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九章 풍두미평(風頭未平)(3)
황궁 경비가 이토록 허술할까? 정말로 황제를 지키는 무인이 열 명만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궁궐을 지키는 수비대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황제가 거처하는 내궁으로 들어서지 못한다. 내궁에는 오직 금군만 들어설 수 있다.
내궁에 몽설을 포함해서 열한 명만 남았다는 거다.
그러면 동영 인자는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 아마도 금군이 황궁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외궁에서 내궁으로 들어서는 통로도 확보했다.
몽설과 근위대장은 간자를 충분히 색출해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숨어 있는 간자가 많다.
굳이 금군과 취화원에 몸담을 필요도 없다. 황궁 동정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저 지켜보는 눈만 있으면 된다. 시녀 중에 누군가가, 환관 중에 누군가가 연락했을 수도 있다.
이런 연락까지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여하튼 금군이 빠져나갔다는 소식은 당장 전해졌다. 그리고 그 즉시 암살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런 일은 시간이 생명이다.
금군이 빠져나간 게 실수라고 생각한다면 근위대장은 당장 돌아설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 달려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전에 황제를 암살한다.
황제를 암살한 후에 정세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는 알 바가 아니다. 거기서부터는 허도기의 문제다. 동영 인자가 맡은 임무는 백살도축과 황제 암살이다.
이 부분만 완성하면 그들은 그들 몫을 챙길 수가 있다.
그러면 근위대장과 몽설은 오늘 벌어질 일을 몰랐을까? 이쪽도 사실을 알았다. 내궁을 텅 비워놓으면 반드시 동영 인자들이 전력을 다해서 부딪혀 올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 점을 알면서도 자리를 비웠다.
- 두주만 없다면 승산이 있다.
이것은 온전히 근위대장의 판단이다.
몽설은 불안해했고, 황제는 근위대장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었다.
황제는 자신을 호위하는 방법에 대해서 간여하지 않는다. 금군과 호황위가 어떤 방식으로 경호를 하고, 어떤 식으로 적을 물리치는지 일절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일은 일을 맡은 사람들이 해야 한다.
자신이 할 일도 아닌데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신경써 봤자 잘 아는 분야도 아니다. 황제는 그저 편안하게 주변을 모두 잊고 정사만 돌보면 된다.
황제는 오음절맥에 걸려 있지만 이만한 배짱은 가졌다.
각자 자신이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츠츠츠츠츳!
사방에서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번 움직임에는 마주쳐 갈 사람이 없다. 아걸도 마주쳐가지 못한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 황제에게 가는 마지막 길에서 비켜서지 못한다.
따당! 탕탕탕!
니환일검이 거센 감각을 읽어냈다.
앞에서…… 불꽃 다섯 개가 확! 피어났다. 아니, 불꽃이 아니다. 월영을 도왔을 때 쳐냈던 불꽃과는 강도가 다르다. 이번에 나타난 불은 굉장히 강하다.
‘이렇게……!’
몽설은 강한 강기에 깜짝 놀랐다.
‘그러네. 이제야 알겠어.’
몽설은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동영 인자는 아걸을 상대하기 위해서 탕산 싸움에 인자 열두 명을 보냈다.
열두 명? 왜?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어림도 없는데?
몽설은 동영 인자들의 무공을 직접 접해 본 후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의 무공이 놀랍기는 했지만, 아걸을 상대할 정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왜 열두 명밖에 보내지 않았을까? 아걸의 무공은 이미 허도기와 버금가는데, 그렇다면 천하제일 고수라는 셈인데…… 무림 초강자를 열두 명으로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인가?
자신이 여섯 명을 순식간에 쓰러트렸다.
아걸이라면 열두 명쯤은 순식간에 처리할 것이다. 실제로도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한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아걸이 이들이 던진 독비에 맞았다는 부분이다.
그 후에는 다치지 않았지만 일단 독비에 걸려든 것은 사실이다.
아걸이 이토록 빤히 보이는 암기술에 당했다고? 아걸답지 않게 한눈을 팔았나?
목형술을 깨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던 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은 단숨에 인형술을 무너트렸다. 아걸은 자신보다 강한데 왜 고전했을까?
언젠가 아걸을 만나게 되면 이런 의문들을 물어볼 셈이었다.
그런데 지금 다섯 개의 불꽃을 접하자 대번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해가 되었다.
탕산에 투입된 동영 인자는 매우 특별한 강자들이었다.
지금 그녀 주변을 에워싼 다섯 개의 불꽃처럼 강한 자들이다. 장터에서 죽인 자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부대장 열 명을 유인한 인자도 이들에 비하면 어린애에 불과하다.
이들은 동영 인자 중에서도 초강자에 속한다.
파앗! 팟! 팟! 팟!
사방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작은 불꽃이 아니다. 커다란 산불이 일어난다.
상대방이 내뿜는 진기의 강도에 숨이 막힌다.
“휴우!”
몽설은 한숨을 내쉬었다.
니환궁은 어느새 활짝 열렸다. 전신 감각이 최고조로 끌어올려 졌다. 니환궁에 숨겨진 검도 곧추세워졌다. 손에는 장검이 들려 있고, 은은히 진기가 밀집되었다.
‘와라!’
재촉할 필요가 없다. 불꽃 다섯 개 중 네 개가 일제히 몽설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쒜엑! 쒜엑! 쒜에엑!
몽설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불꽃 하나가 뒤에 남아서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불꽃들이 발목을 잡을 생각이다. 그사이에 다른 불꽃이 황제를 향해 움직인다.
‘만에 하나.’
혈랑이 염려했던 ‘만에 하나’가 바로 이거다. 근위대장은 이 하나의 불꽃을 막지 못한다고 했다.
쒜엑! 쒜엑!
드디어 동영 인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전신에 긴 천을 둘둘 감아 매고 있다. 아니, 흑의를 입고 있는데 마치 큰 천을 덮어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흑색 경장을 입고 흑색 복면을 썼다. 손에는 가죽으로 된 수투(手套)를 꼈고 신발은 가죽신이다.
소매, 발목, 허벅지, 허리…… 옷자락이 펄럭일 수 있는 부분은 검은 천으로 단단히 묶었다. 너덜거리는 곳이 꽁꽁 묶여 있어서 큰 천을 덮어쓴 것으로 착각했다.
쒜에에엑!
검이 흐른다. 지옥에서 튀어나온 악마의 숨결처럼 부드럽게, 끈끈하게 달라붙는다.
몽설은 이들을 왜 유음류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이들의 검초는 지옥에서 일어난 듯 매우 음악하다. 잔잔하면서도 잔혹하다. 하지만 눈에 많이 익다. 그렇다. 사생락과 비슷한 성질을 지녔다.
쒜에에에엑!
몽설은 일검무극을 펼쳐냈다.
백이십칠 동작으로 이루어진 검초가 아름답게 피어난다. 검무(劍舞)를 추는 듯 부드럽고 우아하다. 검에 살심이 깃들지 않아서인지 아름답게까지 보인다.
아니다. 그렇게 봤다면 철저히 잘못 본 것이다. 일검무극에는 매우 잔혹한 살기가 내포되어 있다. 혈검경의 혈검은 매 초식에 살의가 가득 담겨있다.
쒜에에에엑! 파팟!
니환일검이 소리 없이 흘러나가 인자를 후려쳤다. 순간, 검에 맞을 것 같던 복면인이 한순간에 싹 사라져버렸다.
쒜에엑!
검초가 허공을 훑었다.
파파파파팟!
몽설이 눈살을 찌푸릴 때, 느닷없이 등 뒤에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휘익!
몽설은 신형을 퉁겨냈다.
그러자 암기 십여 자루가 발밑을 스치며 지나갔다.
‘굉장한 환술!’
몽설은 일그러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동영 오대 신술 중 공형술(空形術)이 있다. 이 세상이 펼쳐진 모든 공간을 마음껏 활용하는 신술이다.
사실 공간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모두의 것이다. 무인도, 일본 민초도 같은 공간을 사용한다. 하지만 동영 인자가 공형술을 펼치면 그 순간부터 이 세상 모든 공간은 동영 것이 된다.
상대방이 차지할 공간은 전혀 없다.
공간이 없으면 어떻게 되나? 움직이지 못한다. 그렇다.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압박해 온다. 허공을 마음껏 날아다니면서 검초를 번뜩인다.
상대방은 반격해 오면 환술로 사라진다. 마치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다른 곳에서 나타나 공격을 이어간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고…… 정신없이 몰아친다.
공형술은 환술의 정화다.
파앗! 파파팟! 파앗!
검초가 순식간에 피어났다가 사라졌다.
몽설은 공형술에 당하지 않았다. 검이 번뜩이면 니환일검도 번뜩인다. 상대방의 공격을 알아채고 거의 동시에 반응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즉시 사라진다. 신형만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다. 공격해오던 검기 자체가 사라진다. 처음부터 공격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곧이어서 다른 공격이 이어진다.
동영 인자도 몽설도 우위를 잡지 못했다.
저들은 다가서지 못하고, 몽설은 공격하지 못했다. 그때,
휘이이익!
뒤에 남아서 어른거리던 불꽃이 사라졌다.
마지막 불꽃은 몽설을 지켜보고 있었다.
불꽃 네 개가 몽설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도 제압하는 쪽에 가담했을 것이다. 몽설을 유인하거나 붙잡아둘 필요 없이 바로 제거해 버리고 들어간다.
하지만 상황을 보니 싸움이 길어질 것 같다. 그렇다면 몽설을 버려두고 바로 황제부터 공격한다.
쉬이이익!
몽설은 떠나가는 불꽃을 잡아채기 위해 신형을 쏘아냈다.
하지만 다른 불꽃들이 놔둘 리가 없다. 네 명 역시 검초를 격렬하게 떨쳐냈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사방에서 검기가 휘몰아쳤다. 날카로운 예기가 심장까지 베어버릴 기세로 달려들었다.
빠름이나 강함 이외에 또 다른 변화도 있다. 네 명이 검초를 펼쳐내는데 달려드는 검은 열여섯 개다. 한 명이 환검 네 개를 만들어냈다.
네 명이 네 개씩…… 검 열여섯 자루가 몽설을 덮쳤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인데…… 니환일검은 검을 보지 않는다. 검기를 잡아낸다. 열여섯 개의 검 중에 진검 네 개만 정확하게 찾아낸다.
눈으로 상대방의 검초를 보는 무공이라면 휘말렸을 것이다.
혈검 제이식 일검무진(一劍無盡)이 빠르게, 하지만 조용히 흘러나갔다. 검 네 자루를 일시에 쳐냈고, 곧바로 휘둘러진 검이 복면인의 가슴을 쳤다.
쒜에에엑! 까앙! 퍼억!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된 검이 피를 묻혀 왔다.
동영 인자는 빠르게 물러섰지만, 그중 한 명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꽤 깊은 상처로 보인다. 죽지는 않겠지만 출혈이 매우 심하다.
“되게 빠르네.”
“뭐야? 공형술이 깨진 거야?”
동영 인자들도 놀란 듯 깊게 유지하던 침묵을 깼다.
‘공형술을 깬 건가?’
몽설은 오대신술 중 하나를 깼다는 느낌이 없었다.
인형술을 깰 때는 상대방의 은신술을 무너트렸다는 느낌이 있었다. 민초들 사이에 숨어 있는 인자를 정확하게 골라냈으니까. 불꽃이 확 살아났으니까.
지금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저들은 허공에 숨었지만, 니환일검의 감각이 정확하게 찾아냈다. 그것뿐이다. 다른 무인과 싸웠을 때와 다를 바 없다.
한 가지 사실은 알았다. 공형술은 시력에 의존할 때만 유효하다. 자신은 물론이고 혈랑의 야수검도 상대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혈검이나 야수검이나 모두 감각검이다. 감각에 의존하는 검법이 동영 오대신술을 쉽게 깬다.
“공형술이 깨졌다면…… 후후! 그럼 다른 거로!”
인자 네 명 중 두 명이 허공으로 신형을 띄웠다.
퍼엉!
그들은 허공으로 솟구치면서 연무탄(煙霧彈)을 던졌다. 그리고 재빨리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으음!”
몽설은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다.
니환일검은 이번에도 적을 놓치지 말았어야 한다. 감각으로 적을 낚아챘지 않나. 그러니 연무가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적을 쫓았어야 한다.
그런데 두 명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순간, 니환일검의 촉감이 뚝 끊겼다.
일반적으로 연무는 자신의 신형을 가리려는 얄팍한 수단에 불과하다. 몸을 가리는 역할 이외에 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왜 니환일검이 상대를 놓쳤을까?
몽설은 인형술과 공형술을 쉽게 무너트렸다.
감각 무공을 사용한다. 두 신술을 깰 수 있는 무공은 감각 무공이다. 감각 무공이 아니라면 감각이 동물처럼 예민하게 발달한 자일 것이다.
그런 자를 상대하기 위한 신술이 천형술(天形術)이다.
천형술은 보통 신술이 아니다. 초상승 고수가 감지하는 감각을 피해내는 신술이다.
“음! 쉽지 않네.”
몽설이 중얼거렸다.
몽설은 오대신술 중 세 개를 봤다. 자신의 감각까지 속인 천형술이 어떤 형태로 공격해올지 궁금하다. 또 왜 네 명이 같이 천형술을 펼치지 않았는지도 알고 싶다.
츠읏!
몽설은 편안하게 검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