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九章 풍두미평(風頭未平)(1)
- 위험한 상황이 아직 진정되지 않았다.
“혈랑. 혈랑군.”
몽설은 신음을 흘렸다.
적랑대가 가져온 서신을 읽었다.
적랑대가 다소 늦게 움직인 탓에 취화원이 톡톡한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내일도 공격이 이뤄질 것이라는 점과 오늘처럼 집중타격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알려왔다.
그리고 몽설이 알고자 했던 것, 혈랑군에 대해서 상세한 기록을 보내왔다.
혈랑군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잔인한 살인마 집단이라는 표현에서부터 절대 극강의 무적군대라는 평가도 있다.
혈랑군이 지나쳐 온 혈로(血路)는 신화의 한 자락이다.
변방 외족에게 혈랑이나 혈랑군이라는 말은 거의 아수라 마왕과 다름없는 말로 통한다.
근위대장 혈랑 장위군(張緯桾)은 전설적인 장군이다.
대장군 조위 장군을 만나기 전까지 그가 이끄는 혈랑군은 독보적인 군대였다.
최강의 싸움꾼들이 모인 곳이며 무인 집단이다.
이들은 사람 죽이는 일에 대해서 일체의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였다. 상대가 어린아이나 여인이라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이런 점이 혈랑군을 최강의 전투 집단으로 만들었다.
그 혈랑군이 현재 금군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혈랑 장위군과 혈랑군이 전쟁터에서 벗어나 싸움이 없는 금군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부분은 적랑대도 파악하지 못했다.
싸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살인마들이 금군이 된다? 말도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혈랑군이 금군이 되었다. 최강의 싸움꾼들이 싸움 대신 평화를 택해서 황궁에 정착했다.
근위대장이 황궁에 남겨놓은 열 명의 부대장은 혈랑군에서 살아남은 열 명의 부장(副將)이다. 혈랑과 함께 수많은 전투를 치른 백전의 장수들이다.
그런데도 근위대장은 일시 근위대의 실권을 몽설에게 넘겨주었다.
자신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한 동료들의 생살여탈권을 전혀 알지 못하던 여인에게 넘겨준 것이다.
몽설이 호황위 군주가 된 일은 혈랑군 내부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치욕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런데 근위대장이 받아들였다.
혈랑군은 한 명, 한 명이 지독한 싸움꾼이다. 그런 자들이 변심했다면 다른 금군이 변심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또 이 부분은 근위대장이 막아낼 수 없는 취약점이다.
자신의 수하 중에 배신자가 있다니,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나? 배신자가 있다면 누구인지 찾아낼 수 있나? 혈랑군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 이들이 어떤 자들인지 뼛속까지 안다고 자부하는데…… 이들이 배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전부 믿을 수 있는 수하라는 생각만 굳어진다.
하지만 배신자는 분명히 있다.
근위대장은 이점을 파악할 수 없어서 몽설에게 전권을 위임했던 것이다.
황제 곁에 있는 부장 열 명은 믿을 수 있나? 믿을 수 있다. 또 믿을 수 없다. 부장 열 명은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료다. 절대로 믿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이중 허도기 쪽으로 돌아선 자가 있다면 그만큼 위험하다.
혈랑은 야수검을 수련했다.
힘으로 싸운다면 누구든 찍어 누를 수 있다. 하지만 등 뒤에서 찌르는 비수만큼은 감당하기 힘들다. 그 칼이 황제를 겨냥한다면 감히 모험조차도 하지 못한다.
근위대장은 오랜 숙고 끝에 자리바꿈을 생각했다.
문제는 몽설에게 황제를 지킬만한 무공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몽설이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나아진 면이 없다면 그녀에게 황제를 맡기는 것은 무리다. 자신이 지키는 것보다 훨씬 못한 결과가 벌어진다.
호황위 군주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황제 곁을 양보하지 못한다.
한데 혈랑 장위군이 직접 본 몽설의 무공은 믿을 만했다.
그 점은 몽설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직접 본 혈랑의 무공은 취화원을 믿고 맡겨도 좋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근위대장은 금군과 취화원을 모두 끌어갔다. 백살도축을 종식하기 위해서. 취화원과 백 명의 관리가 더는 피를 흘리지 않게 만들려고.
“어떻게 생각해요?”
몽설이 물었다.
“근위대장, 내력이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하기는 이 정도는 되니까 원주님에게 반말을 함부로 하지.”
취운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취화원, 맡겨도 되겠죠?”
“원주님, 정말 모르세요?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시는 거예요?”
취운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정말 몰라요. 뭐죠?”
“백살도축, 이미 끝났어요.”
“네?”
“이 기록을 읽어보면 혈랑군이 매우 잔인하게 싸웠다는 점만 드러나 있는데…… 주의해서 살펴볼 점이 있어요. 혈랑군의 손실이 지극히 적었다는 점.”
“아!”
몽설이 다시 기록을 살펴봤다.
취운의 말이 맞다. 혈랑군은 그토록 처절한 싸움을 치르면서도 사망자가 거의 없다.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인 전투가 아니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싸운 것이다. 완전히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을 만든 후에 비로소 공격을 개시했다.
적군을 잔인하게 죽인 것은 분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궁 밖은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이곳은…… 이곳은 지금부터 전쟁터가 될 거예요. 원주님, 싸움이 시작되면 절대 사정을 남기지 마세요.”
취운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몽설을 쳐다봤다.
백살도축은 삼분지 일쯤 성공했다.
관원 서른두 명이 암살당했다.
취화원 살수가 그들에게 두세 명씩 호위했으니 그만큼 많은 살수가 죽었다.
피해가 너무 크다.
총 사망자가 일흔 명이 넘는다. 그중 부곡주만 다섯 명이 죽었다. 하마터면 구곡주 중 두 명도 죽을 뻔했다.
동영 인자 쪽도 편한 상황은 아니다. 그들도 이제는 마흔 명 정도만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근위대장은 가장 무식한 방법을 동원했다.
관원들은 이동할 때, 안이 들여다보지 않는 가마를 타야 한다. 쇠 지붕을 얹었고, 철문이 달린 특수 가마다. 더욱이 가마는 세 개나 준비되었다.
관원이 어느 가마에 탔는지 알 수 없다.
가마는 철갑병(鐵甲兵) 오십 명이 호위한다.
수색병 열 명이 앞장서서 길을 틔운다. 가마가 통과할 때까지 모든 사람의 이동을 통제한다.
담장이나 지붕 위에서 암습을 가해오는 자도 경계한다.
저들이 비폭뢰(飛瀑雷)를 쓸 수도 있다. 하늘에서 느닷없이 화약 무더기가 쏟아져 내릴 수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무쇠 방패를 준비했다.
어떤 일이 생기면 쇳덩이가 관원을 에워싼다.
이런 방법은 기동성이 다소 뒤떨어지지만, 안전을 도모하는 데는 최상이다.
살아남은 관원 예순여덟 명 모두에게 이런 조처가 내려졌다.
취화원 살수는 요처에 배치되었다.
적랑대가 전해온 정보에 따라서 습격이 예상되는 관원을 집중적으로 호위한다.
물론 취화원 살수는 은밀히 숨어서 이동한다.
동영 인자가 철갑병을 공격하면, 그 뒤를 취화원 살수들이 들이친다는 계획이다.
전장 경험이 풍부한 근위대장이 철갑병이라는 묘수를 두었다.
철갑병의 단점은 빠른 움직임인데, 이 부분은 취화원 살수로 보완했다.
척! 척! 척!
철갑병(鐵甲兵)이 대로를 걸어갔다.
“이거야 원…… 이래서는 공격할 구석이 없잖아? 숨는 건 좋은데 그래도 저건 너무한 거 아니야?”
눈매가 날카로운 사내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이미 인형술을 파악했다는 뜻이겠지.”
키 큰 사내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한테 목형술과 인형술만 있는 건 아닌데 말이야. 우릴 너무 가볍게 본 거 아냐?”
“…….”
키 큰 사내는 대답하지 않고 주위를 훑어보기에 여념 없었다.
“그래도 취화원이 조금 더 버텨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물러날 줄은 몰랐네.”
“취화원이 물러났다고 생각해?”
“아닌가?”
“취화원에는 죽음처럼 고요하고 얼음처럼 차디찬 무공이 있다던데. 사생락이라고. 후후! 사생락이 이미 무림 일절이 된 것 같군. 네가 취화원 살수를 발견해내지 못할 정도라면 무림 일절로 불러줘도 무방하겠어.”
키 큰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치잇! 재수 없어. 뭐야? 그러면 여기 어디에 취화원 살수가 있다는 말이잖아?”
눈매 날카로운 사내가 주위를 살폈다.
“느껴져?”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킥킥! 네 직감력은 타고난 거니까 내가 진 게 아냐. 그럼 취화원 살수가 숨어있다고 치고…… 뭐야? 철갑병으로 방벽을 세우고 우리 뒤통수를 치겠다는 거야? 이렇게 되면 우리가 되려 취화원을 칠 수도 있는데?”
“아니. 치지 못해. 치면 죽는다.”
“뭐?”
“오늘 여기에는 취화원 전력이 집중되어 있어. 우리가 나서면 적어도 사오십 명과는 싸워야 해. 그것도 취화원 최고 고수들만 추려서 온 것 같거든.”
“뭐야? 그럼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거야?”
“그런 거 같아. 오늘은 구경만 하자.”
키 큰 사내가 말했다.
“킥킥! 증원도 제법 한 가닥 하는데? 가볍게 쓸어버릴 줄 알았더니, 시간이 너무 끌고 있어. 그렇다고 손 놓고 빈둥거릴 수는 없고, 뭐 재미있는 놀이 없나?”
“이번 기회에 취화원 무공이나 가늠해보자. 저들의 은신술은 사생락과 암영검에 기반해. 진공(眞功)으로 숨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 그늘을 잘 살펴봐야겠지.”
“킥킥! 그거 재미있겠는데.”
“후후! 오늘은 찾는 연습이나 하자고.”
동영 인자들은 전혀 서둘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는 듯 매우 태연하게 행동했다.
오늘은 공격할 생각이 없다.
금군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남은 관원을 지키기 위해서 대략 사천 명 이상의 금군이 동원되었다.
이 정도면 황궁의 주력을 끌어내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저들은 알아야 한다. 동영 인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황제 암살이라는 사실을.
황제 암살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두 번 깔짝거린 것 가지고 암살을 시행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웬만한 자는 한두 명 정도만 보내도 충분히 암살할 수 있다. 하지만 허도기가 암살을 지시할 정도라면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화정루 암살 시도는 일종의 실력 타진이다.
누구의 실력을 알아보고 싶었나? 말할 필요도 없다. 취화원 원주 몽설이다.
몽설이 단순히 취화원 원주였다면 가뿐히 무시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가 그녀를 호황위 군주로 내세웠다. 그렇다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어떤 능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 능력이 지혜인지 무공인진 모르겠지만 암살에 방해가 될 건 뻔하다.
몽설의 진체(眞體)를 파악해야만 했다.
근위대장의 경호나 취화원 살수들의 살법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정도는 당장 움직여도 뜯어낼 수 있다.
문제는 금군을 뜯어내려면 동영도 전력을 다해서 일격을 쏟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 일격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변수도 없어야 한다.
몽설이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요소다.
호황위 군주가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화정루 암살로 타진해 본 결과 몽설을 무시해도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몽설 정도 되는 지략과 무공이라면 아주 가볍게 뿌리칠 수 있다.
한데 그 점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왜 황제가 무시해도 좋은 존재를 호황위 군주로 앉혔을까?
이런 의문은 근위대장이 혈랑 장위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어났다. 솔직히 말하면 몽설보다 근위대장 혈랑을 곁에 두는 게 더 안전할 것 같다.
왜 황제는 근위대장을 밀치고 몽설을 옆에 앉혔을까?
그 이유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어제야 알았다.
대단히 중요한 사실! 몽설의 무공은 혈랑을 능가한다!
두 사람이 직접 겨뤄봐야 우열을 가릴 수 있겠지만 굳이 점수를 주자면 몽설 쪽에 더 주고 싶다.
몽설은 지금까지 무공을 숨겨왔다. 세상이 알고 있는 그녀의 무공은 겨우 팔 한쪽만 내민 것에 불과하다. 그녀가 사지를 전부 다 드러내고 몸뚱이까지 드러내면 그 위력은 감히 천하제일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동영 인자 여섯 명을 벤 것 가지고 너무 과하게 포장해서 말하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인자 여섯 명을 일시에 죽일 수 있는 무공은 흔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여섯 명이 죽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녀가 여섯 명을 죽인 방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아걸은 목형술을 깨뜨렸다. 몽설과 혈랑은 인형술을 깨트렸다. 몽설이 인형술을 깨트린 방법과 혈랑이 깨트린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각기 자신만의 무공으로 깨트렸다고 봐야 한다. 그것도 지극히 짧은 순간에.
이 세 사람의 무공은 동영 인자도 가볍게 보지 못한다.
오늘은 관원을 공격하지 않는다. 내일 또 어떤 지시가 내릴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적극 공격이라는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기! 저기 처마 밑에. 맞지?”
“저건 암영검 기반이야. 인기(人氣)가 풍기잖아. 졸개야. 곡주를 찾아보라고.”
“곡주건 뭐건 내가 두 명 찾았다? 잘하면 오늘은 네 놈을 이기겠는데? 킥킥!”
그들은 연신 키득거리면서 은신해 있는 취화원 살수를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