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96화 (496/600)

第百章 점오칭호(玷汙稱號) (1)

- 이지러진 칭호

황제는 앉아 있지 않았다. 차분한 걸음으로 어전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몽설입니다.”

몽설이 포권을 취했다.

“질부, 어서 와. 어제는 수고 많았어.”

황제가 환하게 웃었다.

“말씀드릴 게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황제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쳐들었다.

“혹시 공부의 무공을 보셨나요?”

밑도 끝도 없는 물음이다. 공부는 천하제일인이다. 황제가 그런 사람을 옆에 두었다. 그러면 공부의 무공을 보지 않았겠나. 아주 많이 봤을 것이다.

당연한 말인데 무엇을 묻고자 하는 것인가?

그런데도 황제는 대답하지 않고 몽설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몽설이 무엇을 묻는지 알고 있으니까.

“어떤 무공이었나요?”

몽설이 재차 물었다.

“공부의 무공이야 항상 일초발검(一招拔劍)이지. 공부의 무공을 몇 번 봤지만 일 초 이상 본 적이 없어. 아니, 그걸 봤다고 해야 하나? 눈앞에서 검이 번쩍이는 것을 느끼기는 했으니까 봤다고 말할 수도 있고.”

황제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몽설이 갑자기 허리를 굽히며 사죄했다.

“응? 내가 허도기 무공을 본 게 군주가 사과할 일인가?”

“아뇨. 공부의 무공은 늘 일 초로 끝나는 게 맞습니다. 한데 황상께서는 그 일초발검을 구분하시네요. 전 황상께서 무공을 전혀 모르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무공은 모르지. 수련한 적도 없고, 몸도 이래서.”

황제가 두 팔을 들어 보였다.

오음절맥은 운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체질이다. 기운이 유유히 흐르지 못하고 뚝뚝 끊긴다.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도 힘에 부칠 정도로 힘들다.

오음절맥이 무공을 수련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진기를 사용한 무공은 아닐 것이다. 힘을 사용한 무공도 펼칠 수 없고…… 머리를 이용한 무공이나 원거리에서 병기를 던지는 투병(投兵) 무공일 것이다.

황제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네. 나도 이런 몸을 고치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 혹시 고칠 수 있지 않나 하는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어. 무공에 관심을 가진 것도 그렇고. 그래서 무공을 펼칠 수는 없어도 무공을 보는 눈은 꽤 높은 편이야.”

“네.”

몽설이 대답했다.

“질부가 묻고 싶은 것은 공부가 보여준 일초발검이 정말 내가 놀라서 자빠질 정도로 무서웠냐 이거 아닌가?”

“네. 맞아요.”

“무서웠지. 보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어. 저 발검은 아무도 상대할 수 없다! 공부가 내게 보여준 일초발검 중 당연히 압권이었거든. 두주를 이긴 무공이.”

“황상께서는 정말로 저나 근위대장이 두주 상대가 안 될 것으로 생각하세요?”

“섭섭해도 어쩔 수 없지. 확실히 그런 생각이야.”

‘오빠!’

몽설은 아걸을 떠올렸다.

황제의 판단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면 두주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걸뿐이다. 다만 아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부탁할 수도 없다.

“만약 공부가 황상을 공격한다고 하면 저와 근위대장만으로 막기는 역부족이죠. 그건 확실해요.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진법이죠. 구곡주를 불러올 것이고, 부장 열 명을 옆에 두겠어요. 그들 열아홉 명, 그리고 저와 근위대장까지 합쳐서 철검금쇄진(鐵劍金鎖陣)을 펼치면 공부도 튕겨낼 수 있습니다.”

“철검금쇄진. 그게 정말 가능한가?”

“네. 혈검경에 상세한 운용기법이 적혀 있어요. 모두 상승 고수이니 하루만 손발을 맞추면 펼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황제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니. 철검금쇄진이 무적이라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공부에게는 안 되지. 그럼 두주에게도 안 돼. 미안하지만 군주, 군주 말이 안심이 안 돼.”

“그러면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아보겠습니다.”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라…… 하하! 공부와 싸워야 한다면 나설 사람이 있을까? 두주는 공부에 버금가는 고수인데, 질부나 검을 들지 누가 싸우려고 해?”

“…….”

몽설을 할 말을 잃었다.

“하하하! 출타해야겠다.”

황제가 갑자기 말했다.

밖에 시립해 있는 환관에게 한 말이다.

“알겠습니다. 가마를 곧 대령하겠습니다.”

환관이 즉시 대답했다.

“아니, 미행이야. 미행. 날 호위할 사람으로는 질부면 되니까 요란 떨지 말고 평복을 가져와.”

“암행입니까? 지금 밖에 동영 잔당이 남아있습니다. 외출은 조금 뒤로 미루시는 게.”

몽설이 급히 말했다.

“하하하! 어제 질부의 무공을 봤는데 눈이 번쩍 뜨이더라고. 질부가 옆에 있어 주면 그까짓 동영 잔당들쯤이야. 질부, 궁에만 있으니까 답답하잖아. 바람 좀 쐬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몽설이 대답했다.

황제가 말하는 것은 가벼운 농담조차도 모두 지엄한 명령이다. 어떨 때는 의견을 개진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절대명령도 있다. 무조건 시행해야 한다.

지금 황제가 말한 ‘출타’도 절대명령이다.

어제 습격이 있었는데 어디를 가시려고 하나. 분명히 전보영주 허굉우와 연관이 있을 텐데.

몽설은 어전 앞에서 만난 허굉우를 떠올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전했기에 황제가 안위도 돌보지 않고 즉시 일어서나.

황제가 말했다.

“가는 데만 이삼일 정도 걸릴 테니까 왕복으로 엿새 정도 걸리겠군. 필요한 것들 준비하고…… 반 시진 후에 보지. 오랜만에 저잣거리 음식 좀 먹어보겠군.”

황제는 먼 길을 걸어본 경험이 없다. 오음절맥이라서 몸도 무척 쇠약하다. 빈혈이 심해서 평상시에도 몇 걸음 걸으면 주저앉아서 쉬었다가 가기를 반복했다.

그런 황제가 엿새에 걸쳐서 걷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누구를 만나러 가시는 거예요?”

몽설이 도공에게 물어봤다.

도공은 전혀 알지 못하겠다는데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도공도 이런 식의 출타는 반대한다. 무엇보다도 황제의 옥체가 염려스럽다. 가마를 탄다거나 최소한 말이라도 타야 안심이 될 거 같은데.

“폐하, 나귀라도 준비할까요?”

도공이 안색이 하얗게 질린 황제를 보며 물었다.

“폐하 소리 하지 말랬지?”

“안색이 너무 안 좋으셔서…….”

“아니. 난 오히려 좋아. 내 몸에서도 땀이 나네. 하하! 난 항상 땀을 흠뻑 흘리고 있는 사람이 부러웠거든.”

“별것이 다 부러우십니다.”

“모르는 소리. 무인들을 보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련한 후에 찬물을 쫙 끼얹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시원해 보이던지. 도공, 나는 꿈도 못 꾸는 일 아닌가.”

“원하시면 찬물을 끼얹어 드릴 수 있는 뎁쇼.”

“정말?”

“네.”

“하는 건 좋은데, 그러면 배충에게 혼날 텐데? 가만…… 지금 배충이 없으니 혼내줄 사람은 군주밖에 없는데…… 일부러 군주에게 혼나려고 그러나? 찝쩍거릴 구실을 만들어 보려고. 도공, 냉수 마시고 속 차려. 군주, 임자 있어.”

“네에? 어휴!”

환관 도공이 어이없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로 가시는지 목적지라도 좀 알려주시면…….”

“저기 국수 판다. 저거 먹고 가자. 항상 먹고 싶었거든.”

“여기 앉아 계십시오. 제가 가서 사 오겠습니다.”

“에이! 저런 것은 팔팔 끓는 솥 앞에 앉아서 먹는 맛이지. 너무 염려하지 말라니까. 여기 질부가 두 눈 부릅뜨고 서 있잖아. 누가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도공도 마음을 놓을 때는 좀 풀어놔 봐. 바싹 긴장하고 있으니까 살이 안 찌지.”

“나날이 뱃살만 늘어나서 걱정입니다.”

“그럼 더 먹어야지. 뱃살 유지해야 하잖아. 하하하!”

황제가 웃으면서 걸어갔다.

도공은 몽설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몽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황제가 어디로 가는지 돌려서 물어봤지만 역시 대답해주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지.

황제는 동전 한 푼짜리 막국수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산해진미에 둘러싸인 사람은 화전민이 먹는 시래깃국 한 그릇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었냐며 감탄한단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음식은 항상 흥미롭고 맛이 있다.

단지 국수를 삶아서 간장 넣고 호박 좀 썰어 넣은 가벼운 음식인데 세 그릇이나 비웠다.

“커억!”

황제가 트림을 했다.

“어지간히 배가 고프셨나 보네.”

국수 파는 아낙이 황제를 보며 말했다.

“이 사람이 어느 안전이라고!”

도공이 발끈해서 일어섰지만, 황제가 꾹 눌러 앉혔다.

“배가 고팠지. 밥 먹을 시간이 지났잖아. 하하하!”

황제가 웃었다.

황제는 하루에 다섯 끼를 먹는다. 이른 아침에 간단한 죽을 먹고 한 시진 후에 아침을 먹는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점심에는 면이나 다과를 먹는다.

그러니 국수도 낯선 음식은 아니다. 다만 육수와 고명에서 차이가 크게 난다.

이른 저녁에 아침처럼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저녁 식사를 한다. 그리고 밤에는 밤참을 먹는다.

과식할 이유가 없다. 매번 소량의 음식만 먹어도 충분하다.

한데 황제는 과식도 즐긴다. 아주 즐겁게 활짝 웃으면서 볼품없는 음식에 만족해한다.

오음절맥에 찌들어 살던 궁궐 생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밝은 모습이다.

‘그래. 어쩌면 이걸로 된 건지도 몰라.’

몽설은 빙긋 웃었다.

황제가 행복해한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동영 인자들의 습격이 예상되어도…… 하루라도 행복하면 되지 않았나 싶다.

왕복 엿새 거리, 엿새 동안의 행복이다.

몽설은 황제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서 눈빛을 번뜩였다.

‘분명히 습격이 있을 거야. 황제가 암행에 나섰다는 말은 벌써 저들 귀에 들어갔을 테니까.’

“누구를 만나러 가시는 길이세요?”

몽설이 물었다.

목적지로 가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황제가 누구를 만나러 가든, 무엇을 보러 가든 가기는 간다. 황제의 미행을 만류하기 위해서 묻는 게 아니다. 그냥 궁금한 마음에서 물었다.

“하하! 질부, 기대해도 좋아. 질부가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진짜 고수를 만나게 해줄 테니까.”

“진짜 고수요?”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고수라면 공부도 능가한다는 건가요?”

“아마도?”

“네?”

몽설이 깜짝 놀라서 황제를 쳐다봤다.

세상에 그만한 고수가 있었나? 몽설이 생각한 최고의 고수는 딱 두 사람, 허도기와 아걸이다.

아걸의 무공은 허도기보다는 한 수 아래였다. 하지만 탕산 싸움 이후, 비로소 최고수 반열에 올라섰다. 이제는 허도기와 싸워도 패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최고수가 아니면 어느 누가 이십사 위문 무인을 그처럼 무참히 박살 낼 수 있겠나.

그 아래 단계에 있는 사람이 두주다.

또 두주보다 한 수 처지는 사람이 자신과 혈랑이다.

물론 싸워봐야 알지만 모든 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그런 판단이 든다.

자신 밑에는 수많은 고수가 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인의 오만이다. 내 무공이 가장 강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니 아래 부류라고 생각했던 무인 중에서 두주나 혈랑 같은 무인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몽설은 혈랑도 아래 부류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비등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상하를 조절하는 일은 늘 일어난다.

그런데 황제는 이 모든 걸 뛰어넘어서 허도기와 아걸 같은 절대 고수를 만나게 해주겠단다.

이 세상에 그런 고수가 또 있었나?

“궁금하네요. 그 사람이 누군지.”

“하하! 내 생각에는 말이야. 군주는 분명히 한 수 밑일 것 같은데…… 흥미로워. 어떻게 보면 혈검이 이길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한번 싸움 한번 붙여볼까?”

황제가 장난스럽게 몽설을 쳐다봤다.

공부와 맞서는 고수!

몽설은 황제의 농담을 받아내지 못했다. 황제는 농담으로 말했지만, 몽설은 진심으로 상대를 가늠했다.

혈검경이 누구한테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근위대장이 야수검을 수련했지만, 사실은 야수검조차도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혈검을 높이 봐줘서 비등일 뿐이다.

몽설은 혈검경이 최강 무학이라고 자신한다.

“질부 표정을 보니 정말 한번 싸우고 싶은 표정이네.”

황제가 말했다.

“싸움이 벌어져야 한다면 사양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정말 그만한 고수라면 싸워보고 싶네요. 제가 수련한 혈검경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랐는지 알아볼 좋은 기회잖아요.”

“그래? 좋아! 그럼 내가 특별히 부탁 한 번 해보지. 그런데 자네 같은 고수들이 싸우면 비무가 곧 실전이라며? 그러다가 다칠 수도 있는데, 괜찮나?”

몽설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무인은…….”

“됐어! 됐어! 됐어!”

황제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손사래를 치며 중지시켰다.

“질부는 아걸한테도 그런 식으로 대답해? 재미가 없잖아. 영 딱딱해. 농담은 농담으로 흘리고. 뭐 애교도 좀 부리고, 장난도 좀 치고. 이게 사람 사는 거지. 항상 정색만 하면서 어떻게 살아. 어쨌든 말이 나왔으니까, 내가 한번 부탁 한번 해볼게. 그런데 그 사람 내 부탁도 무시할 수 있어. 그때는 어쩔 수 없고.”

황제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몽설은 입을 벌린 채 놀라기만 했다.

대체 어떤 자이기에 황제가 부탁하는데도 무시한단 말인가? 황제의 말을 무시해? 이 세상에 그런 자가 있나? 도대체 황제는 누구를 만나러 가는가.

“으음!”

몽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