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97화 (497/600)

第百章 점오칭호(玷汙稱號) (2)

“쉬었다가 가죠?”

“벌써? 아까 쉬었잖아. 조금 더 가지?”

“아뇨. 쉬는 게 좋겠어요.”

몽설은 황제를 반강제로 주저앉혔다.

황제는 걷기 시작한 지 한나절 만에 발병이 났다. 발바닥에 물집이 크게 잡혀서 걸을 때마다 다리를 절룩거렸다. 발바닥에서 전해져 오는 고통이 심한 듯하다.

“신발 벗어드리겠습니다.”

환관 도공이 황제의 신발을 벗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버선까지 벗겨냈다.

발바닥에 하얀 물집이 가득 잡혔다.

“어휴!”

환관이 말은 하지 못하고 한숨만 토해냈다.

“이거 터트려야 하나?”

“아직은 내버려 두는 게 좋아요. 터트리면 바로 치료해야 감염되지 않는데, 아직 갈 길이 머니까요.”

도공은 황제의 발을 물로 씻기고 잠시 바람에 노출했다.

“많이 아프세요?”

“아주 조금.”

“계속 걸으면 물집이 커질 거예요. 안에서 곪기 시작하면 힘들어지시는데, 아무래도 마차를 구해야겠어요.”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발병이 나서 걸을 수 없다는데야 어쩌겠나. 그럼 지나가는 수레를 얻어타자고.”

“네?”

몽설이 무슨 말이냐는 듯 황제를 쳐다봤다.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 마당에 근거리용 수레를 얻어타면서 이동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수레는 먼 길을 가는 용도가 아니다. 마을에서 논으로 이동하는 게 고작이다. 조금 멀리 간다고 해도 겨우 저잣거리 정도밖에 가지 않는다. 하기는 그렇게 잠깐을 이동하더라도 수레를 이용하는 편이 낫긴 하다.

“목적지를 알아야 수레를 얻어타는데요.”

“그렇지. 그럼 일단 용화(龍華)까지 가지.”

“용화…… 말입니까?”

환관이 되물었다.

“일단 오늘은 용화까지 가서 쉬자고. 수레 좀 잡아봐. 태워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황제가 웃으면서 말했다.

용화에 누가 있을까?

일단 유서 깊은 명문 문파는 없다. 용화 일대에는 소문난 무인도 없다.

용화는 조용한 도읍이다.

도읍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구색만 남아서 가구 수가 오백여 호를 넘지 않는다. 밥벌이할 것이 없어서 점점 소멸해 가는 옛날 도읍이다.

용화에는 유함산(遊喊山)이라는 큰 산이 있다.

유함산은 풍광 좋기로 유명해서 수많은 사람이 찾는다. 하지만 용화 쪽에서 올라가는 길은 막혔다. 유함산으로 가려면 남서쪽 유수(裕粹) 방면에서 들어서야 한다.

황제가 가는 곳이 유함산이라면 용화로 갈 것이 아니라 유수로 빠져나가야 한다. 용화로 해서 유함산으로 갈 수도 있지만, 유수 쪽보다 두 배는 힘들다.

당연히 용화 쪽에서는 도로 여건도 좋지 않다.

‘은거무인인가?’

몽설은 아걸과 함께 움직이던 은거무인들을 떠올렸다.

이 세상에는 은거무인이 수없이 많다. 잠깐 무림에 나왔다가 잠적해 버린 무인도 있고, 평생을 무림에서 활동하다가 손을 씻고 칼을 놓은 사람도 있다.

용화에 정착한 은거무인은 없다. 워낙 척박한 곳이라서 있는 사람도 떠나는 판이다.

‘용화라면 하루 거리밖에 안 되는데…… 가는 데 이틀 거리라고 하셨어.’

몽설이 생각한 하루 거리는 걸어서 갈 때 한한다. 수레를 타면 걷는 것보다는 조금 빠를 수 있다. 하지만 수레를 잡기 위해서 서 있는 시간과 이 수레 저 수레 옮겨타는 시간을 생각하면 오히려 더 늦을 수도 있다.

“폐하! 수레를 잡았습니다.”

환관이 급히 다가와서 말했다.

“대감! 대감이라고 하라니까. 그것참 사람하고는.”

황제가 환관을 나무랐다.

황제는 변복하고 있지만 몸에 밴 신태(身態)는 지우지 못한다. 누가 봐도 풍족하게 살아온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대감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남들 앞에서는 대감이라고 부르라니까.”

“대감님, 업히십시오.”

환관이 등을 내밀었다.

“조금은 걸을 수 있어.”

“업히십시오. 물집은 걸을수록 커집니다. 나중에 정말 걸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으니까. 일단 업히십시오.”

환관 도공도 이번에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드륵! 드륵! 드드륵!

짚단을 실은 수레가 삐걱거리면서 굴러갔다.

황제는 팔자 좋게 집단 위에 드러누워서 파란 물감이 묻어나올 것 같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끔 이런 식으로 무림을 돌아다닌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질부도 그랬나?”

황제가 물었다.

“아니요. 저는 수리를 타본 적은 없어요.”

“그래? 살수가?”

“사람들 이목을 철저히 피해야 해서.”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러면 거리가 멀면 어떡해? 멀어도 두 발로 뛰어가는 건가?”

“신법을 펼치면 별로 힘들지 않아요. 그리고 처음부터 달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목적지까지는 편하게 가고, 정작 움직이는 것은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부터죠.”

“그러면 취화원을 떠날 때는 마음 편하겠네?”

“임무는 그때부터 시작이라서 마음은 편하지 못했어요. 다만 몸은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썼죠.”

“그렇겠네. 질부가 한 살행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뭐지? 그런 건 잘 잊히지도 않을 거 아니야?”

몽설은 활검문의 귀빈인 강조 청부 살해 사건을 떠올렸다.

그것이 취화원에서의 마지막 임무였다. 강조를 암살한 후, 아걸을 만났다. 활검문에 당해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아걸이 녹선마황으로 치료해 주었다.

몽설은 그때 일을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다.

“치우현 동승에서…… 여인을 겁탈하고 죽인 자가 있었어요. 강조라고. 그자를 죽여달라는 청부가 들어왔어요. 취화원 청부 요건에 맞는 청부였죠.”

“활검문 사건?”

“아세요?”

“알고 있지. 질부는 내 목숨을 맡길 사람인데, 질부에 대해서 소상히 알아야지. 그래서 조사한 게 있어. 그리고 활검문 사건은 워낙 세상을 시끄럽게 한 사건 아닌가. 그 사건 때문에 아걸이라는 인물이 튀어나왔고. 잘 알지.”

황제가 말했다.

“그럼 상세한 말은…… 그 사건이 제일 힘들었어요. 제가 직접 행한 살행 중에는요.”

“아걸은 지금 어딨어?”

“모릅니다.”

“두 사람…… 혼인만 하지 않았지 부부나 다름없다고 들었는데. 신부가 신랑이 어딨는지도 모른다고?”

“네.”

“바람났네.”

“네? 바람요?”

“그러니까 어느 구석에 꼭꼭 숨어서 소식 한 장 전해오지 않지. 벌써 다른 여자에게 눈 돌아갔어. 잊어버려. 세상에 널린 게 좋은 남자들이야. 한 명 소개할까?”

“네에? 호호호!”

몽설이 소리 내어 웃었다.

“너무 방심하지 말라고. 아걸도 남자야. 예쁘고 나긋나긋한 여자가 달콤한 말로 유혹하면 눈이 확 돌아갈 수도 있어.”

“네. 다음에 보면 발에 줄이라도 묶어 놓을게요.”

“하하하! 질부도 참…… 어떻게 골랐다는 사내가 부평초 같은 사내야. 일홀문도는 잡는다고 잡힐 사람들이 아니잖아? 평생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인데, 하필이면…… 질부도 편안한 가정을 꾸리기는 틀렸지?”

“그런 것 같아요.”

몽설도 웃으면서 말했다.

‘떠돌아다녀도 좋아. 어디에 있는지 소식이라도 전해주었으면. 이렇게 잠적하지만 않아도…… 더 바랄 게 없어. 아! 죽지 않는 것도 포함해서. 욕심이 너무 많나?’

몽설은 혼자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용화까지 오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걷는 것보다 더 느리다. 수레를 갈아타는 동안 기다린 시간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도 황제는 서둘지 않았다.

지나가는 수레가 없어서 막연히 기다릴 때도 있었는데, 황제는 체통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황제는 밀행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밀행을 자주 나오시나요?”

몽설이 환관 도공에게 물었다.

“나오긴 자주 나오는데, 지금처럼 멀리 온 적은 없습니다.”

환관이 답했다.

“이게 먼 거예요? 몰랐어요.”

“암살 위협까지 받는 걸 생각하면 대단히 파격적인 밀행이죠. 아마도 군주님이 옆에서 지켜주고 계시니까 안심하고 멀리 나오신 것 같습니다.”

“전에도 근위대장이 있으셨잖아요.”

“근위대장은 도성 밖으로 못 나가게 하셨죠. 밀행하시더라도 도성 안에서만. 황상께서도 도성 밖을 나가실 생각은 하지 않으셨고. 공식적인 행차로 도성 밖을 나오신 적은 많지만, 밀행으로 나오신 건 처음입니다.”

“아! 네.”

몽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밀행을 즐기는 이유를 알았다.

아마도 새 창살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허공을 훨훨 날고 있는 기분일 것이다.

“이제 어디로 방향을 잡을까요?”

도공이 물었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유함산이나 구경하고 가지. 거기 풍광이 그렇게 좋다고?”

“유함산으로 가시려면 유수로 가셨어야 되는뎁쇼.”

“아니, 천호사(天護寺) 쪽 말고. 이쪽으로 가면 개향사(蓋響寺)가 있지?”

“개향사?”

환관이 처음 들어본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있어요. 개향사는 말만 절이지…… 본전(本殿)조차 변변치 않은 절인데요.”

몽설이 알고 있는 대로 대답했다.

“거기 부처님이 그렇게 용하시다던데?”

“소원을 들어주는 괘불(掛佛)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어요.”

“누가 그린 괘불화(掛佛畵)인지는 모르지?”

“네.”

“그런 건 으레 작자 미상이더라고. 이름을 남겨 놓지 않아. 개향사 괘불은 어떤 소원을 들어주나?”

“아기 못 낳는 여인한테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아요.”

“그럼…… 나한테는 소용없잖아? 이놈의 오음절맥 좀 낳게 해달라고 빌어볼까 했는데. 하하하!”

황제가 마음을 풀어놓고 웃었다.

개향사는 무척 작은 절인 데도 아이를 점지해 준다는 괘불화 덕분에 신자가 꽤 있는 편이다. 시주도 상당히 들어온다. 아이를 낳고자 하는 여인은 시주에 인색하지 않다.

그런데도 절은 풍족하지 않다.

주지가 어려운 사람만 보면 있는 것 없는 것 다 퍼준다. 부처님에게 올려달라고 내준 상차림 비용까지 모두 써버린다. 그리고 정작 예를 올릴 때는 냉수 한 그릇 떠 놓고 부처님이 오히려 이런 걸 더 좋아할 거라고 너스레를 떤다.

개향사를 찾는 시주도 주지를 알기 때문에 웃고 넘어가지, 다른 절이었다면 주지가 상값을 떼어먹었다고 난리 났을 것이다.

“절에서 키우는 고아만 열 명이 넘는다며?”

“네.”

“주지가 누군지 머리 잘 썼네.”

“네?”

“고아를 데려다 키우면 전부 사미승으로 만들었을 거 아니야. 요즘 스님 되겠다는 사람이 있나. 승려를 늘리는 방법으로는 딱 좋지. 머리가 참 좋아.”

“폐하,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을…….”

환관이 놀라서 황제를 쳐다봤다.

“왜? 맞잖아? 내가 미쳤다고?”

“정신이 아니라 생각이 약간…….”

“하하하!”

황제가 웃었다.

황제는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말을 한다. 환관도 감히 황제에게 ‘미쳤다’라는 말을 쓴다.

황제는 마음이 들떠있는 듯하다.

‘개향사에 천하제일 고수가…….’

몽설은 개향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바를 모두 쥐어짜 냈다.

개향사는 크게 두 가지가 유명하다. 아이를 못 낳는 여인에게 아이를 점지해 준다는 괘불과 시주를 전부 어려운 사람에게 퍼준다는 주지 스님이다.

- 부처님은 집 한 칸조차 없으셨다. 중이 앉아 있을 곳이 있으면 호사지 뭐가 더 필요한가.

주지 스님은 사세를 넓히지 않았다. 또 수발을 들어주는 스님도 두지 않았다.

스님은 모든 일을 혼자 알아서 한다.

밥을 지어주는 공양주는 있지만, 그 외에 외부 사람은 일절 없다.

절에 돋아난 잡초까지 직접 뽑는다.

주지 스님은 고아를 거둬서 키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아는 열여섯 살이 되면 절을 떠나야 한다. 그동안 소질에 따라서 학문을 가르치고, 무예도 수련케 한다.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목공, 농사짓는 법 등등.

스님이 일부러 나가서 고아를 거둬들인 것은 아니다. 우연을 쫓아서 절에 흘러든 아이들만 거둔다.

‘그러면 주지 스님이 고수? 그럴 수도 있어.’

황상은 개향사로 구경이나 가보자고 했지만, 몽설 생각에는 아무래도 주지 스님이 절정고수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천하제일 무공도 불문 무공일 것이다.

‘어떤 고수일까? 궁금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