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498화 (498/600)

第百章 점오칭호(玷汙稱號) (3)

용화에서부터 개향사까지는 매우 험한 길이다. 마차가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길이 좁다. 더군다나 그 길이 삼십 리에 걸쳐서 이어져 있다.

아예 마차를 타고 갈 수 없는 길이라고 봐도 좋다.

그런데 용하게 수레는 다닌다. 금방이라도 도랑에 빠질 것 같은데, 아슬아슬하게 나아간다.

“저희는 여기서 이쪽 길로 가야 해서…….”

수레 뒷자리를 내어준 농부가 말했다.

“고맙네.”

환관이 황제를 대신해서 말했다.

‘의외로 수레가 많이 다녀.’

몽설은 수레에서 내리면서도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개향사 쪽으로 가는 수레는 반드시 온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추수철에 길을 나선 게 행운이다.

용화에서부터 개향사까지 삼십 리 길을 오는 데 꼬박 다섯 시진이 걸렸다.

아침에 출발했는데 한밤중이다. 달이 중천에 떠 있는 것을 보면 자정 무렵일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에는 오가는 수레가 없어서 환관이 황제를 등에 업고 왔다.

개향사를 찾기는 쉬웠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인데도 절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주지 스님인 듯한 승려가 탑을 빙빙 돌면서 탑돌이를 하는 중이었다.

“아미타불! 어서 오십시오.”

주지 스님은 한밤중에 손님이 찾아왔어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아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태연히 황상을 맞이했다.

스님이 두 손 모으며 깊이 절했다.

“자고 있으라니까 그래.”

황상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존귀하신 분이 먼 길을 오시는데 어찌 빈승이 편안히 잠을 청할 수 있겠습니까? 어서,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주지 스님이 길을 열었다.

‘전보영!’

몽설은 당장 전보영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 도움을 준 사람들도 심상치 않다. 어떻게 이 외진 길에 수레가 끊임없이 나타나나. 추수철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들 모두 전보영에서 내준 사람들이다. 짐작일 뿐이지만 틀림없다.

전보영이 황제를 은밀히 도운 것은 동영 인자의 눈을 속인다기보다는 허도기의 눈을 가리는 쪽으로 해석하는 게 맞다. 허도기에게 황제의 밀행을 숨겼다.

황제가 황궁을 비웠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다.

황궁 내부의 지극히 은밀한 비밀이지만, 그런 비밀일수록 더욱 빨리 알려진다.

그 대신에 황제가 정말로 밀행에 맛 들인 것처럼 연극했다.

지금 이곳, 개향사는 안전하다. 허도기의 눈이 없다. 주지 스님이 황제를 지극히 공손히 받들고 있다.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공손히 모신다.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분은?”

‘분? 그분이라니!’

몽설과 환관은 깜짝 놀라서 서로를 쳐다봤다.

황제가 ‘분’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지고무상한 황제가 평민에게 존칭을 붙였다. 이게 될 법이나 한 소리인가? 그러면 개향사에 있는 고수가 황실 사람이라는 것인가?

“취침에 들었습니다. 해시초(亥時初: 저녁 9시)만 되면 정확히 취침에 드십니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저희 납자(衲子: 스님이 자신을 낮춰 부르는 말)보다도 정확합니다.”

“그럼 할 수 없지. 얼굴을 빨리 보고 싶어서 잔뜩 기대하고 왔지만, 벌써 잠자리에 들었다면 내일 봐야지.”

황제가 말했다.

몽설과 환관은 또다시 놀랐다.

황제가 그를 ‘분’이라고 높여 부를 때보다 더 놀랐다. 그가 자고 있으니 내일 보겠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말이다. ‘데려와’ 한 마디면 통하는데.

황제가 ‘분’이라고 말한 사람은 절정고수일 것이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황제가 이토록 조심하나.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 우리도 쉽시다. 밤이 늦었는데.”

“침구는 깔아 놓았습니다만…… 누추한 곳이라 주무시는 데 많이 불편하실 겁니다.”

주지 스님이 앞장서며 말했다.

꼬끼오!

수탉이 홰를 쳤다.

아침이 밝아왔다. 유함산은 온통 아침 안개에 휘감겼다. 하얀 연기가 앞을 가려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공기는 무척 상쾌하다.

나무와 풀과 흙과 물이 만들어 낸 맑은 공기가 폐부를 시원하게 씻어준다.

“아함!”

몽설은 길게 기지개부터 켰다.

산에서 맞이하는 아침과 황궁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사뭇 다르다.

몽설은 자신이 비로소 우리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황궁에 있을 때는 답답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산에서 아침을 맞이해보니 그동안 무척 답답했었다.

이곳에서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상쾌해. 기분도 좋고.’

스릉!

몽설은 검을 뽑았다. 그리고 느릿느릿 혈검경의 초식들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제일식 혈검무극 백이십칠 개의 움직임.

몽설은 혈검무극을 일순간에 휘돌릴 수 있다. 숨 한 모금에 백이십칠 초가 전개된다.

지금은 매우 느리게 검초를 펼친다.

굼벵이가 기어가는 것보다도 더 느리게…… 움직임 하나에 긴 숨을 들이마셨다가 토해낸다. 그리고 다음 움직임으로 넘어간다. 백이십칠 식을 모두 끝내려면 아직 멀었다.

진기 실린 검초도 아니다. 진기를 운용하지 않고 육신의 힘만으로 검초를 펼친다.

부드럽게 느리게.

최대한 느리게 검초를 펼치는 것이 목적이다.

아니다. 진짜 목적은 힘을 싣지 않고 검을 뻗어내는 데 있다. 느리거나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도 모두 검을 잡은 손에 힘을 빼기 위해서다.

반면에 검을 쥐고 있는 손은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무섭도록 예민해진 감각은 어제까지는 몰랐던 새로운 느낌을 찾아낼 수도 있다.

‘그래. 이 느낌으로 검을 펼치면…….’

어떤 느낌이 무심히 찾아올 때마다 검초는, 혈검경은 한 단계씩 발전한다.

“하아!”

몽설은 긴 숨을 토해내며 검을 거뒀다.

혈검무극을 펼친 지 반 시진이 지났다. 그동안 혈검무극과 혈검무진밖에 펼치지 못했다. 반 시진 동안에 단 이식밖에 전개하지 못하고 검을 거뒀다.

수련을 계속 이어나가기에는 힘이 달린다.

진기를 쏟아부으면 회복이 빠르겠지만, 그것은 수련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다.

“후우!”

검을 거두고 또다시 한숨을 쏟아냈다.

단 이식만 수련했는데도 온몸이 땀으로 후줄근하다. 그야말로 땀으로 목욕을 한 것 같다.

몽설은 개울을 찾았다.

황궁에서는 이렇게 땀을 흘리고 나면 욕실에 들어가서 고인 물을 뒤집어썼다. 유함산에는 욕실 찬물보다 더 차가운 물이 있다. 산에서 흘러내린 맑고 상쾌한 계곡물…….

촤아악!

몽설은 옷을 입은 채로 물속에 몸을 담갔다.

‘오늘은 볼 수 있어. 극강의 고수. 그가 누구라고 해도 혈검 역시 무적이야.’

몽설은 황제가 한 말, 비무를 청해보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질 생각도 없었다. 상대가 누구라고 해도. 설혹 허도기가 직접 나섰다고 해도.

아침 안개가 가셨다.

황제는 주지 스님과 환관 도공, 그리고 몽설까지 네 사람이 둘러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겸상을 준비시켰다.

원래 황제는 겸상하지 않는다. 누가 감히 불충하게 황제와 같이 마주 앉아서 식사하겠나.

주지 스님은 모르겠다. 환관도 같이 앉아서 먹는다.

몽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황제와 마주 앉아서 밥을 먹어도 되나?

“질부, 어서 와. 아침 수련 중이라서 일부러 부르지 말라고 했지. 하하! 절밥이 아주 맛있어.”

황제가 빨리 와서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저는 조금 이따가…….”

“괜찮다니까. 다 같이 먹자고. 이런 데서까지 뭘 따져. 스님 말대로 허름한 절이잖아. 볼 것도 없고, 보는 사람도 없고. 치우는 사람 편하게 같이 먹고 끝내자고. 앉아.”

황제가 옆자리를 내줬다.

“그분은? 아침도 안 드시나?”

황제가 이번에도 존칭을 사용했다. ‘분’이라고.

“벽곡단(辟穀丹)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주지 스님이 답했다.

“벽곡단, 그거 궁금해서 나도 한번 먹어봤지만…… 배고프던데. 그거 먹고 요기가 되나?”

“공복감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밥을 먹었을 때처럼 포만감이 느껴진다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참는 거죠. 살 수 있을 정도만 먹는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럼 수련을 하는 건가?”

“그냥…… 논다고 말하는 편이…….”

“논다고?”

“네.”

“다른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머물 곳이 없어서 산 아래 민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산에 올 때도 있고, 오지 않을 때도 있고…… 워낙 마음대로라서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주지가 공손히 대답했다.

개향사에 머무는 고수 이야기다.

어제저녁부터 황제와 주지 스님의 이야기는 항상 그 사람에 맞춰져 있다.

그 사람이 누군데 이럴까?

“질부, 가지.”

“네.”

몽설은 대답과 동시에 검을 잡았다.

드디어 황제가 말한 절대 고수, 그를 만나러 간다. 상황에 따라서는 당장 비무를 할 수도 있다. 두주와 버금가는 고수라면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저벅! 저벅!

황제가 앞장서서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겠다.

개향사의 구조는 간단하다. 본전인 대웅전(大雄殿)이 있고, 대웅전 앞에 석탑 한 개가 놓여 있다. 대웅전 옆쪽으로는 방 세 개짜리 요사채가 있다.

그리고 이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제법 큰 산신각이 있다.

원래 산신각은 사람 한두 명이 들어앉으면 고작일 정도로 작지만, 개향사의 산신각은 중문이 있을 정도로 크다. 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좌우로 객사가 있다. 십여 보 앞에 중문이 있고, 중문 좌우로 방이 하나씩 있다.

중문을 넘어서면 산신각이 나오는데, 산신 대신에 괘불화가 걸러져 있다.

개향사 산신각은 천 배, 이천 배, 삼천 배, 일만 배 혹은 백일기도 등등 염원이 가득한 시주를 위해서 만든 전각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말고 기원을 올리라는 뜻이다.

황제가 가는 곳은 그곳이다.

“여깁니다.”

주지가 중문 옆에 붙은 객사, 오른쪽에 있는 방을 가리켰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쪽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덜컹!

방안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던 젊은이가 고개를 돌려 문 쪽을 쳐다봤다. 순간!

“오빠!”

몽설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방 안에 누워 있는 젊은이…… 아걸이다.

“모, 몽설!”

아걸도 몽설이 뜻밖인 듯 벌떡 일어나 앉았다.

“소개하지. 질부가 본 적이 없는 절대 고수, 일홀문주 서리흔이라는 분이지.”

“화, 황상께서 소개하신다는 고수가?”

“이분 맞아. 일홀문주, 서리흔.”

황제는 아걸을 처음 만난다. 한데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친숙하게 말했다.

아걸이 차분한 모습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면서 문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사내가 누군지 짐작했다.

“아니, 나오지 마세요. 일홀문주.”

황제가 아걸에게 존칭을 사용했다.

“폐하.”

아걸이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급하게 서두는 모습이 아니다. 문밖에 있는 사람이 황제라는 사실을 알고도 매우 차분하다.

당황하거나 쩔쩔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아걸은 이미 일대 종사의 품위를 갖췄다.

‘아! 이래서!’

몽설은 황제의 뜻을 알아챘다.

전에 보지 못했던 절대 고수!

예전에 몽설이 알던 아걸은 이런 절대 종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강한 무인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태환골(奪胎換骨)한 아걸은 새로운 절대 고수가 맞다.

“질부를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이 정도면 놀랐나? 오면서 입이 간지러워서 혼났어.”

황제가 몽설을 보며 말했다.

“네. 놀랐어요.”

몽설도 차분해졌다.

“우선 두 사람, 오랜만이니 회포 좀 풀고…… 일홀문주, 우리는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할 이야기가 많아요.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이종사촌인데, 내가 군주를 질부라고 불러요. 예법에 어긋난 말이지만 더는 친근한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

황제는 아걸에게 존대했다.

아걸을 이종사촌으로 보지 않는다. 무부(武夫)로 여기지도 않는다. 일대 종사로 예의를 갖춰서 말한다. 중원 제일인자, 일홀문주로 대하고 있다.

“질부, 어떻게? 비무 한번 주선해 볼까?”

황제가 몽설을 놀렸다.

“아뇨. 됐습니다.”

몽설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0