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九章 풍두미평 (風頭未平) (5)
시신 열네 구가 거둬졌다.
복면을 벗기니 중원인과는 같은 듯하면서 다른 얼굴이 드러났다. 중원인이 아니라는 느낌은 들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아는 사람 있어?”
“있을 리 없잖아.”
부대장들이 두런거렸다.
황궁을 급습한 자는 모두 열네 명이다. 중심을 들이친 다섯 명은 강자다. 황제 암살이라는 무모한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자들이다.
그에 비하면 아홉 명은 한 수 처진다.
아홉 명 또한 장터에서 몽설이 죽인 자들에 비하면 고수다. 살아남은 인자 중에서 최강자로 분류되는 인자는 모두 황궁으로 운집한 듯하다.
내궁 습격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다섯 명이 주축이지?”
“탕산에 투입된 열두 명도 포함해야지. 열일곱 명. 남은 놈 중에 이런 놈들이 또 있을지도 모르고.”
“대장님은?”
“백살도축.”
“바로? 오늘은 쉬셔도 되지 않나?”
“장군님을 몰라서 하는 소리야? 우리도 빨리 정리하고 쉬자고. 그런데 이놈들은 왜 방부 처리해서 남겨두라고 하지? 그냥 묻어 버려도 될 텐데.”
부대장들이 바늘과 실을 가져와서 베이고 찢긴 상처를 꿰맸다. 죽은 시신이라고 해도 상처가 벌어져 있는 모습은 보기 흉하니까. 부패도 빨리 되고.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황궁에 침입한 인자는 정리되었다. 황궁 밖에 있는 인자도 황궁을 습격한 자들이 척살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스읏!
궁 밖 상황을 살피러 갔던 취운이 돌아왔다.
“백살도축은요?”
몽설이 재빨리 물었다.
“전혀 진행되지 않았어요.”
“휴우! 그럼 이제 끝났나? 남았다고 해도 잔당이 발악하는 수준이니 크게 힘들지는 않겠네.”
몽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영 인자는 아직도 소부대 정도는 남았다. 대략 서른 명 안쪽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인원만으로도 살수 문파로 명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살수 서른 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주축이 되던 무인들이 대거 쓰러졌으니 이제 동영 인자의 칼은 매우 무뎌졌다.
“그런데 어제 황상께서 하셨다는 말씀, 정확히 뭐라고 하셨어요?”
황제는 두주에 대한 말을 했다.
어젯밤, 인자를 정리한 후에 두주가 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는 말을 했는데, 아직 그 말을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던 것 같다. 역시 취운은 신중하다.
“두주를 염려하라는 말씀이셨는데, 오지 않았으니까. 천운이 우리에게 있었던 거죠.”
몽설은 어제 황제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빠짐없이 해주었다.
공부에게 들은 말이라는 것, 두주라는 자는 공부에게만 딱 한 번 패했다는 것, 동영의 신으로 군림한다는 것…… 굳이 황제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말들이다.
동영에 암살 최고 집단이 있다. 그러면 우두머리의 무공은 어떻겠나? 동영에서는 신적인 존재이지 않을까?
공부에게 패했다는 사실만 새로울 뿐, 별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원주님.”
“왜요?”
“두주라는 자…… 온 것 같은데요?”
“뭐라고요?”
몽설이 깜짝 놀라서 취운을 쳐다봤다.
“동영 인자들이 감쪽같이 잠적했어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우두머리를 잃었다면 방황하는 자가 나오기 마련인데, 아직도 질서 있게 움직여요.”
“누군가는 무리를 이끄는 게 당연하잖아요?”
“두 번째 짐작. 어제 동영 인자들이 원주님께 죽을 때, 그 사람들…… 웃었어요. 죽음을 맞이하는 데 편해 보였다고나 할까? 믿는 사람이 있는 거죠. 복수해 줄 사람.”
“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사건이 있잖아요.”
“사건?”
“파사해협 범선.”
“아!”
몽설이 탄성을 내질렀다.
파사해협에 범선 이백 척이 떠 있다. 삼만 명으로 추산되는 군인이 바다 위에 있다.
그들은 동영에서 왔다. 동영에서 삼만 명을 움직이는 장수가 왔다는 뜻이다. 범선 이백 척을 이끄는 수군 총사(摠師)도 있을 것이고…….
우두머리는 우두머리끼리 어울린다.
동영 제일 암살집단의 우두머리인 두주도 그들과 함께 범선을 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어젯밤에 황제께서는…….”
“어젯밤 일을 걱정하신 게 아닐 거예요.”
“그럴까요?”
“네. 어젯밤 습격은 막아낼 것이라고 보셨을 거고…… 다음 공격이 문제네요. 두주가 직접 올 텐데. 아마 그 싸움은 원주님으로도 무리다. 이런 뜻이지 않을까 싶어요.”
“범선 이백 척…… 용사 삼만 명. 그 속에 동영 인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요?”
“글쎄요. 유음류에 대해서 알려진 게 없어서.”
“후후! 갈수록 태산이네요.”
몽설은 기가 막혀서 말을 잊지 못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범선에 두주와 몇몇 수행원만 타고 있을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동영 인자는 중원에 들어선 자들이 전부다.
다른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두주가 유음류 문도 전원을 끌고 온 경우다.
이럴 경우…… 백살도축이 문제가 아니다. 동영은 중원 무림을 노리고 온 것이 아니다. 전쟁하려고 왔다. 무림이 아니라 나라를 집어삼키려고 왔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백살도축은 막은 것 같으니까 언니도 오늘은 잠 좀 자요. 나도 좀 쉬어야겠어요. 밤을 밝혔더니 자야겠네요.”
몽설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몽설은 잠들지 못했다.
밤을 꼬박 밝혔지만, 머릿속은 더욱 말똥거렸다. 너무 잠이 오지 않아서 수혈(睡穴)을 가볍게 눌러볼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생각이 끊기지 않아서 내버려 두었다.
‘황상께서 왜 그런 말을 했지?’
두주에 관한 말이라면 굳이 어제 하지 않았어도 된다. 그런데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한복판으로 일부러 걸어와서 두주에 대한 말을 하셨다.
별다른 말도 아니다. 두주의 무공이 굉장하니 그가 오면 곤란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왜?’
황상은 도주가 걱정스러운 것일까?
‘혹시…… 공포?’
몽설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떠올렸다.
도주가 적장이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적장은 장수들이 맞이한다. 그리고 황제의 군대는 일당백 용사들로 뭉쳐 있다. 허도기가 강하게 키웠고, 대장군이 효율적으로 운용한다.
하지만 두주는 적군의 장수가 아니다. 그는 암살자다. 몽설이나 구곡주처럼 얼마든지 단독 행동이 가능한 살수다. 허도기와 비등한 무공을 지닌 살수인 것이다.
그가 오면 확실히 살아남기 힘들다.
어젯밤, 황제는 두주가 공격해 오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했다.
두주가 현재 동영 인자들과 같이 있을까, 아니면 범선에 있을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황제도 모른다. 두주에 대한 정보는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
‘여기 없어. 동영에서 아예 움직이지 않았거나 아니면 범선에 있겠지.’
몽설은 확신했다.
만약 어제 두주가 있었다면 그는 어떻게 움직였을까?
수하를 움직이지 않았다. 두주가 황제가 말한 그런 절대 고수라면 수하들을 보내서 부대장들을 유인하거나 몽설의 발을 묶어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거침없이 베어내면서 지나가도 충분하다.
어제처럼 금군이 모두 빠져나간 상황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사실, 어제 두주와 왔다면 황제는 벌써 목숨을 잃었다. 대략 일다경에서 반 시진 정도면 볼일을 마치고 돌아갔을 것이다.
취운은 이런 부분을 말하지 않았지만, 두주가 현재 중원 땅을 밟고 있지 않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이것이다. 어제의 싸움이 결정적인 증거다.
황제는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다.
황제는 왜 이렇게 두주에게 공포를 느끼나? 두주를 만난 적이 있나? 그럴 리 없다. 황제가 한낱 동왜 암살집단의 우두머리와 대면할 일은 없다.
짐작되는 점이 있다. 아마도 공부에게서 상세한 내용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공부가 두주를 이길 때 펼쳤던 검초를 시전해 보였을 수도 있다.
황제는 무공에 대한 호기심이 높다. 어떤 무공으로 두주를 꺾었는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래! 허도기의 무공을 본 거야!”
허도기의 무공을 보고 두주의 무공을 짐작했다.
저런 무공이어야만 꺾을 수 있는 상대!
황제는 무인이 아니다. 황제의 안목은 무인의 안목과는 아주 다르다. 황제의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황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안심을 시켜드릴 필요가 있다.
몽설은 침상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누워 있어 봤자 잠도 오지 않는다. 그럴 바에는 황상을 대면해야겠다.
“황상을 뵈어야겠어요. 아뢔주세요.”
환관 도공에게 말했다.
“하명이 계실 때까지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분부셨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도공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아프신가요?”
“…….”
환관 도공은 대답할 수 없다는 듯 말없이 허리를 숙였다.
“흠! 여기서 기다리면 되나요? 아니면 다시 올까요?”
“곧 끝나실 겁니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네. 그럴게요.”
몽설은 회랑에서 대기했다.
호황위 군주는 언제든 황제를 볼 수 있다. 낮이건 밤이건, 언제 어느 때건 황제에게 다가설 수 있다. 환관에서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 지금처럼 황제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황제의 사생활에 밀접하게 파고들 수 있다.
하지만 몽설은 항상 예의를 지켰다.
호황위 군주라는 직책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황제가 부여한 것이다.
직책을 준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모든 면을 떠나서 황제는 자신을 질부라고 부른다. 없는 친척을 억지로 쥐어짜 내서 가장 가까운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친가도 아니고 외가…… 그것도 촌수를 천수를 따지기에 민망할 정도로 먼 조카의 부인.
황상이 자신을 질부라고 부르는 한 그녀는 황상을 집안 어른으로 모실 생각이다.
덜컹!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나왔다.
“어! 어쩐 일이세요?”
몽설이 반가운 낯으로 어전에서 나오는 전보영주 허굉우를 반겼다.
취화원은 전임 전보영주 탁호 때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때는 전보영과 장군가에 섞여 있는 허도기 사람을 추려내는 데 집중할 때였다.
탁호가 죽고 허굉우가 전보영을 맡은 후, 전보영은 취화원과 거리를 두었다.
원래 관(官)과 무림은 섞여서 좋을 게 없다.
절대 권력과 절대 무력이 합해지면 반드시 피가 흐른다. 허굉우의 지론이다.
“어제는 활약이 대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허굉우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일은 마치셨어요?”
“네. 황상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제 일은 다 끝났습니다.”
“언제 한 번 뵈어야지 하면서도 경황이 없어서 못 가보고 있네요.”
“제가 먼저 찾아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허굉우는 시종일관 예의를 잃지 않았다.
허굉우는 지금 몽설을 호황위 군주로 상대하고 있다. 취화원 원주로 대했다면 이토록 허리를 굽힐 이유가 없다. 편안하게 이야기해도 되는데…… 편하지 못한 듯하다.
“황상께 볼일이 있으신 듯한데 들어가 보시지요.”
허굉우가 옆으로 물러서며 말했다.
“혹시…… 황상을 뵌 일이 동영 두주와 관계있나요?”
전보영은 첩보를 수집한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가장 방대한 정보수집 기관이다. 황제가 두주를 신경 쓴다면 당장 전보영부터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다.
“…….”
허굉우가 허리를 숙였다.
맞는다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는다. 무언의 긍정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허굉우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있다. 황제가 지시한 일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신조다.
이런 신념이 있으니 전보영 영주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제가 괜한 것을 여쭸네요. 조만간 찾아뵐게요. 호황위 군주로서가 아니라 몽설로. 반겨주실래요?”
“몽설로 오신다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즐기실 수 있도록 좋은 차를 구해놓겠습니다.”
“고마워요. 찾아가 뵐게요.”
몽설이 목례를 보냈다.
탁호가 취화원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면, 허굉우는 무림과 완전히 선을 끊는 쪽이다. 그러면서도 몽설 개인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지 않는다. 활짝 웃으면서 반긴다.
“호황위 군주님께서 뵙기를 청합니다.”
환관 도공이 황상에게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