령을 보낼 의무가 없다. 설혹 보낸다고 해도 급한 일이 있을 때만 보낸다. 적군이 나타나거나 급히 조정의 결단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늘 조용하다.
조위 장군은 그들에게 일일 보고를 하도록 지시했다. 그것도 십역보고(十驛報告)다.
십 리마다 역참(驛站)을 설치했고, 항상 달릴 수 있도록 말과 전령이 준비하고 있다.
전령은 십 리를 전력 질주한다. 다음 역참에서 기다리고 있던 전력에서 보고서를 전달하고는 대기한다. 말에게 휴식을 취하게 해서 다시 전력 질주할 힘을 비축한다.
함곡관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관문은 북관인 숙관이다. 거리가 무려 천이백 리에 이른다. 십역보고를 한다면 백이십 명의 전령과 말이 필요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전령이 도착할 수 있다.
관중을 둘러싼 사관에서 일제히 십역보고가 이루어졌고, 조위 장군은 매일 보고를 받았다.
“지금까지 얼마나 되지?”
조위 장군이 물었다.
“대략 삼만 명 정도 됩니다.”
“거란(契丹)?”
“네.”
“거란인 삼만 명…… 음!”
조위 장군이 다시 침음했다.
관중에 이미 다수의 적이 숨어들었다. 북방민족이며 기마술에 능숙한 거란인.
그들이 관중에 들어선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중원은 거란과 정상적인 교역을 하고 있다.
숙관에서 그들을 통과시켰다는 말은 거란인들이 교역할 물건이나 돈을 지참했다는 뜻이다.
물자가 풍부하지 못한 거란인들이 삼만 명이나…… 그것도 교역하기 위해서 물건을 들고 천 리 길을 걸어왔다? 그럼 봇짐 하나 메고 온 것은 아닐 텐데…… 그들에게 말이나 낙타에 짐을 싣고 올 만한 역량이 있나? 삼만 명이나?
그것도 아니면 그들을 무사통과시킨 사람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숙관에도 어김없이 허도기에 간자가 있다.
간자가 숙관을 장악하고 있다면 중무장한 천군만마가 질주해 오더라도 무사 통과될 것이다.
더욱이 북관을 통해서 삼만 명이 들어왔다면 숙관 전체가 허도기의 수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있으나 마나 한 관문으로 전락해 버렸다.
“중원으로 들어가려는 움직임은?”
조위 장군이 물었다.
“아직 없습니다.”
“저들이 관중이 모이기 시작한 게 며칠이나 됐지?”
“칠 일째입니다.”
“칠 일에 삼만 명. 무기나 말은?”
“아직 없습니다.”
“그래…….”
조위 장군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기나 말이 없다는 것은 관중에서 누군가가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거란인 삼만 명이 들어왔다면 그 중 최소한 오천 명은 기마병이다.
거란인은 말을 타고 싸운다. 오천 명보다 더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다.
그러면 오천 필이나 되는 말은 어디서 나올까? 군대다. 민간에서 오천 필의 말을 수거하기는 쉽지 않다. 관중 전체를 뒤져도 구하기 어렵다.
더욱이 훈련되지 않은 말은 전쟁터에서 오히려 위험을 안긴다. 허공을 가르는 화살 소리, 여기저기서 터지는 포격, 떨어져 나가는 살점과 비명…… 그 아우성 속에서 꿋꿋하게 질주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놔야 한다.
말이 얼마나 겁이 많은지 아나?
농사나 짓던 말을 무작정 끌어다가 전쟁에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들은 틀림없이 군부에서 말을 지원받는다.
‘언제 이토록 단단한 뿌리를 내렸는가, 공부.’
조위 장군은 암울한 눈으로 깊은 절곡을 쳐다봤다.
함곡관에서는 관중이 보이지 않는다. 동관에서부터 육십 리나 안으로 들어와 있다.
깊은 절곡에 세워진 성채가 다름없다.
만약, 동관에도 허도기 수하들이 장악하고 있다면 쉽게 문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함곡관이 싸우면 된다. 함곡관을 지키는 병사들은 자신이 직접 양성했으니 믿을 수 있다.
남쪽이 문제다. 무관이 열릴 것에 대비해서 단강에 군사를 매복시켜 놨다. 무관이 열리더라도 중원에 들어설 수 없도록 중간에서 협살한다.
그들 역시 자신이 직접 양성한 수하이니 믿을 수 있다.
이것이 조위 장군의 최대 방어다.
병사가 있어도 쓰지 못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칼을 거꾸로 잡을지 모른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보고 허도기 쪽에 선 것인가? 황제가 실정(失政)을 한 것도 아닌데. 군부를 천대하거나 장군들을 능멸한 것도 아닌데.
허도기가 천하제일검이고, 그런 이유로 군대에 정천검법을 전수하기는 했지만, 단지 그만한 인연만으로 이토록 철저히 군대를 틀어잡았다는 것은…….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허도기가 직접 군인들을 일일이 포섭한 것은 아니다. 한 명을 포섭하면 그가 다른 자를 포섭하는 형태로 세를 불려왔다. 하지만 그 연결고리가 대단히 탄탄하다.
포섭한 자들을 하나로 묶은 것이 바로 허도기의 능력이다.
허도기는 뛰어난 지략가다. 세상을 넓게 보는 안목이 있다. 거기에 야욕까지 곁들였다.
굉장히 위험한 인물이었다.
천하제일검이라는 무공은 오히려 그가 지닌 야욕에 비하면 약해 보인다.
‘너무 늦게 알았어.’
조위 장군은 자책했다.
그가 허도기의 야욕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뿌리를 잘라냈을 것이다. 그가 이상함을 눈치챘을 때는 대장군이 그조차도 감히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있었다.
허도기는 감탄스러운 치밀함으로 조금씩 군부를 장악했다.
만약에 저들이 관중을 장악하고 함곡관으로 들이친다면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 있을까? 당연히 싸워야겠지만, 쉽지가 않다. 자신이 직접 양성한 수하들조차도 믿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믿지 못하는 병사를 부려야 한다.
문을 닫으라고 사람을 보냈더니 오히려 문을 열어 주는 열쇠 역할을 하고 있다.
거란족이 관중에 들어선 것을 보면서도 즉시 나서지 못하고 함곡관에 틀어박힌 이유다.
‘서역도 꿈틀대고 있고…… 남만, 동영…… 하지만 주는 여기야. 여기가 뚫리면 안 돼. 흔들리지 말자.’
조위 장군은 스스로 다짐했다.
관중은 승부처다.
허도기도 더는 숨어 있을 수 없다.
전쟁을 타인에게만 맡길 수 있나. 거란인들이 관중 땅에 모였으면서 아직 싸우려는 의사를 내비치지 않는 이유는 허도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들도 어떠한 담보가 필요한 것이다.
허도기의 수족 노릇만 하다가 화살 받아가 되어서 사라질 생각은 없다. 그러니 전쟁을 하려면 허도기에게 직접 나서라는 요구나 압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전쟁에서 패해 거란인이 박살 났는데, 정작 전쟁을 부추긴 허도기가 멀쩡하다면…… 그런 일은 눈 뜨고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부리려면 너도 뭔가를 걸라고 요구한다. 그런 일이 관중에서 벌어질 것이다.
‘공부. 그만 나오시게. 더는 숨어 있을 수 없지 않나.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계속 숨어 있거나. 부탁인데…… 계속 숨어 있으시게. 제발.’
조위 장군의 눈빛이 암울하게 가라앉았다.
* * *
“황토고원에 십만 명이 대기 중입니다.”
사령이 보고했다.
“그런데 3만 명만 보냈다?”
“네.”
“하하하! 야율합리(耶律合理)가 투정을 부리는구나. 하하하!”
허도기가 웃었다.
드디어 결착의 순간이다. 모든 준비는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이번 거사에 세외팔국 중 삼국 이상만 동참해도 성공한다. 중원을 손아귀에 틀어쥘 수 있다.
황제!
멀게만 느껴졌던 황제라는 자리가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긴 싸움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이미 승부는 끝났다.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대세는 결정지어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돌이키지 못한다.
조위 장군이 함곡관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허도기는 붓을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글을 써 내려갔다.
“후우우!”
허도기는 입으로 바람을 불어서 한지에 적힌 먹물을 말렸다.
“사령. 이걸 야율합리에게 전해.”
“네.”
사령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거기서 지켜봐. 십만 명이 모두 황토고원을 떠날 때까지.”
“네.”
“이 편지를 받고도 야율합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목을 쳐. 해줄 수 있나?”
허도기가 사령을 쳐다봤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령이 허리를 숙여 대답했다.
야율합리는 십삼만 대군을 끌고 온 거란족의 맹장이다. 황소를 끌어안고 목뼈를 분질러 죽일 정도로 힘이 장사다. 무적맹장(無敵猛將)이라는 말이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사령은 야율합리를 죽일 수 있다.
사령이 암살을 시도하면 죽이지 못할 사람이 없다. 허도기만 제외하고.
“야율합리를 베게 되면…… 곧바로 돌아와. 뒤에 벌어지는 일은 지켜볼 필요 없어. 무적맹장이 죽으면 건드리지 않아도 저놈들 스스로 미쳐 날뛸 테니까.”
“네.”
사령이 대답했다.
“하지만 야율합리도 눈치가 있으니까 움직일 거야. 후후! 곧 여기서 불꽃이 터지겠네.”
허도기가 웃었다.
관중이 터지면 파사해협에서도 풍랑이 일어난다. 남쪽 홍하(紅河)의 물줄기가 핏물로 빨갛게 물든다.
사령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거란, 남만, 동영…… 삼국이다. 현재 이상 기류를 보이는 곳은 세 곳뿐이다.
허도기는 세외팔국을 모두 움직였다.
그들 모두 동조했다.
사막에서 봤던 서역인도 움직인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동영, 남만, 거란…… 이 세 곳만 지금 현재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다섯 곳은 어디에 있나?
‘분명히 움직였어. 그들도.’
이 싸움은 공부가 승리한다. 아무리 살펴봐도 조위 장군에게는 정세를 뒤집을 힘이 보이지 않는다.
‘조만간 황제가 되겠군. 이 사람.’
사령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감정 없는 눈으로 허도기를 쳐다봤다.
허도기 서신에 먹물이 마른 걸 확인한 후 직접 접어서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사령에게 내밀었다.
“황토고원이 텅 빌 때까지 지켜본 후에 돌아와.”
“네 알겠습니다.”
사령이 서신을 받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