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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483화 (483/600)

第九十七章 전운감지 (戰雲感知) (3)

몽설은 호황위 군주다. 황제를 보호한다.

황제를 보호하는 임무는 범위를 한없이 넓히면 나라를 보호하는 임무가 된다. 하지만 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줄이면 황제의 일신을 보호하는 선으로 한정된다.

호황위의 임무 범위를 어디까지 넓힐 것인가 하는 점은 황제와 군주가 협의해서 정한다.

호황위가 역심을 품으면 합법적으로 황상을 탈취할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호황위라는 제도는 언제든 독배가 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제도적 장치다.

황제가 호황위 군주를 통제할 수 없을 때, 나라가 뒤집힌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황제는 몽설을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몽설이 무엇을 하든 간여하지 않는다. 오직 몽설의 판단에 따라서 범위가 축소되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한다.

호황위의 임무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

“관중 사정이 굉장히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취운이 말했다.

“파사 해협도 위태로운 것 같지 않아요? 남만의 동태도 심상치 않고…… 세상이 뒤숭숭하네.”

몽설이 침음했다.

대만도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수군 도독 진일호(晉一鎬)가 이미 움직이고 있다. 파사 해협에 떠 있는 범선이 이백여 척이라고 하지만 진일호가 이끄는 전선은 삼백 척이 넘는다.

진일호는 복건성(福建省) 복주(福州)에서 즉시 움직일 수 있는 준비를 갖췄다.

남만 쪽 사정은 아직 정확하게 판단되지 않는다.

남만족이 움직인 것은 분명하다. 각 마을에서 젊은이들이 차출된 것까지는 확실하게 보고가 들어왔는데…… 그 후의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틀림없이 비밀리에 특정한 장소로 모이고 있을 텐데.

그 많은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데도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면 사전에 단단히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호황위의 범위를 넓힌다면 이런 부분들까지 모두 간여해야 한다. 말 그대로 정사에 참여하게 된다. 나랏일을 살수문파 원주가 좌지우지하게 된다.

“이 부분…… 우리는 손 떼요.”

몽설이 결정 내렸다.

사실, 이런 부분은 결정하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몽설은 처음부터 정사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잘 알지 못하는 일을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도 계속 보고가 들어온다.

황제가 내려야 할 결단을 몽설에게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

황궁 각 부처도 호황위에 대한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호황위는 모두에게 낯선 조직인 것이다.

“우리는 황상을 보호하는 데 집중해요. 여타의 일은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고 일절 관여하지 마요. 혹여 우리 의사를 물어오는 곳이 있어도 단호하게 끊어요.”

“네.”

취운이 예상한 말이라는 듯 웃으면서 답했다.

전쟁은 대장군이 알아서 한다. 그러니 취화원은 황제의 일신 보호에 집중한다.

“그럼 백살도축은 어떻게 할까요?”

“음!”

몽설은 미간을 찡그렸다.

사실, 그 부분도 오지랖이 넓었다. 처음부터 황제의 일신 보호에만 집중했다면 고관대작이 죽건 말건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일은 금군이 해야만 했다.

“그건 이왕 손댔으니까 우리가 마무리 지어야죠. 중원 살수가 동영 인자에게 밀린다면 말이 안 되잖아요. 호황위 문제가 아니라 취화원 자존심 문제에요.”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우리가 밀립니다.”

취운이 말했다.

맞는 말이다. 취화원은 강한 살수 문파다. 누구의 도전도 받아줄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정통 문파들과의 싸움에 국한된다.

취화원은 같은 살수문파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몽설이 취화원을 이끄는 지금은 중원에 살수문파가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남아 있던 귀문을 취화원이 접수해 버린 이후에는 오직 취화원만이 유일한 살수문파가 되었다.

암중에 적랑대가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모습을 보이는 즉시 허도기에게 집중 공격당할 것을 알고 있으니 나설 수 없다.

중원 상황이 이러니 취화원 살수들은 고도의 살수들과 싸울 준비를 하지 않았다.

취화원은 공격하는 입장이지 방어하는 쪽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공격해 오면 즉시 해체해서 흩어진다. 문파 자체가 사라졌다가 운집하는 형태를 취한다. 아예 타격 목표를 주지 않는 방식이다.

어떤 면에서는 동영 인자와의 싸움이 처음으로 맞는 방어 형태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길게 보면 나쁘지 않다. 취화원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현실이 좋지 않다. 피해가 너무 크다. 당하는 사람이 많다.

“우린 이런 싸움을 준비하지 않았으니까…… 할아버지는요? 연락됐어요?”

“내일 구산(龜山) 산신각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잘됐네요.”

몽설이 활짝 웃었다.

스읏! 스으으읏!

구산에서 차가운 바람이 흐른다. 무인이라면 단번에 느낄 수 있는 예기가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혼자 오지 않았네.”

“적랑대 대주 임지정과 함께 왔습니다.”

“호호호! 역시 할아버지. 좌우지간 기회를 놓치지 않으신다니까.”

몽설이 웃으면서 말했다.

적랑대 대주가 움직이면 호법 열 명도 함께 움직인다. 암중에 숨어서 목숨으로 대주를 지킨다.

몽설도 마찬가지다. 몽설이 움직이면 취화원 호법도 움직인다. 거기에 몇 사람이 더 붙었다. 몽설이 호황위 군주가 되면서 금군 쪽에서 호법을 붙였다. 몽설이 극구 사양해도 근위대장이 직제를 내밀며 고집했다.

직제상으로는 호황위가 발동되면 근위대 중 이십 명이 군주의 호위를 맡게 된다.

이들은 취화원 호법보다도 우선한다.

몽설 곁을 금군이 지키고, 남는 자리가 있으면 취화원이 지키라는 식이다.

이들 모두가 구산에서 예기로 부딪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한다. 물론 몽설과 임지정이 목숨을 해칠 사이는 아니지만, 호법은 호법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다.

구산에서 부딪치는 예기는 호법들의 말 없는 싸움이다.

아삼과 임지정은 산신각 안에 있지 않았다. 산신각 밖에 탁자와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더욱이 탁자 위에는 향긋한 차까지 준비되었다.

준비를 많이 한 모습이다.

“할아버지!”

몽설이 활짝 웃으며 달려갔다.

“이거 호황위 군주에게 할아버지 소리를 들어도 되나? 어휴! 눈부셔.”

아삼이 장난스럽게 손으로 눈을 가리며 말했다.

“호호호! 할아버지, 장난치실래요!”

“어이쿠! 호황위 군주가 되시더니 역정도 내실 줄 알고. 이거 송구해서 어쩌나?”

“할아버지!”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마음을 풀어놓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군주를 뵙니다.”

임지정이 즉시 일어서서 두 손 모아 포권지례를 취했다.

“대주님은 또 왜 이래요? 할아버지는 늘 이러니까 그런다지만 대주님까지 이럴 필요는 없어요.”

몽설이 임지정의 포권지례를 장난으로 받았다.

하지만 아니다. 임지정은 포권을 풀지 않았다. 몸가짐도 정숙했다. 몽설을 군주로 대하고 있다.

“됐어요. 앉으세요.”

몽설이 말했다.

그제야 임지정이 포권을 풀고 자리에 앉았다.

“이놈 천하에 거칠 것이 없는데 그래도 호황위의 군주는 무서운가 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설설 기네. 킥킥! 이놈이 이렇게 예의를 차리는 건 처음 본다.”

역시 아삼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임지정을 놀렸다.

“어머? 그래요? 영광이네요.”

몽설도 임지정을 놀렸다.

“적랑대 눈이 필요한 거지?”

“네.”

“이건 너희끼리 이야기해. 무슨 이야기가 되었든 빨리 말하고 끝내자. 지켜보는 놈들이 많아서 불편해.”

아삼이 말했다.

금군 호법은 숨지 않는다. 모습을 드러내 놓고 노골적으로 몽설을 호위한다. 세 사람이 앉아있는 탁자까지 한 걸음이면 달려올 수 있는 곳에서 눈빛을 번뜩인다.

“유음류와 싸우고 있는데 어렵네요. 기습을 당한 후에 반격을 취하는 형태라서. 일단 급습을 막아야 하니…… 많이 당하고 있어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몽설이 임지정을 보며 말했다.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임지정이 차분하게 말했다.

“동영에서 건너온 인자는 모두 일흔여덟 명입니다.”

“일흔여덟 명?”

“놓친 자도 있겠지만 거의 정확할 겁니다. 모두 사 차에 걸쳐서 침입한 것까지는 파악했습니다. 일흔여덟 명이 최소한의 인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임지정이 정중히 말했다.

자연스럽게 대해달라고 했지만, 여전히 몽설을 호황위 군주로 대하고 있다.

“역시 적랑대라면 파악하고 있을 줄 알았어요.”

몽설이 웃으며 말했다.

“일흔여덟 명 중 탕산에 투입된 자가 열두 명입니다. 그자들은 아걸에게 죽었죠. 취화원과 접전을 벌이면서 죽은 자가 열세 명. 쉰세 명 남았습니다.”

“정확하게 보고 계셨네요?”

“저희는 주변을 살피는 게 일이라서.”

“뭘 주변을 살피고 자시고야. 쉽게 말해. 원래 쫄보들이 세상 눈치를 더 많이 보는 법이야.”

아삼이 툭 끼어들었다.

몽설은 귓가로 흘려듣고 임지정에게 물었다.

“그 쉰세 명,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나요?”

“은신처까지 파악하지는 않습니다. 너무 깊게 들어가면 자칫 발각될 우려가 있어서. 하지만 주변에 망을 쳐놓고 있으니 움직이기 시작하면 걸려듭니다.”

소주망(小蛛網)이라고 부르는 적랑대의 감시 방법이다.

은신처 주변에 거미줄을 다섯 겹으로 쳐놓는다. 그러니 동영 인지가 움직이면 반드시 거미줄에 걸려든다.

철컹!

거미줄이 움직이면 소주망을 형성한 스물일곱 명이 눈을 번뜩인다.

소주망은 움직이지 않는다. 앉은 자리에서 눈만 번뜩인다. 거미줄이 움직이나? 움직이지 않는다. 소주망을 펼친 자리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소주망이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동영 인자도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동영 인자가 떠난 후에도 소주망은 그 자리에 계속 머문다. 거미줄을 펼쳐놓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대신 다른 곳에 펼쳐진 소주망이 동영 인자를 뒤쫓는다.

몽설은 적랑대의 감시 방법을 알고 있어서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아니,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동영 인자가 움직이면 저희한테 연락 주시겠어요?”

“그러겠습니다.”

임지정이 대답했다.

취화원은 동영 인자를 추적하지 못한다. 중원에 들어선 은신술사를 찾아낸다는 것은 강변에 떨어진 바늘 찾기나 다름없다. 불가능에 가깝다.

적랑대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동영 인자를 찾아내라고 하면 찾지 못한다. 드넓은 세상에 은밀히 숨어든 자들을 무슨 수로 찾겠나.

적랑대는 동영 인자가 중원에 발을 디딜 무렵부터 지켜봤다. 그리고 감시를 풀지 않았다.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 동태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적랑대는 오랜 세월 동안 숨어 지냈다. 살행은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였다. 허도기의 추격에서 몸을 사리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니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또는 재기의 발판을 위해서 세상을 지켜보는 눈을 키워야만 했다.

취화원과 적랑대는 서로 다른 부분에 특화되어 있다.

살수를 전개한다는 측면에서는 취화원이 강하고 세상을 넓게 보는 측면에서는 적랑대가 훨씬 뛰어나다.

몽설은 적랑대의 이런 눈이 필요했다.

임지정은 품에서 서신을 꺼내 몽설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오늘 저녁 예상되는 움직임입니다.”

“오늘 저녁요?”

“급습은 현장 상황에 맞춰서 이뤄질 것이니 장담할 수 없고…… 일단 기습을 취하기 위해서 움직이기는 할 겁니다.”

백살도축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동영 인자들은 여전히 황제의 수족을 처단하고 있다.

원래는 일시에 백 명의 고관대작을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한데 취화원이 달라붙는 바람에 진척이 늦어졌다. 일차 방어를 뚫어야 목적을 달성한다.

취화원 살수들이 조금만 틈을 보이면 그 즉시 살행이 이루어진다.

지키는 자와 죽이려는 자의 싸움인데, 이런 싸움은 대체로 죽이려는 자가 유리하다.

임지정이 내민 서신은 반격의 열쇠다.

“고마워요. 그럼 저도 약속대로 선물을 드려야죠? 지금 풍도곡이 비어 있는 거 아시죠?”

“풍도곡은?”

임지정이 눈을 가늘게 떴다.

몽설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풍도곡은 공부 허도기의 땅이다. 공부가 서리가헌과 서리형개, 동박에게 내준 땅이다. 그들이 죽은 지금은 텅 비어 있다.

“그 넓은 땅이 아깝잖아요.”

“세상에 빈 땅은 많습니다.”

임지정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몽설을 품에서 서신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임지정이 서신을 펼쳐보지도 되물었다.

서신에 금룡이 그려져 있다. 황제의 친서다.

“향후 오십 년간 풍도곡을 적랑대에게 부여한다면 친서에요. 물론 살행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고…… 적랑대 현판은 내걸 수 있어요. 이제 슬슬 나오셔야죠?”

몽설이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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