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九章 풍두미평(風頭未平)(2)
스스슷! 스슷!
사방에서 움직임이 일어났다.
궁 밖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싸움은 이곳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염려했던 게 이런 일이다.
동영 인자는 백살도축을 진행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황제에게 겨눈다. 황제 주변에는 부장 열 명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기습하기 딱 좋다.
- 원주님의 무공이 굉장히 강해졌지만, 암살 대상이 원주님은 아니잖아요? 원주님을 따돌리고 암살을 진행하면 되니까. 유인책에 걸려들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취운의 말이 맞는다. 자신이 황제 곁을 비켜서면 당장 저들의 칼이 황제에게 엄습한다.
몽설과 부장 열 명…… 이 정도 경호라면 충분히 암살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자들이라면 몰라도 동영 인자라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동영 인자는 반드시 온다.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스슷! 스스스슷!
담장 위로 뱀이 기어간다. 매우 은밀하게.
스르륵! 스륵!
지붕 위에도 무엇인가가 있다. 매우 조심스럽게 미끄러지듯이 움직인다.
몽설은 침착하게 움직임을 살폈다.
“제일(第一), 제사(第四). 두 분 가주세요.”
“넷!”
열 명의 부대장 중 두 명이 나섰다.
몽설은 주변의 모든 지형지물에 번호를 매겼다.
번호를 매겨놓으면 저들은 몽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 부대장이 움직인다는 사실은 알아도 어디로 움직이는지는 모른다.
저들은 부대장이 자신을 향해서 달려오는 것을 본 후에야 기습 사실을 알게 된다.
쒜엑! 쒜에엑!
부대장 한 명은 지붕 위로, 다른 한 명은 담장 뒤로 쏘아 갔다.
두 사람은 벌써 검을 뽑아 들었다.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검초가 쏟아져 나갔다.
쒜엑! 쒜에엑! 까까깡! 까아앙!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깡! 까까깡! 까깡! 까아앙! 깡! 까까깡!
접전이 매우 급박하다. 양쪽 모두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그런데도 쉽게 결판나지 않을 것 같다.
부장들은 혈랑군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싸움꾼이다. 각기 백전의 전투 경험이 있으며, 사람 죽이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흉측한 자들이다.
혈랑군에서 사람 죽이는 일을 망설이거나 인의 도덕, 사람의 도리를 찾는다면 가차 없이 내쫓긴다. 조금 전까지 동료였다고 해도 죽일 상황이 되면 즉시 죽인다.
그런 점은 동영 인자도 마찬가지다. 저들은 무수한 암습을 거치면서 여기까지 왔다. 더욱이 이번에 급습한 자들은 무공이 높다. 웬만해서는 벌써 싸움이 끝났을 터이다. 부장들이 전력을 다해서 공격하고 있으니. 오대신술을 사용하지 않고 병기 대 병기로 부딪치는 싸움이라면 벌써 끝났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싸움은 이어지고 있다. 무공으로 겨뤄도 녹록지 않다. 부장들의 검을 너끈히 받아내고 있다.
“제가 가 보겠습니다.”
다른 부대장이 말했다.
“아니, 아직 밀리지 않으니까 지켜보는 게 좋아요.”
몽설이 말했다.
몽설은 니환일검을 일으킨 상태다. 검기로 싸움의 속내를 파악하고 있다. 싸움이란 묘한 것이라서 우세해 보이면서도 실은 열세할 때도 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계속 밀리지만 단 한 수에 싸움을 뒤집기도 한다.
동영 인자와 부대장의 싸움은 팽팽하다. 어느 한쪽도 우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여기서 부장 한두 명만 더 투입하면 틀림없이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
너무 뻔한 유인책이다.
부장을 내보낸다고 해서 승리를 취하지도 못한다. 저들이 일부로 유인하고 있으니까, 이쪽에서 투입하는 무력에 대응하는 다른 방책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괜히 이쪽만 황제를 보호하는 무기가 없어진다.
‘일부러 소리를 흘렸어. 확실히 이건 유인책이야.’
몽설은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파앗! 파파파팟!
니환일검이 강하게 피어났다. 주변을 빠르게 훑으면서 적을 탐지해 나간다.
숨어 있는 자들이 찾아지지 않는다.
어디쯤 누군가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직감은 일어난다. 혈랑은 이런 직감을 믿지만, 몽설은 믿지 않는다. 니환일검으로 확인된 적만 믿는다.
몽설은 동영 인자들이 살기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기척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 전에 감지되는 느낌은 일부러 흘려 버린다. 긴가민가한 느낌은 버린다.
문제는 저들이 기척을 숨기면서 움직이는 일을 밥 먹듯이 한다는 점이다.
누구에게 기척을 숨기나? 초절정 고수의 이목을 숨긴다.
이미 그만한 수련을 쌓은 자들이다.
‘오늘 여기서 저들을 끝내야지 돼.’
몽설은 이번 기습을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저들이 직접 공격하지 않고 부대장부터 유인하는 것을 보면, 저들도 오늘은 작심하고 달려온 것으로 보인다.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승부처다.
동영 인자들도 무공 층차가 벌어질 것이다. 강한 자가 있고 약한 자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약해도 일정 기준 이상은 된다. 그런 자들만 데려왔다.
부대장과 싸우는 자들은 그중 가장 약한 자들이다. 정작 황제를 공격하는 자는 소름 끼치도록 강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니 오늘 승부를 봐야 한다.
이만한 자들이 몰려들었을 때, 결착해야 한다. 오늘 저들을 놓치면 이 싸움은 한없이 길어진다. 오늘 저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어려운 싸움이 끝난다.
스스스! 스슷!
또 다른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건 강한데?’
니환일검이 파르르 떨렸다. 금방이라도 공격하고 싶어서 검신이 윙윙 울린다.
니환일검이 강한 자극을 받았다.
‘이 정도의 자극이라면 부대장 한 명으로는 상대하지 못해.’
“제십일(第十一). 강해요. 두 분이 가주세요.”
“넷!”
부대장 두 명이 즉시 읍을 취했다.
타당! 타타탁! 따앙! 땅!
병기가 격렬하게 부딪쳤다.
“재미있는 말이군. 십일이라는 말은 현후전(賢厚殿)을 가리킨 건가? 쿨룩!”
뒤쪽에서 거센 기침 소리와 함께 황제가 걸어왔다.
몽설과 부대장들이 뒤돌아서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오늘은 정공법(正攻法)인가? 이제는 눈치도 보지 않고 바로 들이치네. 쿨룩!”
“심려 놓으셔도 됩니다.”
몽설이 차분하게 말했다.
“공격이 노골적인 걸 보면 저쪽도 오늘 안으로 끝낼 생각인 것 같은데.”
황제는 병장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담장 너머를 쳐다봤다.
“누가 유리한가?”
“비등합니다. 구경하시겠습니까?”
몽설이 정중하게 말했다.
“좋지.”
황제가 대답했다.
몽설은 즉시 의자를 가져와 황제 옆에 놓았다.
“음.”
황제는 편안한 신색으로 의자에 앉았다.
“예전에 공부에게 들은 말이 있어. 그때는 공부도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말할 때였지.”
황제가 병기 부딪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동영은 삼백 년 이상 전쟁 중이야. 우리는 동왜(東倭)를 동영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쪽에는 나라가 없어. 무장한 군세(軍勢)가 지배하지. 그러니 모두 살아남는 게 최우선이야. 오늘은 이쪽에 붙었다가 내일은 저쪽에 붙고. 나라, 민족, 의리, 정의 이런 건 개도 안 물어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배신도 서슴지 않아. 싸움이 길어지면 이렇게 돼.”
“네.”
몽설이 차분히 대답했다.
“동영은 그런 나라지. 그런 와중에도 삼백 년 이상 굳건하게 이어오는 일맥이 있어. 유음류지. 유음류만은 배신자가 없어. 오랜 싸움에도 살아남았고 지금도 여전히 건재해.”
“네.”
“그 유음류를 이끄는 우두머리를 두주(頭株)라고 부르는데, 공부에게 딱 한 번 패했다더군.”
“공부에게…… 한 번요?”
아걸이 놀라서 되물었다.
“맞아. 딱 한 번. 그 외에는 무패. 동영의 신으로 불린다지? 쿨룩! 공부에게 들은 말이야.”
황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황상께서는 이번에 두주가 직접 저들을 이끌고 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럴걸? 나 같으면 그러겠어. 공부가 부른 사람들 아닌가. 그러면 최고의 칼을 가져와야지. 쿨룩!”
황제가 기침을 쏟아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안으로 드시죠.”
“그 새?”
“네. 황상께서 저한테 겁을 주셨잖아요.”
“후후! 그런다고 겁먹을 질부가 아니지. 눈치를 보니까 이번에는 혈랑도 한 수 양보한 것 같던데.”
“근위대장이 혈랑인걸…….”
“하하하! 내 옆에 두는 사람인데 내가 모를 리 있나. 설혹 두주가 저들을 이끌고 왔다고 해도 질부는 막을 수 있을 거야. 천하에 호황위 군주를 누가 무시해.”
“근위대장이 혈랑인 걸 아셨다면 굳이 제가 나설 이유는…… 없었을 것 같은데요?”
“전에 근위대장에게 물은 적이 있지. 공부에게 딱 한 번 진 사람이 습격해 온다면 막을 수 있겠느냐고.”
“대답을 뭐라고……?”
“자신은 막지 못할 것 같다고 하더군.”
“혈랑이요?”
“질부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뭐라고 대답할 거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너무 재미없는 대답이야. 재미있는 말을 해봐.”
“저는…… 제가 천하제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혈검경을 십분 수련해도 마찬가지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공부도 막아낼 수 없고 두주라는 사람도 싸워봐야 알겠어요. 하지만 제가 쓰러지기 전에 황상 곁에 다가서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두주를 이길 수 있다는 말로 듣지. 하하!”
황제가 웃었다.
“우린 들어가지. 눈치를 보아하니 방해만 된다는 표정이야. 빨리 자리를 비켜줘야 해.”
황제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황제는 정보를 주려고 일부러 나왔다.
공부에게 딱 한 번 패한 상대, 그렇다면 아걸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할 초강자다
근위대장은 막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두주를 웬만큼은 파악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장수이다 보니 변방의 강자들을 모를 리 없다.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했을 때, 승부를 짐작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근위대장은 동영 인자가 중원에 들어섰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두주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무인은 싸워 보기 전에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몽설도 두주에 대한 말을 들었을 때, 상당히 강한 자라는 것은 인식했다. 하지만 그와 싸워서 이길 수 있냐고 물으면 당연히 이길 수 있다고 답한다. 강한 자이지만, 자신도 강하다. 혈검은 최고라는 생각을 한다.
혈랑의 야수검도 충분히 그런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
그런데도 ‘막지 못한다’라는 말을 했다. 패한다는 말이 아니다. 막지 못한다는 말이다.
만에 하나!
근위대장이 말한 ‘만에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자신은 두주에게 꺾이지 않는다. 하지만 쉽게 물리칠 수도 없다. 어쩌면 야수검이 꺾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에 누군가가 황제에게 검을 겨누면 막지 못한다.
근위대장의 대답은 황제를 염두에 둔 대답이었다.
정말로 두주가 직접 왔다면 금군에 배신자가 없어도 막지 못한다.
하지만 생각한 것처럼 두주가 직접 중원에 들어왔을 것이라는 생각은 황제도, 근위대장도 하지 않는다.
두주가 직접 움직인다는 말은 동영을 포기한다는 말도 된다.
그가 중원에서 잘못되면 유음류는 동영에서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러니 중원을 취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을 때만 직접 움직인다.
지금이 그럴 때인가? 두주에게 어떤 확신이 있나? 두주는 동영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이 황제와 근위대장의 생각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움직였다면? 그리고 지금 이곳에 와 있다면?
혈랑의 혈랑군이 황궁을 에워싸고 있어도 뚫릴 것이다.
스스스! 스스스스!
인기척이 급하게 일어났다.
“제칠, 제구, 제십삼. 세 분, 가세요.”
몽설이 차분하게 말했다.
부대장들은 대답조차 하지 않고 급하게 움직였다. 그들도 움직임을 찾아냈다.
‘벌써 일곱 명이 빠졌어. 이제 세 명밖에 없어.’
자신이 잘못 생각한 건가? 동영 인자들처럼 자신도 일점집중으로 갔어야 했나? 담장 뒤에서 인기척이 들린 순간 부대장 열 명을 모두 보냈어야 했나? 한쪽을 급하게 친 후에 다른 쪽을 치는 전략으로…… 어차피 지금처럼 모두가 빠져나갈 텐데.
부대장들이 전부 유인되면 두 번째 노림수가 바로 터진다. 몽설을 유인하는 거다.
황제 곁을 지키는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
스스스! 스스슷!
예측대로 움직임이 또 일어났다.
몽설은 서둘지 않았다. 적의 의도를 간파한 이상 급하게 대처할 필요가 없다. 적의 의도된 움직임에 손발을 맞춰가야 하지만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
츠츠츠츠츳!
움직임이 이미 싸우고 있는 부대장들을 향했다.
일부러 기척을 흘려서 빨리 부대장들을 보내라는 압박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행과 합류해서 싸우겠단다.
“가세요.”
“네.”
남은 부장 세 명도 움직였다.
드디어 황제를 지키는 사람이 모두 빠졌다. 이제는 외부에서 어떠한 인기척이 흘러도 보내줄 부대장이 없다.
‘그래 원하는 대로 해 줬어. 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