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85화 (485/600)

第九十七章 전운감지(戰雲感知) (5)

“부딪혀 보니 어때?”

미송림에서 벗어나 환궁하기 무섭게 황제가 물었다.

“취화원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근위대장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 정도인가?”

황제가 놀란 눈으로 근위대장을 쳐다봤다.

“네. 확실히 암살에 정통한 자들입니다. 취화원도 강하지만, 취화원과는 색깔이 전혀 다른 자들이라서…… 경험해 보지 못한 무공을 구사합니다.”

“음! 그럼 앞으로 산책은 삼가야겠군.”

“죄송합니다.”

근위대장이 머리를 숙였다.

황제가 황궁을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한다. 내 집 안마당을 거닐면서도 암살에 대비해야 한다.

근위대장이 낯을 들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근위대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지금 상황은 체면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티끌만큼이라도 삐끗하면 천추의 한이 남는다.

“군주에 관한 생각은 아직도?”

“네. 하지만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호황위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빈틈을 메꿔준다는 점만은 저도 인정합니다.”

“평가가 인색하군.”

“다른 직위라면 몰라도 호황위는 그래야 합니다.”

근위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근위대장은 호황위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이 그렇다. 호황위는 원래 없던 존재다. 황제가 몽설을 불러서 호황위라는 직책을 던져주기 전까지만 해도 호황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실체가 없는 전설일 뿐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놓고 ‘너 이 집 지키는 귀신 해.’라고 말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래서 몽설이 호황위 군주가 되고 그녀를 군주라고 부르기까지 하면서도 사실상 몽설을 무시해왔다.

‘군주’라는 호칭은 호칭일 뿐이니 불러줄 수 있다. 하지만 황제를 경호하는 일은 물러설 수 없다. 취화원은 나름대로 하면 된다. 금군은 금군대로 움직인다.

근위대장은 몽설에게 금군을 내주지 않았다. 금군과 관계된 일은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이런 자신감은 검에서 나온다.

그는 자신의 검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물론 몽설이 어떤 무공을 구사하는지 안다. 혈검경은 두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빼어난 절학이다.

천고 제일의 검학!

하지만 ‘절학’이라는 말을 붙일 때는 몽설이 혈검경을 충분히 수련했을 때에 한한다. 지금 정도의 경지라면 근위대장이 물러설 이유가 없다.

군주의 무공이 자신과 비등한 정도라면 그녀가 이끄는 취화원의 무공은 어떤가?

암영검과 사생락은 암살 무공의 정화다.

이런 살수 무공과 정통 무공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말 그대로 살수 무공은 기습이나 암살 같은 살상 공격에 특화되어 있다. 무공이 아니라 죽이는 기술이다.

정면으로 부딪쳐서 싸우는 금군 무공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니 금군과 취화원 중 누가 더 강하냐는 질문은 가장 미련한 물음, 우문(愚問) 중 우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대답하자면 어떤 경우에는 금군이, 어떤 경우에는 취화원이 앞선다. 모든 강약은 환경이나 지형, 싸움 방식에 따라서 결정된다. 가장 평범한 대답이지만,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근위대장은 호황위라는 존재를 금군이 막을 수 없는 취약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동영 인자와 부딪쳐보니 인술을 사용한 암살자에게는 취화원이 제격이다. 금군보다는 취화원이 훨씬 유용하게 막아줄 수 있다.

그런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한 번의 드잡이질이면 충분하다.

근위대장은 목형술을 깼다. 목형술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무너트렸다.

쉽게? 아니다. 여기에도 갈등이 있었다.

인자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을 안다. 그래서 검을 쳐나갔다. 하지만 검초를 전개하는 와중에도 ‘이게 정말 맞나?’ 하는 의문을 떨치지 못했다. 자신이 헛손질한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무공으로 감지하지 못한 적을 치고 있어서다.

무공으로 감지한 적을 공격한다면 의문이 일어나지 않는다. 모르는 적을 공격하기 때문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탕산 싸움으로 목형술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절대로 쓰지 않았을 공격이다. 알고 공격하는데도 이렇게 의문이 깊이 일어나는데.

그만큼 동영 인자들의 목형술은 완벽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자신을 향해 쳐오는 검을 보고 피하지 않겠나. 가만히 있으면 틀림없이 검을 맞을 텐데.

그런데 동영 인자들은 그렇게 했다.

검이 나무를 베고 지나가는 순간까지도 일절 움직이지 않았다. 검을 맞은 후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피가 솟구치고, 목숨이 떨어져도 나무에 붙어 있었다.

어떤 요행을 바란 것이 아니다. 오로지 수련의 결과다

저들이 지형술로 은둔술을 변경하는 순간, 근위대장은 다른 세 명을 놓쳐버렸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형체를 찾아내지 못했다.

기척을 죽이고 몸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모든 기운과 소리를 죽인 자들 앞에서 그가 배운 무공은 무용지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 순간 근위대장의 머릿속에 아직 만나보지도 않은 한 사내가 스쳐 지나갔다.

‘이런 자들을 어떻게…….’

아걸! 그라면 지형술로 몸을 감춘 자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근위대장은 다른 세 명이 살수를 펼칠까 봐 진땀을 흘렸다.

저들의 공격이 두렵지는 않다. 충분히 맞서서 싸울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단지 싸우는 임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황상의 목숨을 보호해야 한다.

지형술로 살법을 쓴다면 어떤 형태가 될까?

황제가 차를 마실 동안, 겉모습은 태연함을 유지했지만 속은 바싹 타들어 갔다.

요행히도 저들은 공격해 오지 않았다.

지형술에 확신을 갖지 못한 듯했다. 목형술이 깨지니 지형술에도 자신을 갖지 못했다.

저들은 곧 지형술이 파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다시 위험해진다. 더욱이 저들은 목형술과 지형술 외에도 은신술이 세 개나 더 있다. 오대신술(五大神術)이라고 하지 않나.

인간이 몸을 움직이는 신술(身術)이 아니고 천신이 펼치는 술법이란다.

그만큼 자신 있는 술법일 것이다.

황제가 웃으면서 물었다.

“그래도 군주가 있어야겠지?”

“군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군주도 오대신술을 파악하고 있지 못합니다. 군주와 저희가 힘을 합쳐서 최선을 다해 존체를 지키겠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후후! 네 입에서 힘을 합친다는 말이 다 나오네. 배충(壞種:놈팡이). 배충 맞지?”

“…….”

“배충 맞잖아. 근위대장이라는 사람이 동영 졸개들조차 막아내지 못하고.”

“황송합니다.”

“하하! 농담이야. 근위대장답지 않게 왜 농담도 못 받아?”

“살법이 다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전에 화정루에서 급습한 자와 오늘 제가 죽인 자는 살법이 달랐습니다. 오늘 죽인 자는 군주가 직접 검을 쓴다고 해도 힘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 정도인가?”

“화정루 인자가 졸개라면 오늘 죽인 자는 적어도 교두(敎頭)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하하! 그럼 당분간 외출은 자제해야 하나?”

“안심하시고 산책을 즐기십시오.”

“날 미끼로 쓸 생각이야?”

“황상께서는 지엄하신 분입니다. 어찌 동영 조무래기들을 염려하십니까. 저희가 목숨을 바쳐서 앞을 틔워놓겠습니다. 오늘 같은 실수, 두 번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

“하하하하!”

황제가 밝게 웃었다.

“실수해도 괜찮아. 미끼가 되어도 괜찮고. 잊었어? 내가 오음절맥이야. 살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마음 놓고 움직여. 나도 마음 놓고 움직이는 중이니까. 하하!”

“듣기 황송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지. 금군 중 정예를 골라서 내 주위에 포진시켜. 한 열 명쯤? 그리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자들도 이백 명을 추려서 군주에게 보내.”

“불가합니다!”

“해.”

황제가 단호하게 말했다.

“말했잖아. 내가 오음절맥이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지만 내가 죽으면 근위대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오래 살긴 해야겠어. 빨리 죽을 생각은 없다고.”

“금군에서 믿을 수 있는 자들 이백 명을 추려내면 껍데기만 남습니다. 그들로는…….”

“그러니까 말했잖아. 최우선으로 열 명을 추려서 내 주위에 포진시키라고. 놈팡이, 말을 하면 좀 깊이 새겨들어. 왜 입 아프게 두말하게 만들어?”

“으음!”

근위대장은 침음했다.

황제가 말한 것은 원래 취화원의 책사, 취운의 생각이다.

취운은 금군 중 이백 명을 추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에게 백살도축 대상자를 호위케 하려는 생각이다. 그리고 취화원은 암중에 숨어서 동영 인자를 지켜본다.

그러면 지금처럼 자신을 완전히 노출할 필요가 없다. 동영 인자와 동등한 조건으로 그늘 속에 숨어서 날아오는 자를 요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일차 습격은 금군이 감당해야 한다.

그러니 호위대로 선출하는 자는 믿을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무공도 강해야 한다.

이백 명을 추린다면 정예 중 최정예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한 인원을 추려내면 황제의 신변 보호에 구멍이 생긴다. 가뜩이나 취화원까지 빠진 마당에, 그리고 동영 인자들의 술법을 확인한 후인데 이백 명씩이나 빼내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단지 열 명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결국, 믿을 수 없는 자들에게 목숨을 맡겨야 하는 상황…… 이건 더 어려워질 수 있어.’

황제가 물어왔다.

“이백 명, 가능해?”

간자가 섞이지 않은 이백 명.

“다시 말씀드립니다. 불가합니다.”

“배충. 너 미송림에서 한 명밖에 베지 못했잖아. 다른 세 명은 놓쳤고. 그러면 내 주위에 이백 명이 있으나 삼백 명이 있으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야.”

“그래서 더 안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황궁은…… 건물 하나하나가 모두 요새야. 여길 잘 이용하면 돼. 정예의 검으로 빈틈을 메우고. 군주를 최대한 지원해. 백살도축인가 뭔가 하는 거 빨리 끝내야지. 그쪽이 지지부진하면 결국은 내 머리도 날아가. 속전속결로 가자고. 근위대장이 되어가지고 이런 머리도 못 쓰나?”

“반대합니다.”

“거 사람 고집하고는.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따르지 않겠다는 거네? 그럼 명령을 내리지. 그렇게 해.”

“명령…… 받잡습니다.”

근위대장이 허리를 숙였다.

근위대장은 밤을 꼬박 밝히며 고민했다.

황상이 명령을 내렸으니 받들어야 한다. 금군 중에서 이백 명을 추려 취화원에 보낸다.

명단은 이미 작성했다.

열 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와 이백 명의 이름이 적힌 긴 두루마리 종이.

열 명은 금군 중 최강자다. 전쟁터에 데려간다면 반드시 데려갈 정예 군인이다.

이백 명도 최대한 믿을 수 있는 자들로 추렸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황제의 수족이 잘릴 수도 있는 문제다. 이들이 변심은 동영 인자의 오대신술보다도 무섭다. 보호 대상자와 최근 거리에 있는 자가 칼끝을 돌리면 취화원이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어도 막지 못한다.

‘이들을 모두 보내면…….’

자신과 정예 군인 열 명으로 동영 인자를 막을 수 있을까? 몇 번을 고쳐서 생각해도 불가능하다. 결국은 적인지 아군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금군들을 황제 주변에 둘러쳐야 한다. 백살도축을 막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 직접적으로 벌어진다.

근위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있을 수 없어.’

근위대장이 되어서 황제를 위험에 노출시킬 수는 없다.

꼬끼오!

멀리서 수탉이 홰를 쳤다.

말이 밝아 온다. 긴 밤을 뜬눈으로 밝혔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정신이 더 뚜렷해진다.

황제의 명령을 쫓으면 반드시 사달이 난다.

근위대장은 이 문제를 풀 사람이 딱 한 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호황위 군주 몽설이다.

‘호황위면 호황위 값을 해야지. 자리만 꿰차고 있다고 해서 호황위인 것은 아냐. 할 일을 할 때 호황위인 거지. 군주, 이제 제 몫을 해야겠어.’

근위대장을 검을 들고 일어섰다.

몽설을 만날 생각이다. 그러자면 황궁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일 년 열두 달 황궁을 벗어난 적이 없는 그가 황궁을 벗어나려고 한다. 황제의 안위까지 부대주에게 맡기고.

황궁 안의 세상과 황궁 밖의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 담장 안은 편안한 내 집이고, 담장 밖은 낯선 외지다. 황궁에서 한 걸음만 나서도 그런 느낌이 든다.

“부대주를 불러와!”

근위대장이 일갈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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